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국의 역사 1,091 : 해방과 건국 51 (박근혜 정부와 세월호 침몰사건 2)

 

 

 

한국의 역사 1,091 : 해방과 건국 51 (박근혜 정부와 세월호 침몰사건 2)

 

 

【서울=AP/뉴시스】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13.06.27. 2013-06-27

 

 

 

박근혜 정부와 세월호 침몰사건 (2013.2.25 ~ ) 2

 

세월호 침몰 사고는 박근혜 정부에 엄청난 충격을 초래하였다. 정권이 흔들리고 국정이 마비될 정도의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키며 정권의 존립까지 뒤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사고로 인해 정권의 무능력성이 도마 위에 올라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개조내지 혁신 사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장차의 국정 수행에 막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어 정권교체의 가능성까지 내다 볼 지경이 되고 말았다. 

 

사건의 배후에는 사이비 종교 교주의 방만한 기업체 운영과 각종 마피아들이 공생관계를 형성하여 불법과 탈법으로 사적인 이익 추구에 동조하면서 뿌리 깊은  사회적 비리와 부패가 만연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우리 사회 깊이 뿌리내린  각 분야의 마피아를 척결하고 국가개조를 위해 새로운 개혁을 위하여 새로운  총리를 두 명이나 내세웠으나 언론 재판에 의해 전관예우와 사상적 편향성 등으로 인해 두 사람 모두 총리 후보에서 중도 낙마하고 청문회를 통과할 험집없는 새로운 인재를 구할 방도가 없다며 사퇴서를 낸 정홍원 총리를 재임명하는 조치를 강구했다.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고, 청와대의 인사시스템과 대통령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의 수첩이나 비서실장이 추천하는 인사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인사가 대부분이라면 우리나라 고위층의 대부분이 불법과 탈법, 전관예우, 투기, 병력비리, 논문대필, 축첩 등 비리와 부패에 연루되어 있는 인사뿐이라는 점이다.

 

어느 시대나 인재는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지만지금같은 상황의 부도덕한 사회시스템에서 개혁성향의 참신한 인재를 지배층이나 고위층에서만 찿는다면 이 나라의 현실에서 깨끗한 인사를 찿기 힘들 전망이다. 그래서 언론은 출신과 성분, 학력, 지역을 가리지 말고 개혁적인 인재를 구하면 못 구할 리 없는데, 이미 미숙한 사건 처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추진력이나 장악력, 개혁성에서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인 정총리를 재임용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미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의 무질서한 사건 수습 과정에서 사퇴의사를 밝힌 정총리를 다시 재임용했다는 것은 국가개조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각종 마피아들이 사회 곳곳에 파생되고 있어 국고를 축내고 비리와 부패가 만연한 현실을 개조하기에는 식물총리나 마찬가지인 정총리를 재임용한 한 자체가 개혁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인사원칙이 수첩인사에 국한되어 청문회를 통과할 인재가 없다는 점도 국민의 눈높이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처사라는 점도 문제다.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하고 몇 몇 장관으로 임명된 인사에 대한 부정적인 사안으로 청문회에서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세월호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아직도 나머지 몇 몇 시신을 찿지 못한 상태에서 세월호 국정조사는 진행되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청진해운의 실직적인 소유주인 사이비 교주 유병언을 포상금을 걸고 체포에 주력했으나 두 달이 다 되가도록 아직 체포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속 시원히 해결하기 위해서 사고 원인과 과정, 진행, 결과에 따라 발견된 불법과 탈법을 일삼은  사고 관련자를 모두 색출하여 강력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며,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혁신적이고 효율적이며 개혁적인 새로운 안전시스템을 구축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 구축에 혁신을 기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정부는 남은 기간 정치적으로 어려운 국면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世越號 沈沒 事故)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황해상에서 인천발 제주행 국내선 여객선에서 발생한 침몰 사고이다. 세월호에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 등 총 476명이 탑승하였다고 알려졌다.[4]

 

 

배경

 

제반 환경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었다. 이때 여객선 운용 시한이 진수일로부터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세월호의 소속 선박사였던 청해진해운은 덕분에,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상 폐선에 가까운 18년된 세월호를 사들여 운항할 수 있었다(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대하여 논평했다).

 

이후,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개보수 자금 30억원 등 100억원의 차임급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탑승 가능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증축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심지어 여객선을 임의대로 노선에 추가 투입해 출항시킨 뒤, 관계 당국에 통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책임은 과징금 30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세월호의 경우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국내 내항선 선박직(선장·항해사·조타수·기관사 등) 대부분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도 월 270만원의 1년 계약직이었다. 이에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니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제 선원에 대한 교육 관리도 열악했다. 청해진 해운은 2013년 선원 교육비용으로 54만 1천원을 썼다.

 

 

세월호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의 하야시카네 선거(林兼船渠) 에서 건조한 여객·화물 겸용선(RoPax, RORO passenger) 으로 일본 마루에이 페리 사에서 '페리 나미노우에'(フェリーなみのうえ)라는 이름으로 18년 이상 가고시마~오키나와 나하 간을 운항하다가 2012년 9월 퇴역하였으며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에 중고로 도입하여 개수 작업을 거친 후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하였다. 세월호의 이름은 "세상(世)을 초월(越)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여객 정원은 921명에 차량 220대를 실을 수 있으며, 21노트의 속도로 최대 264 마일을 운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해역

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맹골수도가 위치한 곳으로,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거차도 사이이다. 이 곳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최대 6노트). 섬 주변에는 암초가 많지만 항로로 이용되는 수로 자체는 깊이 30m 이상으로 암초 등 항해 장애물이 없다

 

 

원인

 

대한민국 정부 공식 조사

사고 원인에 대하여는 현재 해양경찰청(이하 해경) 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 부분이다. 해경은 17일 긴급 브리핑에서 세월호 선장 이준석(69) 등 선박직 승무원들을 조사한 결과, 침몰 원인을 무리한 변침으로 잠정 결론 내린 상태임을 알렸다. 이후 19일 검경합동수사본부에서도 무리한 변침을 침몰 원인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그러나 다른 여러 원인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조타기의 결함, 과적 화물의 느슨한 고정, 암초 충돌이다.

 

 

 

가설들

 

다음은 침몰에 대한 가설들이다.

암초충돌설
사고 발생 초기에는 언론이 안개에 의한 암초 미발견으로 인한, 충돌가능성을 집중 조명했다. 생존자 중 일부가 들었다는 '쿵' 소리와 당시 기상상황이 안개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백점기 부산대 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장은 배의 좌초로 인한 사고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주장은 해당 해역에 암초가 없으며, '쿵' 소리의 원인이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에 따라, 유력한 사고 원인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구조결함설

세월호와 같은 로로선은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이 국제적으로 자주 지적되던 선박이다(로로선 사고 목록 참조). 2009년 11월 일본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건조하여, 마루에이 페리사가 운행하던 아리아케호가 침몰했다. 이 선박은 과거 세월호가 나미노우에호로 활약하던 시절 운행한 해운사가 동일했고 선박 디자인과 배수량이 유사한 로로선이다. 2009년 아리아케호 사고 직후, 마루에이 페리는 동일 선박인 나미노우에호를 2012년 퇴역시켰다. 그것을 청해진해운에서 싸게 수입하여 1년간 개조하였으며, 2013년 3월 이름을 세월호로 개명하고 운행을 시작하였는데 1년 1개월 만에 좌초된 것이다. 한 해상전문가는 "선체가 그렇게 빨리 기운다는 것은 선박 복원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이는 선박의 구조적 결함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구조변경설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김길수 교수는 사고의 원인이 구조변경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세월호는 2012년 10월 일본에서 수입된 뒤, 이듬해 3월까지 전남 목포에서 객실을 증설하였다. 3~5층에 객실이 증설되었고 승선정원은 181명 추가된 921명으로 많아졌으며, 선박 무게도 239t 증가했다. 이에 따라 무게중심이 원래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배를 급격히 돌린다고 전복이 되지는 않는다" 며 "구조 변경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갔다면 내ㆍ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졌을 때 배가 뒤집힌다" 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세월호 등록 검사를 맡았던 한국선급 관계자는 "객실 증설은 합법적인 공사, 점검 결과 운항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등록 검사를 정상 통과했다" 고 밝혔다. 한편, 객실만 증축한 게 아니라, 배 앞쪽 램프웨이도 철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입구를 줄이면 화물을 더 실을 수 있고, 배 전체 무게가 가벼워져 그만큼 객실 증축에 유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쪽에만 있던 램프웨이를 없애면서 오른쪽이 너무 가벼워진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변침설(항로변경설)

변침(變針) 이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항로를 변경한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침몰한 세월호가 좌로 기울었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해양운송시스템학부 교수는 "세월호 여객선 참사 원인이 암초가 아닌 급선회에 따른 외방경사로 추정 된다" 고 밝혔다. 그는 유속이 빠른 해역에서 선박이 회전하게 되면 선체가 5~ 10도 가량 기울게 되고 그 영향으로 선체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나 화물이 한쪽방향으로 쏠려 선박과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 했다. 이설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 발생한 '꽝' 소리는 결박된 화물들이 풀리면서 선박에 부딪혀 발생한 소리로 보고 있다. 이 설은 17일 해경이 긴급 브리핑에서 잠정 결론으로 발표한 견해이기도 하다.

 

 

내부폭발설

공길영 한국해양대 교수와 임교수는 이견을 보였다. 그는 "변침은 침몰의 1차적 사고 원인이 아니다. 배가 이미 기운 상태에서 변침을 시도했다면 문제가 된다" 며 "가능성이 낮다" 고 했다. 그는 "조타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미 기울어진 상황에서 조타 장치를 작동해 봐야 무용지물이다" 면서 "내부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컨테이너에도 무엇이 실렸는지 봐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는 암초설에 대해서는 해양 조사원들이 해도에 항로에 있는 암초들을 기입해둘 뿐 아니라 승무원들도 그 항로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며 암초에 의한 좌초가능성을 일축했다.

