향기마을
두 바퀴에 인생을 싣고......15 본문
두 바퀴에 인생을 싣고 15
오늘 새벽부터 늦가을 비가 내린다. 내일은 눈까지 내린다니 눈이 녹을 때까지 자전거 타기는 중단하고 모처럼 휴식을 갖게 될 것 같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찿아오는 모양이다.
사능 자전거 가게와 왕숙천 옷가게 사장에게 며칠 못보게 될 것 같다고 어제 인사를 했다. 사능 가게는 손님이 줄어 안타깝다. 이 겨울을 잘 이겨내야 할 텐데...... 쉬는 기간 동안 술 한 잔 생각이 나면 전화하라고 했다.
옷가게에는 가개 뒷 편 공터에 화목 난로를 설치하여 나무를 잘라 넣고 불을 지피는데 화력이 좋아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기도 한다. 이 지역은 왕숙천 신도시 예정 지역이라 산마다 나무를 자르고 가구를 내다버리고 건물이 헐어진다. 그래서 나무를 구하기가 쉽다.
나무를 자르는데 굵은 나무는 사장이 큰 전기톱으로 자르고 크기가 작은 나무 가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4인치, 6인치 전기톱을 잘 사용하고 있다. 이 전기톱은 북한강 자전거길을 다니면서 가지치기나 수목절단에 사용하던 전기톱인데, 톱날도 예비로 장만했고 밧테리도 몇 개나 된다. 그러나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고 고장이 나거나 커버가 부셔져 사용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옷가게에는 자전거를 타는 배불뚝이 아줌마들이 자주 오는데, 매장 안을 한참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옷을 고르다가 이 옷도 입어보고 저 옷도 입어보고 거울까지 본다. 자신의 못생긴 몸매는 생각하지 않고 옷을 탓한다. 그러다가 겨우 한 두개 정도 사 가면서 그것도 가격을 깍아달라고 한다. 주인이 서비스로 두건이나 장갑을 주면 바느질을 탓하고 싸구려라고 생각하는지 투정을 부린다. 정말 진상 손님들이다.
어느날 남자 넷에 여자 한 명이 옷가게에 왔다. 여자가 사라는대로 남자들이 산다.그 여자는 네 명의 남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여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 서로의 관계는 알 수 없다.
북한강 철교 밑 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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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 철교 밑 전경
북한강 철교 밑에는 쉼터가 2군데 있고 화장실도 있으며 지난 늦여름에 오래된 화장실을 대폭 개선 작업을 해서 다시 정비했다. 화장실 옆에는 삼나무가 10그루 정도 줄지어 서 있는데 금년 내내 1주일에 한 번씩 제초 작업을 실시해서 칡넝쿨이나 넝쿨식물이 나무를 타고 오르지 못했다. 작년에는 칡과 넝쿨식물 삼나무를 타고 올라 뒤덮었는데 금년에는 삼나무 밑이 훤하게 정리되어 삼나무가 마음껏 햇빛을 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이곳 북한강 철교 밑 쉼터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쉼터다. 한 쪽은 지붕에 낙엽이 쌓여 비스듬히 기울어져 언제 회전할지 몰라서 위험한 상태다. 그런데 이 두 곳의 쉼터에는 항상 담배 꽁초를 비롯하여 쓰레기가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나무 가지를 잘라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두면 누군가 치우는지 가끔 들리면 새로운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쉼터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인간들 때문에 쉼터는 항상 볼썽사납기만 하다.
