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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여름 5 : 변법개혁으로 중국 통일 기초를 다진 드라마 '대진제국' 소개)

 

강남의 여름 5 : 변법개혁으로 중국 통일 기초를 다진 드라마 '대진제국' 소개

 

 

                                                                                                                      아침 하늘

 

며칠 천둥이 치며 비가 내리더니 흐린 날씨가 지나가고 맑게 게인 청명한 아침 하늘이 남해안 한려수도 쪽빛 바다처럼 청아하다. 오늘도 기온이 무척 더울 것이라 한다. 여름은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가고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하다. 7월 7일이 소한, 18일이 초복, 23일이 대한, 28일이 중복이다.

 

지구의 기온이 계속 올라가고 동해안 오징어가 남해, 서해에서 잡히고 대형 민어가 올라오는 등 바다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어족 자원도 동서남해안이 변화가 심하다고 한다. 아열대어종이 대거 북상하여 우리 나라 주변 해상에서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래서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던 명태는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하니 우리들 밥상에 자주 올라오던 명태는 이제 맛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요즘 각 가정의 아빠들이 한 방송사에서 '아빠 어디가?' 프로그램 방영으로 인해 인기가 폭발하자 캠핑 바람이 불어 가족들의 야외활동 증가로 텐트 등 야외캠핑 장비가 대량으로 팔리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 많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도 얼마나 많은 가장들이 자녀들의 등쌀에 떠밀려 남이 가니 우리도 가야한다면서 어려운 살림에 생돈을 들여 각종 장비를 구입하고 목숨을 걸고 여행을 가야할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서울시에서 난지도 캠핑장만 운영하였는데 이번에는 뚝섬, 잠실, 여의도 등 한강고수부지에도 캠핑장을 개장한다고 한다. 모든 장비와 시설은 대여하며 사전 예약제로 대중교통편을 이용 몸만 가면 된다고 한다.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장소도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고 하니 이번 여름에는 고수부지에서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캠핑도 하며 즐거운 경제적인 여름휴가를 보내시길 바라면서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조선닷컴

                                                   체포되는 임병장

 

 

군피아들이 현역과 연루하여 군사기밀을 빼내고, 임병장 사건은 현재 우리 군대의 현실을 그대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구구절절 군이 거짖말로 국민을 속이고 병영비리를 감추려는 데만 급급한 모양이 꼴 사납다. 이런 군대에 어느 부모가 마음 놓고 자식을 군대에 보낼 것인가? 어느 여대생이 여자도 군대 징집하라며 일인시위를 벌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군 경력을 학점제로 처준다는 뉴스도 보았지만 그런 얄팍한 수단으로 정예군을 만들 수는 없다. 차라리 이참에 젊은이들 직장도 없는데 모병제로 방향을 바꾸는 게 어떨까 하고 어느 언론인이 제기한 바 있다. 물론 충분한 연구와 의견 수렴, 그리고 막대한 예산소요가 예상되지만 지금같은 군대 상태로는 군이 병사는 죽이고 적에게는 매번 얻어맞고 진급과 보직에 연연하며 사건이 터지면 숨기고 속이는 데 열중하고, 각종 방산비리를 포함 군납비리와 부패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에게 계속 버림받고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정신병력을 가진 문제사병을 데리고 철책근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짓인지 살피고 따져야 한다.

 

물론 옛날에도 월북, 무장탈영 등을 포함하여 문제사병은 수도 없이 많았고 각종 사고로 목숨을 잃은 병사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이라 부모들은 항변 한마디 못하였고 또 부모들도 힘이 없고 못 배우고 우매한 부모들이 많아 군에서 마음대로 강력하게 처리해도 말한마디 못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이참에 군대 병력 수도 줄이고 아울러 쓸데없이 많은 깡통 장군 숫자도 줄이고 현대적인 전자전략군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어떨까?  언론에서 지금 한국군은 당나라군대만도 못하다고 언론에서 비난일색이다.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국조특위

 

 

 세월호 국조특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관료사회의 무능과 비리가 혀를 찰 정도다. 이 나라가 이제 갈 데까지 간 모양이다. 지하철 일회용 카드를 속여 공금을 착취한 지하철 직원 비리, 감사원 직원이 뇌물을 챙기고 편의를 봐주며, 차량연비 문제로 정부 부처끼리 밥그릇 싸움질을 하는 꼴을 보면 공무원 세계가 얼마나 부패한 상태인지 짐작이 갈 정도이다. 이런 판국에 허수아비 총리는 유임되고 개혁은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각종 이익단체는  자신들의 이권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귀족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바쁘다.

 

서울시 현역 의원이 살인을 청부하고, 감사원이 국민은행 사태에 대해 금감원 제재에 개입하는 등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고 있고, 철피아 전직 이사장이 연달아 자살을 하고, 대구 황산테러로 흉악범을 15년째 경찰은 잡지도 못하고 공소시효가 끝나고 말았다. 당시 테러를 당한 김군이 동네 아저씨를 지목했지만 경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사건이다. 흉악범은 공소시효 없이 끝까지 추적하여 잡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만 공소시효가 왜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국민 누구나 억울함이 없는 세상이 그립다. 가진자와 권력층만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바로 조선 500년 동안 양반사대부들만 잘 먹고 잘 살다가 결국 나라를 망해먹은 것처럼 지금의 한국 정치.사회 전반적인 현실이 조선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여름철 보양식 장어탕과 삼계탕

                                                                  

지난주에는 요즘 직장일에 힘들어하는 마누라 보양시켜 준다고 좋아하는 장어를 먹으려 가자고 했다. 퇴근시 논현역에서 만나  근방 영동시장 먹자골목으로 갔다. 그곳으로 간 이유는 인터넷을 검색하니 논현역 근방에 무한리필 장어집을 소개한 곳이 있어 찿아갔더니 내가 본 인터넷 장어집 소개는 몇 년 전 이야기라 지금은 가격도 많이 올라 비싸고 무한리필은 옛날 이야기라 하여 그냥 나왔다. 그래서 먹자골목을 돌아다니며 먹거리를 찿아보았지만 입맛이 유별난 마누라는 비싼 것도 배가 아파 못 먹고 회, 육류 등도 싫어하는 지라 할 수 없이 별 맛도 없는 부대찌게를 먹고 왔다.

 

지난번에는 방배역 근방 장어집을 찿아갔는데, 장어가 비싸 장어탕을 한 그릇식 먹었는데 맛이 형편없었다. 그래서 논현동으로 갔는데, 결국 비싼 가격에 실패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성질이나서 인터넷을 통해 장어 구이용과 탕용을 구입했다. 인터넷에서 장어탕 요리법을 알아보고 반나절이나 걸려 절차에 따라 탕을 끓였는데 맛이 일품이다. 장어를 삶아 갈고 채로 걸러고, 끓이면서 고구마줄기, 고사리, 미나리, 콩나물 등을 넣고 된장,  마늘, 양파, 대파, 후추, 간장, 기름에 볶은 고추가루 등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끓였다. 이제는 무슨 요리던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절차에 따라 하면 안 될 것이 없다. 좀 어려운 것은 몰라도......

