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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에 24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에 24

 

 

한강 자전거길 '장미' 2

 

 

 

 

장미꽃은 아름답다. 보는 사람은 대부분 그 우아한 자태와 진한 색상에 감탄하며 옆에 얼굴을 대밀고 사진을 찍고 '내가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야!' 하며 즐거워 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미(美)를 말한다. 아름다움이나 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미를 추구하는데, 미를 추구하는 결과물이 아름다움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연의 미든 인공의 미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보편적인 미는 아름답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아름다움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추함으로 변하면서 인간의 눈길에서 벗어나게 되고 현실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미를 추구한 결과물인 아름다움은 결국 환상에 불과한 것이란 점이다.

 

 

 

 

 

아리수의 도도하고 장엄한 흐름도, 저 멀리 잠실 벌판에 높이 솟아오른 한국의 바벨탑도, 빌딩 숲을 이루는 강남의 화려함도 한낮 물거품 같은 것이다. 

 

예쁜 자전거 복장을 하고 마스크를 벗은채 잘 빠진 몸매와 얼굴의 미모를 자랑하며 달리는 여성이 아름답게 눈에 비치는 것도 환상이다. 자전거길에는 남에게 자랑하고 보이기 위한 갖가지 인간의 자만과 자랑, 방종, 거만, 무법, 경쟁, 광기, 환상 등이 넘쳐난다.

 

 

 

 

 

광속으로 '나 어떼?'하며 달리는 젊은이들, 공도를 미친듯이 달리는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 고개길을 '저 이렇게 빨리 달립니다' 하며 숨을 허떡이며 달리는 젊은이, 무리를 지어 자전거 도로를 차지하고 달리는 동호인들, 웃통을 벗어던지고 달리는 사람, 비틀거리며 달리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자전거 도로를 나온 부모들, 헬멧도 쓰지 않은 채 제 멋대로 폼을 잡고 달리는 기본도 모르는 무지의 인간들, 이 모두가 우리들의 눈에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이기에 자전거 도로가 아름답지 못한 것이다.

 

노란 유채꽃들이 장미와 더불어 제방을 수놓고 있다. 작년에 떠내려온 각종 쓰레기와 마른 갈대잎은 홍수가 나면 쓸려갈 것이다. 고인 물이나 느린 흐름은 물을 썩게 만들고 오염이 심해진다. 아직 홍수가 나지 않아 지천과 강들이 심하게 오염된 상태다. 물고기가 죽어 물가에 떠오르고 수초기 물속에 가득하고 자갈이나 바위에는 부유물이 잔뜩 붙어 보기에도 흉하다. 강은 주기적으로 홍수가 나면서 바위와 자길이 뒤집고 굴러 바닥을 정화시키고 각종 쓰레기와 부유물이 씻겨 내려가야만 강이 정화된다. 

 

그런데 6월 하순에 비가 내려 지천이 홍수가 휩쓸고 한강에도 흙탕물이 흐르면서 다소 오염도가 정화되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한강물이 넘쳐나고 잠수교가 잠길 정도로 비가 내려서 오염된 강바닥을 뒤집어야 한다.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현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 아름답게 꽃이 피지만 세월이 지나면 추한 모습으로 떨어지는 꽃잎처럼 우리들 삶의 끝은 대부분 추한 모습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산해진미와 주지육림에 아홉 선녀를 거느리고 대궐같은 별장에서 호의호식하며 인생을 즐기는 권력자나 가진자들도 마찬가지로 그 끝은 추한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같이 잘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회, 평등과 공정이 사라지고 가진자와 권력자들만 자본의 이득을 누리며 사는 불공평한 사회에 우리들은 살고 있기에 이 세상은 아름답지가 못하다는 뜻이다.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인간이 눈으로 보기에 추하지 않고 모나지 않고 더럽지 않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지, 장미 자체는 오로지 종족번식을 위해 유전적으로 그 모양이 진화되어 왔고 다른 꽃에 비해 뛰어난 아름다운 모습이라야 벌이나 나비가 몰려들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꽃들이 다양한 유전적인 모습을 띠면서 각자의 종족번식을 추구하여 왔던 결과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도 각자 다양한 개성을 띠면서 각자의 삶을 추구할 때 아름다운 것처럼 다양성은 삶의 원천이며 생명이다. 획일성은 퇴보이며 죽음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에 대한 몇 가지 글을 인용해본다.

 

인간에게 ‘아름다움’이란, 이상세계로 가는 하나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높은 첨탑과 스테인드 글라스, 신전을 비롯한 건축물들은 물론, 불상과 탑, 그리고 탱화는 놀라우리만치 아름답다. 아름다움의 경험은 우리 삶에 긍정적인 힘은 물론이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을 준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아름다운 실체가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고 그러한 경험의 소중함을 느낀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은 어떨까. 흔히 역겹다거나 피하고 싶은 많은 것들은 아름다움의 반대편에 있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접촉하거나 섭취할 경우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그렇다. 위험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멀리하는 게 좋다.


위험한 것을 알아차리는 감각기로는 후각이 꽤 확실하다. 코를 통해 고약한 냄새를 알아차린다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냄새는 분자의 확산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먼 거리일 때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고약한 냄새로 인해 불쾌감이나 위험을 느낀다면 피하기엔 이미 늦은 경우이다. 위험의 감지는 그렇게 냄새를 맡기 전에 생존 임무를 완수했어야 한다.

 

먼 거리에서도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알아보는 방법, 바로 눈으로 보는 방법이다. 본다는 것은 꽤 먼 거리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시각반응은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에너지들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빛을 통해 전달되는 시각 정보가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는 위험하지 않다. 보는 순간이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이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진화하는 생명체에게 매우 강력한 생존 수단이었음이 틀림없다.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위대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고유하게 정의하는 것은 곤란해 보인다. 감각을 통해 느끼는 소박한 인상이나, 예술 작품에 대해 갖는 감동은 물론이고, 인간 행위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와 해석의 위상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이 가진 참 의미가 아닐까.

 

아름다움이란, 보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 펑범에서 벗어난 낯설음을 우리는 ‘멋’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특이함을 특별함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확장이며 다양성을 수용케 하는 능력의 확충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우리가 피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끝없는 진화 과정을 통해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아름다움은 인류가 수천만 년에 걸쳐 터득한 생존의 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거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참 중요한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에 오랜 시선이 머물게 되는 순간, 우리는 수천만 년 동안 느끼고 깨닫고 배워나가며 사라져간 우리 모두의 조상과 아름다움을 공감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으로 둘러싸인 세상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능력이다.

 

아름다움은 보편성과 함께 특수성도 포함한다. 획일적인 아름다움은 시간이 흐르면 진부해진다. 우리는 모두 진화라는 깊고 긴 역사를 통해 보편성을 가진 위대한 존재이며 70억 개의 다양성을 가진 아름다움이다.

 

그대 옆에 앉은 소중하고 경이로운 존재를 바라보라. 아름다움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idea)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