지난 여름 어느날에 이곳 쉼터에 도착해보니 각종 쓰레기와 막걸리통을 2~3개 정도가 버려져 있었는데, 아마 누군가가 여러명이 같이 막걸리를 마신 모양이다. 음주 주행은 자동차 음주운전과 마찬가지로 사고를 유발하기 쉽다. 자전거를 타면서 막걸리를 자주 마시는 사람도 많다.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치명적인 부상이나 심지어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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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로 가는 방향
여기서 새터로 가는 길은 물의 정원을 지나 45번 도로를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을 가는데, 중간 정도 지점에 고개가 있고 고개 정상에 북한강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차량도 쉬어가는 쉼터인데 항상 쓰레기가 넘챠나고 전망대에는 팔각정이 멋있게 만들어져 있고 멀리 새터 방향으로 북한강을 훤하게 볼 수 있는 전망이 무척 좋은 곳이었으나 저작년에 전망대 앞 강변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전망을 가리는 바람에 전망대가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전망대를 관리하는 국도 관리청과 건물을 허가해준 조안면이 협조가 안되어 전망대가 뮤명무실해져 버린 것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좌우로 5킬로미터 정도가 북한강 자전거길 중에서 내가 주로 실시하는 수목제거와 제초작업 구간이다. 3년 전에는 아카사아 나무가 자전거길을 뒤덮고 있었는데 내가 일반 및 전기 톱과 낫으로 2년 동안 줄기차게 제거한 결과 남아 있던 뿌리와 줄기는 2년 동안 잎을 피우지 못하자 지금은 거의 생명을 잃고 죽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 수목을 정리하면서 깨끗하게 정리되어 남아 있던 줄기마져 제거해버렸다. 아카시아 나무는 뿌리만 남아 있어도 봄이면 새순이 돋고 줄기가 자라면서 잎을 피우는데 그것마져도 잘라버리면 결국 성장을 못하고 말라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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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 나타난 고양이
어느날 쉼터에서 쉬는데 어린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내가 앉아 있는 의자 위로 올라와서 내 옆에 다소곧이 앉아 있다. 사람을 보면 피하는 대부분의 길고양이와는 달리 신기하게도 이 고양이는 사람의 손을 타는 고양이인 모양인데, 누가 키우는 고양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자주 먹이를 주어 내게 다가오는지 알 수 없다.
먹을 것이 없어 물을 주었더니 물을 먹는다. 다음에는 고양이 먹이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오늘은 미안하게도 물만 주고 그곳을 떠났는데 오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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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두려움 없이 내 옆에서 자리하고 앉아 울음소리를 낸다. 먹이를 달라는 모양인데 너에게 줄 먹이가 없어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어디있는지 보이지는 않고 홀로 이렇게 사람을 찿아다니며 먹이를 구걸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눈빛이 애처럽고 가슴에 쓰리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무척 힘들다는 표정의 눈빛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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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앉아 멍하니 다른 곳을 보면서 무언가 먹을 게 나오기를 기다리는지 가지 않고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너에게 줄 먹이가 없어 어쩌나, 미리 알았더라면 먹이를 가져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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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의 물을 뚜껑에 따라 주었더니 맛있게 먹는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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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 날씨다. 이 고양이가 다가올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지 걱정스럽다. 겨울 동안 따스히 잘 곳은 있는지, 먹이는 구할 수 있는지, 아니면 로드킬을 당하여 이 세상을 일찍 하직활 것인지 알 수 없다. 인간도 한 치 앞 자신의 인생 운명을 알 수 없는데 너라고 알 수 있겠느냐마는 삭풍이 부는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오는 내내 마음이 고양이 눈빛에 걸려 실타래처럼 풀려나갔다.
국민 간식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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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 막국수집은 지난번에 갔더니 문을 여는 화요일인데도 닫았다. 아마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는지 알 수 없다. 지난번에 뜨거운 온막국수를 먹었는데 식감이 이상하여도 말을 하지 못하고 먹고 나왔는데 차라리 일반 칼국수가 더 낳아보였다. 지난번에 여사장이 11월 말까지 장사를 한다고 해서 찿았는데 문이 닫힌 것이다. 내년 2월 이후에나 다시 보게 될 것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날씨가 점차 차가워지자 이제는 점심으로 따뜻한 칼국수, 순대 국밥, 콩나물 국밥, 돼지 국밥, 소머리 국밥, 짜장면 등을 찿게 된다. 팔당대교를 돌아 깔딱고개를 넘어 사능으로 오는 도중에 점심을 먹기 위해 다산 신도시에 들러 둘러보다가 다산역 근방에서 순대 국밥집과 콩나물 국밥집을 찿게 되었다.