 

마누라가 먹고 힘을 낸다면 좋겠다. 만약 둘 중 누구던지 병이 들어 병원에 눕는 순간부터 우리 둘은 행복 끝, 불행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힘든 직장다니며 먹고 살기 바쁜 자식들이 와서 병간호를 할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신세를 질 수도 없다. 나이든 부부는 모든 것을 스스로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좀 멀쩡할 때 반드시 건강을 챙기고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거전 봉천동 저녁 풍경

 

 

 

최근 정세에 대한 사설 몇 가지를 소개한다.

 

 

격량의 동북아 정세

 

미국이 적 미사일을 지상 40㎞ 이상의 상층 고도에서 요격하는 고(高)고도 지역방어 체계, 이른바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군 고위 관계자의 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어제께 조찬 강연에서 “미 측에서 (한국 배치를) 추진하는 부분이고, 제가 또 개인적으로 (미국 군 당국에) 사드의 전개에 대한 요청을 한 바 있다”고 말했다.

 

사드는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의 핵심이다. 요격 고도가 40~150㎞인 사드는 상승-중간(비행)-하강의 단계를 거치는 탄도미사일을 하강 단계, 즉 최종 종말단계에서 요격하는 요격 무기체계다. 우리 군은 그동안 미국 MD 체계에 편입되지 않고, 지상 40㎞ 미만의 고도에서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구축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면서도 요격 수단의 다양화, 요격 고도의 중층화 필요성 등을 고민해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중국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의 MD 확대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MD가 미사일방어 수단이긴 하지만 언제든 공격형 무기체계로 바꿔 중국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우리의 MD 체계 편입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금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가 어떤 상황인가. 엊그제 싱가포르에서 막을 내린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국·일본과 중국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치열하게 ‘말폭탄’을 서로에 쏘아댔다.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 열도에서 일촉즉발의 ‘전투비행’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공언하고 있는데다 일본과 북한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고리로 밀착하면서 북핵 억지를 위한 한·미·일 공조체제의 균열이 우려되고 있다. 한마디로 동북아 전체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복잡하고도 긴박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미국이 당장 시급하지도 않은 사드 문제로 혼란을 야기한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혹여 한국이 요구하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의 대가로 사드 구매를 압박하는 것이라면 한·미 동맹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감마저 들게 만드는 악수라는 사실을 미국은 분명하게 알아야만 할 것이다.

 

북핵 위기 등에 직면한 우리는 한·미 동맹도 굳건히 유지해야 하고, 한·중 협력도 포기할 수 없다. 유연한 안보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까지 아우를 수 있는 한·미·일 공조체제가 재정비돼 북핵 문제 해결을 동북아 정세 안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 있도록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치밀한 전략을 가다듬길 바란다.

 

 


기로에 선 한국 외교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방한 이틀째인 4일 서울대를 찾았다. 중국 주석이 국내 대학에서 직접 강연한 것은 처음이다. 시 주석이 "안녕하십니까"라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자 박수가 쏟아졌다. 시 주석은 강연에서 한국 인기 TV 드라마를 언급했고, 영상 자료와 책 1만여 권을 서울대에 기증하고 서울대생 100명을 중국 여름 캠프에 초청했다. 상대국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지지를 끌어내는 외교 기법의 하나인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직접 펼친 것이다.

시 주석은 강연에서 "한·중 양국은 역사상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항상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극복했다"며 "400년 전 임진왜란 때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전쟁터로 향했다"고 말했다. 이어 "20세기 상반기 일본 군국주의의 야만적인 침탈, 한국·중국의 영토에 대한 강탈로 우리 모두 큰 고난을 겪었다"며 "우리(양국) 인민들은 생사를 같이하고 서로 도와줬다"고도 했다. 중국이 한국을 침략해 국토를 짓밟고 재산과 부녀자들을 약탈했던 역사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중이 과거 일본의 침략에 함께 대응했던 역사만을 거론한 이유는 자명하다. 일본 아베 정권 등장 이후 본격화된 중·일 갈등에서 한국이 중국과 함께 대(對)일본 공동 전선에 나서달라는 뜻이다.

시 주석은 전날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내년은 중국의 항일(抗日) 전쟁 승리 및 한반도 광복 70주년"이라며 한·중 공동 기념행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두 정상은 이번에 이틀에 걸쳐 일본의 과거사 왜곡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시 주석의 제안이 알려진 것은 중국 관영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다. 정상회담에서 3국의 문제에 대해 협의했더라도 그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게 외교 관례이고 국제 상식이다. 중국이 이런 관례를 무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은 시 주석의 발언과 관영 매체 보도를 통해 지금의 '중국 대(對) 미·일의 각축'에서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시 주석은 이번에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질서 구축'에 한국이 주요한 당사자로 동참해 줄 것을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중국 외교의 초점은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을 막는 데 있다. 시 주석이 지난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 회의(CICA)'에서 "아시아 안전은 아시아인이 지켜야 한다"며 지역 안보 기구 창설을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국은 일단 이 회의에 참여하고 있지만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을 제안했다"며 "관련 국가들이 적극 참여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AIIB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BD·본부 필리핀)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중심으로 운영되는 아시아 전담 은행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은 이 같은 움직임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AIIB 가입 여부에 대해서도 "추후에 최종 입장을 정하겠다"고 하고 있다.

시 주석의 방한에 맞춰 일본은 북한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북이 4일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 특위를 구성하는 것에 맞춰 아베 내각은 북한 사람의 일본 입국 제한, 대북 송금(送金) 및 현금 반출 제한, 인도적 선박 왕래 규제 등을 완화했다. 2006년 북의 1차 핵실험 후 일본이 독자적으로 실시해 온 대북 제재의 일부를 푼 것이다. 이 추세라면 가까운 시일 안에 북·일 외상 회담이 열리고 아베 총리가 직접 북을 찾는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아베 정권은 자신들의 과거사 도발로 한·일 외교 채널이 막히자 북한에 접근하는 것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키우겠다고 작정한 듯하다.

