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향기마을

강남의 겨울 5 : 새해 아침에...... 본문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겨울 5 : 새해 아침에......

두바퀴인생 2015. 1. 4. 04:21

 

 

강남의 겨울 5 : 새해 아침에......

 

 

                   

                                            상주시 청리면 돌티재 해돋이

 

 

새해가 밝았다.

새해 아침 태양은 어김없이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찬란하게 떠 올랐다. 인류의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떠 오르는 태양은 우리들의 삶을 좌우하는 거대한 불덩어리로 엄청난 인력, 자기장, 전자파 등을 발산하는 힘을 가지고 태양계를 이끌고 있는 태양계의 중심이다. 지구는 남북이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24시간 자전하면서 365일 동안 태양을 공전하고 있다. 이러한 자전과 공전, 태양의 복사열에 의해 바다가 데워지고 해류가 흐르면서 바람이 불고 비를 내리며 밤과 낮이 반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의 자전에 의해서 우리들이 매일 밤낮이 바뀌고 밤에는 달과 별, 그리고 낮에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사계절은 이러한 자전과 공전에 의해서 1년 주기로 태양계를 돌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지구는 왜 기울어져 있으며 스스로 자전하며 공전하고 있는 것일까? 지구 내부는 아직 뜨거운 용암이 지표 바로 아래서 들끓고 있으며 지각이 얇은 곳을 터져나오는 것이 화산이며 지각판의 융틀임에 따라 지진이 발생하고 바다의 기온에 따라 대양에서는 태풍과 허리케인이 발생하여 어머어마한 바람과 폭우를 동반한 힘으로 육지를 강타하고 있다. 

 

도대체 우주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과학자들이 추정만 할 뿐 사실 아무도 모른다. 우주의 크기는 빛의 속도로 수 억, 수십 억, 수천 억년을 달려가도 끝이 없는 것이 우주다.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이 대부분 그런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스스로 폭발하며 찬란한 빛을 발하여 그 빛이 수 억, 수십 억 광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는 빛이기도 하다. 우주는 이처럼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망망대해를 이루고 있고 그 우주 속에 우리 지구는 하나의 먼지처럼 태양계 주변을 돌고 있을 뿐이다.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지구에서 인류라는 종족이 다른 동식물과 같이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나 진화를 거듭하면서 생존하여 왔고 오늘날 문명을 이룩하여 왔으며 역사의 흐름에 우리 개인은 먼지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미미한 동물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주는 신비로 가득찬 경이로운 세상이며 우리 인간은 먼지보다 못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우주와 지구는 변함없이 수많은 세월을 흘러왔지만 인류는 진화와 문명의 이기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 왔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지구는 여러번의 빙하기와 홍수기를 거치면서 지구상의 동식물을 멸종시켜 왔고 태어났으며 현생 인류는 오랜 기간을 거쳐 진화, 성장, 발전해 왔으며 인류 역사가 기록된 기원전 6000년경부터 낙원같던 지구는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의 이동을 촉진하였고 좁은 지역으로 몰려든 인류는 서로 먹을 것을 두고 서로 욕심을 내면서 경쟁하기 시작하였고 이와 동시에 인간의 타락도 시작되었다. 

 

 

                                  

             

                                                                서울 아차산 새해 해돋이 광경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땅이 비옥하며 산이 수려하고 강이 완만하게 흘러 주변 평야를 촉촉히 적셔주고 지나간다. 구석기 시대부터 한반도는 다른 나라보다 많은 인류들이 살았던 흔적인 고인돌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그들은 북방에서 남으로 내려가 한반도 곳곳에 기거하면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울산 지역 수장 직전인 귀중한 유물인 반구대 벽화를 보면 한반도에는 공룡을 포함한 각종 동물들이 많이 살았고 바다에서 고래사냥도 활발하였다. 한반도 동해는 고래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모여 촌락을 이루었고 북방 민족이 도래하기 전까지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살았던 곳이다.

 

고구려.백제는 예맥족인 부여에서 분리되어 주몽이 고구려란 나라를 세웠고 주몽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남으로 내려가 백제를 세운 혈통이 같은 한민족이다. 가야와 신라는 북방의 유목민족인 흉노족의 후예인 김수로, 김알지, 석탈해 등이 배를 타고 내려와서 김수로는 기존 세력을 누르고 흡수하여 나라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알지와 석탈해는 신라 사회에 정착하여 지배층에 올라 신라를 지배하게 된다. 이처럼 한반도에 미리 정착하여 살던 민족은 외부 세력에 대해서 개방적이었고 능력있는 사람이면 우대하던 사회였다.

 

한반도의 사계절은 인간이 정착하여 살기 좋은 기후와 땅으로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오곡이 영글고 가을이면 추수하고 주변 만물을 만들어 주신 신들과 조상들께 감사하며 제사를 올리고 같이 축제를 즐기며 가을을 보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면 군불 땐 따뜻한 방안에서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이불 속에 발을 넣고 둘러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 꽃을 피우며 가족들이 같이 긴긴 밤을 보내면서 겨울을 지냈다. 다시 봄이 와서 따스한 봄바람이 불면 들에 나가 논과 밭을 갈며 씨를 뿌리고 다가올 가을을 기약했다. 

