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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에 7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에 7

 

 

 

경기 남동부 내륙 자전거 주행 5차





 

5차 주행로 : 강촌역-403번 도로-모곡 삼거리-86번 도로-생태이동터널-70번 도로-잣방산터널-86번 도로-모래제-원창 고개-남춘천역

 

 

지난 5월 4일 수요일, 경기 남동부 내륙 지역 5차 주행을 실시했다. 이동로는 4차와 마찬가지로 70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덕만이 고개 터널을 넘는 길이 위험하여 중간에 우측으로 빠져 86번 도로를 타고 홍천 방향으로 주행하다가 모래재와 원창 고개를 넘어 남춘천역으로 주행하기로 했다.

 

403번 도로와 86번 도로 주행은 지난번과 같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70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덕만이 고개 이르기 전에 우측으로 86번 도로를 타고 홍천 방향으로 갔다. 길은 점차 2차선으로 줄어들어 구도로를 타고 가는 셈이 되었다. 가는 길에 도로 옆에는 춘천에서 대표적인  공원 묘지가 있고 대형 납골당도 보인다. 다니는 차량은 뜸하지만 도로 정비를 하지 않아 도로 상태가 엉망이다. 모래재 고개까지 오르는데 마지막에는 가파른 오르막 고개길이다. 정상에 도달하니 모래재 정상 부근 조양 삼거리에서 5번 도로와 만나게 되었다.

 

 

 

모래재 정상 전경

 

 

처음에는 나는 이 고개를 원창 고개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모래재 고개다. 모래재 고개에는 춘천 국립 병원이 위치해 있다. 모래재를 넘어 새술막을 지나고 한참을 가면 원창 고개가 나타난다. 모래재 고개와 원창 고개 사이에는 넓은 분지형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새술막에 도착하니 도로 옆에 새술막 막국수 집이 보였다. 옛날 집 모습이나 차량이 많은 것을 보니 유명한 집인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오랫만에 막국수를 먹고 가기로 하고 정차하여 자전거를 세워두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는 그리 넓지도 않고 손님이 믾았다. 난 막국수와 편육을 시켜 먹었는데 허기진 탓인지 맛은 좋았지만 18,000원짜리 편육은 좀 비싼 편이다. 그리고 일하시는 아줌마가 무척 친절했다.

 

오랫만에 막국수를 맛나게 먹고 다시 출발했다. 모래재에서 연결된 원창 고개는 그리 큰 경사는 아니다. 그러나 모래재에서 2차선 도로가 계속되다가 원창 고개 올라가는 도로는 도로폭 이 비교적 넓은 편이나 고개 정상 이후부터는 도로폭이 다시 2차선으로 줄어든다. 정상에서 2차선 내리막길은 폭이 좁고 길어서 춘천까지 거의 내리막길이 계속된다고 보면 된다. 차량이 점차 많아지고 과속으로 달린다. 노견이 여유가 없어 위험한 길이다. 

 

 

 

 

원창 고개 정상 전경

 

 

이 고개길에서 6.25 전쟁 당시 아군 6사단 장병들이 춘천 방어를 위해 사투를 거듭하여 방어에 성공한 덕분에 한수 이남에서 국군 주력을 2중 포위하려고 구상했던 북한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만약 북한군의 공격으로 춘천 지역 전선이 뚫리고 말았다면 북한군이 물밀듯이 진격하여 홍천-황성-원주-충주-청주-천안,대전을 점령 차단했다면 국군 주력은 완전히 괴멸되고 유엔군이 참전하기도 전에 전쟁은 조기에 끝나고 남한 전역은 적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서 6.25 당시 원창 고개 전투를 간단히 살펴보고 가겠다.

 

 

원창 고개 전투

 

6.25 전쟁 당시 원창고개 전투는 1950년 6월 28일 ~ 29일 사이에 아군 보병 제6사단의 제1, 제2대대 주축의 제7연대가 제3대대, 제19연대, 제16포병대대 일부와 함께 연대를 추격하는 북한군 제12사단 제31연대와 벌어진 전투다.

 

전투의 정점은 제7연대 제2대대가 원창고개 진지에 남아 철수를 엄호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으며, 제2대대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춘천을 점령한 북한군 제12사단 제31연대는 서울로 방향을 튼 제2사단과 달리 계속해 남하하였으며 제6사단 제7연대를 포위 섬멸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27일 적 제31연대는 아군 제7연대에 가까이 접근해 진지를 구축하였다.

08:00 보전포협동을 내세운 북한군은 제7연대를 세 방면에서 포위하기 위해 자주포와 포병이 집중된 주공이 연대의 정면으로 향했고 다른 두 무리가 좌우로 기동했다. 10:00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제7연대의 최전방 제2대대가 주공을 맞아 포병의 지원하에 3시간 동안 버티는 사이 보급로의 차단을 우려한 연대장 임부택 중령이 사단장의 사전 명령에 따라 원창고개로 병력을 철수시켜 방어진지 편성을 완료하였다. 원창고개는 굴곡이 많고 관측이 양호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다.