미국은 일본의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해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 일제히 "중국이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을 이용해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의 유대를 해치려 하고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오바마 미국 정부가 내건 '아시아 회귀' 전략은 아시아 각국의 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고, 한·일 관계 악화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미국으로선 한반도를 무대로 벌어지는 주도권 경쟁에서 중국이 한발 앞서 나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시 주석 방한과 일본의 대북 접근으로 주변 강국들의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覇權) 다툼이 더 이상 먼 미래 일이 아니라 우리 앞에 닥친 현실 문제로 다가왔다. 100여년 전 우리 선조들이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無知)와 거듭된 오판으로 나라를 잃었던 뼈아픈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한·중 동반자 관계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숙명이다. 그렇다고 원칙 없는 줄타기가 능사는 아니다. 우리의 국익(國益)에 맞지 않는 사안에 대해선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이 나라를 지키면서 국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이며, 어떻게 해야 북의 도발을 억지하면서 통일을 앞당기고 동북아와 세계 평화·인권에 기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중심에 두고 외교적 활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 경제가 과거 숱한 대내외 악재에 직면해서도 그때마다 유연한 대처로 지속적으로 고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 주도의 정책, 효율적이며 유능한 관료그룹, 그리고 정책에 반응해 성공적으로 민간 부문을 키워온 기업들의 노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성장 일변도 정책으로 인해 현재 여러 부작용과 사회계층 간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정부의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 지도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과거 우리와 처지가 유사했던 많은 개발도상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는 실효성 높은 성장정책, 유능한 관료들, 그리고 부패하지 않은 정부가 있어서 성장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를 거치며 우리 경제의 성장 패러다임이 개방과 자율로 옮겨가면서 점차 정부의 역할은 변화해 왔다. 우리 경제의 성숙도가 높아짐에 따라 더 이상 정부 주도의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지도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이유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기업이 가장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 또한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정부가 선도해 경제를 이끄는 틀은 복잡다단해지고 선진화된 우리 경제에 더 이상 적절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정부의 주된 역할은 경제를 선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 본연의 기능에 충실히 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경쟁적인 여건을 조성하고,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소득 재분배와 복지를 지원하는 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 성공의 유산이 오히려 우리 정부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시장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아직도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규제와 통제의 끈을 푸는 순간 경제는 무질서와 혼돈에 빠질 것이라는 인식, 정부가 제도를 통해 시장을 선도해 부가가치 창출에 앞장설 수 있다는 인식, 정부가 정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 등 아직도 예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관여하고 개입하면 할수록 시장의 효율은 떨어지고, 못 미더운 시장에 대한 직간접적 통제가 심해질수록 성장의 기틀은 시들어가는 시대가 된 지금 오히려 정부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 정부 주도 성장의 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민관 유착관계와 ‘관피아’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상당 부분 남아 시장교란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관피아가 존재하는 한 국민들은 더 이상 정부를 공정한 시장질서 관리자로 보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정부 정책은 신뢰성과 실효성을 동시에 잃게 될 것이다. 과거 고성장 시기에는 이러한 비효율과 문제점들이 감춰질 수 있었겠지만 사면초가에 갇혀버린 지금의 우리 경제와 기업들에는 매우 버거운 짐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선 정부가 시장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고, 이런 새로운 인식에 기반을 두고 정책 입안에 임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책이 민간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민간에 부담을 덜어주는지, 경제에 혁신과 창의를 발현시키는 기재가 될 것인지,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인지 등을 정책 입안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정부 주도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정책 입안과 수행 과정에 대한 투명성이 제고되어 국민들이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한편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과도한 기대와 요구를 접어야 한다. 만약 이런 시각의 변화가 실현되고 그에 따른 정부 시스템 변화가 이어진다면 자연스레 정부의 권력이 축소될 것이고 관피아 문제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본다.

 

 

 

 

  

 

정도전과 민본

 

예나 지금이나 분배 정의(正義)는 시대적 관심사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정치제도부터가 사회적 자산을 어떻게 나눠서 활용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를 기본으로 한다.

최근 사회적 갈등은 분배정의와 관련된 것이 대다수다. 이념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념의 밑바탕에는 분배 갈등 문제가 깔려 있다. 2~3년간 정치권에 불어닥친 경제민주화 바람의 일단도 그 맥락 위에 있다. 5~6월 기업 노동조합의 임단협 투쟁과 각종 노사갈등에서의 핵심 쟁점 또한 분배 정의의 문제다.

'어떤 분배가 정의로운가'는 각자 자신의 위치와 그 당시 사회분위기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에 충실해왔다. 이유는 개인의 가장 합리적 선택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철학적 바탕이 개개인에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공공의 선을 추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많은 갈등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만의 정의'와 '자신들에게 유리한 팩트'만으로 논쟁에 나서다보니 서로의 견해차만 확인하고 해결 없이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분배의 정의(正義)를 바르게 정의(定義)하고, 이를 바르게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례로 자본주의 등의 정치체제가 완성되기 전 왕조시대에도 백성들에 대한 분배와 관련한 논란은 지속됐다.

최근 고려 말과 조선 초 개국의 이야기를 왕권 중심의 '태조 이성계'가 아닌 관료 중심의 개국공신 '정도전'을 중심으로 그린 공중파 드라마 '정도전'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도 '분배 정의'의 문제였다.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는 스승인 목은 이색과 함께 기존 권문세가들의 사전(私田)을 혁파하고 백성들의 과세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과전법(科田法) 도입을 주장한다. 이 제도는 전국의 토지를 국가가 조세를 걷는 땅으로 편성, 그 권한을 각 관부와 관료에게 나눠주는 제도였다. 이는 기존 관료들의 사전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토지의 권한은 국가가 갖는 형태로 온건적 개혁제도였다.

반면 개혁을 주장한 삼봉 정도전은 백성의 수와 토지를 계산해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계민수전(計民授田)인 '정전법'(井田法)을 주장해 한때 한 배를 탄 신진사대부들과 갈등을 빚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생산 기반의 사유화를 인정하는 자본주의의 현 체제와 유사한 형태다. 하지만 정전법은 그 파격성으로 인해 조선시대 초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과전법 시행이 진행됐으나 토지의 사유화 폐습으로 국가재정에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했다.

정도전은 당시 9등분된 토지 중 자신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형태의 제도를 꿈꿨다. 이것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사유재산제도에서는 '개인의 이익 극대화'는 분배의 정의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익 극대화를 위한 개개인의 성장이 있어야 그 성장의 결실을 기반으로 한 분배의 법칙들도 수립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부의 쏠림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반성적 균형 작용이 일어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이 가속화되는데 이어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에 대한 논의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기업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고기를 나눠주던' 시혜적 지원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 스스로 '고기를 낚는 방법'을 터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립적 지원형태도 바뀌고 있다.

자유주의 체제가 '승자독식'이 심화되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사회적 약자와 함께 성장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에서의 경쟁을 토대로 하되 사회적 약자에게 최초 출발선에서의 차이를 줄여주자는 형태다. 이를 통해 사회가 한 발짝 더 성숙해나가는 데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백척간두의 한국

 

한국의 운명에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마침내 일본 아베 정부는 지난 1일 총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전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헌법 해석 변경을 의결했다. 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하는 안보원칙을 폐기하고, 총리의 뜻에 따라 무력행사를 하겠다는 군국주의의 명백한 부활이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은 전쟁할 수 없는 나라였다. 지난 69년간 일본 지배계급은 절대주의 천황제국가를 염원하며 전쟁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개정을 노려왔다. 사실상 일본은 팔굉일우(八紘一宇)를 추구하는 천황제국가다. 팔굉일우는 팔방의 넓은 세계를 일본이라는 하나의 집 아래 천황이 지배하겠다고 하는 침략이데올로기다.

밀접한 타국이 공격을 받아 일본의 존립에 위협이 된다고 총리가 판단하면 전쟁을 하겠다는데 그 1순위는 당연히 남북한이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굳이 들출 필요도 없다.

만약 남북한에서 유사사태(전시상황)가 발생하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의 요구로 일본군은 한반도에 출격할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일본이 동북아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일본극우파들은 오랜 경기침체와 중산층 붕괴, 지진과 원전사고 등으로 야기된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쇼비니즘으로 결집해 왔다. 이런 극우적 사고가 일본 시민사회 저변에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갑자기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위력적인 사건 전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다. “당신네들은 우리 할머니들이 불쌍하다고 하지만 강간범, 범죄자로 몰린 우리 할아버지들이 불쌍하다.” 일본군 성노예에 대해 한 시민단체 대표가 한 말이다.