 

이처럼 살기는 좋은 땅이지만 지나온 5천 년의 역사는 영광스런 역사로는 고구려의 대수.대당전쟁, 백제의 대륙경영, 신라의 통일과 대당전쟁, 고려의 거란 침공 격퇴와 대몽항쟁, 조선의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해전과 왜란 3대첩, 그리고 의병들의 승전 정도이지만 대부분은 비참하고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은 치욕스런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새벽 잠수교에서 바라본 잠실 방향 한강

 

 

역사의 긴 숨결이 새벽 한강의 검푸른 물결에 어른거리며 불빛이 같이 춤추고 있는 듯하다. 한강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같이 겪은 강으로 옛 이름이 아리수다. 고구려와 백제가, 그리고 신라가 패권을 다투던 곳이 바로 이곳이며 백제의 온조가 창업한 곳이며 어머니 소서노가 아들 비류와 같이 도착한 곳도 비추홀(인천)이다. 어머니 소서노는 아들 온조가 자신들을 부르지 않자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여 온조를 공격하다가 숨을 거둔 눈물어린 한강이다. 고구려 광개토왕이 아리수를 통해 백제를 공격한 곳이기도 하고 신라가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군을 물리친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장수왕이 선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곳 한강을 건너 백제의 한성을 공격한 곳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백제의 개로왕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신라가 통일을 이룬 후 이곳을 건너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기도 하였고 후삼국시대에는 궁예와 왕건이 수도 없이 건너 다닌 곳이기도 하다. 견훤이 아들 신검의 반란으로 금산사에 유폐되어 있다가 탈출하여 바다를 통해 아리수를 거쳐 송악의 왕건에게 투항한 통로이기도 하다. 한 시대의 영웅 견훤은 후백제가 멸망하고 왕건이 고려 통일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한맺힌 등창이 터져 가까운 산사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잠수교에서 바라본 한남대교 방향

 

고려는 무신정권 최우에 의해 강화도로 천도한 후에 대몽항쟁을 줄기차게 전개한 곳이며 몽고군이 아리수를 건너 고려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결국 80년 무신정권이 붕괴되고 원종이 몽고에 항복하면서 몽고 지배 100년 동안 고려는 철저한 몽고화가 이루어졌지만 몽고가 명나라에 쫓겨 북으로 도망치면서 고려는 겨우 몽고지배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고려는 자력으로 대몽항쟁을 벌였지만 100년 몽고 지배 동안 나라는 병들고 분열되어 갔다. 몽고 여자인 왕후와 권신들이 몽고를 등에 업고 고려 왕실과 조정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변발과 몽고풍의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였고 몽고말을 사용하면서 몽고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 최근 드라마 기황후에 나오는 것처럼 몽고는 고려 왕을 마음대로 바꾸고 복위시켰다. 만주에는 심양왕을 따로 두어 고려왕을 견제하기도 하였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 고려왕을 잡아 가기도 했다. 백성들은 몽고에 바치는 상납품에 의해 수탈이 극에 달하였고 노예처럼 살던 백성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여 민란이 사방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오늘날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는 듯하다. 강대국 다국적 기업에 의해 국부가 유출되고 기업이 사냥을 당하고 노후 무기를 사야하고 의심스런 쇠고기를 수입해야 하고 문호를 개방하자 지적재산권, 특허권을 빌미로 법정에서 패소하고 거액의 소송료를 물어주어야 하고 자동차 연비를 소비자에게 속였다고 엄청난 금액을 물어야 하고 전투기 도입에 기술이전은 커녕 일본에 비해 절대 불리한 계약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나라, 미사일 사거리 연장 개발은 물론 핵연료 재처리, 무기수출 등을 철저하게 통제받는 나라, 이처럼 대한민국을 대미종속국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오늘날 우리 정치.사회의 지도층 세태도 그 시대와 결코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잠수교에서 바라본 강남 방향(2014년 새해)

 

고려가 공민왕대에 재기의 용틀임을 쳤지만 공민왕의 개혁은 미완이 그치고 말았고 우왕대에 북벌을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최영 세력에 의해 만주 출병이 결정되었고 위화도까지 진출했던 고려군이 사령관 이성계에 의해 회군하여 개경을 점령하여 쿠테타로 최영 세력이 제거되자 이성계는 정권을 잡고 허수아비 왕을 옹립하다가 고려 조정과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몰락시키고 이씨 조선을 창업했다. 이런 점에서 이씨 조선도 결코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정의와 진리, 도덕과 윤리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법, 성공한 쿠테타는 정의가 되는 역사의 이이러니이기도 하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억불 정책을 추진하였다. 신진사대부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명나라에 사대하며 유교 문화가 활발하게 성장.확산되었다.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신권우위론을 주장하던 반대파를 모조리 숙청하고 즉위한 태종은 강력한 카리스마 정치로 왕권을 공고히 하였고 세종대의 문화통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권력에는 피도 눈물로 없는 법, 조카를 몰아내고 즉위한 세조는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아가야 했고, 훈구세력들의 왕권 농단이 계속되다가 연산군 대에 왕권이 다시 강화되는 듯 했으나 연산군은 계속된 폭정으로 민심을 잃고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고 말았다.

 

중종시대가 전개되면서 유교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되었고 신진관료 사림파들이 정계에 등장하면서 훈구파와 계속된 권력투쟁은 여러 사화를 야기하였고 훈구 세력이 점차 세력을 잃게 되자 조정은 사림파 신진사대부들이 장악하게 된다. 그래서 선조대에는 이름있는 석학들이 많이 배출되어 유교 교리는 이이, 이황에 의해 최전성기를 구가하였고 조정의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학연.지연으로 파벌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당론에 따라 국가대사를 결정하는 치열한 당파싸움질이 시작된다.

 

오늘날 군대를 빠진 놈들이 권력을 잡고 군을 무시하고 깔보는 현실은 당시 조선의 군사력이 종잇장에 불과하였다는 사실과 다를 바가 없다. 치열한 당쟁속에서 왜군의 침공 사실을 사전 예견하고 방비를 서둘렀으나 종잇장 군대에 잘못된 전략, 자만에 빠진 조선은 삼정의 문란으로 이미 패전의 싹은 돋아나고 있었고 대비를 서둘렀으나 이미 시간은 늦은 때였다. 막상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의 침공에 부산포, 동래가 무너지고, 대구 병영에 집결하던 군사들은 유언비어에 스스로 붕괴되어 버렸고, 상주에서 오합지졸 이일의 패전, 천혜의 요새 문경 새제를 무방비로 내주고 충주 탄금대에 진을 친 신립은 기병 7천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대적하였으나 수차례 무리한 기마공격으로 조선 최고의 장수 신립은 결국 7천 기병과 같이 전멸하고 말았다. 그후 조선 조정은 북으로 도망치기에 바빴고 전국은 왜군의 말발굽에 유린되고 말았다.