 

 

복합원인설(단계설)

이상윤 부경대학교 환경해양 과학기술원 공간정보 연구소 교수는 좀 더 복합적인 가설을 내세웠다. 그는 세월호 사고원인에 대해 준비 안 된 인재, 배 자체의 문제, 빠른 유속의 맹골수도를 지나간 외부악재 등이 겹치면서 총체적인 화를 불러온 것이라 하고, 사고발생의 시작점에 주목하여 6단계에 걸쳐 사고가 진행되면서 여러 원인들이 겹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또한 배의 복원력에 주목하여 그는 배가 요동치면서 배내외부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이로 인해 배의 복원력이 상실되어 배가 한쪽으로 기우는 외방경사가 발생하였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는 "내부 폭발보다는 배는 6단계에 걸쳐 침몰이 진행되었다" 며 복합원인설 혹은 단계설을 주장했다. 1단계, 배는 선박하중 조정실패에 기인한 급격한 무게중심 상실의 한 원인일 수 있는 선박밸러스트 평형수 조정, 선체결함, 과적 등의 여러 이유로 동적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 상태가 된다. 2단계, 배는 빠른 유속의 영향과 배 자체의 속도로 인해 배 유동이 급격해진다. 3단계, 이때 배 내부에 실린 화물이 한쪽으로 뒤집어지면서 배 자체가 균형을 잃는다. 4단계, 그 순간 배는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며 복원력을 상실한다. 5단계, 배가 병진운동과 회전운동이 병행되면서 선체가 뒤집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침수된다. 6단계, 뒤집어진 배는 위쪽에 집중된 창문 등의 여러 통로로 통해 물이 쏟아지면서 슬래밍(slamming) 이 일어나면서 배가 급속히 침몰한다.

 

그는 3-4단계 과정에서 급속한 선회기동을 하는 변침(변침) 이 발생했다고 한다. 3단계에서 배 내부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 내부에 타공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고, 선적화물 등이 배갑판 등을 때릴 때 이를 승객들은 꽝하는 굉음(내부충격) 으로 들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배 주변의 빠른 유속과 배 속도가 배가 되면서 배 내외부의 구조변경이 있었을 경우(구조변경), 이러한 1-6단계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추정했다.

 

또 세월호 관련 해운조합의 운항관리 부실이 지적되었으며, 해수부는 "운항관리자 독립성 강화와 운항관리를 개선할 것"이라 했다. 이교수는 세월호의 사고원인에 대해 능력부족의 인재, 과적 및 밸러스터 평형수 조정 및 조타 등의 문제와 같은 선체 자체의 문제, 맹골수도라는 급격한 유속이 지나는 위험항로 등의 문제가 함께 복합된 것이 이번 사고원인의 중요한 요소라 하고, 총체적인 문제들이 6단계로 진행되면서 이번 사고의 발생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세월호의 사고항로인 맹골수도 항로 자체가 사고발생 개연성이 원래부터 높았다. 과거 한해에만 해난사고가 이 지역에서 네, 다섯 건 씩 발생했다. 이 맹골수도 항로는 과거 2002년부터 이곳에서 발생한 사고만 무려 58건, 한해에 4~5번꼴로 사고가 나는 사고다발 지역이며, 서해안의 평균 시속 5㎞보다 2배 넘게 빠른 곳으로 1등 항해사도 쉽지 않은 위험수로다. 이교수는 이 항로가 조류가 센 점에서 언제든지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있기에, 항로에 대해서 재검토를 해봐야 될 시점임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사고의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로 과적부분을 지적하고, 배내외부에 화물이 과적되고 이때 결박까지 느슨한 상태에서, 화물이 좌우로 요동되면 관성력 작용으로 배의 요동이 더욱 심해지면서 2-3단계에서 배의 외방경사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세월호 선원들이 6시간에 한번 씩 배화물의 결박여부를 점검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도 지적하였다.

 

 

과적 및 선체결함설

이 견해는 2014년 4월 19일자 오전 10시경 부산일보와 그날 오후에 종편 방송사 JTBC에서 제기한 것이다. 부산일보 4월 19일자 보도 상, 한국해운조합에 따르면 세월호는 4월 15일 출항 전 화물 657t,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조합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실제 확인 결과 세월호는 화물 1천157t, 차량 180대를 싣고 있었기에 이는 화물은 무려 500t, 차량은 30대를 초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곧 화물 500t 차량 30대 초과한 상태에서 밧줄로 제대로 묶지도 않았기에 선박 하중조절 실패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견해이다.

 

한편 세월호에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기관사는 먼저 선박이 회전을 할 때 균형을 잡아주는 선박 양 측면의 스태빌라이저가 결함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스태빌라이저는 선박 측면에 날개 모양의 형태로, 선체의 안과 밖을 반복적으로 왕복한다. 급회전 시 이 스태빌라이저가 작동하지 않으면 배가 기울어버린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화물의 과적재이다. 이에 대해 청해진해운 측은 과적재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JTBC는 이를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세월호의 전체 중량은 6,825톤인데, 이것은 선박 자체, 화물, 승객, 연료 등의 무게를 모두 더한 수치다(만재배수톤수). 이 무게를 넘어서게 되면 과적이 돼 출항을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세월호 배 자체의 무게는 3,031톤, 선사 측이 밝힌 화물과 승객 무게는 3,638톤이다. 모두 더하면 6,825톤을 넘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배의 연료와 평형수 등의 무게가 누락돼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연료로 쓰인 벙커C유와 내부 발전용인 경유를 환산한 무게는 약 160톤으로 이를 더하면, 6,825톤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윤종희 한국해양대 교수는 "모든 것을 실은 상태에서 거기 화물도 있고, 연료·물·선용품 음식 등 이런 거 다 있지 않습니까. 그런 종류도 다 포함돼요."라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해진해운 측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한, 평형수 문제 역시 선박의 동적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으로 거론 한다. 승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침몰되기 한 시간 전인 7시 40분경부터 이미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는 이른바 평형수 탱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평형수 탱크는 선박 가장 아래 부분에 위치하는데, 좌우 3개씩 모두 6개의 물탱크로 이루어져 있다. 평형수는 해수를 담아 배의 좌우 균형을 맞춰준다. 그런데, 최근까지 세월호에서 일했던 전직 선원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물이 한쪽으로 실리는 경향이 있어요. 한 번 물을 딱 맞춰 놓으면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즉,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JTBC는 평형수 시설이 2월에 수리를 하고, 안전점검까지 받아 통과했지만 그 이후에도 선원들은 전혀 고쳐진 바가 없다고 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스태빌라이저 역시 부품이 없어 수리를 받지 못했고. 적재된 컨테이너 역시 쇠줄이 아닌 밧줄로 묶여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느슨한 결박설

세월호 전 항해사 김모씨는 4월 21일자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와의 대화에서 스태빌라이저나 평형수, 변침 등의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침몰한 세월호는 결박을 제대로 안했을 것"이라 했다. 또, 인천항 선박의 화물 결박을 현장에서 직접 담당하는 인천항운노조는 컨테이너 결박에 꼭 필요한 라싱바와 브릿지피팅 같은 전문 장비가 세월호에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발생 및 수습

  • 사고 발생 (4월 16일)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 (KST),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최초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최초 신고자인 학생이 던진 첫마디는 "살려주세요"였고, 이후 그는 배가 침몰하고 있음을 알렸다. 당시 신고전화를 받은 전남소방본부 관계자는 내용을 듣고 목포해경을 연결했다 (54분 07초). 그런데 목표 해경은 최초 신고자에게 제일 먼저 경도와 위도를 말하라며, 배의 위치를 물었다. 당황한 최초 신고자가 '네?'를 연발하자 119관계자는 그가 탑승객임을 알렸다. 하지만 해경은 반복해서 GPS를 거론하는 등, 위치를 물었다. 그로부터 1분 30초 뒤 해경 측은 선박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고, 최초 신고자는 "세월호"라고 답했다(이러한 시간 지연에 대하여, 후일 박진수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선박 이름부터 묻는 것은 기본임을 지적하고 "구조를 하려면 순서를 누가, 어디서,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우리는 육하원칙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비판했다). 세월호는 최초 신고보다 3분 후, 사고 해역과 가까운 진도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관제센터(VTS)에 교신해 배가 침몰 중임을 알렸다(8시 55분). 그리고 다시 이 제주관제센터(VTS)는 목포해경이 아닌 제주해경에 연락했고(8시 56분), 8시 58분에 비로소 목포해경이 사고를 접수했다(이 사고접수도 세월호 승무원들이 아닌 학생의 신고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추후 상황을 파악한 진도관제센터(VTS)가 9시 6분에 세월호와 교신하여, 세월호를 호출하여 직접관제를 시작하였다.
 
항해 경로 Position on chart
사고 접수 후, 해양경찰은 출동 및 구조에 나섰다. 해경은 헬기 1대와 경비정 20척을 현장에 투입해 헬기로 승객 6명을 구조했고, 100 여명은 경비정에 옮겨 태워 인근의 진도목포시 등지로 이송했다. 대한민국 해군도 구조작업을 위해 사고 해역으로 유도탄고속함 1척과 고속정 6척, 해상초계가 가능한 링스헬기 1대 등을 투입했다. 민간 어선 선장 박영섭(56)은 16일 새벽 조업을 마치고 귀항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 선장은 오전 9시 3분경 수협목포어업통신국이 송신한 긴급 구조 요청 신호를 받고, 병풍도 북쪽 1.5마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 바로 뱃머리를 병풍도 쪽으로 돌렸다. 오전 10시 30분경 사고 현장에 도착한 박 선장은 해경과 구조작업에 참여해 승객 27명을 구조하였다. 조도면 청년회원 김형오(47) 역시, 이장단장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자신의 1.1t급 소형어선을 몰고 구조작업에 동참하여, 총 25명을 구조하였다. 그 외에도 메시지를 받고 10여분 만에 출항준비를 마친 조도면의 어선이 60여척, 어민은 150여명에 달했으며 전속력으로 도착까지 20여분이 소요되었다고 전해져 초동구조에 민간 어선들이 큰 역할을 하였음이 밝혀졌다.
 