진건읍 근방에는 평소 자주 가던 짜장면집과 소머리 국밥집이 있다. 호평동에도 콩나물 국밥집과 순대 국밥집이 있다. 돼지 국밥집은 옛날 장터처럼 별도로 없고 순대 국밥과 비슷하여 집에서 끊여 먹으려고 지난번에 돼지머리를 주문하여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배고픈 어린 초등학교 시절, 추운 겨울날 학교를 마치고 고향 장터에서 장사하시는 어머니를 찿아갔다. 점심 시간이 되자 아버님이 나를 데리고 장터 안으로 들어가 나에게 사주시던 돼지국밥 맛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버님과 같이 장터 국밥집에 가서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 주인 아줌마가 식은 밥을 뚝배기에 담아 뜨거운 뿌연 육수에 담갔다가 꺼내고 다시 육수를 붓고 돼지고기를 한줌 얹고 파, 소금, 고추가루를 뿌려 뚝배기에 담아 주던 그 돼지국밥. 추운 날씨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밥을 정신없이 퍼먹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데, 그 당시 그런 국밥을 지금 아무리 만들려 해도 만들 수가 없다. 그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당시만큼 배가 고프지 않아서 일게다.
진건읍에는 중국집이 몇 군데 있는데 어느날 짜장면을 먹을 요량으로 한 집을 찿아갔다. 내부는 좁고 지저분한 집이지만 들어가서 짜장면을 곱배기로 시켰다. 주방에서 요란하게 요리하는 소리와 조리하면서 풍기는 냄새, 분주한 배달, 요란한 전화벨 소리, 마침 점심 시간대라 이 때가 중국집이 가장 바쁜 시간이다. 짜장면은 금방 먹을 때가 가장 맛있는 것이라 잔뜩 기대했다. 기다리는 동안 옆 카운터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사장님, 여기 일하시는분이 몇 명이나 되세요?"
한참을 손가락으로 세더니,
"예~ 한 7~8명은 됩니다."
정말 대단하다. 이 좁은 중국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7~8명이나 된다니 장사가 잘되기는 하는 모양이다. 중국집 짜장면 장사해서 손해보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밀가로 한 포대로 짜장면 생산량을 고려하면 그 수익이 수십, 수백 배는 될 것이다. 물론 짜장, 양파, 단무지, 돼지고기, 조리 원가를 고려해도 많이 남는 장사다.
사실 짜장면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인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배달을 시키면 오토바이를 타고 번개같이 달려오는 것이 짜장면 배달이다. 시골 구석구석마다 짜장면 집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지금은 통닭집이 대세지만 아직도 짜장면 집은 그 역사적 위용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홍천에서 철정을 지나 현리로 가는 길에 아홉사리 고개를 올라가다보면 과거에 짜장면 집이 하나 있었다. 지금도 있는 지는 몰라도 서울 등지로 먼 길을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먹던 짜장면은 그 맛이 일품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70년대 후반 고등군사반(OAC)를 마치고 21시단으로 전출을 갔는데, 이사짐을 싣고 춘천을 거쳐 오음리로 넘어서 소양호 산길을 구비구비 따라 양구로 갔다. 무작정 올라갔기 때문에 관사가 없어 찿아보다가 풀이 무성한 빈 관사를 발견했다. 그래서 사단 인사처 선배에게 연락하고 빈 관사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대대 선배에게 연락해서 수리를 의뢰하여 다음날 병사들이 나와서 수리를 하고 들어가서 살게 된 것이 양구 생활을 시작했다.
사단 신고를 하고 대대장을 만나뵙고 대대 참모로 임명되어 그날 바로 대대장님과 같이 전방 GOP로 갔다. 당시 전전선에 처음으로 전기 인입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조립주와 콘크리트 고압전주를 세우고 애자를 설치하고 고압선을 걸고 당겨 고정시킨다. 철책까지 엄청난 작업량인데 한전 직원들과 같이 공병대대 장병은 물론 보병 병사들까지 동원하여 콘크리트 고압주를 옮기고 강판 조립주를 새우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전방 21사단은 담당 정면이 총 21킬로미터로 전방 사단 중에서 가장 정면이 넓은데 대부분 거의 1,000미터가 넘는 높은 고지대가 많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전기작업장을 가면서 오금이 저렸다. 금방 넘어질 것 같은 비탈길을 찝차는 잘도 올라가고 내려갔다. 작업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다보면 동면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에 유일한 짜장면 집이 하나 있었다. 대대장님은 자주 들리던 집이었는지 알고 보니 매우 유명한 집이었다. 점심도 못먹고 전방을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이라 무척 배가 고팠는데 그때 먹던 그 짜장면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던 대대장은 대령 진급도 못하시고 전역 후 문관으로 육본에서 근무하실 때 나는 한미연합사에 근무하면서 자주 찿아뵈었던 기억이 난다. 대대장님은 나를 무척 아끼시며 자랑스러워하며 반가워했는데, 어디를 가나 항상 나에게 자주 전화도 주시고 안부를 불었다. 그러다가 문관 생활을 끝내고 지인과 함께 한강 골재사업을 하다가 많은 돈을 사기당하고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마음 고생이 많아셨는지 담배도 피우지 않던 분이 후두암으로 90년대 초에 돌아가셨다.