 

오늘날 항상 적의 도발을 강력 응징하겠다고 외치면서도 막상 도발하면 터지고 깨지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제대로 대응 한번 하지 못하는 우리 군의 현실과 다를바가 없다. 지도층이나 국민들이 군을 기피하고 군을 무시하고 군을 깔보는 세태, 군 스스로도 개혁의 고비를 당기지 못하고 부패와 비리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별 네개 다섯개를 달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정치군인들이 군의 최고 직위에 올라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말 잘 듣고 고집과 지론이 없는 예스맨 군인만이 출세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군 지휘권도 없으면서 무슨 장군인가? 특히 지금 군의 최상층부는 육사 37~40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돌아가신 박대통령 아들 지만군이 육사에 들어갈 때 많은 장군과 정치인들 자식들이 같이 들어갔다. 그후 박정권이 무너지고 신군부가 들어섰을 때는 육사가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래서 지원자가 줄고 미달사태까지 벌어진 시기도 있었다. 그래서 능력이 미천하고 공부를 잘 못하던 무능한 학생들이 육사를 지원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이 지금 군의 최고층을 이루고 있다. 미안하지만 한마디로 지금 가장 무능한 육사 기수들이 군을 이끌고 있다는 말이다.   

 

임진왜란은 200여 년 가까운 평화기를 누리던 동북아와 조선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대사건이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져가던 조선이 운좋게 명나라와 의병 충신.열사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망했어야 할 조선이 기사회생한 것이었다. 조선이 그래도 유교 명분론에 따라 충과 효를 숭상하였던 사상이다. 그러나 유교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양반 사대부들은 표리부동한 태도로 삶을 살았지만 지혜롭고 정의로우며 외골수로 살아온 재야 선비들이 일으킨 의병과 이순신 같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명장이 있었기에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나 지배층이 부의 대부분을 독식하면서 백성들은 수탈의 대상이 되어 왔고 정의와 평등은 오늘날 보다 더 열악하였고 수많은 문제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당시의 조선시대나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어느 가정에선가는 자식 교육을 똑바로 시키고 있을 것이며 비리와 부패가 난무하는 가운데 바보처럼 가난하게 묵묵히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미래에 한국을 위기에서 구할 인재가 자라고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무능한 선조가 죽자 어린 적자 영창대군을 둔 채 서자였던 광해군의 가까스런 즉위는 정권의 불안정은 계속되었고 명청이 교체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기민하게 외줄타기 외교전을 전개하면서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으나 국내 정치의 불안으로 인해 대북파들의 무차별적인 정적 제거 작업이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에 광해군은 폐륜군주로 낙인찍혀 서인, 남인등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결국 광해군 정권이 무너지면서 광해군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18년간 지내다가 한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병자호란은 인조 정권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낸 치욕스런 전쟁이었다. 반정으로 즉위한 인조와 권신들의 무능으로 인해 이괄의 난이 발발하면서 서북 지방 정예군 1만 5천 명이 반란군에 가담하여 한양까지 점령하였으나 결국 안산전투에서 관군에 패퇴함으로써 반정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에 서북지방 병력 공백으로 방어선에 문제가 생기자 급히 오합지졸로 편성한 남부지방 군사를 파견하였으나 청나라 팔기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김자점의 방어 전략이 무용지물이 되자 청군은 파죽지세로 내려왔다. 강화도로 피신할 계획이었는데 이를 미리 알고 청군이 길목을 차단하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급기야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40여 일을 버티다가 결국 삼전도에서 청군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겨우 왕권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때부터 조선은 청나라 속국으로 사대하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지속된다.

 

효종의 북벌도 당시의 조선의 능력으로 청나라를 친다는 것은 꿈과 희망 사항에 불과하였는데 조선의 당시 국력과 군사력으로 청나라를 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청나라는 삼번의 난을 진압할 정도로 군사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을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노론측은 중국 청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사대하며 사는 길만이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자자손손 장기간 누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오늘날 한반도가 일본.미국.러시아도 아닌 가장 가까우면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강대국 중국을 섬김으로써 한반도가 안정를 유지하면서 국가체제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이 처음부터 그토록 중국에 사대한 것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고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만이 약소국 조선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숙종대의 환국정치는 왕권을 어느 정도는 강화하였지만 영조대의 탕평책과 정조대의 개혁의지는 노론 세력의 조직적인 반발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노론세력 중 외척 세력인 안동 김씨 가문에 의한 세도정치 60년을 지내면서 조선 왕실은 철저하게 무너졌고 나라는 한 가문의 탐욕으로 절단이 나버렸다. 그러자 마지막을 장식할 주인공들이 나타났으니 바로 흥선과 민비, 고종이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역활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하였고 그 결과 나라는 총 한 방 쏴 보지 못하고 일제에게 합병 당하고 말았으니 이 무슨 얄굿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우리 민족의 진정한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주고 있는 현실이다.

 

 

 

           

                                                          서서히 떠오르는 새해 아침 태양(아차산)

 

 

그러나 이런 긴 아픔과 고통의 역사를 가진 이 땅에도 긴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밝아오는 2015년 새해 아침이다. 5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새해 태양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치겠지만 살아가는 방식과 의미는 각자 다르다. 강대국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약소국으로 항상 강자에게 빌붙어 알랑거리며 강대국의 힘에 의지하여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민족도 있다. 어치피 생명을 연장하지 못한다면 강자에게 먹히고 그들에 빌붙어 권세를 누리려는 친일파가 전형적인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 배달민족이 그렇다.