더 무서운 전조는 우리 내부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인정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 없다. 오히려 그 의미를 축소하려고만 한다. 19세기 말 한·중·일의 역사가 지금 우리 앞에 다시 서 있는 셈이다. 역사의 복수를 피하려면 누구를 위한 한국인가를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사 연구의 권위자인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는 역작 ‘역경의 행운’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개인으로서의 일본인은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고 공중도덕을 잘 지킨다. 가정교육의 모토는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이 국가를 의식할 때는 이와 판이한 행동을 한다. 기습공격을 잘하는 것이 그 일례일 것이다.”

최재석 교수는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노일전쟁, 1910년 한국 강제 점령, 1937년 중국 침략, 1941년 태평양전쟁, 일본군의 소위 ‘위안부’, 731부대 등을 그 예로 들었다.

2012년 9월 일본의 양심세력이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영토 갈등은 근대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기억하자는 호소다. 역사는 한 공동체가 경험한 집단기억이다. 기억에서 지워진 역사는 수레바퀴의 축처럼 다시 돌아온다.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원칙을 넘어서서 지극한 충성의 대상인 천황을 정점으로 한 신분적 상하관계를 절대시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을 얽어매는 치명적인 족쇄다.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겪은 일본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아직도 무거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역사의 질곡은 민초들이 온전히 떠안게 마련이다.

한·중·일 모두 백척간두에 서 있다. 누구를 위한 일본인가, 누구를 위한 중국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한국의 운명은 중국과 일본의 운명과 따로 있지 않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자는 그 바퀴 아래에서 신음하는 자, 결국 세계 각국 민초들의 몫이다. 특히 한국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한국인 그 누구도 한국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세상 만물이 변하듯이 운명도 변한다. 주어진 명이 움직이기에 운명이다. 역사에 감춰진 운명의 비밀이 있다.

 

 

 

 

 

 

대진제국(大秦帝國) 드라마 소개

 

아래는 2009년 중국 CCTV에서 방영한 대진제국에 대한 드라마 내용이다. 이 드라마에서 상앙의 변법개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잘 나온다. 진나라 효공이 자신의 아버지 헌공(영사습)이 위나라군의 독화살을 맞고 돌아가신 것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재기를 다짐하며 진나라를 개혁시키기위해 노심초사 상앙을 받아들여 변법개혁을 실시하여 부국강병을 이루기까지 진나라가 중국통일의 기초를 다진 길고긴 스토리가 잘 나타난다.

 

효공은 인재를 모집하기 위해 공고를 내자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중에서 효공은 절차에 따라 선별한 인재 중 상앙의 개혁논리를 듣고 감복하여 그를 개혁주체로 삼고 진나라 사회전반에 걸쳐 철저한 변법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효공은 상앙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그의 계획대로 변법을 시행한 결과 20년이 지나자 진나라는 주변국에 비해 월등한 강국으로 우뚝서게 되는데 바로 위나라와 벌어진 전투였다.

 

위나라는 진나라를 깔보고 전투에 임하다가 대패하여 옛 진나라 영토를 되돌려주고 물러나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 승리한 요인은 바로 상앙이 변법으로 양성한 진나라 신군(新軍)이었다. 신병 선발과 무기개발, 신전술개발을 통해 진나라 신군은 주변국 군대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가진 강군으로 육성하였고 이는 모두 상앙의 변법에 의한 군대양성 때문이었다.

 

대진제국의 드라마까지 소개하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 주변 4대 강국에 휩싸여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국 7웅 중 가장 약소국가였던 진나라, 시황제 대에 이르러 주변 6국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한 이유가 있다. 바로 100여 년 전부터 강력한 변법개혁을 이루어 부국강병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작금에 우리들의 현실을 돌아볼 때 한마디로 우리는 역사적인 기로에 서 있다. 강력한 개혁을 이루어 한반도 통일을 앞당길 것인가, 아니면 개혁을 시도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조선말처럼 나라가 망하던가 월남처럼 북한 공산정권에 패망하던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여 동북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상존하는 위협은 물론 중국의 패권주의,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 러시아의 남방진출 탐욕,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재해석과 군국화 시도, 일본과 북한의 접촉과 교류, 미국의 한.미.일 동맹강화, 중.일의 센카쿠 열도 분쟁, 베트남.필리핀.중국의 남지나해 도서 분쟁,  한.일 독도분쟁, 한.중.일의 주변국 어업분쟁, 북한의 핵무장과 도발, 북한정권 급변사태에 따른 한.미.중의 북한 진주 및 대량살상무기 확보에 따른 역학관계, 중국의 동북.서북.서남공정, 쓰촨성 반중 테러 격화, 티베트 독립운동과 소수민족 인권탄압, 중국대륙의 대기오염 및 황사 등 환경문제, 각종 무역  분쟁과 인권분쟁 등 동북아 정세는 아시아의 화약고라 불릴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가운데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 밝혀졌듯이 우리 나라는 각종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비리와 부패의 먹이사슬을 이루어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월남 패망 다큐멘터리 방영에서 보듯이 이런 부정적인 나라 상태로는 우리 나라가 월남 패망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개조가 시급한 현시점에서 강력한 개혁을 포기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질곡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게 되거나 나라 자체가 아예 소멸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변법개혁을 이루어 중국을 통일한 대진제국에 관한 드라마를 소개한다. 개혁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것인지 느껴보시기 바란다. 드라마 다시보기는 <drama24.net>로 들어가면 중국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 드라마 '대진제국'을 보고 뒤이어 드라마 '초한지'를 보면 진시황제가 죽고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에 의해 진나라가 멸망해가는 과정부터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결국 반란군의 두 우두머리인 유방과 항우가 패권을 다투다가 항우가 패배하고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는 과정의 장엄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역사와 변법개혁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고로 꼭 보시길 바란다.

 

 

 

대진제국 (2007) 大秦帝國 Qin Empire

 포토 보기

    방영정보
    중국CCTV | 2009-12-18 ~ 2009-00-00
    요약정보
    중국 | 총 51부작
    제작
    황건중 (연출) 외 1명 | 손호휘 (극본)

     

    등장인물
    진효공 (후용 분)
    진나라의 군주로서 아버지 진헌공이 별세한 후 21세의 나이로 즉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진나라를 다스림. 사려가 깊고 유능하며 통찰력과 친화력을 동시에 지닌 전형적인 리더임.
    위앙(상앙) (왕지비 분)
    진효공의 인재 모집을 보고 진나라에 비밀리에 들어옴.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그 공을 인정받아 상군 직위를 받고 본명인 위앙에서 상앙으로 불리 됨. 혁명적이고 냉철하며 다소 무정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진효공에게 충성하나 진효공이 죽고 원로 귀족들의 모함으로 죽게됨.
    백설 (고원원 분)
    전국 시대의 거상이자 위나라의 승상 백규의 딸.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재력을 갖추었고 장사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 학문적 소양과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임. 사랑하는 상앙에게 헌신적이며 상앙이 이상을 실현해가는데 도움을 줌.
    형옥공주 (제방 분)
    진나라의 공주. 상앙을 사랑해 고집을 부려 그와 혼인하지만 끝내 상앙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를 흑림으로 칭하고 특사로 떠나는 경감의 호위 무사가 됨.
    차영 (후상영 분)
    상앙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옆에서 보좌하여 여러가지 변혁을 도모함.
    공숙좌 (두우로 분)
    위군의 사령관인 승상. 상앙과 사제지간, 진관과의 마지막 결전에서 진군의 포로로 잡힘.
    감룡 (손비호 분)
    세력가인 상대부. 진헌공의 뜻과 달리 영건을 왕위 계승자로 세우려 하지만 영건이 스스로 포기하면서 거량(진효공)이 군주가 됨. 상앙의 개혁을 견제함.