오전 9시 19분부터 YTN 을 시작으로 각 언론에서 세월호의 침몰 소식을 긴급 타진하기 시작했고, 오전 10시부터 대한민국 정부 는 여객선 침몰 사고에 대응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를 구성하여 가동에 들어갔다. 또한 해양경찰특공대, 해군 SSU, 해군 UDT, 육군 특전사의 잠수요원들이 수색, 구조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조류가 거세 작업이 어려웠으므로, 정조 시간대에 맞춰 오후 6시 30분부터 잠수부 4명을 투입. 1차 수색 작업을 시작했다. 20시가 되면서 실종자 수색 작업이 중지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조 시간대인 17일 1시 즈음부터 조명탄을 쏘아 수색을 재개했다.
  • 사고 발생 2일(4월 17일)
오전 10시 45분까지 집계된 총 사망자는 9명이었다. 오후에는 민간 잠수부가 실종자들을 수색하다가 파도와 바람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가 20분 만에 낚싯배에 발견되어 구조되는 등 조류의 영향이 매우 심했다. 오후 8시 30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0명). 10분 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굵어진 빗방울과 조류 때문에 중단했던 수중 수색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때 선내진입을 위해 무인 로봇을 동원됐다. 오후 11시 29분까지, 시신 8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8명).
  • 사고 발생 3일(4월 18일)
오전 1시까지 시신 6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24명) 또한 이 시간부터 세월호를 인양할, 크레인 3대가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체인양 작업을 시작할 시, 선체가 흔들려 에어포켓에 해수가 밀려들 위험성이 있다. 또한, 선체인양 작업의 의미는 사실상 구조작업의 포기에 가깝다. 따라서 선체인양 시작 시기에 대해서는 이 시간기준으로 정해진 바가 없었다. 오전 1시 14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25명). 오전 8시 경, 썰물로 완전히 잠기지 않고 남아있던 뱃머리 부분의 높이가 1m로 줄었다. 17일에는 2~3m 높이, 20~30m 정도의 길이였다. 이때부터 수면 위에 남아있던 선체 일부가 점점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56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26명). 이 시신은 사고 선박 450m 인근 해역에서 발견되어, 시신이 멀리 떠내려갈 우려가 대두되었다. 오후 12시 50분에는 시신 2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28명). 오후 3시 38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구조대 잠수요원들이 선내 2층 화물칸의 문을 여는데 성공했고 객실 진입은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곧 잠수요원들은 화물 때문에 진입로를 개척할 수 없었다. 오후 3시 56분, 가이드라인마저 끊어져 수색을 더 전개할 수 없어서 잠수요원들은 일단 철수하였다. 이후 잠수요원들은 다시 3층 입구에 도착해, 진입을 재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입할 수 없었다. 오후 11시 45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29명).
  • 사고 발생 4일(4월 19일)
오전 5시 50분경에 잠수 요원들이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확보하는 도중 4층 객실 유리창으로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시신 3구를 발견했다. 그들은 유리창을 파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오후 11시 48분까지, 시신 4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33명).
  • 사고 발생 5일(4월 20일)
오후 5시 까지 시신 25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58명).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경기도 안산시와 전남 진도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 사고 발생 6일(4월 21일)
오전 7시 20분까지 시신 5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64명). 다이빙벨에 대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낙관론)와 황대식 해양구조협회 본부장(비관론)이 대립한 가운데. 오후 12시 40분경,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바지선에 다이빙벨을 싣고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침몰 현장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다이빙벨 사용은 곧 불허되었다. 정부는 "다이빙벨은 시야확보가 매우 제한적"이라면서 "격실구조가 복잡한 선체내부 수색의 경우 공기공급 호스가 꺾여 공기 공급이 중단될 가능성과 오랫동안 수중체류로 인한 잠수병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95] 오후 9시 15분까지, 시신 13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87명).
 
