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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여름의 막바지에서



여름의 막바지에서

 




                 

      호평동 사가연 골목에 위치한 어린이 물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손주들




지난 8월 11일(일요일)이 말복, 15일 광복절, 23일이 가을로 접어드는 처서다. 이제 여름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동안 긴 장마와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금년 여름을 삼복의 폭염으로부터 다소나마 피할 수 있는 날씨가 되었고 올라오던 태풍도 비껴가는 바람에 태풍으로 인한 피해도 줄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그래도 틈틈이 햇빛이 얼굴을 드러내고 비치는 날이면 젖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어 대기중에는 습도가 높아 길을 가도 숨을 막히게 한다. 그 바람에 자전거 타기도 예측불허, 항상 우기에 대비하여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서지만 주행 중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에 기습을 받기도했다. 





 

 


지난 달 주행 내내 비를 맞으며 청평에서 신청평대교를 지나 초행길로 설악읍으로 가던 날,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금방 그칠 것으로 생각하고 모험을 감행했다. 기상 예보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나에게는 그치지 않고 오전 내내 내리는 비로 인해 악몽의 날이 되고 말았다. 


블랙박스도 빗물이 들아가 렌즈를 못쓰게 만들어 폐기했고 전신이 험뻑 젖기는 물론 차가 다니는 도로를 우중에 주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체험헸다. 비내리는 날 초행길을 모험한 것이 위험한 모험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지나가는 자동차는 물론 빗물이 고인 노견 상태를 몰라 주행에 어려움도 겪었다. 


특히 전기자전거는 비오는 날에는 전기장치로 인해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 쉽다. 그러나 방수를 철저히 한 바람에 별다른 피해없이 손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날 운이 좋은 날인지 사고없이 무사히 주행을 할 수 있었지만, 길고양이처럼 언제 불행을 마난 저승길을 갈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가평대교 입구 전경





                                                            가평대교 위에서



 

                                    운무가 가득한 청평호



그 다음 주에는 가평에서 남이섬 방향이 아닌 중간 방향인 75번 국도를 타고 가평대교로 넘어오는 길을 주행했는데 중간에 나타난 가파른 고개길에서 고생했다. 다니는 차량은 별로 없었으나 고개길이 마치 김유정 역에서 강촌으로 넘어오는 팔미리 고개나 신청평대교에서 양수리로 가는 도로 중간의 무명 고개와 비슷했다. 경사가 가파르고 긴 구간에는 방법이 없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고개만 넘으면 설악읍이나 청평까지 별 어려움 없이 주행이 가능하다. 두 번 다시는 그 길을 자전거로 가고 싶지는 않다.


고개를 넘어 지난번 날씨가 나빠 제대로 답사를 못한 가평대교와 설악읍으로 향했다. 가평대교를 지나고 터널을 지나 설악에 도착하여 시내길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설악은 도로변을 따라 발전한 읍으로 현재 개발의 몸쌀을 앓고 있는 듯하다. 서울-춘천을 잇는 고속도로가 옆으로 지나가고 가평대교와 터널이 만들어지면서 오지였던 곳의 교통이 급속하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사람 몸에 막혔던 혈류가 뜷어지면서 세포가 활발하게 재생하듯이 설악읍도 자연스럽고 고요하고 조용하던 읍내가 교통이 좋아지면서 각종 개발로 들썩이고 있는 듯하다. 점포도 가옥도 차량도 뜸하던 시골 마을이 하루 아침에 몸쌀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읍내를 한바퀴 돌고 다시 가평대교로 향했다.


터널을 지나는데 내부 차량 소음이 엄청나다. 방음 장치를 하지 않았는지 차량 속에서는 들리지 않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나에게는 엄청난 굉음으로 증폭되어 고막을 때린다. 터널 길이는 720미터.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설악 인터채인지로 들어와서 청평호반, 남이섬, 가평, 강촌, 춘천으로 향하는 차량이 몰려들고 있었다. 





                                             터널 이름이 '신선봉 터널'이다.



                                              운무가 가득한 청평 호수



                                 교각 기등을 마치 잣 모양으로 건축한 가평대교 모습





                                     청평 호수 주변 곳곳에 설치된 수상스키 보트장



                      청평호 주변 일대는 각종 시설을 건축하다가 중단된 곳이 많다



         권력자와 재력가들이 기를 쓰고 호수 주변에 만든 별장들 모습이 보인다. 권력과 돈의 결합체.