 

명나라에 빌붙다가 청나라에 빌붙다가 일제에 빌붙다가 공산당에 빌붙다가 이제는 미국에 빌붙어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민족. 우리에게 과연 희망과 미래가 있는 것일까? 현실을 볼 때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의지하여 배수진을 치고 동토의 세습왕조 북한과 한국이 각각 중국과 미국의 종속국이 되어 서로 등에 업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서로 극심한 갈등을 빚으면서 어느듯 세월은 반세기를 지나왔다. 500여년 동안 사대부들이 지배하던 조선이 후손들에게 남긴 치유하기 힘든 상처다. 한 시대의 과오는 이처럼 후손들에게 극심한 이산의 고통과 힘든 삶을 남겨준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그들 가문이 조선 시대 충신, 영의정, 정승, 대사헌 등을 수도 없이 배출한 명문 집안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그들 가문이 명문이라고 하나 임금을 농락하고 백성들의 피눈물을 바탕으로 자신들 가문의 부귀영화를 추구하였던 점에서 유명 인재를 배출한 가문이기 전에 공보다 과가 더 많은 조선 망국의 주역이었다는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조선을 지배하였던 전주 이씨 문중과 권력을 농단한 안동 김씨 등 양반 사대부 가문에 대해서 적개심과 분노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조선 사회처럼 사대부들을 위해 백성 대부분이 노예처럼 살아가야 했던 시절이나 지금의 극심한 양극화로 가진자인 양반과 갖지 못한자인 상눔들이 나뉘어 갈등이 유발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의 극심한 빈부의 차이는 세도정권하의 조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각처에서 홍경래의 난, 진주민란, 동학란 등 민란이 일어나고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대안으로 외세를 끌여들였고 천주교를 극심하게 탄압하였다. 또 오호작통제라는 감시체제를 운용하여 천주교도를 잡아내고 숨기거나 방조한 경우 다섯 가구가 모두 잡혀가 극형을 당하는 시절이었다.

 

허수아비 임금 헌종과 철종에 이어 조대비와 흥선군의 밀약으로 등극한 임금은 흥선군의 둘째 아들 고종이었다. 흥선대원군의 급진적인 개혁정책과 척화외교는 정치적 기반이 약하던 그에게 무리였고 그 과정에서 민비와의 권력 갈등이 유발되어 세력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결국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는 실패하고 만다. 그후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였지만 고종과 민비를 포함하여 조정이 부패하고 매관매직이 극심하였고 그래서 관리도 부패하고 사회 곳곳이 썩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늘날의 우리 정치권과 사회와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당시 평양감사 자리는 민씨 일족에서 거의 차지하였고 민생을 제대로 돌 본 관리가 없었다. 오늘날 수천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무위도식하며 각종 비효율과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오늘날의 낙하산 인사와 진배없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이 민비로부터 권력을 되찿기 위해 청.일. 러 등 외세를 서로 끌여들여 세력다툼을 벌이다가 두 사람 모두 정치적 구금과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나라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총 한 방 쏘지 못한채 일부 왕족과 친일파들에 의해 불평등조약 등 종이 몇 장에 국새를 찍고 망하고 말았다. 

 

일제 강압통치 36년은 조선 민중의 고통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였다. 일제는 조선반도의 인력과 자원을 싹쓸이 해갔고 조선 민중은 전장터, 공장, 탄광으로 끌려가서 수없이 죽어갔다. 놋그릇, 수저, 오강까지 공출명복으로 빼앗아 갔고 토지수탈은 물론 식량, 광물자원도 빼앗아 갔다. 친일파들이 잎장서서 일본말을 사용하고 일본 이름에 일본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투사를 잡아 고문하다 죽이고 부녀자들은 일본놈들의 성노리개로 전락하여 씨받이가 되었다.

 누가 일제가 망한다고 했던가. 영원히 일제에 합병되어 조선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경찰.헌병 앞잡이가 되었고 친일파로 변신했으며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말을 사용하고 일본옷을 입고 일본 음식을 즐겨 먹으며 총독부 공무원이 되었고 순사가 되었으며 밀정이 되었다. 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인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많았다. 당시 만주국 산하 협화회가 조직되었는데, 실제는 관동군이 조종하는 기관이었다. 이 협화회에 출신으로는 윤상필, 최남선, 이선근, 이번석, 윤극영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일제의 봉천 및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는 박정희, 이주일, 이한림, 강문봉, 김윤근 등이 대표적이며 박정희를 포함한 일부는 일본 육사에 편입하여 졸업 후 만주 관동군에 배치되었다. 또 정일권, 백선엽, 신현준, 김백일 등도 포함되는데 정일권은 일본군 헌병 사령까지 올랐던 인물이며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던 사람으로는 백선엽, 신현준, 김일환, 김백일, 임충식, 김석범 등이다. 또 일제가 충직한 종을 만들기 위해 설립한 만주 건국대학 출신으로는 최남선은 교수로 재직하였고 전 충리 강영훈이 대표적이다. 대동학원 출신은 최규하 전 대통령, 자유당 시절 악명 높은 인물로 관동군 출신의 김창용, 원용덕이며, 군관학교를 졸업한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한국군에서 고위직까지 오른 인물로는 박임항, 김동하, 강문봉, 이주일, 김윤근, 이한림 등으로 5.16 혁명 주체세력으로 동참하여 고관대작을 두루 거치고 말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 외에도 수많은 친일파들이 이 사회에서 다시 재등용되어 사회 지도층에 올랐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나라가 될 수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 것이며 조국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만든다. 친일파 청산 작업을 철저하게 하지 못한 과오로 인해 우리 배달민족은 언제라도 불리하면 나라를 배신하고 강자에게 빌붙어 자신의 부귀영달을 추구하는 변절의 민족으로 오명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제의 군국주의는 야심을 드러내어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본토를 침공했으며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미국 하와이를 기습하고 동남아 지역을 석권했다. 치열한 태평양전쟁에서 산호초 해전, 미드웨이 해전을 고비로 일제는 서서히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미군은 본격적인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사이판, 티니안, 유황도, 필리핀 전역, 오키나와 등 주요 전략요층지 도서에 상륙작전을 전개하였고 일본 본토를 향해 서서히 목을 죄여가자 마지막까지 버티겠다던 일제는 미국의 원자탄 두 방으로 결국 무조건 항복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왔던 민족이었다. 양반사대부 계층이 국가 지도층이 되어 유교를 성전으로 하여 이상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양반사대부들은 명분은 그럴듯 하였으나 실제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호의호식을 누렸다. 그들끼리 권력을 두고 치열한 당파싸움질을 계속하였고 피로 점철된 조선 오백년 역사를 기록하였다. 그러던 양반들이 나라를 거들내고 일제에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나라를 들어 바치는 망국의 길을 갔다. 일제 36년의 지리한 고통의 세월을 보내면서 우리 민족은 친일파와 민족주의자로 양분되었고 그 틈을 이용하여 사회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새로운 사상과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여운형을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이 거의 전권을 잡고 지방까지 조직이 결성되어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들어오면 바로 사회주의 정부가 건립될 예정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제의 갑작스런 패망은 우리에게 너무나 갑작스런 해방으로 찿아왔다. 해방 이후 찿아온 백성들의 고통은 일제시대에 비유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남북을 미소가 분할점령하면서 고난의 역사는 다시 반복되고 말았다. 남북에 진출한 미.소군은 각자 지배권 확립에 각을 세우고 대립했다. 식탁통치안이 미국에 의해서 제기되면서 소련과 수차례 미소공위를 열었으나 서로 한반도에 자신들의 위성국가를 세우려던 양국의 정치적인 속셈으로 말미암아 결국 남북이 분할되고 말았고 북한에는 소련군이 김일성을 앞세워 친일파, 민족주의자, 지주계층을 제거하면서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해 나갔으며 남한에는 미군에 의해 이승만을 앞세운 남한 단독 정부가 유엔의 결의에 의해 세워졌으며 미국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상을 내걸고 정권을 수립하였다. 결국 북한 지역을 포기하고 미군정과 유엔 결의에 의해 남한에서만 단독 총선거를 치른 후 세워진 이승만 정권은 찬탁.반탁운동, 남북연석회의, 좌.우의 치열한 대립과 혼란한 정국, 미군정의 독주, 반란과 폭동, 남로당을 포함한 친공세력 제거 및 토벌, 친일파 복권, 주요 인사에 대한 정치적인 빈번한 암살극, 여순반란사건, 제주 4.3 폭동, 빨치산 무장투쟁 등등 혼란한 정국은 계속되었고 이승만 정권이 권력다지기에 열중하고 있을 즈음, 6.25전쟁이 발발했다.