사고 발생 7일(4월 22일)
오후 7시까지 시신 26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13명). 또한, 22일부터 사흘 간 조류가 가장 느린 소조기였다. 이 잠수요원들은 24시간 집중수색에 돌입했다. 잠수요원들은 식당과 노래방 등 편의시설이 있는 3층과 객실이 몰려 있는 4층 수색에 집중했다. 특히 승객이 많이 모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식당 칸 진입이 그들의 목표였다. 잠수요원은 21일에 오전 식당 칸으로 가는 진입로를 이미 개척했기 때문에, 식당 출입문 개방에 주력했지만 식당 옆 라운지에서 사망자를 발견했을 뿐 진입이 여의치 않았다. 해경 측에서는 "라운지와 식당 칸 사이에는 격벽이 있는데, 그것을 부수는 게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격벽을 뚫더라도. 뒤엉켜 있는 부유물은 수색 시간을 더디게 하는 2차 장애요인이며, 일부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던 탑승자들의 유실 가능성도 컸다. 수색이 집중 되더라도, 조류가 다시 빨라지기 전인 24일까지 구조를 완료하는 것도 불투명했다. 설치된 가이드라인 5개로는 1회 수색 시 2인 1조로 잠수부 10명만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가이드라인 5개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하루 이틀의 시간이 또 필요했다. 이미 일부 시신의 훼손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신이 훼손되면, 얼굴만으로 신원을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오후 3시 40분, 우여곡절 끝에 식당 진입에 성공하였다. 오후 9시까지, 시신 8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21명).
  • 사고 발생 8일(4월 23일)
오전 10시 10분까지 시신 20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41명). 시신은 주로 4층 전체 격실에서 대거 발견되었다. 익일 진입하였던 3층 식당에는 한 명의 실종자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은 3~4층 다인실을 중심으로 수색작업이 이루어졌다. 예상과 달리 식당보다 다인실 등 객실에서 실종자들이 다수 발견된 것은 침몰 사고로 선체가 기우는 등 이상 징후가 보이자 학생들이 급히 객실로 이동했고, 이후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는 선내방송을 듣고 객실에 머물다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책본부는 현재 3~4층 객실의 창문을 깨고 객실 사이 격벽을 뚫어가며 수색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3층과 4층 객실 중 아직 들어가지 못한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수색하고 있다"며 "배가 우현 90도로 누워있는 상황에서 선체의 위쪽, 즉 우현의 3~4층 방들은 거의 탐색이 끝난 상태이며, 현재 중간에 위치한 방들을 탐색하기 위해 잠수사를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해상에서는 해경, 해군 함정외에도 저인망 어선들을 외곽에 배치해 실종자 유실 가능성에 대비하는 중이었다. 수색에 도움이 되는 다관절 해저로봇과 영상음파탐지기도 투입하기로 하였다. 오전 11시까지 시신 9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50명). 수색상황은 호전됐지만, 선내 깊숙한 곳의 수색은 장비의 한계로 딜레마에 빠졌다. 가이드라인 설치가 일정부분 충족됐지만, 선내 깊숙한 곳을 수색하 데는 장비와 잠수요원들의 물 속 작업시간 한계를 극복해야 했다. 산소통이 아닌 외부 공기 공급장치(에이컴프레셔)를 통해 몸에 연결된 공기호스로 물 속에서 호흡하는 머구리들은 입수 지점부터 수색대상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공기 공급장치 호스의 최대 도달거리는 100m이며 공기공급장치에서 선체까지가 55~70m이므로 선체 안에서는 약 30~40m 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또, 조류로 공기호스가 늘어질 경우엔 도달거리는 더욱 짧아질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공기통을 등에 메고 잠수하는 스쿠버 다이빙 방식은 짧은 작업시간이 한계였다. 이들의 작업 제한 시간은 약 20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오후 11시까지 시신 9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59명).
  • 사고 발생 9일(4월 24일)
오후 7시까지 시신 16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75명) 이날은 수색에 가장 적합한 소조기의 마지막 날로, 오후부터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하기에 수색 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해군은 24일 여명 이후 조명탄 900발을 동원한 합동구조팀이 조명탄 900여 발을 준비, 야간에도 구조 및 수색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 밝혔다. 사람들은 잔잔한 물살 때문에 혹시 성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생존자 소식은 여전히 없었다. 해군은 다관절 탐사 로봇인 크랩스터를 투입, 사고 후 최초로 선체 전체에 대한 초음파 영상을 촬영했다. 그러나 이 영상을 수색에 활용하려면 분석 등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 사고 발생 10일(4월 25일)
수색은 3층 앞쪽 객실과 4층 객실이 중심이었다. 4층 뒷부분 단체객실에는 사고 당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층 뒤쪽 객실은 탈출한 선원들이 사용하던 곳이어서 수색에서 제외됐다.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90도 기운 채 가라앉은 상태였고, 선박 왼쪽은 해저면에 닿아 있고 오른쪽이 수면을 향한 상태였다. 수색팀은 세월호 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세월호의 오른쪽 창문 등 주요 진입지점으로 연결된 가이드라인을 이용, 한 번에 잠수부 6~8명을 투입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익일에 이어 오전까지 3, 4층 우현 객실 수색을 모두 마치고 복도로 수색 범위를 넓혔다. 복도로 향한 우현 객실문을 열거나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 일부 중앙 객실 진입에도 성공해 수색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신 10구를 수습했다(사망 185명). 그러나 일부 중앙 객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선체가 기울어져 발 아래쪽에 있는 중앙 객실문을 당겨서 열어야 했고, 캐비닛 등 이물질이 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부유물과 시계 역시 문제가 되었다. 사고 당시 배 왼편부터 물에 잠겨 좌현 객실에 시신이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 유속이 느린 소조기가 끝나 다시 매일 초속 0.1~0.2m씩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이를 극복할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였다.
  • 사고 발생 11일(4월 26일)
0시 50분경 3층 중앙식당에서 시신 2구를 추가로 발견해 수습했다(사망 187명). 기상 상황이 전날보다 좋지 않아 조류와 파고, 풍속이 전날보다 많이 강해졌고 밤부터는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새벽에 다이빙 벨을 투입하려고 했으나 설치하는데 실패했고, 끝내 팽목항으로 철수했다. 조류가 강해지는 중이라 다이빙벨을 사용하려면 4월 28일 이후에나 가능할 거 같다고 한다. 또, 선내에 있는 물건들 때문에 수색 작업 자체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미국 해군 구조함인 세이프가드 함이 새벽이 도착해 구조 활동을 도울 예정이었으나 물품 수급 문제 때문에 중간기지에 들리게 되어 몇 시간 지난 뒤에 도착했다.
  • 사고 발생 12일(4월 27일)
14시경 선내에서 시신 1구를 수습하는데 그쳤다(사망 188명). 팽목항뿐 아니라 사고 해역도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다시 유속이 빨라지고 있으며, 조류, 시야를 다 뚫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객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잠수사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나오고 있는 대안이 먼저 용접을 통해서 벽면이나 문을 뜯어내고 들어가는 방법, 또 하나는 소량의 폭약을 사용해서 뚫고 들어가는 방법 두 가지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칫 폭약이나 용접 방법을 쓸 경우 가까이 붙어 있던 시신이나 혹시나 생존해 있던 사람이 다칠 위험이 있으므로 해군은 이런 방법은 가족들의 동의가 선결된 다음에 쓰겠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이다. 그 밖에 풍랑예비특보가 오전에 내려졌고, 오후에는 풍랑주의보로 격상되었는데, 이 해역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 사고 발생 13일(4월 28일)
14시 10분경 단원고 남학생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수습했다(사망 189명). 해경이 침몰당시 최초 구조상황 영상을 공개했으며, 기관직의 8명은 뒤쪽으로, 항해직 7명은 조타실로 탈출한 모습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중앙수사본부가 카카오톡의 압수수색을 통해 확인한 결과, 세월호에서 나온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는 10시 17분에 학생이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시간은 세월호가 90도로 기울어져 침몰하던 순간이었다.
  • 사고 발생 14일(4월 29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세월호 5층 로비와 4층 선수 좌현 방 등을 수색했고, 그 결과 오후 4시까지 사망자 16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05명). 박근혜 대통령은 이 날 8시 55분경 안산 화랑유원지를 방문해 조문하였다. 박 대통령은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추모의 뜻을 전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일반인의 조문이 시작되기 전에 일찍 분향소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번 사고에 대한 사과 없이 떠나자 일부 유족들은 분향소 한 가운데 큼지막하게 놓여있는 박 대통령 등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조화를 치울 것을 요구했다. 결국, 박 대통령, 강창희 국회의장, 정홍원 총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등의 조화는 모두 밖으로 치워졌다. 또한 방송에 공개된 분향소 방문 장면에서 박 대통령이 위로한 할머니가 유가족이 아닌 정부 측이 동원한 인물로 해당 장면이 연출되었음이 밝혀졌다.
  • 사고 발생 15일(4월 30일)
15시 44분경까지 7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12명). 사리 기간이지만 기상 상황은 좋은 편이라서 파도가 전날보다 약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편,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 벨은 정조시간인 새벽 2시 39분을 전후해 투입을 시도, 2시 55분께 버팀줄 선체 이음매 조이기에 성공했으나, 버팀줄에서 선내 진입구까지 단거리 유도선 설치에 실패했다. 높은 파고로 알파 바지선의 가로·세로 움직임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후 3시 45분에 다이빙벨을 선미 쪽에 투입했지만 투입 과정에서 잠수부 1명의 공기호스가 다이빙벨 운용 와이어에 씹혀 터지는 바람에 다이빙벨은 투입된지 28분만에 밖으로 건져졌다.