     

    소개

    기원전 4세기 중엽, 중국 서부는 정치적 격변의 장이었다. 서양의 고대 그리스 문명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로 동양의 중국 대륙에서는 청동기 시대를 끝내고 거대한 문명 변화를 겪고 있었다. 중국 서부의 약소 제후국이었던 진국은 동부의 6개 강대 제후국의 끊임없는 압박과 침략에 시달린 끝에 망국의 위기에 처한다. 진국 군주 진효공은 잇단 침략에 따른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부의 인재를 불러들여 나라의 발전을 꾀한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정치가인 상앙(위앙)은 비밀리에 진국으로 들어가 뜻을 펼칠 곳임을 확신하고 성심을 다해 진효공을 도와 부국 정책을 이끈다. 20여 년에 걸친 변혁을 통해 진국은 법치 제도를 완비하고, 제도면에서 가장 강력한 강대국으로 도약한다. 이로써 중국은 통일 국가로서 변모할 문명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변혁을 주도했던 두 주인공, 상앙과 진효공은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며 역사의 소용돌이로 사라진다.

     

     

     

    회차별 줄거리 

     

    제1회 

    때는 전국 칠웅이 세력을 겨루던 전국시대. 강대국이었던 위와 약소국이나 세력을 키워가고 있던 진은 하서 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몇 차례의 승부 없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 첫 전투를 끝낸 위군과 진군. 승패는 나지 않았으나 위군은 전력에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위군 진영에 왕이 보낸 공자 앙이 찾아와 지원을 자처하고 위군의 막강한 정예부대‘위무졸’의 지휘권을 넘길 것을 요청한다. 위군의 사령관인 승상 공숙좌에게 위앙(상앙)이라는 자문관이 있는데 상앙은 별도의 전법을 제안하나 공자 앙의 위세에 밀려 거부 당한다.

     

    한편 진군의 진영에서는 첫 전투의 결과에 만족하며 2차 전투를 준비한다.2차 전투 중 진군의 진헌공의 둘째 아들거량이 적진으로 달려들어 위군의 승상이며 사령관인 공숙좌를 생포하여 끌고간다. 이에 위군은 사령관 공숙좌를 구출하기 위한 설욕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진군은 적군의 사령관을 포로로 잡고도 식량 부족으로 고전하게 된다. 이때 전쟁으로 인한 백성의 어려움과 군대의 위기를 깨달은 진국 군주(진헌공)의 둘째 아들 영거량은 군대의 퇴각을 요청하게 되고 위와 진은 다시금 3차 전투를 맞는다.

     

    제2회   

    마지막 결전에서 위군의 사령관이었던 승상 공숙좌가 진군의 포로로 잡히게 되고, 진군의 사령관이었던 군주 진헌공(영사습)은 위군이 쏜 독화살을 맞게 된다. 군량 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진군의 현실에 진헌공의 둘째 아들 영거량은 퇴각을 건의하고 부상 당한 진헌공은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퇴각하던 진헌공은 자신의 부상이 중함을 알고 왕위 계승자를 결정하기 위해 암암리에 영건, 영거량 두 아들이 궁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조치한다. 궁으로 혼자 돌아온 진헌공은 그 사이, 왕후를 비롯해 자신의 군주 즉위 후부터 줄곧 국사를 도왔던 상대부 감룡과 오랜 동안 전쟁을 함께 했던 원로 병사들을 찾아다니며 영건, 영거량 중 왕위 계승자로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 자문을 구하게 되는데…

     

    제3회   

    소량 전투에서 위군의 독화살을 맞은 진나라 군주 진헌공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세력가인 상대부 감룡과 오랜 동안 전쟁을 함께 했던 노병을 찾아다니며 영건과 영거량 두 아들 중 누가 왕위계승자로서 적합한지 자문을 구했던 진헌공은 마음을 굳히고 두 아들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진헌공의 뜻과 달리 세족 장군들과 상대부 감룡은 자신들의 뜻에 따라 첫째 공자 영건을 왕위 계승자로 세우려 하는데,  공자 영건이 병상의 진헌공이 둘째 영거량에게 뜻이 잇음을 알고 진헌공 앞에서 새군주로 더 적합한 인물은 영거량임을 시인하며 혈서로 끝까지 한뜻으로 진국을 일으키겠다고 진헌공과 약속하게 되면서 결국 둘째 공자 영거량이 진국의 새 군주가 된다. 한편, 진헌공의 죽음과 영거량의 군주 즉위로 진나라가 시끄럽다는 것을 알게 된 위나라 왕은 포로로 잡힌 공숙좌를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진국을 습격하지만 사실은 공숙좌를 제거하기 위해 출병하게 된다.

     

    제4회   

    진국을 혼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던 방연은 하규 전투에서 진국의 수비망을 뚫지 못하고 패하게 된다. 국상을 치르던 와중에 원로 병사들이 찾아와 선대 군주 진헌공을 위해 순장을 청한다. 그러나 진효공은 순장을 청했던 원로 병사들의 순장 요구를 거절하고 앞으로는 순장을 금지한다는 명을 내린다. 또 화려한 국상 예식을 꾸짖고 간소하게 할 것을 명한다. 한편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딸인 형옥과 첯째 영건은 전장에서 포로로 잡은 위국의 승상 공숙좌를 죽이려 하고 진효공은 이들을 말린다. 위앙은 공숙좌를 구하기 위해 진국을 찾아오는데, 영건이 위앙을 만나는 동안 진효공은 뒤에서 위앙의 제안을 듣게 된다. 결국 진효공은 공숙좌를 이용하여 위나라와 화평을 구하기 위해 공숙좌에게 진국의 영토를 일부 넘겨주면서 진국과 위국의 휴전을 제안하고 공숙좌는 신임 군주 영거량의 기개에 감탄한다.

     

    제5회   

    위앙은 공숙좌를 대신해 휴전 협약서를 진국에 전달한다. 진 선대 군주 진헌공의 국상은 계속되지만 조정의 혼란은 끊이질 않고 진효공의 부담감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진국의 휴전 제안을 두고 위국에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본국으로 무사 귀환한 공숙좌는 위왕에게 진국을 멸하는 것과 분할하는 것과 관련해 충언을 한다. 휴전 협약을 맺고 진국의 영토까지 얻어 온 공로로 공숙좌는 본직에 복귀하지만 긴장이 풀리면서 기력이 다해 앓아 눕게 된다. 그 와중에 공숙좌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제6회   

    병세가 악화된 공숙좌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위앙이 계속 위국에 남아주기를 내심 바라게 된다. 휴전 협정을 맺으며 봉토를 위국에 넘겨준 일로 진국에선 봉토가 속한 대신들 사이에 불만을 표출하며 내분이 일어나고 진효공은 이를 잠재우기 위해 봉토 교환을 제안한다. 그 와중에 위왕은 진국과의 협약을 무시한 채 병력을 강화하여 진국을 멸하기 위해 6국 동맹(합종)을 추진하게 된다. 주변 강국들의 모략을 알게 된 진국은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진국의 백성들과 대신들은 재산을 헌납하기에 이른다.