 

6.25전쟁은 냉전시대 강대국의 대리전쟁이라고 하지만 미.소가 각자 한반도 지배권을 두고 벌인 전쟁이다. 남한을 방어선에서 제외한다는 미국의 에치슨 선언이 가져온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김일성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남한을 기습했다. 초전에 한강 이북에서 국군 전력의 대부분이 소진되고 말았고 북한군 전차가 서울에 진입하자 한강대교 조기 폭파로 국군의 철수로가 막히자 장병들은 무기와 장비를 모두 버리고 각자 단신으로 한강을 건너 남으로 퇴각하였다. 맥아더 사령관의 지시로 급히 투입된 미군의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오산에서 방어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 방어선이 붕괴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철수하였고 대전 북방에 급편방어진지를 편성한 미 제24사단이 적의 야간 우회침투 전술에 통신망이 절단되고 후방 포병과 후방지휘소가 타격을 받자 지리멸렬되어 후퇴하게 된다. 이 와중에 미 24사단장이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사태까지 야기되고 말았다. 이후 북한군에게 낙동강까지 피죽지세로 밀리던 유엔군은 다부동 전투, 왜관폭격, 영산전투, 영천전투, 형산강 전투 등 절치부심하던 중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다시 북진하여 압록강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은밀히 침투한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후퇴를 거듭, 서울을 다시 빼앗기고 다시 수복하는 등 지리한 공방전이 휴전선 일대에서 계속되면서 쌍방 간에 사상자만 늘어갔다. 중공군 개입까지 부른 3년간의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으며 전국토는 초토화되고 말았고 백성들은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했다. 미군과 유엔군, 국군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자 더 이상 승산이 없던 쌍방은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휴전회담이 열렸고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극한 대치한 가운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후 초토화된 이 땅에서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전후복구 실시하였으나 어둠과 혼란은 가중되었고 4.19혁명을 거쳐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던 대한민국은 5.16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에 의해 경제발전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지속한 결과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고 그 결과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하였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발전은 가난과 배고픔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으나 사회의 정신적인 발전은 무시되었고 오로지 돈이면 최고라는 자본주의 사상이 뿌리내리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고 민족 전통의 유교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누구나 부자가 되면 권력을 가질 수 있고 권력은 다시 부를 가져오고 인간답게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누구나 출세와 부를 손에 쥘 수 있는 신분상승의 기회가 다소 있었으나 부가 대물림 되면서 5%의 부를 가진자가 권력을 가지게 되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95%나 되는 약자의 부를 빼앗을 수 있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사회는 양심이 사라진 사회가 되고 말았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원칙이 무시되고 말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독식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무차별적인 불법.탈법을 자행해도 법은 항상 가진자 편을 들어주었다. 권력을 가진자는 다시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가진자들과 야합하여 국고를 축내고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데 일말의 양심도 부끄러움도 필요치 않은 사회가 되고 말았다. 힘없는 국민들은 봉이 된 지는 오래고 대기업은 권력과 야합하여 시장에서 폭리를 취하면서 경제적인 이익을 독식하고 있다. 정의와 공정은 물건너 갔고 공권력과 법치주의는 사라졌다. 오로지 누구나 국고를 빼먹는데 목숨을 걸고 비리와 부패의 먹이사슬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아날로그식의 사고를 디지털식의 사고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신분상승의 기회, 즉 빈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커녕 미꾸라지도 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말았다.