  • 사고 발생 16일(5월 1일)
전날과 마찬가지로 4층 뱃머리 좌측과 5층 로비를 집중 수색을 했고, 그 결과 희생자 9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사망자 221명). 물살의 흐름이 빠른 사리 기간이여서 구조 작업이 여의치 않고, 선체로 진입해도 여러 부유물로 가로막혀 문을 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구조팀은 일단 주요수색 대상 객실 64개 가운데 44개 객실에 대한 수색을 끝마친 상태이다. 그 날 새벽, 사고 해역에 다이빙벨을 투입한 뒤 잠수부 두 명이 세월호 선내에 진입해 각각 20여 분씩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실종자들을 찾지는 못했다. 선내 진입에 성공했지만 기존에 설치된 가이드라인들이 많아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이 대표는 오전 11시쯤 사고 해역에서 바지선과 다이빙벨을 철수시켰으며, 이 대표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 사고 발생 17일(5월 2일)
16시 15분경까지 7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28명). 당일 서울에선 지하철 추돌사고까지 겹쳤고, 생사를 알지 못하는 실종자 수는 74명이 남아 있었다. 실종자 가족들이 가이드라인이 6개인데 왜 4개팀씩 밖에 잠수를 못 하느냐고 묻자, 해경은 잠수 요원의 통신기가 고장 났다고 밝혀 가족들이 실망하기도 했다. 도면과 실제 배 구조가 달라서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며, 검경합동수사본부도 도면과 실제 구조가 다르다는 관련자의 진술도 확보하고 불법 구조 변경에 대해서 수사하고 있다. 또, 수색 기간이 길어지면서 잠수 요원들의 피로도 많이 쌓이는 상황인데, 대책으로 민간 잠수요원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 사고 발생 18일(5월 3일)
16시 50분경까지 8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36명). 조류가 센 사리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1차 수색이 끝나는 날이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새벽 정조 시간에 맞춰 잠수 수색을 위해 대기했지만 사리 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드센 조류에 잠수를 하지 못했으며, 12시 10분경에 2명의 희생자를 수습하면서 수색을 재개했다. 구조팀은 세월호 선체 111개 격실 중 실종자가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는 64개를 우선 수색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야간에는 구조팀 99명이 투입돼 4층 선수 중앙 격실을 계속 수색하는 한편, 1차 수색을 마친 3층 중앙부와 4층 선미 다인실을 재수색할 계획이다. 해상에서는 조명탄과 어선의 조명을 지원받아 함정 139척, 민간선박 759척이 그물망식 수색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책본부는 쌍끌이 어선, 닻자망, 낭장망, 안강망 등을 이용해 시실 유실 방지를 위한 3중 저지망을 설치한 상태다. 하지만 가방과 슬리퍼, 잠옷 등이 사고해역으로부터 최대 30㎞ 밖에서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시신 유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수색작업이 장기화되면서 시신 훼손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책본부는 시신 훼손 최소화를 위해 냉매제 500개를 긴급 확보했으며 희망 가족을 대상으로 시신 외모를 복원하는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
  • 사고 발생 19일(5월 4일)
18시 11분경까지 12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48명). 객실 수가 많은 4층 중앙 뱃머리쪽을 수색하면서 한 차례 수색을 마친 3층 중앙과 4층 뱃머리쪽을 다시 한 번 수색할 계획이라 밝혔지만, 오후 들어 바람이 세지고 파고가 높게 일면서 수색 작업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사고 발생 20일(5월 5일)
오후 7시 26분경까지 14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62명).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의 시신 유실에 대비해 쌍끌이 저인망 어선과 안강망을 추가로 투입하고 침몰지점 인근까지 그물을 설치했다. 구조팀은 총 111개 공간 중 64곳에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이 가운데 61곳의 수색을 완료한 구조팀은 로비, 계단, 매점, 오락실, 화장실 등 공용구역을 수색할 계획이다. 또 이미 수색한 공간 중에서도 다인실 등을 다시 수색하고, 15일까지 실종자를 모두 찾지 못하면 1·2층 화물칸도 살펴볼 계획이다.
  • 사고 발생 21일(5월 6일)
저녁 8시 47분경까지 6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68명). 유속이 느린 소조기를 맞아 곧바로 수색을 재개, 세월호 객실 64개를 모두 개방했다.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 중이던 이모씨(잠수사)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후 3주가 지나고 있지만 구조현장 최일선에서 탈진과 잠수병에 시달리는 민간잠수사들에 대한 지원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 사고 발생 22일(5월 7일)
9시 27분경 4층 선미 부분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수습하는데 그쳤다(사망자 269명). 정부는 세월호 탑승객 현황을 또 다시 정정했다. 구조자수를 174명에서 172명으로 조정한 것인데, 이 시점에서 사망자는 269명, 실종자는 35명으로 집계되었다. 물살이 느려지는 소조기 첫날로 정조 시간 외에도 수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며 10일까지 1차 수색을 마무리한 64개 격실 가운데 일부를 다시 수색하고 화장실, 매점 등 공용공간 47곳도 수색하기로 했으며 화물칸으로 수색 범위를 넓히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유실방지 전담반(TF)은 진도군 내 양식장 2천172㏊를 대상으로 어민들에게 자율수색을 요청했다. 한편, 인명피해가 전 날에 이어 또 다시 발생했는데, 침몰 해역에서 대기 중인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에서 해양경찰청 인천 항공대 소속 정모 경사가 쓰러져 의식 불명에 빠졌다.
  • 사고 발생 23일(5월 8일)
21시 27분경까지 4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73명). 전 날 수색작업에 투입됐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인천해경 항공대 소속 정모 경사가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오전 7시 20분께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다.
  • 사고 발생 24일(5월 9일)
오후 9시 42분쯤 4층 선수 좌현 격실에서 남학생으로 보이는 시신 1구를 추가로 수습하는데 그쳤다(사망자 274명). 1노트 가량 유속이 지속된 데다 세월호 일부 공간에는 내부 구조물까지 무너져 수색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석면 위에 목재, 섬유 소재, 합판 등을 덧댄 객실 벽과 천장 중 물에 불고 진입과정에서 문을 여닫는 충격을 받은 부분이 붕괴 위험이 있다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전했다. 특히 진입로가 막혀 화장실 등을 통해 우회 통로 개척에 힘쓰고 있는 4층 선수 중앙 좌현 쪽 객실의 붕괴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고 발생 25일(5월 10일)
오전 0시 53분경 시신 1구를 추가로 수습하는데 그쳤다(사망자 275명). 바지선 위로 물결이 넘어올 정도로 파도와 바람이 강해 재입수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이날 오전 4시에 사고 해역에, 오는 11일 오전 기준 풍랑 특보 발령을 위한 예비특보가 내려짐에 따라 현재 수색 작업이 잠정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세월호 선체의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붕괴 위험이 확인된 곳은 5층 선수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 4층 선수 좌현 8인실 통로와 선미 30인실 통로 등 4곳이다.
  • 사고 발생 26일(5월 11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전날 오전 3시 49분께부터 빠른 유속과 높은 파도로 수색작업을 잠정 중단한 데 이어 이날도 기상악화로 잠수사들의 수중 수색은 물론 항공 수색과 해상 방제작업도 잠정 중단됐다. 수중 수색이 중단되자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붕괴 위험이 있는 객실에 대한 진입 방안과 안전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달라'고 호소했다. 대책본부는 기상이 좋아지는 대로 수색활동을 재개할 방침이며 칸막이 약화로 붕괴 위험이 있는 4층 선미 좌측은 4층 중앙부 진입로를 통해 벽을 뚫고 진입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사고해역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한편, 수사본부는 승무원 15명을 모두 일괄 기소하였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혹시 모를 시신 유실에 대비해 투하한 표류(漂流)부이(buoy)가 추자도 동측 35km 지점에서 확인됐다.
  • 사고 발생 27일(5월 12일)
이날 오전 10시 범정부대책사고본부는 "10일 오전부터 중단됐던 수중 수색 작업을 이날 정오께 재개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상악화로 언딘리베로호가 정위치에서 약 50m가량 밀려났으며 이를 제자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앵커 체인에 연결된 와이어가 끊어진 것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5시까지 와이어 연결 작업을 하는 바람에 수색이 재개되지 못했다. 이춘재 해경 경비안전국장은 이날 오후 5시 30분 진도군청에서 열린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언딘리베로-미래호 바지선 두 척 모두 정위치에 있다"며 "(정조시간인) 오후 6시 48분을 전후해 잠수사를 투입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 사고 발생 28일(5월 13일)
합동구조팀은 기상 악화와 선내 일부 구역의 칸막이 약화 현상때문에 지난 10일 새벽부터 수중 수색을 중단했다가 3일만인 이날 오전 0시 50분께 수색을 재개했으며, 잠수사 16명을 투입해 2시간여 동안 유도줄을 점검하고 3층 선미 통로, 4층 선수 좌측 통로, 4층 선미 다인실, 5층 중앙 통로 등을 수색한 뒤 낮 정조시간에 다시 잠수사들을 투입했다. 그 결과 사흘만에 시신 1구를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76명).
  • 사고 발생 29일(5월 14일)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7시 40분을 전후한 정조 시간대에는 거센 조류 때문에 수중 수색을 하지 못했으나 오후 1시 24분께부터 수색을 재개, 오후 2시 49분까지 1시간 30여분간 작업했으며, 이날 오후 1시 33분께 선체 선미 쪽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떠오른 시신 1구를 수습한 뒤 4층 선수 좌측 객실에서 2구, 4층 선미 중앙 다인실 1구, 4층 선미 좌측 다인실 통로 1구 등 총 5구를 수습했다(사망자 281명). 합동구조팀은 이날 수색에서 4층 선미 다인실로 들어가는 우측 통로 입구와 4층 선수 좌측 통로에서도 선체 약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추가로 파악했다. 이에 앞서 선체 칸막이 약화로 붕괴 위험이 지적된 5층 선수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 4층 선수 좌현 8인실 통로와 선미 다인실 통로 등 4곳을 합하면 위험 구역은 총 6곳으로 늘었다.
 