12:30 북한군이 원창고개로 진격하였으나 제7연대에게 격퇴되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북한군은 포격을 계속하였고 임부택 중령은 사현에 다시 방어선을 확보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13:00 제2대대가 엄호를 위해 원창고개에 남은 사이 연대 주력이 철수를 시작했다.

북한군이 접근해 공격했지만 공격에 불리한 지형이라는 것을 깨닫고 포병과 자주포를 이용해 집중 포격하자 제2대대의 참호 구축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다.

제7연대 제2대대의 병사들은 전투다운 전투는 커녕 계속된 철수에 불평하기 시작했으며 원창고개에서 북한군을  전멸 시키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06:00이 되자  대규모의 북한군이 제2대대로 돌진했다. 대대장 김종수 소령은 200m 이내로 접근하기 전까지 발포를 금지시켰으며 사격권 내로 북한군이 들어온 뒤에야 사격 명령을 내렸다. 집중사격을 받은 북한군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머릿수를 이용해 계속해서 밀어닥쳤다.

11:00 1개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백기를 들고 접근, 항복이라고 판단한 제2대대는 사격을 중지하였으나  가까이 다가온 북한군이 숨겨둔 기관단총으로 공격을 하는 기만전술을 사용했다. 혼란과 동시에 백병전으로 전환되었으나 제2대대의 승리로 끝마치게 된다.

철수한 제2대대는 13:00 사현에서 연대 주력과 합류하였으며, 연대는 사현을 떠나 후방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제2대대의 큰 활약으로 북한군의 포위기동을 차단한 제7연대는 전역에서 무사히 철수가 가능했다.

 

 

원창 고개 구석구석에는 수많은 장병들의 진혼이 잠들어 있고 그들이 봄꽃이 되어 고개 곳곳에 피어올랐다.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밤나무에 육신이 녹아 흡수되어 산천을 푸르게 만들고 과실을 우리들이 먹고 살아간다고 생각된다. 그 진혼들은 고개 곳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를 점차 잊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내가 이런 자전거 주행의 호사를 누리는 것도 모두가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의 댓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지식인, 배우, 작가 등 유명 인사들이 여럿 세상을 달리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무수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그들이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공과를 따지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글과 말, 그리고 행동은 시대를 대변했고 숱한 민중은 공감을 느끼며 분개하고 거리로 나섰고 최류탄을 맞았고 독재 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 지식인은 변절(?)하였고 급기야 역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 분의 이론에 의하면 우주에 양과음이 조화를 이루듯이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으며 결국은 하나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죽음을 불사하고 투쟁하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지도층이며 엘리트층이 되었다. 그들이 권력을 잡자 교묘하게 권력과 권위를 이용하여 공익을 빙자하여 자신의 사익을 취하고 국민의 세금을 빼먹으며 재산 축적과 자손만대 호의호식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이 젊은 시절 피흘리며 투쟁하던 이상과 꿈은 한낮 구호에 불과했던 것이다. 중국 청나라 시절 기독교 이상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도 결국은 남경에서 수많은 처첩과 향략을 즐기다가 몰락했다. 역사를 보면 혁명가들은 대부분 처음의 이념과 사상은 온데간데 없고 성공한 다음에는 자신과 무리의 이익에 탐닉하는 하등 동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설을 인용해본다.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시대,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다. 세계 154개국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담은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2019년에는 54위를, 2021년에는 61위를 했다. 글로벌 10위 경제대국이며 선진국에 들어선 우리나라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를 발간한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우리는 행복의 조건이 좋은 사회적 지원 네트워크, 사회적 신뢰, 정직한 정부, 안전한 환경 및 건강한 삶을 포함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목하고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어려울 때 당신을 도와줄 믿을 만한 친척이나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스위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국민은 95% 이상이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한국인은 72%만 그렇다고 답했다. OECD 평균은 88%였고, 한국에서 50대 이상은 60%만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이를 반영하듯 OECD가 발간하는 '삶의 질 보고서(How’s life in 2020)'의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한 수치에서 한국은 늘 하위를 차지하여 32개국 중 3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서로 도우며, 삶의 질을 높이는 성장이 절실하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환경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남과 비교하여 별로 차이가 없고 삶의 수준도 비슷할 때 친구가 되고 취미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대 로마 시대에는 전차 경기장에서, 검투사 시합 경기장에서 환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가 승리를 할 때 사람은 같이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낀다. 오늘날 각종 경기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경기를 보며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즐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캠핑, 등산, 낙시 등 자신이 좋아하는 즐길거리와 놀이를 찿아간다. 각종 사고로 가다가 죽고 즐기다가 죽고 오다가 죽고 너무 즐거워하다가도 죽는다.

 

그러나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고 삶의 질에서 차이가 많아 나고 자신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때 삶에 대한 패배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재능, 노력, 자질, 능력 등 처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욕심만 넘챠나서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단순히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불행이라는 오류를 범하는 지도 모른다. 

 

 

남춘천으로 가는 5번 도로는 노견이 거의 없고 뒤에서 광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차량이 많아 매우 위험한 길이다. 춘천이 가까워질수록 점차 차량이 많아지고 신호등, 건널목, 갈림길도 많다. 남춘천역을 찿아 달렸다. 남춘천역에 도착하여 청춘열차를 타고 호평동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