     

    제7회   

    공주 형옥은 흑림으로 스스로를 칭하고 위나라 특사로 떠나는 경감의 호위 무사가 된다. 위나라 장수 방연은 진국을 멸하기 위해 상인들을 소집하고 진국을 혼란에 빠뜨릴 것을 요청한다. 병이 깊어져 죽음을 앞둔 공숙좌는 위왕에게 재상감으로 위앙을 천거하나 거절 당하자 위앙에게 위국을 떠나라고 말한다. 한편 진국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진국으로 파견되었던 위국의 상인들은 진효공의 빠른 대처로 진군에게 모두 생포된다. 방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게 된 위왕은 방연을 책망한다.

     

    제8회   

    6국 동맹에서 논의된 전쟁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 연국과 조국의 밀사는 롱서의 반란을 책동하러 이민족의 우두머리를 만난다. 이를 알고 있는 진효공은 대신들과 대응책을 논의한다. 진국의 토착민이지만 롱서 지역에 살고 있는 자처씨 부족의 차영이 곤경에서 벗어날 묘책을 내놓고 위국의 특사로 가장하여 롱서 이민족의 우두머리(선우)를 만나러 간다. 차영의 꾀에 넘어간 선우는 연국과 조국의 밀사들을 죽인다. 영건은 병부를 받아 롱서의 서원 부족이 일으킬 반란에 대비하러 떠난다. 한편,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위국으로 떠났던 경감과 형옥은 공자 앙에게 천월검을 바치며 감언이설로 공자 앙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한다.

     

    제9회   

    차영과 영건은 이민족 서원과의 전투에서 병력의 절반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군량을 소진하는 악전고투 끝에 겨우 승리한다. 진효공은 참전 용사의 공을 치하하며 시신을 화장을 한다. 서원 전투의 패배와 연, 조 밀사의 죽음의 여파로 연, 조, 초, 제 등 4국은 동맹 결렬을 선언하자 위왕은 크게 분노하여 방연에게 병부를 내놓고 진국 섬멸전에서 물러날 것을 명한다. 위앙은 바둑을 두며 시중의 사람들을 감탄케 하지만, 한편으론 위앙을 감시하는 자들이 늘어난다. 위앙의 해박함에 동향춘의 여주인 백설은 마음이 끌리게 되어 남장을 하고 찾아간다. 백설이 대결을 벌였던 경감의 진짜 신분을 알려주자 위앙은 뜻밖의 사실에 놀란다.

     

    제10회   

    위앙은 동향춘에서 법가 사상가인 신도와 신불해를 만나게 된다. 그 자리에서 진국을 멸할 방도를 내놓게 되고 숨어서 듣고 있던 방연의 수하는 이를 방연에게 전한다. 위앙의 됨됨이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방연은 관저의 관리인 척 위앙을 찾아간다. 위앙은 신분을 속이는 방연에게 맞서 어수룩한 척 대응한다. 한편 경감과 형옥 또한 위앙을 예의주시하며 미행하고 난 후 위앙이 진국에게 위협이 될 것을 알고 대비하기로 한다. 진효공은 위국에 영토를 넘긴데 이어 전쟁까지 치른 것에 자책감을 느끼고 돌에 '국치’라는 글자를 새기며 설욕을 다짐한다. 공자 앙과 방연은 위앙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도록 높은 관직을 주며 매수하려고 하지만 위앙은 이를 거절한다.

     

    제11회   

    위앙의 능력을 알게 된 방연은 위앙이 위나라를 떠나지 못하게 공숙좌의 묘를 관리하게 하면서 병사들이 감시하며 억류하게 된다. 이에 위앙은 방연의 감시를 받으며 공숙좌 묘에 갇힌 신세가 된다. 백설은 신분을 위장하여 다시 위앙을 방문하여 제국과 한국의 변법 시행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위앙에게 의견을 구한다. 결국 위앙은 위국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향후 거취에 대해 고민한다. 진효공은 나라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인재를 구하기로 마음 먹는다. 결국 위앙은 위나라 탈출에 성공하고 이를 막으려던 방연과 형옥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형옥은 위앙의 탈출을 도운 사람이 백설이라고 추측하고 경감에게 이를 말한다.

     

    제12회   

    위앙은 속수 산장에서 백설의 보살핌을 받은 후 각국을 돌아다니며 뜻을 펼칠 곳을 찾기로 마음 먹는다. 제국에 도착한 위앙은 직하 학궁에서 맹자와 논쟁을 벌이게 되고 치국의 도와 법가의 근본 사상에 대해 설파하여 그 자리에 모인 사상가들을 놀라게 한다. 방연의 부하가 야심한 밤을 틈타 위앙을 정탐하다가 형옥에게 발각되고, 이때 형옥은 위앙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지만 진국 밀사의 신분을 드러내게 된다. 진효공은 눈 내리는 밤에 민가를 둘러보다 백리요의 집에 급습한 자객을 쫓아주고 이를 계기로 현기와 만나게 된다.

     

    제13회   

    진효공은 인재를 모으기 위해 성심을 다해 인재 모집령을 마련한다. 감룡 등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히지만 직접 쓴 모집령을 각국으로 보내고 백리요에게도 인재 추천을 부탁한다. 위국을 떠나 한국으로 간 위앙은 마침 백리요와 현기를 만나게 되고 우연히 백설과 매고와도 마주친다. 진효공의 모집령에 위앙은 크게 탄복하고 진국에서 뜻을 펼치기로 결심한다. 서생들이 속속 진국에 당도하고 진효공은 서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제14회   

    형옥은 진국으로 돌아와 진효공에게 위앙이 모집령을 보고 핵심을 놓쳤다고 평한 사실을 알려준다. 진효공은 놀라는 한편 위앙에게 기대를 갖게 된다. 위앙은 진국에 당도해 후영과 경감을 찾아간다. 모집령을 보고 진국에 들어왔던 서생들은 날이 갈수록 불평을 늘어놓고 돌아가는 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진효공은 서생들을 붙잡는다. 위앙은 경감의 추천 제의를 거절하고 진국의 민가를 둘러보러 떠난다. 한편, 감룡은 씨족들의 자식을 관리로 임용하라고 상소문을 올린다.

     

    제15회   

    형옥은 진국으로 돌아와 진효공에게 위앙이 모집령을 보고 핵심을 놓쳤다고 평한 사실을 알려준다. 진효공은 놀라는 한편 위앙에게 기대를 갖게 된다. 위앙은 진국에 당도해 후영과 경감을 찾아간다. 모집령을 보고 진국에 들어왔던 서생들은 날이 갈수록 불평을 늘어놓고 돌아가는 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진효공은 서생들을 붙잡는다. 위앙은 경감의 추천 제의를 거절하고 진국의 민가를 둘러보러 떠난다. 한편, 감룡은 씨족들의 자식을 관리로 임용하라고 상소문을 올린다.