사고 발생 30일(5월 15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시신 3구를 추가 수습했다고 밝혔다(사망자 284명). 물살이 빨라지는 대조기의 첫날이다. 다행히 오전에는 구름은 조금 끼어있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있고 파도는 1m가 넘지 않아 비교적 잔잔하다. 바람과 파도는 수색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태인데, 유속이 오늘 수색에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승의 날인 이 날,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사망한 교사들의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카네이션과 편지 등을 영정 앞에 두고 조문해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또한 많은 수의 제자를 잃은 단원고등학교를 비롯한 인근 중, 고등학교 교사들의 사연이 기사를 통해 소개되어 슬픈 스승의 날이 되었다.
  • 사고 발생 31일(5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45분께 청와대에서 세월호 사고 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단과 면담한 자리에서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실 텐데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의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근본부터 다시 바로잡고 국가대개조라는 수준으로 생각하면서 사회에 기초부터 다시 세우는 것이 안타까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고 발생 32일(5월 1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3시 25분부터 4시 48분까지 1시간 20여 분 동안 잠수수색을 벌여 4시께 남성 시신 1구를 4층 선수 좌현 부분에서 수습했다(사망자 285명). 기존에 수색작업을 하던 일부 민간 잠수사의 철수에 따라 범정부대책본부가 새로 확보한 8명의 잠수사를 수색 현장에 투입했다.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는 이날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3만여명(경찰 추산 1만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촛불 집회를 열고 진상 규명과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한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민간잠수사들이 구조활동 중 잠수병으로 입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사고 발생 33일(5월 18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4시 53분께 3층 선원식당에서 여성으로 보이는 시신 1구를 인양했다고 밝혔다(사망자 286명).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새로 모집한 민간 잠수사 1명을 포함해 모두 13명의 잠수사를 투입해 선체 수색에 나섰다. 주로 남은 실종자의 잔류 가능성이 큰 3층 식당과 주방, 선수 다인실, 4층 중앙 좌측 통로 등을 중심으로 수색을 벌였다. 구조팀은 이날 정조시간이 지나면서 조류 흐름의 속도가 1.6노트 이상으로 강해짐에 따라 수색을 중단하고 상황을 살피고 있다.
  • 사고 발생 34일(5월 19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19일 오후 6시 1분쯤 3층 주방과 식당 사이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 희생자 1명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희생자는 청색 긴팔 후드에 카키색 추리닝 차림으로 알려졌으며, 가족 확인 결과 전 모 교사로 밝혀졌다(사망자 287명).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전날 오후 10시께 수색을 벌일 계획이었지만 조류 흐름이 빨라 수색을 벌이지 못하다 이날부터 중조기가 시작됨에 따라 잠수사 10여명을 투입해 수색을 벌이고 있다. 구조팀은 물살이 빠른 대조기가 전날 끝나면서 수색 작업이 상대적으로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선체 내부가 일부 붕괴되는 등 어려움도 예상되고 있다.
  • 사고 발생 35일(5월 20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이 중조기 이틀째로 조류 흐름 속도가 느려질 것으로 보여 수색 성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조류 속도가 2노트 이상으로 나타나 유속을 살펴 작업 재개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또 새로 투입한 바지선 고정을 위해 내려놓은 닻줄의 방향 조정과 재고정 등 조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와이어를 추가로 설치하는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민간잠수사를 포함한 민관군 합동구조팀 123명이 대기한 상태에서 주로 3층 식당 주방, 4층 선수 중앙, 중앙 좌측 통로, 5층 선수 우현 등을 확인 수색할 계획이다. 특히 대책본부는 선내 약화 현상과 붕괴 등으로 일부 진입이 어려운 곳을 수중 절단기를 이용해 부수고 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정부 입장에서는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의) 모든 재산을 압류하는 등 조치를 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고 발생 36일(5월 21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전날 두 차례의 수색에서 추가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이날 오전 6시 24분께부터 수색을 시작,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채 발견된 여성 시신 한 구를 수습했다(사망자 288명). 이날 수색에서는 민간 잠수사를 포함한 민관군 합동구조팀 123명이 대기한 상태에서 주로 3층 주방, 4층 선수부, 선미 중앙 다인실과 5층 선수부 위주로 확인 수색을 벌였다. 그러나 5층 선수에 있는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는 이달 초 일부 칸막이가 붕괴하기 시작한 이후 선체 약화가 심각해져 객실 진입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본부는 선내 장애물을 옆으로 치우면서 진입할 계획이며 선체 외판 일부를 절단해 수상 크레인 등 장비로 장애물을 치우고 진입하는 방식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보고 나서 최후에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책본부는 지난 19일 손상된 언딘 바지선의 이음줄 수리를 마치고 수중 수색활동에 투입한 데 이어 20일에는 민간 바지선의 닻 끌림 현상 방지를 위해 닻과 바지선을 연결하는 이음줄을 더 긴 것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한편, 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0분께 전남 진도 사고 해역에서 수색 작업 중이던 이모 경장이 허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 사고 발생 37일(5월 22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조류가 느려지는 소조기를 하루 앞두고 그동안 선체 약화 현상이 심해 진입이 어려웠던 부분을 집중 수색할 계획이다. 이날 오전 1시 36분 첫 정조시간에 조류가 2노트 이상으로 빨라 수색작업을 벌이지 못했지만 3차례의 정조시간에 맞춰 수색을 계속할 계획이다. 또 23일부터 조류 흐름이 가장 느려지는 소조기가 시작됨에 따라 구조팀은 이날부터 수색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선체 약화 현상이 심한 4층 선미 다인실과 5층 선수 객실에서는 많은 장애물과 붕괴 우려 때문에 잠수사의 안전을 고려해 장애물을 치우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잠수사들이 이들 객실의 수색을 어렵다고 판단하면 최후에는 수중 절단기로 잘라 크레인을 이용해 들어내는 방안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사고 발생 38일(5월 23일)
유속이 느려지는 소조기 첫날이었지만 기대만큼 유속이 떨어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오후 정조 시간대에도 수색은 이뤄지지 못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남은 실종자가 선체 3~5층에 나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붕괴가 확인된 곳이 포함돼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진입 대책이 검토만 될 뿐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않으면서 실종자 가족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일단, 범대본이 검토하고 있는 선체 절단과 크레인 동원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적지 않은 실종자 가족이 선체 절단 방식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안산의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회 10여 명이 아침 6시 버스를 타고 진도로 향했다.
  • 사고 발생 39일(5월 24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130여 명의 잠수사를 동원해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지난 21일 4층 중앙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의 시신을 수습한 이후 사흘째 수색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이는 선체 약화 현상과 벽면 붕괴 등으로 잠수사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등 수색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4시 22분 첫 정조시간에 조류 속도가 2노트 이상으로 강해 수색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남은 3차례의 정조시간에 맞춰 실종자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중앙과 4층 중앙 선미에 대해 집중적인 수색에 나선다. 한편, 침몰해역에서 활동해온 민간잠수사 작업바지선(DS-1)이 기상 악화로 오후 4시 40분께 인근 서거차도로 이동했다. 또, 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1∼4시 현장 바지선 위에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대표, 민간 자문위원과 민관군 합동구조팀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수색구조 상황 개선방안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실종자 수색·구조 작업이 장기화하면서 세월호 내부로 어류가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 내부로 어류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섬광등을 설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고 발생 40일(5월 25일)
세월호 사고 수습을 위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 가족 측 변호인의 회의 참석을 허용하기로 했다.
  • 사고 발생 41일(5월 26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전남 진도군청 2층 회의실에서 정례 브리핑을 갖고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자 오전 5시30분께 피항했던 함정에 복귀명령을 내렸으며 현재 모든 함정이 복귀해 해상수색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오전 팽목항으로 철수했던 민간 잠수사들도 사고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군경 잠수사들과 함께 이날 오후 정조 시간에 맞춰 수중 수색을 재개한다. 서거차도로 피항했던 민간바지선(DS-1)도 현장 복귀 후 바지고정 작업 등의 준비를 거쳐 수색을 재개한다. 다만, 민간바지선의 경우 고정 작업이 완료되기까지 12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11시 40분부터 낮 12시 52분까지 수중수색을 했으나 소득 없이 종료했다. 또 다음 정조시간인 오후 6시 14분께는 유속이 2노트, 시속 3.5km가 넘어 수색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합동구조팀은 승객 예약 현황 등을 토대로 남은 실종자들이 3층에 6명, 4층에 9명, 5층에 1명 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4, 5층의 경우 선내 약화로 칸막이 붕괴가 진행 중인 곳이 많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진도군청에서 '수색구조지원 장비기술 연구 전담반'(TF)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선체 절단 방식과 잠수사들의 수색을 중단하지 않고 절단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대책본부는 폭약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며 수중 절단·용접기로 4층 선미쪽 일부를 절단하면서 선수쪽에는 잠수사들이 수색 작업을 병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안전 대책 등을 보완해 오는 27일 오후 실종자 가족들에게 최종안을 제시, 협의하기로 했다.
  • 사고 발생 42일(5월 2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전날 오전 풍랑특보 해제 후 한 차례 수중 수색을 한 이후 이날 0시 53분부터 오전 2시 12분까지 수색을 했으나 추가로 실종자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날 새벽에는 3층 선수 좌현·중앙 주방·선미 우현 객실, 4층 선미 우현, 5층 선수 우현을 수색했다. 합동구조팀은 이날 4층 선수 좌현과 5층 선수 우현을 중심으로 수색을 이어갈 방침이다. 한편,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선내 붕괴와 대형 장애물로 잠수사들의 수색이 불가능한 4층 선미 쪽의 선체 외판 일부를 절단해 크레인으로 장애물을 빼내는 작업에 대한 기술적 논의를 하고 이날 오후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체적인 최종안을 제시, 협의할 예정이다. 절단은 4층 선미 우현부터 우선 추진하며, 절단 방법은 1차적으로 산소 아크 절단법을 사용하고 2차 대안으로 초고온 절단봉이 제시됐다.
  • 사고 발생 43일(5월 28일)
선내 붕괴와 대형 장애물로 인해 잠수 수색이 불가능한 4층 선미 우현쪽 창문 일부를 절단하고 장애물을 수거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날 오전 5시 30분 현재 유속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고 해역의 유속이 빠른 데다 강풍이 불고 있어 차질이 우려된다. 합동구조팀은 이날 정조 시간인 오전 7시 42분, 오후 1시 41분, 오후 7시 19분 전후로 3층 주방, 4층 선수 좌현 객실, 4층 선미 좌현 객실, 5층 선수 우현을 수색할 계획이나 강풍과 거센 조류로 인해 지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민간 바지선 DS-1과 교체 투입하기로 한 88수중개발 바지의 현장 투입도 불투명해졌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여야에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즉각적으로 가동해 철저한 진상 규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 사고 발생 44일(5월 29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2시 19분부터 3시 27분까지 1시간여 동안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실종자를 수습하지는 못했다. 선체 절단 작업에 투입될 새 바지(barge 화물운반선)는 예정보다 뒤늦게 사고해역에 도착했다. 여야는 이날 밤 국회 본회의를 열어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를 재석의원 226명 가운데 찬성 224명, 기권 2명으로 통과시켰다.
  • 사고 발생 45일(5월 30일)
