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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여름 12 : 마석 5일 장터를 가다

 

 

강남의 여름 12 : 마석 5일 장터를 가다

 

 

                                                                                        마석 장터 전경

 

 

무더웠던 8월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광복 70주년이라고 호들갑을 떨던 광복절도 지났다. 우리는 희미한 광복을 맞이했고 아직도 미완의 해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는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애국심이 무너졌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나라보다 나 자신과 가족, 무리를 위해서 변절도 서슴치 않을 수 있고 힘에 따라 시류에 따라 힘센놈에게 붙어 일신의 영화를 누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

 

휴전선에 긴장이 고조되어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다행히 남북 협상이 이루어져 다시 평온을 되찿았다. 이처럼 우리는 하루하루를 불안과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운명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가 자초한 일인지도 모른다. 조상을 잘 못 만나서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병탄으로 암흑의 식민시대를 살다가 우리 자력도 아닌 강대국의 힘으로 광복과 해방을 맞았지만 국토는 남북으로 두 동강나고 사상과 이념, 체제를 달리하는 두 개의 정권이 세워져 북한의 남침으로 비극적인 전쟁을 치른 후 반세기가 넘게 서로 총칼을 겨누며 극단적인 대치를 해 오고 있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는 한반도에 안주하기에만 급급했던 우리 민족의 지정학적 폐쇄성에 기인하고 한반도를 통치했던 조선이라는 우리 조상들의 나라가 원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좁은 한반도 내에서 양반사대부들이 오백년 동안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갖은 수탈로 백성을 착취하여 그들만의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만족하고 중국에 철저히 사대하고 섬기며 겉으로는 유교이상국가를 지향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벌과 무리를 이루어 대를 이어 권력쟁탈에 여념이 없었고 신분의 벽을 뛰어 넘을 수 없는 역동성이 사라진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도층은 부패하고 병들어 개혁을 거부하고 외교와 국방을 소홀히 하다 결국 일제에 합병되고 말았다.

 

지금 겪고 있는 남북대치의 고통도 우리들의 운명으로 치부하면 안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부패했고 가진자와 권력자들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과 가문, 일족과 무리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눈을 외부로 돌리지 못하고 만만한 백성들을 들들볶아 피눈물을 짜내는데 열중하였던 조상들의 탐욕과 무지의 소산이엇다. 백제의 대륙진출이나 장보고의 해양진출처럼 좁은 국토에서 안주하지 않고 해양을 향해 진출하기를 노력했다면 지난 세월같은 치욕적이고 비참한 불행한 역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대 문명의 꽃을 피우고 신기원을 이룬 그리스, 지중해 최대 무역강국을 이룬 고대 페니키아인의 카르타고, 카르타고를 누르고 유렵문명의 기원을 이룬 지중해 세계 최강자로 2천년 가까이 군림한 고대 로마제국, 유럽과 지중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노르웨이 민족, 신대륙을 발견하여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한 스페인, 포르투칼, 해외 식민지 개발과 청어 산업으로 무역강국으로 발돋움한 내덜란드, 최강의 해군력을 양성하여 전세계 곳곳을 지배하며 산업혁명의 주역이 된 해가 지지않는 나라를 만든 영국, 중계무역으로 아시아 용이 된 싱가폴과 홍콩, 개방과 유신으로 강력한 제국주의 군대를 양성하여 중국 대륙, 동남아, 태평양을 점령하고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벌인 일본, 세계 1,2차 대전의 전승국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세계 최강의 패권국으로 올라선 미국 등을 살펴보면 대부분 해양으로 진출하여 굴기를 이룬 나라들다.

 

그러나 우리는 한반도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공도 정책으로 수많은 주변 섬을 방치하고 바다는 쳐다보지도 않던 우물안 개구리 같은 나라였다. 그래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싸움터가 되었고 이 놈 아니면 저 놈에게 빌붙어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찿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 생각하며 지배하고 통치한 우리 선조들이 폐쇄적인 못난 사고와 탐욕의 장벽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제3공화국 박정희가 이룬 기적의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오늘의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이런 풍요는 물거품 같이 한꺼번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은 5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머리 위에는 호전적인 세계 최대 불량국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까지 개발하여 김씨 세습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들이 막판까지 몰리면 미친척하고 무슨 짓을 하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또 우리 주변은 중.러의 대륙 세력과 미.일본의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지역으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호시탐탐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갖가지 위협과 공갈, 공작을 서슴치 않고 있다. 그들이 한반도를 차지하고 지배하는 동안 대륙과 해양진출의 발판으로 삼아 우리들이 피땀흘려 쌓아 놓은 국부를 빼가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기 위해서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강대국의 먹잇감이 되어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만 할 것인가?