     

    제16회   

    직하학궁 서생 전상은 진효공의 도량에 감동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에 진효공은 충신으로서 장례를 치러주도록 하여 서생들을 탄복케 한다. 위앙은 다시 두 차례에 걸쳐 진효공을 만나고 결국 법가로써 강국을 만들 방도를 내놓는다. 3일 동안의 논의 끝에 위앙과 진효공은 한뜻으로 변법을 시행키로 한다. 조정에 이 일이 알려지고 부족 원로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제17회   

    직하학궁 서생 전상은 진효공의 도량에 감동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에 진효공은 충신으로서 장례를 치러주도록 하여 서생들을 탄복케 한다. 위앙은 다시 두 차례에 걸쳐 진효공을 만나고 결국 법가로써 강국을 만들 방도를 내놓는다. 3일 동안의 논의 끝에 위앙과 진효공은 한뜻으로 변법을 시행키로 한다. 조정에 이 일이 알려지고 부족 원로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제18회   

    직하학궁 서생 전상은 진효공의 도량에 감동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에 진효공은 충신으로서 장례를 치러주도록 하여 서생들을 탄복케 한다. 위앙은 다시 두 차례에 걸쳐 진효공을 만나고 결국 법가로써 강국을 만들 방도를 내놓는다. 3일 동안의 논의 끝에 위앙과 진효공은 한뜻으로 변법을 시행키로 한다. 조정에 이 일이 알려지고 부족 원로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제19회   

    계속되는 부족 간 다툼에 위앙은 사태 수습에 나선다. 태후는 각 부족 원로들을 모아놓고 경고를 하고 감룡은 변법 지지 의사를 내비친다. 형옥은 맹, 서, 백 부족 장군들의 음모를 위앙에게 알리나 뜻밖에 냉대를 받는다. 다툼에 휘말린 범인들의 명단 중에 백타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진효공은 위앙에게 선처를 부탁한다. 그러나 위앙의 회신을 받고 진효공은 법치의 어려움을 절감하게 된다.

     

    제20회   

    위앙과의 논쟁 끝에 진효공은 법이 민심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7백여 명을 참수형에 처한 사실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위앙의 안위가 걱정된 후영은 벙어리 형남을 호위 무사로 추천한다. 2차 법령이 반포되면서 조정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진다. 태자에게 봉토를 헌납한 감룡의 의도에 경감은 의문을 품지만 위앙은 위법이 아님을 강조하며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제21회   

    미현의 백씨 족장 백룡이 태자를 찾아와 새 법령을 비난하고 태자는 위앙에게 불만을 품게 된다. 미현 현령 조항이 법에 저항하는 백씨 부족민들을 방치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위앙이 직접 나서서 백룡을 잡아들인다. 경감은 미현의 소동에 배후 인물이 있음을 의심하나 위앙은 의연히 받아들인다. 백룡과 조항 등 13명이 참수형에 처해지고 감룡은 조용히 사태를 지켜본다. 변법이 본 궤도에 오르자 백설은 위앙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제22회   

    진국에 도착한 백설은 변화된 진국의 모습에 놀라고 그리워하던 위앙을 만난다. 위앙은 묵가 검객의 습격을 받지만 다행히 위험은 피하게 된다. 감룡 등이 태자에게 봉토를 헌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진효공은 불안감을 느낀다. 진효공은 3차 법령을 앞두고 시찰을 나섰다가 뜻밖에 묵가들의 공격을 받는다. 백설과 매고, 후영은 묵가들을 습격해 진국에서 몰아낸다.

     

    제23회   

    위앙은 후영에게 자객이 들었던 일을 언급하며 슬며시 떠보고 잘못했음을 일깨워준다. 진효공은 묵가의 본거지로 가는 도중 현기를 만나고 현기가 묵가 제자임을 알게 된다. 현기는 변법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효공을 묵가의 본거지로 안내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위앙은 병사를 보내 호위하도록 지시한다. 태자 봉토의 소작농들이 보낸 조공이 모래로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태자는 진노하여 마을 백성들을 살해한다. 이 일로 마을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제24회   

    위앙은 후영에게 자객이 들었던 일을 언급하며 슬며시 떠보고 잘못했음을 일깨워준다. 진효공은 묵가의 본거지로 가는 도중 현기를 만나고 현기가 묵가 제자임을 알게 된다. 현기는 변법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효공을 묵가의 본거지로 안내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위앙은 병사를 보내 호위하도록 지시한다. 태자 봉토의 소작농들이 보낸 조공이 모래로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태자는 진노하여 마을 백성들을 살해한다. 이 일로 마을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제25회   

    영건과 공손가가 형을 받고 관직을 박탈 당하면서 태자의 학살 사건으로 동요되었던 민심이 가라앉게 된다. 형을 받은 후 영건은 집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감룡은 계속해서 사태를 관망하며 칩거한다. 위앙은 태후 앞에서 변법에 대한 결의를 보이고 태후는 위앙을 칭찬하는 한편, 형옥이 위앙에게 마음이 있음을 내비친다. 묵가들과 설전을 벌이던 진효공은 백리요와 백설 등의 도움을 받아 묵가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오해를 풀게 된다.

     

    제26회   

    묵가와 오해를 푼 진효공과 현기는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이별한다. 차영은 진효공에게 영건이 코를 베는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진효공은 비통한 마음을 안고 영건을 찾아간다. 영건은 변법은 반대하지 않으나 위앙에 대해서는 깊은 원한을 품게 됐다고 말하며 형옥과 위앙의 혼례를 허락할 수 없음을 알린다. 한편 뒤늦게 학살 사건에 대해 알게 된 진효공은 영사의 태자 작위를 박탈하고 궁에서 쫓아낸다. 진효공은 위앙의 관청을 찾아가서 영건의 형벌에 대해 거론하지 못 하도록 막으며 변법 시행에 대해서만 논한다.

     

    제27회   

    태후는 영씨 가문의 일을 걱정하며 형옥의 행복을 희생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위앙에 대한 형옥의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을 안 진효공은 후영을 찾아가 중매를 부탁한다. 백설과 위앙도 이 사실을 듣고 마음이 혼란스러워한다. 감룡도 이 사실을 듣고 행동을 개시할 기회로 여긴다. 변법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위앙은 백설을 저버릴 수 없어 진효공에게 사의를 표한다. 경감과 영호의 관계에 진전이 없자 위앙과 차영은 두 사람의 혼례를 주선한다.

     

    제28회   

    진효공은 공자 영건이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독거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한다. 공주 형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위앙에게 시집가겠다고 한다. 위앙은 백설과 떠나려 하지만 백설은 대업을 위해 공주와 혼인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한 채로 진나라를 떠난다. 진효공은 위앙을 대조량 겸 상장군으로 승차시키고 군사와 국정을 통괄할 것을 명한다. 부하들은 위앙의 승차를 감축하는데 위앙은 담담하다. 태후는 직접 영건을 찾아가지만 영건은 위앙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못한다.

     

    제29회   

    진효공은 공자 영건이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독거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한다. 공주 형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위앙에게 시집가겠다고 한다. 위앙은 백설과 떠나려 하지만 백설은 대업을 위해 공주와 혼인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한 채로 진나라를 떠난다. 진효공은 위앙을 대조량 겸 상장군으로 승차시키고 군사와 국정을 통괄할 것을 명한다. 부하들은 위앙의 승차를 감축하는데 위앙은 담담하다. 태후는 직접 영건을 찾아가지만 영건은 위앙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못한다.