선체 외관 일부 절단에 투입된 바지선은 4층 선미 창문 아래 위치에서 가로 4.8m 절개를 완료했으며 절개 구역 양 끝단 세로 방향 두 곳과 창문간 외판 두 곳도 추가로 절단할 계획이다. 미국 ROV는 오후에 현장에 투입되고 소나 장비는 현장상황을 감안해 활용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124명이 3층 식당 주방과 선미 중앙 격실, 4층 선수격실과 중앙계단 및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격실을 수색할 계획이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5분께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해역 수중에서 선체 외판 절개작업을 하던 이모씨가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한편, 사고 수습을 위해 일반에 폐쇄됐던 팽목항이 45일만에 섬주민에게 개방됐다.
  • 사고 발생 46일(5월 31일)
서울을 비롯한 안산과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 사고 발생 47일(6월 1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1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오는 2일부터 4일까지 기상 악화가 예상돼 현장 바지 2척 모두 피항 중"이라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이날 오후부터 3∼4일간 수색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기상 여건에 따라 중·소형 선박은 물론 대형 함정 피항도 검토할 방침이라 밝혔으며, 4층 선미 절단 지점을 확인한 결과 현재 창문 세 칸 크기의 작업 면적 중 창문과 창문 사이를 잇는 창틀 2곳 90cm 가량만 더 절단하면 되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실 방지를 위해 이날 오전 3시 50분께 자석이 부착된 그물망으로 절단 부위를 씌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대책본부는 기상 여건이 나아지는 대로 기존의 산소 아크 절단법이 아닌 유압 그라인더나 쇠톱을 이용한 방법으로 절단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 사고 발생 48일(6월 2일)
침몰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가동을 시작했다. 첫 일정으로 예정됐던 진도 팽목항 방문이 여, 야, 가족대책위 간 소통 혼선으로 어긋나면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심재철 세월호 국조특위 위원장은 2일 진도행 일정 번복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 정론관을 찾아 "어제(1일) 오후 5시경만 해도 가족대책위 쪽에서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오늘(2일) 새벽 12시 30분경 최종적으로 다음에 내려오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관련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진도 방문을 위해 용산역에 모인 오전 8시 이후에야 관련 사실을 전해 들은 야당 측 위원들은 이에 반발한 뒤 자체적으로 진도 방문길에 오른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야당 측 특위 위원들은 어제 오후 9시부터 비공식 회의를 열고 국조특위에 임하는 각오와 자세에 대해 논의하고 오늘 진도일정을 준비했다"며 여야 위원들의 공동 진도 방문이 무산된 사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사고 발생 49일(6월 3일)
  • 인천지방검찰청 특별수사팀은 "최근 익명의 인사가 우리나라 주재 모 대사관에 유병언 전 회장의 정치적 망명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해당 대사관에서 단순 형사범이라는 이유로 망명 신청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해당 국가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복수의 국가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침몰사고가 일어난지 49일째를 맞아 각지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49재가 열렸지만 진도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이런 추모 분위기 때문에 아직 남은 16명의 실종자들이 잊혀질까 걱정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 때문에 진도항(팽목항)에서 49재가 열리는 것에 반대했는데 당초 예상과 달리 진행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직접 장소를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 사고 발생 50일(6월 4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 참사 50일째인 4일 오전 진도군청 정례 브리핑에서 "민관군 합동 구조팀 123명은 3층 선수격실과 식당주방, 4층 선수 격실과 선미 다인실, 5층 중앙부를 수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조팀은 이날 4층 선미 다인실의 6번과 8번 창문 사이를 수중절단기를 활용해 절개작업을 마무리한다. 선수 중간 부분의 외판은 절개작업 없이 장애물을 선체 밖으로 치우고 수중 카메라 및 사이드 스캔 소나(Side Scan Sonar)를 활용해 격실별 수색 상태를 확인한다. 지난 주 사고해역에 도착한 미국 원격수중탐색장비(ROV·Remotely Operated Vehicle)는 현장에서 투입장소를 결정해 잠수사 수색작업 시간과 겹치지 않게 투입할 예정이다. 5월 30일 발생했던 인명피해의 대책으로 기존의 산소 아크 절단방식 사용은 중단하고 유압 그라인더로 절단작업을 하기로 했다. 대책본부는 창문 세 칸 크기의 작업 면적 중 창문과 창문 사이를 잇는 창틀 2곳 90cm 가량의 추가 절단을 남겨두고 있으며 이 부분에 자석이 부착된 대형 그물망을 씌워 시신 유실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사고 발생 51일(6월 5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40분께 세월호 침몰 지점 북서쪽 40.7km가량 떨어진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매물도 인근 해상에서 발견된 남성 시신은 일반인 탑승객 조모(44)씨인 것으로 확인됐다(사망자 289명). 실종자 추가 발견은 지난달 21일 오전 4층 중앙 통로에서 단원고 여학생의 시신을 수습한 뒤 보름 만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오늘 4층 선미 창문의 절단 작업을 끝내고 장애물 수거를 시작할 것"이라며 "대형 장애물을 바지 위로 끌어올릴 때에는 크레인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업체의 원격수중탐색장비(ROV·Remotely-Operated Vehicle)는 강한 유속에서도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목포 연안에서 시험 가동을 했으며 조만간 로비나 다인실 등 넓은 공간에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대책본부는 이날 민관군 합동 구조팀 123명을 투입시켜 3층 선수 객실과 중앙부, 4층 선수 객실과 선미 다인실을 수색할 계획이다. 한편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이날 오후 진도 팽목항을 방문하였다. 또 다른 한편,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희생자들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성적으로 모욕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정모씨를 구속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 사고 발생 52일(6월 6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오전 8시 3분께 3층 선미 좌측 선원 침실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남성의 시신을 수습했다(사망자 290명). 합동구조팀은 오전 6시 33분부터 9시 5분까지 수중 수색과 4층 선미 창문 절단 작업을 병행했으며, 마무리 단계인 창문 절단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사고 발생 53일(6월 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선체 작업작업을 완료해 4층 선미 다인실 장애물 제거 및 3층 선수 격실과 식당 주방, 4층 선수 격실과 로비 수색에 나선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이날 "구조팀은 6일 밤 10시께 세월호 4층 선미 외판절단을 완료해 7일부터 장애물 수거 및 희생자 수색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며, 선체 외판은 크레인을 이용해 바지선으로 수거했으며, 절단 부위에는 희생자 유실 방지를 위한 자석부착 그물망(가로 5.2m, 세로 1.9m)이 설치됐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전국 곳곳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 사고 발생 54일(6월 8일)
오후 11시 30분경까지 2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92명). 대책본부는 이달 말까지 실종자 전원을 수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일까지 잠수사와 장비를 총동원해 수색에 나서기로 했다.
  • 사고 발생 55일(6월 9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진도군청에서 정례브리핑을 갖고 "민관군 합동구조팀 127명은 3층 식당, 4층 선수 좌측 격실과 중앙 좌측 격실, 5층 선수 우측 격실을 수색하고, 4층 선미 다인실 장애물 제거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구조팀은 현재까지 수색대상 111개 격실 가운데 3·4층 일부 41개 격실에 대한 재수색을 완료했다. 41개 격실에는 3층 선수 다인실, 3층 로비, 3층 중앙부, 3층 선미 선원 침실, 4층 선수 다인실, 4층 선수 일부 격실, 4층 중앙부 일부 격실 등이 포함된다. 보름여 동안 실종자 수습을 하지 못하다가 지난 5일 사고현장에서 40㎞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발견된 이후 수색작업을 바꾸면서 선내 추가 수습이 이뤄지고 있다. 고명석 대책본부 대변인은 "격실 내에 있던 이불과 매트리스를 빼내면서 장애물 사이에 있던 희생자들이 발견되고 있다"며 "당분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수색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5일 실종자가 발견된 매물도 해역까지 조류흐름을 따라 수중 수색을 실시하고 연안어선 20척을 추가로 동원해 매물도 주변 해역을 집중 수색한다. 해양조사선 2척도 투입해 매물도 해역까지 해저영상 탐사를 추가로 실시한다. 6·4 지방선거 이후 공동선언문까지 내며 속도를 낼 듯했던 국회 ‘세월호 침몰 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이번엔 기관 보고 일정을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특위의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이날 국정조사 대상 기관 보고 등 일정을 논의했으나, 10여분 만에 회동이 결렬됐다. 월드컵이 끝난 다음달 중순부터 기관 보고를 받자는 새정치연합과 7·30 재보선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이전인 6월 안에 기관 보고를 마치자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부딪쳤기 때문이다.
  • 사고 발생 56일(6월 10일)
광주지법 형사 11부는 오후 2시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선장 등 4명,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또는 유기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11명 등 피고인 15명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다. 재판에서는 피해자 대표 의견·검사의 기소 취지·피고인별 변호인들의 공소사실 인정 여부에 대한 진술, 검찰의 증거신청이 이어졌다. 피고인들은 대체로 구호조치가 미흡했고 먼저 구조된 데 대한 비난은 감수하겠다면서도 자신들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퇴선 당시 배가 상당히 기울어 더는 구호조치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살인이나 도주 의사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당분간 매주 화요일 재판을 열기로 했다.
  • 사고 발생 57일(6월 11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진도군청에서 정례브리핑을 갖고 "합동구조팀 126명은 3층 식당, 4층 선수 좌측 격실과 중앙 좌측 격실, 5층 선수 우측 격실을 수색하고, 4층 선미 다인실 장애물 제거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일부터 진행중인 수중 수색 1단계는 현재 격실별 장애물 제거 및 정밀 수색과 함께 수중카메라 촬영이 진행 중이다.
  • 사고 발생 58일(6월 12일)
구조팀은 16차례 32명의 잠수사를 투입해 3층 식당과 선미 우측, 4층 선수 좌측과 선미 중앙, 5층 로비와 선수 우측 격실을 정밀 수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고해역 현장에서는 '언딘'과 '88' 두 민간 업체의 잠수사와 해경·해군 소속 잠수대원들이 수색작업에 나서고 있으며, 일부 실종자 가족이 민간잠수사의 작업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장비 착용도 문제가 되면서 일부 잠수사의 수색이 한때 이뤄지지 않았다. 또 원격수중탐색장비인 ROV(Remotely-Operated Vehicle) 투입 여부와 시기를 놓고도 유족, 해수부, 장비 업체간 이견으로 불협화음이 나오기도 했다.
  • 사고 발생 59일(6월 13일)
구조팀은 이날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선미 우측과 4층 선수 좌측 격실, 5층 선수 우측과 중앙 좌측 격실을 수색하고 4층 선미 장애물도 함께 제거한다. 실종자 가족이 요구한 실시간 수중촬영은 좁은 격실에서는 촬영이 어려우므로 4층 선미, 다인실, 로비 등 넓은 구역에 한해 시행하기로 했다. 세월호 침몰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대한민국과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 유족이 제기한 첫 국가 상대 손배소송이다. 하지만 이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 후 수년 동안 가족과 연락없이 지내다가 돌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을 돕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법률지원 및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측은 "아직 실종자 12명을 구조하지 못했고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부의 책임이 인정된 상황에서 섣부른 소송 제기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고 강조했다.
  • 사고 발생 60일(6월 14일)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에게 "관내 학교의 부정부패를 감시할 수 있는 기구나 체제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 당선인은 "가족대책위의 뜻을 잘 알겠다"며 "이 자리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 검토를 거친 뒤 결과를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가족대책위는 간담회에 참석한 단원고 교장에게는 학교 정상화 과정에서 가족대책위의 뜻을 충분히 반영해 줄 것과 희생 학생들을 애도하기 위해 학교 정문에 놓인 조화와 사진 등에 대한 관리를 요구했다.
  • 사고 발생 61일(6월 15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4층 선수 좌측, 중앙 우측, 선미 중앙 및 5층 선수 우측, 중앙 좌측 격실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정밀 수색을 했으나 추가 실종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합동구조팀은 4층 선미 다인실의 천장 패널 10개를 처음으로 크레인을 이용해 바지선 위로 인양했다.
  • 사고 발생 62일(6월 16일)
실종자 12명의 가족 20여명은 이날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읍 진도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가 2달이 지나고 있지만 현재 12명의 실종자가 남아있다"며 국회 국정조사 기관보고를 6월 이후로 연기해 줄 것을 요구했다.
  • 사고 발생 63일(6월 1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조류가 약해진 중조기를 맞아 어제(16일) 오후 3시 40분과 이날 오전 4시 50분께 수색을 했지만 남은 실종자(12명)를 찾아내지 못했다. 합동구조팀은 4층 선수 좌측과 중앙 우측 및 선미 중앙, 5층 로비 계단과 선수 우측 및 중앙 좌측 격실의 장애물 제거와 수색을 병행할 계획이다.
 