 

지금 북한은 김일성 왕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사일, 핵무기 개발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북한은 중국과 소련이 손을 놓아도 자력으로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 봉착하였기 때문이다. 폭압과 폭정, 무자비한 인권탄압,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굶주림에 지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는 점차 자본주의 시장이 확산되는 가운데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언젠가는 북한체제의 견고성이 점차 무너지고 흡수통일 될 것을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그런 흡수통일이 가능할 것인가는 아직 의문이다. 이유는 우리 정치.사회가 아직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 없이 우리가 자력으로 통일을 이루기도 힘들고 미국을 이용하여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을 받아내지 않는한 통일은 요원하다. 대중, 대러외교가 아직 미흡하고 미국 의존도가 너무 심화되어 있는 점도 문제거니와 내부적으로 후진적인 정치시스템과 국방과 안보.외교가 외세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다. 또 정치권.지도층, 그리고 가진자들이 불법과 탈법, 비리와 부패에 심취되어 있고 국난에 스스로 앞장서지 못하는 부도덕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양반과 사대부의 나라 조선이나 오늘날 가진자들 5%가 갖지 못한자 95%를 지배하면서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배는 부르지만 마음이 공허하고 정신이 상대적 불만에 가득차 있으며 부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탈 지경이다. 물론 능력대로 치부하며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지만 지금처럼 부의 흐름이 차단된 경직된 사회 시스템에서 부의 재분배가 정치적인 부패와 무능으로 차단되어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중장년층은 50~70년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다 경제개발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인공들이다. 그래서 경제가 부흥되고 수출이 늘어나면서 중장년층은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은 그런대로 조그만한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하여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가난하고 배가 고팠지만 그래도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개천에서 용이 아니라 미꾸라지라도 태어났던 시절이 그래도 그립다.

 

 

 

                                                                                   한강 물오리떼

 

                                                                

고구려의 위대한 영광도, 신라의 천년사직도, 백제의 화려한 문화도, 고려의 끈질긴 대몽항쟁의 의기도, 이씨 조선 500년 고난의 역사도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그 흔적만 겨우 남아 있고 인걸은 간 데 없다. 우리들의 시대도 언젠가는 흔적없이 사리질 것이다. 부귀영화도, 명예도, 화려한 문화도, 풍요한 삶도 시간이 지나면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양 성벽의 그 수많은 석축에 묻은 민초들의 눈물을 아는가? 남해의 한려수도 푸른 바닷물에 이순신의 피빛이 물들어 있는 것을 아는가?  홍제동 개천에서 치욕의 몸을 씻던 환향녀들의 눈물과 슬픔을 아는가? 한강대교 교각에 묻은 수많은 시민들의 핏자국을 아는가? 이 나라가 어떻게 오늘까지 존속하여 왔는가?

 

질곡의 역사, 고난의 역사를 지나 치욕의 역사, 고통의 역사를 겪고 반쪽이 되어 부평초 같은 신세가 된 대한민국. 임진왜란 당시 조선 최고의 장수라던 신립이 7천 기병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일본군과 대적하다가 전멸한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배수진을 치고 삼면에 바다를 끼고 북에는 호전적인 북한과 대치중이며 서에는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중국이, 남에는 군국주의를 부활시켜 한반도를 다시 삼키려는 일본이, 더 북쪽에는 음흉한 러시아의 곰이 한반도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동쪽 이억 만 리 태평양 바다 건너 우리의 유일한 우방국인 강대국 미국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식물인간과 같은 꼴인 이 나라.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국토도 좁고 인구도 적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약소국의 운명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핵무기로 무장한 주변국은 언제라도 한반도를 유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큰 소리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우리가 핵무기를 당할 재주나 있을까?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에 핵무기를 가질 능력이 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만 비핵화를 주장하며 미국의 찢어진 핵우산 아래서 촌놈이 복권에 당첨되어 돈을 뿌리며 위세를 부리듯이, 지금 우리 배달민족은 매일 먹고 마시며 비만을 걱정하고 축제장마다 몰려다니고 행락철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하고 가는 곳마다 술 마시고 춤 추며 키타치고 노래 부르며 밤하늘에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 놀이에 밤 깊어가는 줄 모르며 즐기고 놀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정치.사회는 뒷걸음질 치고 있고 시대정신을 호소할 만한 지식인은 사라졌고 위선과 파벌,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내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라는 송두리채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세월호 참상은 바로 저질 자본주의로 막장을 행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라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관피아를 포함한 뿌리깊은 비리와 부패의 먹이사슬을 형성하여 사회 각 분야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고 가진자와 지도층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합법적으로 털어가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 원유가 남아돌아 버리는 상황인데도 우유값은 내릴줄 모르고, 국민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서 담배값을 올리는 등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갈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면 적이요 같으면 우군으로 생각하는 현실, 진보와 보수가 진정한 진보가 아니요 보수도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 사회주의 사상이 뿌리깊게 자리를 잡고 있고 친북, 종북, 용공 세력이 사방에 포진하고 있다.  매사에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면 밀실 야합을 이루고 서로의 이득을 추구한다. 사상과 이념이 다르니 모든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는 편가르기에 상대는 무조건 나쁘고 나만 옳다는 깊은 편견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지역 이기주의가 시대정신이 되고 말았고 돈이면 다 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인간존엄성을 파괴하고 돈을 위해서는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필요없는 시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적인 빈곤은 정신적인 빈곤을 불러온다. 정신은 목줄을 놓은지 오래고 정의도, 공정도, 평등도, 양심도 사라진지 오래다. 모두가 국부 빼먹기에 여념이 없고 기업은 세금 포탈과 비자금 만들기에, 학교는 교육을 빙자하여 학부모 주머니를 털어가고, 출산.육아.입시를 이용하여 서민들의 목줄을 죄고 있고, 죽는 것도 서러운데 장례를 이용하여 폭리는 취하는 무리들이 서민들을 털어가고 있다. 낙하산 인사, 정부산하단체 연구비 유용, 공기업 방만경영, 정경유착, 유전무죄무전유죄의 법치, 상아탐 대학이 취업대학으로 변한 현실, 확산되는 성관련 범죄, 불특정 개인에 대한 무차별 폭행, 대기업 오너 자녀들의 졸부근성, 사회지도층의 성관련 범죄 증가와 일탈, 복지 소외계층 확산, 부동산 시장 침체, 늘어나는 사교육비, 결혼 감소와 이혼 증가, 미혼모와 영유아 유기 및 살해 증가, 불합리한 유통구조와 가격 폭리, 기업과 대학, 공무원 간의 비리사슬 확산은 물론 정치적 후진성, 경제적 취약성, 안보.국방의 허약성, 문화의 퇴패성 등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계속 누적만 되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회 각 분야는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고 있으며 오로지 돈에 양심도, 체면도, 명예도, 윤리.도덕도 모두 버리고 목숨을 걸고 있다. 풍요를 누리며 즐기는 우리 사회가 구조조정과 개혁이 미진하다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며 모든면에서 취약한 한국 경제가 언제 졸지에 붕괴될지 모르는 물거품같은 것이다.