 

최근의 남북 화해를 계기로 두 개의 정권이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며 체제와 이념의 장벽을 넘어 휴전선이 서서히 붕괴되어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정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 스스로 생각을 바꾸어 독재정권의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도록 미.중.러.일과 지혜로운 외교전을 전개하고 남북 해빙을 위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관용과 포용심을 기르고 내부적인 문제점을 선진국 수준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개혁을 강력하게 실천하여 무너진 사회병리현상을 타파하여 천민민주주의와 천민자본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사진를 찍었다. 멀리 불암산이 보이고 경춘선 근방에는 곳곳에는 개발이 한창이다.

                                           아마 나중에는 춘천까지 서울 위성도시가 형성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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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 5일 장터를 가다.

 

지난 번 마누라가 쉬는 날 마석 5일 장터를 가기로 했다. 며느리도 나오라고 하고 우리는 상봉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가다 마석역에서 내렸다. 마석 5일 장터는 마석역에서 약 500미터 거리 철교 아래 공터에 열리는데 3, 8일날에 장이 선다.    

 

 

마석역

원래는 마석우리 222-16에 위치해 있었고, 엄청 작은 역이였는데, 수도권 전철 경춘선이 개통되면서 크고 아름다운 역으로 바뀌었다.
2012년 2월 28일부터, 평일 출근 시간대에 마석발 상봉행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오전 6시 51분에 출발한다. 청춘열차는 오전에 용산행 3번, 오후에 춘천행 3번 정차한다.

 

 

                                                                                          마석역 전경

 

 

 

 

 

                                                                                         화도읍 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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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리 이름 유래
곡식을 빻는데, 쓰이는 맷돌을 가리켜 마석(摩石)이라고 불렀는데,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 맷돌이 많이 생산되었고, 여기에 모퉁이, 모루를 뜻하는 우(隅)가 쓰여, 마석우라는 지명이 생겼다. 역명은 이 마석우라는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화도읍의 중심지인 마석 시가지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화도읍/수동면 방면 지선버스의 기점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많은 시내버스가 정차한다. 여담으로, 마석역 1번출구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는 대부분 평내/호평 방면으로 나가는 버스가 대부분이고, 창현지구 방향으로 가려면 1번출구 건너편에 있는, 디지털프라자 앞에 위치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한다. 경춘선 노선을 경계로 남쪽은 창현지구, 북쪽은 마석지구로 생활권이 나뉜다.

상봉 방향으로 출발하고 나면, 진행방향 양쪽으로 무한 아파트를 볼 수 있는 역이다. 전국 인구규모 1위읍인데 2014년 기준 화도읍 인구 약 9만 7천명으로 10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마석 장터 위치


 

 

                                                                    마석역 앞을 지나는 국도. 사람과 차량이 많다

 

 

 

                                                                국도를 따라 시내를 통과하여 장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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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읍내라 도로가 좁고 다니는 차량은 많다. 구 시가지 

 

 

마석 5일 장터

마석장은 마석역에서 평내/호평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인 약 500미터 떨어진 교각밑에 형성되며 3일, 8일에 열리는 민속 장터이다. 15세기 조선 시대 시작된 장터가 임진난 이후 늘어나면서 10일장이 5일장으로 바뀌었다. 장의 형태로 보면 정확히는 '매월 수차례 주기적으로 일정한 날짜에 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뜻하는 '정기시장'에 해당된다.

 

'5일장'의 유래는 매 5일마다 열리는 5일형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장시를 5일장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옛 것을 살리자는 의미에서 이것을 '민속장'으로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석장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2013년 3월에 현재의 경춘선 교각 밑으로 옮겨왔는데 장소가 넓고 장보기가 좋다.

 

 

                                                                                     장터 입구 교각 밑

 

 

 

 

 