광주지법 형사 11부(임정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승무원 15명에 대한 두 번째 재판에서 변호인은 승무원들이 과적과 고박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업무상 과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승무원들이 권한이 없어 배 침몰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 '업무상 과실'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사고 이후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은 점(살인죄)만을 따져야 하고 배 침몰은 승무원이 아닌 선사\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승무원들은 승객에 대한 구호 조치는 해경의 의무라며 살인죄 적용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선사 측은 침몰의 원인을 제공한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관리 책임이 승무원들에게도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여 책임 공방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해경은 낮 12시 40분께 사고해역 인근에서 수색지원 중이던 해경대원 진모씨가 3000톤급 해경 3011함에서 1512함 소속 단정으로 이동 중, 사다리에서 떨어지며 단정 의자에 옆구리를 부딪혔다고 밝혔다. 진씨는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갈비뼈 3개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다.
경기도안산시는 지난달 27일 세월호 참사 관련 지원 정책으로 201억원을 들여 단원고를 외고로 바꿔 육성하는 등 총 901억원 규모의 7개 국비지원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정부에 특별교부세를 신청했다. 단원고등학교를 외고로 전환하는 이유로는 ‘사고 이미지로 학생 지원 급감이 예상되고 고교 평준화 등에 의해 임의 배정되더라도 전학 등의 반발이 예상되며 현재와 같이 일반교로 운영 시 학생들의 자긍심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또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도 대학입시에서 성적 부진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이에 따라 단원고를 새로 개교하는 수준으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공립 외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사고와 외고 등 특목고 교육정책은 학벌주의와 교육 불평등을 조장하는 폐해가 지적되어온 만큼 세월호 참사에 따른 적절한 대책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 사고 발생 64일(6월 18일)
경기도교육청은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물어 단원고 김모 교장을 17일자로 직위해제했다고 밝혔다. 단원고 교장의 직위해제에 이어 윤모 행정실장은 다른 학교로 전보 조치됐다. 도교육청은 단원고 교장을 직위해제한 이유에 대해 "사고가 나기까지 수학여행 진행 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고, 이어 "직위해제는 교장으로서의 권한 행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공무원 신분은 유지하되 직을 박탈하는 것이다. 감사나 조사결과에 따른 징계와는 다르다"고 부연했다. 도교육청은 이들에 대한 징계 여부를 추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인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국조 기관보고를 오는 23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는 30일부터 기관보고를 받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방침과 어긋난 것으로, 야당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단독으로 국조 기관보고 청취를 강행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특위 새정치연합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야당과 전혀 합의한 바 없는 내용"이라며 "이는 만행이고 폭거"라고 반발했다.
  • 사고 발생 65일(6월 19일)
빠른 물살 때문에 수색 작업이 두 번 밖에 이뤄지지 못했으며, 그나마 추가로 실종자를 수습하진 못하고 수색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부유물을 치우는데 그쳤다. 4층 선미 부분에서 물품 보관대 같은 큰 장애물을 세월호 밖으로 치우고, 5층 선수에선 이불과 옷가지 등 작은 부유물을 정리했다. 11일째 희생자 발견 소식이 없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가족들은 수색 결과에 대한 중간 설명회를 개최하자고 당국에 요청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먼저 세월호에 떠다니는 장애물을 치우고 수색 작업을 진행한 뒤 이후 가족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수중 카메라로 격실을 촬영했었다. 하지만 최근 수색이 계속 차질을 빚으면서 당분간은 수색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수중 촬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일단 모레(21일)부터 찾아오는 소조기 동안 실종자 수색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촬영된 영상에 대해선 수색에 참여한 잠수사와 관련 전문가,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검증팀을 구성해 제대로 수색이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굵은 비와 태풍에 대비해 진도항(팽목항)과 체육관에 설치된 천막 등을 다시 포박하고 배수 시설을 확인하는 등의 활동으로 분주했다.
  • 사고 발생 66일(6월 20일)
세월호 국조특위 여당 간사인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과 야당 간사인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1시간 가량 회동을 갖고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기관보고를 받기로 합의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4월 20일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에 항의하기 위해 진도에서 청와대로 향하던 중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채증한 행위, 피해 가족들에 대한 사복 정보경찰의 염탐과 사찰, 노란 리본을 단 시민 등의 자발적인 추모 행동에 대한 단속 등을 조사해달라고 경찰청 인권위에 의뢰했다. 경찰청 인권위는 지난달 22일 첫 회의를 열었지만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다음달 회의에서 조사를 해보자”고 미뤘다. 당시 회의에는 13명의 위원 중 절반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열린 두 번째 회의도 결론 없이 끝났다. 회의는 경찰청 관계자들의 해명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수준에서 갈음됐다. 경찰은 모든 의혹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위원들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했지만 대부분 경찰의 해명만 듣고 회의를 끝냈다. 이 때문에 경찰을 견제해야 할 경찰청 인권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사고 발생 67일(6월 21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지난 20일 오전 7시 8분부터 오전 9시 9분까지 3층 선미 객실과 중앙부 선원 식당, 4층 선수 객실·중앙·선미 다인실, 5층 선수 선원실 등의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정밀 수색을 했으나 실종자를 찾지는 못했다. 4층 선수 객실에서 여행용 캐리어와 배낭 등을 수거했으며 5층 선수의 일부 장애물을 제거했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지난 5일부터 20일까지 객실별로 정밀수색을 마친 후 25일까지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 수색을 펼치는 계획을 시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조기에 작업 시간이 줄어들었고, 각 객실 내 장애물을 제거하고 촬영까지 하면서 작업에 속도를 내기 어려워 1단계 정밀 수색 기간이 끝났음에도 13일째 추가 실종자 수습은 없는 상황이다. 합동구조팀은 추가 수색 기간 첫날인 이날 3층 로비와 4층 선수 좌측·중앙부 우측 및 선미, 5층 선수 좌현 객실에 대한 장애물 제거와 수색을 병행할 예정이다.
  • 사고 발생 68일(6월 22일)
민관군합동구조팀은 21일 저녁과 22일 새벽, 오전 등 3차례에 걸쳐 수중수색을 진행했으나 추가로 희생자를 수습하지는 못했다. 구조팀은 총 24회 48명의 잠수사를 투입, 3층 로비, 4층 중앙 격실·선미 다인실, 5층 선수 선원실 등을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정밀 수색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이슈리포트 '해외의 재난 후 진상규명위원회의 사례' 에서 독립된 세월호 진상조사 기구를 만들어 충분한 조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미국 9·11 국가위원회와 카트리나 초당파적 하원위원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진상조사위원회, 호주 빅토리아 산불위원회 사례를 분석했다. 재난 진상 규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점으로 ▲ 피해자와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독립적 위원회의 신속한 설치 ▲ 성역없는 조사 권한 보장 ▲ 조사과정의 투명성 확보 ▲ 충분한 조사기간과 예산 ▲ 공익제보자 보호 등을 꼽았다.
  • 사고 발생 69일(6월 23일)
세월호 선체 안에서 선원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와 노트북컴퓨터 1대가 발견되었는데, 세월호 내부 영상을 담고 있다면 침몰 전후 상황을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발견된 장치는 당초 합동수사본부가 있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옮긴 뒤 과학수사 기법인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거쳐 데이터를 복구할 예정이었으나 실종자 가족 측의 반발로 중단됐다. 실종자 가족 측은 DVR가 발견된 뒤 개봉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대한변호사협회 디지털 포렌식팀과 함께 DVR를 발견한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 2명과 해경 관계자 등을 24일 만나 발견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은 뒤 복구작업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발견된 DVR와 노트북은 일단 목포해양경찰서 인근 보관소에 봉인된 채 보관 조치됐다. 한편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은 23일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을 찾아 침몰 당시 헬기에서 찍은 화면 등을 포함한 구조작업 영상을 확인한 뒤 복사본을 확보했다.
  • 사고 발생 70일(6월 24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3분께 세월호 4층 중앙통로에서 여성 시신 1구가 발견됐다(사망자 293명).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시신을 수습, 신원확인을 위해 DNA를 분석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희생자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세월호 희생자가 수습된 것은 지난 8일 밤 11시 30분께 4층 선수에서 실종자를 발견한 이후 16일만이다. 남은 실종자는 11명이다. 합동구조팀은 이날 3층 로비, 선수 격실과 4층 중앙통로 및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격실에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추가로 실종자 수습에 나선다.
  • 사고 발생 71일(6월 25일)
민관군 합동구조팀 121명은 3층 선수 격실과 편의점, 4층 중앙 격실 및 선미 다인실, 5층 선수를 수색한다. 3층 선수 격실에서는 여행용 캐리어와 가방 등을 인양했으며 4층 선미 다인실에서는 판넬 등 장애물을 선체 밖으로 내보면서 수색을 실시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 수색이 장기화됨에 따라 28일부터 29일까지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종합건강검진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 지난 22일 밤 선내 3층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발견된 디지털 영상 저장 장치(DVR)와 관련, 손상방지를 위해 부식방지 조치를 완료했으며 전문 복구 업체에 영상 복원을 의뢰했다. 한편,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야당은 25일 목포와 진도를 방문해 목포해양경찰서, 해군 3함대,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한다.
  • 사고 발생 72일(6월 26일)
실종자 가족들이 정홍원 총리의 유임 결정과 관련 "총리 유임으로 국민의 열망이 좌절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종자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수습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 총리 유임의 첫 일정으로 27일 진도 현지를 방문,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30일 예정된 세월호 국조특위 기관보고를 수색 차질을 우려해 여의도 국회가 아닌 진도 현지에서 진행해 달라고 여야 국조특위 측에 촉구했다. 한편 희생자, 피해자 가족 등이 포함된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오는 27일께 안산시에서 정 총리 유임과 관련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 사고 발생 73일(6월 2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 119명은 3층 선수 및 선미 격실, 4층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및 중앙 격실 등에 대한 장애물 제거와 수색작업을 병행한다. 구조팀은 오후에는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해 다음달 수색·구조 종합계획, 잠수사 안전대책 등을 논의한다. 한편, 정홍원 국무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의 반려로 유임이 결정된 다음날인) 참사 현장을 찾았으며, 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진도와 제주항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
  • 사고 발생 74일(6월 28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27일 오후 1시 10분부터 2시 20분까지, 28일 오전 2시 2분부터 3시 37분까지 두 차례 수중 수색을 실시했으나 추가로 희생자를 수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총 18차례에 걸쳐 잠수사 36명을 투입, 3층 선수 다인실과 선미 격실, 4층 선미 다인실, 5층 선수와 중앙 격실 등에서 장애물 제거와 함께 정밀 수색을 진행했다. 또 진도항(팽목항)에 설치된 몽골텐트 52채에 차광막을 설치하고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과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건강 검진을 실시한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의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를 찾았으며, 정의화 국회의장은 전남 진도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 사고 발생 75일(6월 29일)
합동구조팀은 이날 115명을 투입해 세월호 3층 선미 격실, 4층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및 중앙 격실 등에 대한 장애물 제거와 수색을 계속한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다음달부터는 세월호 수색 잠수사와 해군함정 등 인력과 장비를 대폭 축소해 운영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 사고 발생 76일(6월 30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3층 선수 일부 객실과 선미 쪽 일부 객실 및 통로, 4층 선수 소형 객실, 선미 좌현 다인실, 5층 선수와 중앙부 객실을 중심으로 수색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의 법률 대리인인 배의철 변호사는 진도군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날 오전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정밀 수색 및 7월 수색 계획 설명회가 예정됐으나 계획이 미흡하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취소됐다"고 밝혔다. 침몰 지점에서 약 100km 떨어진 전남 무안군의 해안가에서 시신 1구가 발견되었는데, 관련 당국은 이 시신의 상태로 봤을 때 일단 세월호 사고 이전에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참사 국정조사 특위가 이날 첫 기관보고를 받았다.
  • 사고 발생 77일(7월 1일)
구조팀은 현재까지 세월호 내부 111개 격실 중 잠수사 진입이 가능한 107개 격실에 대해 수색을 완료했다. 수색하지 못한 4개의 격실은 4층 선미 부분에 몰려 있다. 구조팀 관계자는 "선미 다인실 부근 복도가 무너져 있어 진입이 어렵다"며 "해당 부분 선체 외판을 절단하는 방식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 11명 중 7명은 선체 4층에, 4명이 3층에 있을 것이라는 게 구조팀의 추정이다. 진교중 전 해군 해난구조대(SSU)장은 "잠수사 진입이 불가능한 화장실 칸이나 통풍관, 옷장 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 실종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