                                                  운무를 뜷고 비치는 태양





설악에서 터널을 지나고 가평대교를 지나 삼거리에서 청평댐으로 향했다. 맑아지고 잇는 날씨지만 해가 뜨자 습도가 높아지면서 땅에서 올라오는 습한 기운이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순조로운 주행을 하면서 청평댐을 지나 편의점에 들러 얼음과 커피를 사서 보온통에 보충했다.


교량 입구에서 죄측으로 비탈길을 내려가서 북한강 자전거 도로를 만났다. 다리 밑에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보인다. 이른 아침 시간인데 서울 방향에서 자전거족이 하나 둘 달려오기 시작한다.


넓은 잔디밭에는 모형 비행기를 대여하는 아저씨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저런 모형 비행기를 누군가 돈을 주고 즐기는 모양이다. 신펑평대교 밑에서 밧테리를 갈았다. 눈금이 하나 정도 남으면 오르막 길도 올라가는 데 힘이 든다. 파워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에 모터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강변을 달리다 보면 강변 언덕에 큰나무가 많고 그늘이 있는 곳에 휴식처가 있는데, 그곳에는 항상 자전거족이 몇 명씩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그런 곳을 통상 그냥 지나친다. 내 별난 전기 자전거를 물끄러미 쳐다보던가 아니면 반드시 무언가 질문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급적 피하고 싶어서다. 가다가 아무도 없는 그늘이 나타나면 통상 혼자 휴식을 취한다. 


대성리를 지나고 오르막길을 올라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새터 휴게소가 나타난다. 난 통상 그곳도 그냥 지나쳐 바로 마석 방향으로 향하는데 그곳부터 긴 오르막 길이 시작된다. 그런데 자전거족들이 대부분 양수리 방향으로 주행한다. 물론 집 방향이겠지만 마석 방향은 선호하지 않는 이유 터널까지 긴 오르막길이 부담되기 때문일 것이다.




                                     포플러 나무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항상 싱그럽게 보인다.




요즘은 몸에 지구력이 늘었는지 평일에도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 왕숙천을 왕복하는데 왕복 4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별 어려움없이 주파한다. 중간에 돌아오는 20킬로미터 반환점, 17,5킬로미터 반환점, 15킬로미터 반환점을 선정하여 컨디션에 따라 선택하여 주행하고 있다. 기록을 보내 어제까지 총 주행거리가 7,00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년말까지는 9,000킬로미터를 목표로 주행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대구에 사는 고교 동기생 K여사한테서 오랫만에 안부 메세지가 왔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 졸업 후 20주년 모임에 갔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후 자주 안부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는 사람이다. 


먼 옛날 고교 사춘기 시절, 어느 가을날 학교 개교 기념 축제가 열리는 날 여학생들 무용 발표회를 보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여학생을 보았는데, 여학생 중 친척이 있는 같은 반 친구를 통해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여자 동문 중에서 유일하개 연결되어 어설프게 첯만남을 가졌지만 이 촌놈에게 용기와 언변 등 부족함이 많아 만남을 지속하지 못했고 바로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더욱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 무척 보고 싶었는데, 졸업 후 20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기뻤다. 


그녀에 대한 자세한 가슴아픈 이야기도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고, 축제 다음날 체육대회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다가 오전에 다시 학교를 방문했을 때, 양산을 쓰고 앉자 있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얼굴에는 깊은 수심과 고뇌가 가득한 모습을 보게 돠었다. 그후 연락을 하게 되었고 가끔 분기에 한 번 정도 서로 안부나 전하고 있다. 


얼굴을 보거나 메세지를 받을 때마다 지난 시절 아련한 추억이 소록소록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움이지만 슬픈 이야기를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글로 일일이 표현할 수도 없다.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 남보다 잘 살고 있다면 심술이 났겠지만, 반대로 기막힌 사연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는 딸을 시집보내고 손주도 본 할머니가 되었다. 남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음은 물론, 고교 동기생들에게도 착하고 마음씨 고운 동기생으로 정평이 나 있으니 다행이다. 





 

 


지난해에 그녀에게 내 블로그를 소개해주었고 가끔 들어와서 내 글을 보고 격려를 했는데, 내 글을 보는 그 동기생도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블로그에 올린 글들은 어쩌면 나의 지나온 새월을 함축하여 쓴 이야기들이라 내 심정을 표현했기에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나의 눈이 침침하여 글이 보이지 않거나, 손이 떨려 쓸 수 없을 때 쯤에는 나의 블로그도 문을 받을 지 모른다. 아무튼 그전까지는 '역사에게 길을 묻는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며 나의 주변 이야기도 지속될 것이다. 아무토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기를 바랄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