대대장님은 전방 철책선에 전기를 처음 인입하는 날, 전방 오피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했고, 전전선에 전기기 일제히 들어오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또 백두산 사단(21사단) 사령부 앞 산 언덕 위에 사단 교회를 짓는데 매일 신자 가족들이 잔치 국수를 만들어 30여 명의 병사들에게 간식을 제공했고, 종탑에 콘크리트를 치는 날 밤, 종탑에 올라가 찬송가를 부르시던 독실한 신자였다. 아마 지금은 하늘 나라에서 잘 계시리라 믿는다.
신팔당대교 작업장 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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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팔당대교 신축 전경
신팔당대교가 한창 신축중이다. 교각이 북한강에 거의 다 세워져 있고 강판으로 된 스판이 지상에서 한창 조립 작업 중이다. 진출입로도 형태를 점차 갖추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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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대교를 매일 건너 다니면서 남북의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길과 교량에서 만나는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족과 조우할 때는 항상 긴장하고 조심하며 지나가야 한다. 서로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교차해야 하며 난간이나 핸들에 걸리기만 하면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배려도 없이 속도를 내며 잘난척하며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더러 있다. 아직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젊은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 다리에는 남북을 오가며 산책하는 사람들이 종종 지나다니곤 하는데 자전거가 다니는 이 위험한 길을 굳이 건너다니는 사람들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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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팔당대교 다리밑 쉼터에서 쉬고 있는데 내보다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어르신 모습의 작업하는 인부 한 분이 다가와서 자전거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는다. 대화를 주고 받다가 알고보니 작업장 형틀 목공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 형틀 목공하신 지가 얼마나 되세요? "
"한 40년 됩니다."
"아이구 오래되셨네요."
"자식들도 다 키우고 배운게 목공일 뿐이니 어쩔 수 없죠."
"자녀들은 다 출가했죠?"
"그럼요. 모두 출가하고 큰 눔은 쿠팡에 다니고 작은 놈은 00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요."
그래도 자식 자랑은 모든 부모가 똑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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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그동안 다치시도 않고 오늘날끼지 건장하신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헤 헤 ~~ 뭘요."
나의 칭찬에 고무되었는지 말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형틀 적업은 위험하고 힘들 것인데, 지금은 배테랑이시니까 감독만 하시겠네요."
" 요즘은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힘들어요. 대부분 불법체류자들이라 인건비가 싸고 우리 한국 젊은이들은 이런 일을 하려들지 않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쉽고 위험하지 않으면서 고액의 연봉을 원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려들지 않을 겁니다. 취업이 어렵다는 말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요. 우리나라 중소기업이나 제조업, 어업에 종사하는 사장들이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 불법체류자라도 쓰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그럴겁니다. 그래서 중국, 동남아 등지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일자리를 구하러 많이 오고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환률이 예전 같지 않아 외국인들도 달라지고 있데요."
'그런데 오늘은 쉬시나요. 일을 안하시는 모양인데......"
"아니 형틀을 만들어 놓고 지금 레미콘 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저게 무슨 형틀이에요?"
"예~~ 맨홀이라요"
그러고 보니 쉼터 옆에 맨홀 형틀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대접할 것도 없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출발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안전에 유의하세요"
"아~~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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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제작 작업 전경
돌아오는 내내 마음은 실걸이꽃의 바늘에 걸려 팔당대교로 실타래처럼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한평생을 형틀 목공으로 살아오신 어르신이 대단하게 생각되었고 국가 발전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몸으로 헌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후회없는 삶, 그것은 높은 고관대작이 되어 높은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한평생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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