 

 

 

                                                                                  가을의 추억, 상암동 하늘공원

 

죽음에 무감각해진 사회

길거리 버려진 개, 길고양이가 차량에 치어 죽어 있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된다. 인도변에는 비둘기가,  벽이나 하수구 구멍에 머리가 끼어 죽어 있는 동물, 고급빌라 담장 빗살무늬로 목재로 마감한 벽면에 끼어 죽은 청살모도 한 마리 보았다.

 

길가에 버려진 동물들의 사체를 보면서 인간의 죽음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삶 자체가 허무하기도 하다. 아무리 화목하고 행복하며 잘나가던 사람도 이러한 사고를 갑자기 당한다면 그것은 바로 불행으로 이어지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다면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깊은 슬픔과 상처를 남기고 가는 것이며 그동안 공들여 키워온 부모에게 크나큰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전규정을 준수하는 버릇을 항상 몸에 베이도록 가정과 학교교육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 시스템 자체도 안전규정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정책적으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는 문화 후진국의 수모를 영원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제 대형사고에 무감각한 우리사회는 남의 죽음에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다. 이는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인명경시 풍조, 졸부가 갑자기 좀 잘 살게되어 거드럼 피우며 사치와 방탕, 쾌락에 빠져 남의 눈쌀을 찌프리게 하는 사회풍조, 가진자와 권력자가 야합하여 국민들을 봉으로 알고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으며 국가 세금을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는 식으로 빼먹고 있는 공직사회, 공공단체, 협회, 기관 등 마피아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사회, 안전의식이 사라지고 돈이 된다면 무엇이던지 불법, 탈법을 저지르는 사회 등 자본주의 말기현상이 팽배해진 탓이기도 할 것이다. 반복되는 대형사고에 이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설마 나에게 저런 불행이 오겠는가?' 하고 별 느낌이 없는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로 사는 모양같다. 정치.경제.안보/국방.문화의 후진성으로 나라는 언제 절단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두가 노래부르고 춤 추다가 갑자기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와도 환상에 빠진 배달민족은 아무런 감각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다반사로 반복되는 다른 사람의 불행한 죽음을 바라보는 배달민족은 이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바라보듯 무감각해졌다. 사회시스템이 무너진 이 나라에서 어느날 갑자기 죽음이라는 불행은 자의반 타의반 누구에게나 찿아올 수 있기 때문에 불행에 대한 의연한 태도와 자세가 요구되는 시대가 되고 말았.

 

그러나 사회는 너무나 빨리 변화하고 있다. 전쟁도 모르고 어려움도 모르고 자란 오늘날 젊은이들은 부모들의 과거에 관심도 없다. 그것은 바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상실에서 비롯되었고 시대정신을 상실한 급격한 경제적인 성장이 가져다 준 결과였다. 지금의 현실은 학업, 취업, 결혼, 이혼, 양극화, 초고령, 초저출산 현상이 초래되었고, 로봇화, 인터넷, 컴퓨터 등의 발달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회적 구조 변화가 유발되어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사라지고 서울 강남이나 부자집에서만 용이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젊은층들이 배는 부르지만 삶의 각종 어려움에 봉착하여 방황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너무나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드라마 <미생>을 통해서도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드라마였다. 일약 주인공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되었고 장그래법까지 들먹이고 있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미생마인지도 모른다. 바둑에서 두 집을 내야 살 수 있지만 반집이나 한 집만 내고 버티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더 이상 집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둑인 것처럼 우리들 삶도 두 집을 내지 못하면 결국은 노예처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거나 아니면 현실을 비관하고 스스로 묵숨을 끊거나 정신병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욕구 해결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누구나 경제적인 욕구 충족은 바로 인격과 신분의 상승이며 사회적 존경의 욕구가 충족되고자아만족인 삶으로의 상승이다. 그러한 신분상승의 기대가 무너지면 권력층, 지도층, 가진자에 대한 분노와 배리감이 폭발한게 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 법적 개혁에 의해 그러한 불평등이 해소되지 못하면 그 분노는 불특정 다수나 이웃 등 주변 사람들에게 전가되기 쉽다.  

 

년초에 딸 부부와 같이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였다. 좀 지루한 느낌이 들었고 무슨 다큐멘트리 같은 이야기로 생각되었다. 영화에서는 이산가족 찿기가 절정을 이루었다. 사위는 눈물을 흘리면서 본 모양인데 부산이 고향이고 아버님이 결혼전에 돌아가셨고 국제시장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런 모양이다. 그 영화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자신의 사고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표현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세대들의 이야기를 한 가정사를 통해서 되돌아본 정도인데 대통령과 몇 몇 정치인이 부언하자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지금 박대통령은 그 시대를 몸소 체험하면서 느껴온 세대이기도 하다. 국기에 대한 국민의례에 대한 사고가 그렇다. 지금은 어디 한 사람이라도 국기에 대해서 경례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국경일날 국기를 다는 가정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애국심을 국기에 대한 경례라고 생각하는 구시대적 사고가 오늘날 우리 정치권을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국기에 대한 존엄성도 사라졌고 가난과 배고픔을 당해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봐야 소용없다. 인간은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미생>보다 영화 <국제시장>은 젊은층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지금은 배는 부르지만 정신이 험난한 시기다. 취업, 결혼, 출산과 양육, 수입과 지출, 신분상승 기회, 심화된 양극화 등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젊은 딸 부부가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부모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고 오늘날의 풍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서울 아차산 해돋이

 

 

우리들 누구나 역사의 수레바퀴에 묻어 흩어지는 흙먼지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다가 소리없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이 나라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공헌하고 보람찬 인생을 살다가 사라지는지, 아니면 자신과 가문의 치부를 일삼고 이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발목잡으며 앙탈을 부리고 데모하고 촟불들고 편협한 잘못된 광신도 같은 사상과 이념, 종교에 빠져 민중을 선동하며 주머니를 털고 우리들 후손들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가는 것은 아닌지?