우리는 마석역에서 내려 부동산에 들러 주변 아파트 시세와 몇 가지 문의 사항도 물어 보았다. 마석은 광정면에 아파트군이 흩어져 있고 역 근방에는 오래된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으며 호평.평내보다 다소 가격이 낮다. 호평.평내는 아파트군이 밀집되어 상권이 가까우나 마석은 거리가 있어 차량을 이용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물론 버스도 많이 다니지만 대부분 마석역과 거리가 멀고 경춘선 철도와 도로가 마석 시내를 동서로 가로질러 지나가는 곳이라 상권이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고 행락철에는 국도에 차량이 밀리고 복잡하여 이동에 어려움이 많다. 마석역에 비교적 가까운 곳에 아파트 2개 단지가 산 중턱에 있는데 바로 앞으로 경춘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국도에 과속으로 달리는 차량으로 인해 야간에도 도로 주변이 조용하지도 못하고 아파트 진출입에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며 상가가 떨어져 있어 생활에 불편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곳 아파트가 가격이 다른 아파트에 비해서 저렴하게 매물로 나온 것이 많다. 가격이 싼 매물은 대부분 타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부동산을 나와 며느리를 만나서 천천히 걸어서 장터로 갔다. 장터에는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좀 서산하다. 장터는 원래 주차장이나 공원으로 이용하는 곳이라 상인 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천막을 치고 좌판을 설치하여 각종 물건들이 늘려 있다. 시골장터는 장터인데 시골맛이 영 나지 않는다. 특별한 특산물도 없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장터를 한바퀴 돌아 천막이 쳐진 국밥집에 들러 소주도 한잔하면서 장어, 선지국을 맛보았다. 그런데 영 맛이 아니다. 평소부터 시장터가 아닌 집이라 깊은 맛도 없고 양도 적고 엉터리다. 대략 맛을 보고 나와서 몇가지 시장을 보았는데 마누라는 며느리가 필요한 물건을 사느라 정신이 없다. 사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만족감을 느끼면 다행이다. 아까운줄 모르고 사주는 시어머니를 며느리는 얼마나 고마워할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마누라는 그저 행복한 표정이다. 자신이 지난 시절 우리 어머님한테서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해서인지 며느리에게 더 정성을 쏟는 모습이다.

 

우리는 시장을 보고 나와서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호평동 가는 버스를 20분 정도 기다리다가 탔다. 시골 길은 좁고 다니는 차량과 사람은 많다. 무더운 날씨에 사람들은 양산을 쓰고 차림도 각양각색이다. 시골 티가 물씬 풍기는 사람들이 시장 보따리를 들고 삼삼오오 다니면서 오랫만에 시내 구경을 하는 듯하다. 

 

 

 

                                                                      호평동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버스는 국도를 달려 터널을 지나 호평동에 도착했다. 손주들은 어린이 집에 가서 집안이 텅 비었다. 짐을 풀고 쉬다가 집을 나와 주변 상가도 둘러보고 아파트도 둘러 보았다. 호평동은 집값이 좀 세다. 생활에 그만큼 좀 편리한 모양이다. 그래도 가까운 상가는 있으나 이마트 등에 가려면 호평동도 걸어서 가기에는 무리다. 버스나 차량을 이용해야 하고 택시는 근거리를 가는 것을 기사들이 꺼린다고 한다. 서울에서 살다가 가면 상가가 거리가 멀면 여러가지 불편할 것이다.

 

집에 와서 잠깐 눈을 붙이다가 시끌시끌하여 눈을 뜨니 손주들이 왔다. 또 오랫만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니 서먹서먹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더니 조금 지나자 금방 달려든다. 두 놈은 서로 싸우고 울고 뛰어다니고 하면서 정신을 쏙 빼 놓는다. 대나무 죽순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녀석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미의 노력이 가상하고 어려운 살림에 꿋꿋이 참고 두 아들을 열심히 키우는 모습이 대견하다. 아마 이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저 녀석들은 앞으로 통일 대한민국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깊은 감회를 느낀다.

 

저녁에 애비가 일찍 퇴근해서 왔다. 며느리가 시장에서 사온 갈비와 떡갈비 등을 상차림하여 푸짐한 즐거운 식사를 했다. 부모가 왔다고 일찍 퇴근한 아들 가족과 같이 저녁 식사도 같이하고 반주도 한잔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쉽지만 자고 가라는 며느리 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손주들의 얼굴을 가슴에 품고 아들 배웅을 뒤로하고 우리는 서울가는 버스에 올랐다. 짧은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버스는 평내동을 구비구비 돌아 고속도로에 올라 숨가쁘게 달렸다. 버스 차창에 어리는 한강변 밤경치가 휘황찬란하다. 이런 풍요와 행복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 저 찬란한 불빛들이 잿더미가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큰 굴곡과 고통없이 평생을 살아온 반세기가 나에게는 행운이었을까? 미래에도 우리 후손들이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인가? 북한의 위기가 고조되자 장병들이 전역을 연기하고 예비군은 군복을 준비하며 국가가 부르면 달려가겠다고 했다. 이런 젊은이들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결코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위를 해본다.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잠실에 도착했다. 밤하늘에 새로짓는 최고층 빌딩이 까마득하다. 잠실역 일대 저녁 밤길에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고 우리는 지하철을 탔다. 집에 도착하니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린 애견 땅콩이가 반가워 어쩔줄을 모른다. 그래, 기다리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 땅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