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새로운 길을 찿아서......3



새로운 길을 찿아서...... 3

 


 

 



마지막 3차로 지난 7월 14일에는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기상 예보를 믿을 수 없어 장거리 준비를 하고 첯차를 타고 그냥 청평역으로 갔다. 청평역에 내리니 보슬비가 그대로 내리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무리를 해서라도 주행하기로 했다. 밧테리와 보조밧테리, 전조등, 블랙박스, 스피커, 각종 게이지 등을 비닐로 덮고 붉은색 바람막이를 소매만 끼고 베낭을 덮은채로 바람에 펄럭이면서 주행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라 사진도 찍지못했다. 


그날 주행 코스는 지난번처럼 신청평대교를 지나 37번 국도를 타고 지난주와는 반대 방향인 오지로 소문난 설악 방향으로 가서 새로 건축된 터널과 가평대교를 지나 청평 호반길을 만나서 청평댐으로 돌아나와 청평-대성리-마석-호평동으로 오는 길이다. 지도상에서 3번 코스이다. 


부슬비가 내리는 국도를 주행한다는 것은 진짜 위험한 길이다. 2차선 도로에는 별도의 인도가 없고 백밀러를 보면서 달려야 했다. 버스를 포함한 여러 차량들이 달리는 내 곁을 사정없이 괴속으로 지나간다. 비내리는 이런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나를 이상한 놈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나는 차량이 뒤에 달려오면 속도를 낮추고 겸손하게 노견 쪽으로 비켜주면서 안전하게 달렸다. 보슬비라지만 계속내리는 비를 맞으니 온 몸이 젖어버렸다. 큰 고개는 없으나 굴곡진 길을 추월하는 차량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랑비 속에서 달리다보니 신발에도 물이 들어가고 점차 지쳐간다. 


중간에 주차장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정비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호수 주변 산비탈마다 건축 공사를 벌이고 있는 곳이 많다. 한마디로 청평호 주변 둘레갈은 각종 위락 시설로 초만원이다. 자연경관 손상은 둘째치고 산을 깍고 메워 건물 세우는데 물불을 가리지 읺는 것 같다. 이는 해당 지자체에서 환경 오염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 건축 허가를 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운데 공무원과 공사 업자, 땅 주인 간에 몰래 거래되는 뒷돈이 무척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에서 가평군에 대한 이러한 모든 문제를 모르고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청평댐 일대는 환경 오염이 심각하게 깊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다행히 설악까지 가는 동안 큰 오르막 고개길은 나타나지 않고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고개길을 모두 넘었다. 마지막 고개를 올라서자 설악에 못미처 긴 내리막길이 설악까지 연결되었다. 만약 반대 방형으로 주행한다면 오르막길을 오르는 데 애를 많이 먹을 것 같다.


설악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둘러보니 조용한 오지 마을이 개발로 번창하고 있는 듯했다. 가평대교와 터널이 신설되고 춘천가는 고속도로가 가까이 지나가는 발전으로 청평, 가평, 춘천이 근거리가 되었다. 다리가 없을 시에는 살악에 사는 사람들은 사방이 산으로 갇혀 있는 마을로 도로망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오지로 통했다. 



설악면 소개

설악면(雪岳面)은 대한민국 경기도 가평군이다. 넓이는 141.53 km²이고, 인구는 2018년 12월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9,877 명 4,768가구이다. 인구밀도는 1킬로미터제곱당 70명이다. 

설악면은 북한강 남쪽에 있어서 본래 양평군에 속했는데, 1942년 가평군에 편입되었다. 강원도에 있는 설악산(雪嶽山)과는 무관하다. 

    

역사

설악면은 그 연조가 매우 깊다. 멀리 백제시대에는 거사참 ( 去斯緻 ), 항양 ( 恒陽 ), 양근 ( 楊根 ) 군에 속해 있던 미원장 ( 迷源莊 ) 이었다. 757 년 신라 경덕왕 16 년에는 빈양 ( 濱陽 ) 군에 속해 있었고 ,94O 년인 고려 태조 23 년에는 양근군에 예속되었으며 , 그후 광주부 ( 廣州府 ) 에 편입되었다가 1175 년 양근현에 감무가 부임하여 편입되고 , 고려고종 44 년인 1257 년 영학 ( 永化 ) 현의 감무를 받고 , 1267 년 위사공신 ( 衛社功臣 ) 김자정 ( 金自廷 ) 의 고향이라는 덕으로 익화현 ( 益化縣 ) 으로 승격되어 현감이 부임하니 미원장은 익화현 북면이었다. 1356 년 ( 공민왕 5) 국사승 ( 國師僧 ), 보우 ( 普愚 ) 의 세거지 ( 世居地 , 出生地 ) 라 하여 익화현은 양근군 ( 楊根郡 ) 으로 승격되고 , 미원장은 미원현 ( 迷源縣 ) 으로 격상되었으나 , 미원현은 인구가 희소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현이면서도 양근군 감무의 지시를 받아야 했다.


1658 넌 ( 孝宗 9) 에는 양근군과 더불어 지평군 ( 砥平郡 ) 에 예속되었다가 1668 년 ( 顯宗 9) 양근군에 감무를 받고 ,1728 년 ( 英祖 4) 양근군이 현으로 강등되고 미원현은 상북?하북면으로 갈려 예속되었다. 1741 년 양근군으로 다시 승격되고 미원현은 상도면 하도면으로 개칭하다. 1747 년 ( 英祖 23) 군을 갈산 ( 葛山 일명 乾芝山 ) 으로 옮기고 , 군수가 부임하여 미원은 상도?하도 그대로 두다. 그후로도 1785 년 ( 正祖 9) 에 강등되었던 현이 다시 군으로 승격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미원현은 상도?하도로 있었고 , 계속하여 속현으로 예속되었다. 이때의 관할은 여주진 ( 驪州鎭 ) 이었다. 1895 년 관재개혁에 의하여 양근군 설악면으로 개명되고 ,1942 년 행정개편에 의하여 설악면은 가평군 으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1973 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일부가 설악면 으로 편입되어 이천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