 

우리 평균 인생 80세, 1초를 1원이라고 간주한다면 누구나 80 평생은 하느님으로부터 약 25억(80세*365일*24시간*60분*60초+약 25억 원) 원이 입금된 인생 통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누구나 각각 하루 86,400원의 인생 시간 일당이 주어진다. 하루를 금액으로 계산하면 (1초=1원)*24시간*60분*60초=86,400원이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약 270만원, 1년이면 약 3,000만원 연봉을 깍아 먹으면서 누구나 살고 있는 셈이다. 누구는 인생 시간을 매일 헛되어 까먹고 있고 누구는 매일 보람차게 살고 있는지는 스스로 자문해보면 잘 알 것이다.

  

헛된 상념에 빠져 탐욕과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하다 파멸에 이른다면 그 사람은 시대의 낙오자요 실패자요 패배자가 된다. 돈에 미쳐 눈이 먼 자, 빠징고, 경마. 경륜, 경정, 축구, 야구, 바둑 등 각종 도박에 빠진 자, 욕정을 못참고 저지르는 각종 성범죄자, 출세와 재물에 눈이 멀어 뇌물을 바치는 자, 눈 먼 돈이라고 장애인, 독거노인, 극빈자층 보조금 등 국가 보조금을 빼먹는 자, 권력과 권세를 이용하여 약자를 억누르거나 재물을 빼앗는 자, 편협한 사상에 빠져 선동.선전으로 대중을 현혹시켜 우두머리가 되어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자, 종교적 교리와 권세를 이용하거나 천국을 선전하거나 행불행을 점쳐주며 탐욕을 채우는 자, 결혼,장례를 빙자하여 갈취하는 자, 다단계로 사기를 치던가 아니면 다단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을 해체하는 자, 부부가 결혼 후 여러가지 욕심으로 자녀를 팽개치고 이혼을 하는 자, 각종 게임에 빠져 가정과 가족을 잊고 게임방, PC방, 방구석에서 세월을 허비하는 자, 각종 다양한 수법으로 사기를 치는 자, 수시로 술 먹고 폭행 등 주변인과 가족을 못살게 구는 자, 폭력조직에 가담하여 불법을 저지르며 인생을 허비하는 자, 매춘, 불륜 등 성을 매개로 한 각종 돈벌이에 관여 하는 자, 뒷돈을 받고 형벌을 주무르는 검찰,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 뇌물을 받고 편의를 봐주는 정치인, 경찰, 헌병, 기무, 국정원, 감사원, 세무서, 말단 공무원, 교직원, 공공기관, 사학재단 관계자, 시주와 헌금, 등록금으로 치부하는 종교 단체, 승려, 목회자, 사이비 종교 지도자, 교육기관 관계자, 불법과 부정으로 공사대금을 유용하는 회사와 관계자 등은 모두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사회를 혼탁스럽게 하는 암적인 존재로 이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아차산 새해 해돋이

 

 

새해를 맞아 우리는 좌절과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 한다. 고난과 위기 속에서 항상 영웅이 태어나고 새로운 기회가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어치피 정치란 권력을 잡은 자들이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의 백성들은 수탈당하면서 노예처럼 살기 마련이다. 지금은 조선 시대보다 더한 가진자인 양반과 가난한 자인 천민이 양극화로 갈라져 있다.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고 시나이 반도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듯이, 이순신 장군이 모진 모함과 역경 속에서도 23전 23승의 놀라운 전승을 이루었듯이, 나라가 망한 암울한 시대에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여 조신 민족의 의기를 드높였듯이...... 조선의 전설적인 거상인 임상옥의 드라마 '상도'에 나오는 것처럼 "장사란 돈을 번다는 것보다 사람을 얻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가지 살아오면서 진정한 내 사람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여 왔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병철과 정주영이 여건이 좋아서 오늘날 그들의 후손들이 한국 최고의 대기업인 삼성이 되었고 현대가 된 것이 아니다. 모든 어려운 환경은 어느 시대나 존재하였고 수많은 민초들이 좌절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모두가 배부르고 태평성대를 누린 적은 별로 없다. 나라를, 정치를, 사회를, 조상과 가족을 탓해봐야 자기만 손해다. 역사를 보아도 양극화는 불변이며 역동성이 사라진 사회는 퇴보하게 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가난할 때는 청빈을 외치지만 부를 거뭐쥐는 순간부터 인간은 타락한 삶을 살게 되어 있다. 현실은 항상 불평등했고 소수의 권력자와 가진자들이 부를 독점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려왔다.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절대 오지 않는다.

 

남들과 같은 사고와 행동으로는 절대로 남들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원망과 분노는 마음과 정신을 병들게 하지만 은혜와 감사는 마음의 평안을 가져온다. 새로운 발상과 창의적인 사고없이는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없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지 못하면 절대로 선구자가 될수 없으며 가난과 불평등의 노예가 된다. 자녀에게 풍족과 배부름을 선사하지 말라, 그것은 바로 자녀들의 불행을 불러온다.

 

역사를 모르는 젊은이와 가정, 민족은 미래가 없다. 민족에 대한 자부심,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없는 후손들이 국난을 이겨내는 주역이 될 수가 없다. 가난하지만 사생관, 인생관, 국가관을 똑바로 교육시킨 자녀는 반드시 미래에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할 수가 있다. 고대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9살 때 신전에서 아버지로부터 로마와 전쟁에서 패전 이야기를 듣고 '로마 타도'를 신에게 맹새했고 그후 성장하면서 로마 타도에 대한 일념으로 가득차 스페인 총독이 되자 9만 명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 로마 본토를 침공하여 이후 무려 16년 동안 이탈리아 반도를 휘저으며 가는 곳마다 로마군을 전멸시키며 로마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장수로 마지막 북아프리카 '자마전투'에서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에게 패하여 몰락하였지만 그는 인류 역사상 전쟁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위대한 장군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처럼 국가관, 사생관, 인생관에 대한 올바른 자식 교육은 국난을 당하였을 때 역사적인 인물로 태어나게 된다. 자신이 잘 살고 못 사는 것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