     

    제30회   

    영사는 떠돌다 흑림구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변법을 몸소 느낀다. 위앙은 태자가 사람들과 연루되지 않게 잠시 태자의 행적을 감춘다. 영사가 흑림구를 떠나려 하자 그를 사랑하던 여인 흑조는 투신 자살을 한다. 백설은 형남을 통해 서신으로 위앙에게 위군이 하내에 운집해 있으니 미리 대책을 세우라고 알린다. 진효공은 전쟁에 대비해 미리 준비를 시작한다

     

    제31회   

    방연은 여전히 진국이 큰 우환이 될 거라 말하며 진국이 신군을 훈련하기 전인 지금이 섬멸할 최적기임을 주장하지만 공자앙의 반대와 비웃음만 산다. 위군의 첫 전투가 조국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경감에게 전해들은 위앙은 신군 진영에 있던 진효공을 찾아간다. 하곡 기슭에 몰래 자리한 진국 신군의 막사에서는 일사분란하게 훈련이 진행된다. 진효공과 위앙은 법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변법과 법령을 전면적으로 펼치기로 결정하는 한편 신군 정비와 새 도읍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제32회   

    방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국은 한국을 공격하기로 하고한국은 주변국에 지원을 요청한다. 제국은 손빈의 계획에 따라 한군을 지원하기로 하나 상황을 지켜보며 지원 시기를 미룬다. 출병을 앞두고 손빈은 방연이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책략을 세운다.

     

    제33회   

    위국과의 전투에서 대패한 한국에는 시체가 산을 이루게 되고 군주가 사망하자 신불해 또한 자결한다. 손빈과 전기는 마릉도에 매복군을 배치하고 방연을 노린다. 마릉도를 지나던 방연은 매복군의 함정에 빠져 목숨을 잃게 된다. 진국은 함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잃었던 하서 땅을 되찾으려 한다. 위앙이 대군을 직접 이끌고 동으로 향하는 가운데 위국 하서 장군의 보고를 받은 위왕은 의심을 품는다

     

    제34회   

    위왕은 압력에 못 이겨 용가 장군을 석방하고 공자 앙을 사령관으로 용가를 부사령관으로 명하고 진군에 대응한 전쟁을 준비한다. 위앙은 군영 상황을 파악하고 하서에 사는 진나라 사람의 도움으로 병력을 움직이려 한다. 공자 앙은 고의로 하서로 출정하지 않고, 위앙이 궁수부대마저도 보내지 않자 용가와 진비는 불만을 느끼는 한편 위앙이 공격해 오지 않는 데에 불안감을 느낀다.

     

    제35회   

    위앙은 하서 전투를 위한 준비를 마친다. 하서에 주둔한 용가 부대와의 합류를 거부한 채 하동에 진영을 세우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공자 앙의 모습에 위군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진다. 협상 전날, 위앙은 협상에 응해온 공자 앙이 못 미더워 군사 배치를 지시하고 협상 당일 공자 앙과 결전을 벌이게 된다. 하서의 산기슭에서 위국의 정예군은 진군과의 총공격을 감행하나 진군의 전법에 말려 대패하면서 10만 위군이 삽시간에 전멸 당한다

     

    제36회   

    공자 앙은 진국 신군에게 대패하고 포로로 잡힌다. 끝까지 싸우고자 했던 용가 장군은 병사들이 전멸하자 자결한다. 위왕은 진국의 땅을 모두 반환하고 대량으로 천도한다. 그리고 그 후로 위국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위앙은 함곡관을 자안에게 맡기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푼다. 진국은 하서를 수복하고 지난날의 설욕을 씻는다. 진국의 경사를 맞아 진효공은 병사들에게 포상을 한다.

     

    제37회   

    진국은 옛 땅 수복과 함양 천도를 경축하며 대례를 연다. 6국이 축전을 보내오고 위앙은 공을 인정 받아 상군의 작위를 받는다. 전투 승리 후 백성과 대신들이 하례품을 주고 받는 풍습을 따르게 되자 상앙은 법령을 내려 이를 금한다. 법령 반포 후 원로 부족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맹, 서, 백 부족 장군들은 감룡을 찾아가 불만을 호소하는데 감룡은 도리어 그들을 꾸짖는다. 진효공은 상앙과 진국의 미래에 대해 논하며 진국의 백년대계를 세우고자 한다.

     

    제38회   

    위앙은 은퇴할 의사를 비추고 진효공은 이에 놀라 고심하게 된다. 위앙은 상오군의 문제를 처리하러 가고 준법 정신을 재차 강조한다. 진효공은 위앙의 은퇴를 받아들이고 백설과 아들을 만나러 가라고 윤허한다. 위앙은 형남을 데리고 백설을 찾아 효산으로 간다. 공손가는 신분을 숨기고 백설을 찾아오고 백설은 그런 그를 수상하게 여긴다.

     

    제39회   

    상오군의 일을 처리한 후 위앙은 진효공에게 사직하라는 윤허를 받고 백설과 아들을 만나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뜻밖에 자객을 만나고 위앙은 그 자객이 공손가라고 의심한다. 후영이 도착해 가면 쓴 자객에 대해 듣는다. 경감은 진효공이 위독함을 위앙에게 알리고 백설은 돌아가기로 결심한 위앙을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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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0회   

    진효공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곳곳의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위앙은 진효공을 만나 태자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진효공은 백리로 가 영사를 데려오고 영사의 귀환에 모두 술렁이기 시작한다. 영사는 과거를 후회하고 위앙을 스승으로 모시고, 진효공은 영사를 후계자로 적합한지 고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유배지를 떠났던 공손가가 잡혀온다.

     

    제41회   

    상앙은 비밀리에 공손가를 잡아들이라 명을 내린다. 진효공은 영사가 쓴 문장을 검토한 후 상앙에게 알리고 상앙이 나라를 위해 태자 책봉을 하라고 건의하자 영사를 만나 변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진효공의 병이 위중해져 영사와 상앙이 국사를 맡게 된다. 감룡은 이 사실을 알고도 계속 칩거하며 두지에게 신중하라고 권고한다. 형옥은 진효공의 치료를 위해 명의 편작을 찾아간다.

     

    제42회   

    상앙은 비밀리에 공손가를 잡아들이라 명을 내린다. 진효공은 영사가 쓴 문장을 검토한 후 상앙에게 알리고 상앙이 나라를 위해 태자 책봉을 하라고 건의하자 영사를 만나 변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진효공의 병이 위중해져 영사와 상앙이 국사를 맡게 된다. 감룡은 이 사실을 알고도 계속 칩거하며 두지에게 신중하라고 권고한다. 형옥은 진효공의 치료를 위해 명의 편작을 찾아간다.

     

    제43회   

    진효공은 상앙이 군주 자리를 잇길 바라지만 상앙은 자신이 군주가 되면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며 거절한다. 우연히 영사의 법안 처리를 듣게 된 상앙은 안심하게 되고 영사와 진국의 법에 대해 강론을 벌인다. 영사는 6국의 사신들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법 수호 의지를 내보이며 당당하게 대처한다. 진효공은 연회를 열고 대신들은 물론 오랫동안 칩거하던 감룡을 한자리에 모은다.

     

    제44회   

    위앙은 위험 인물을 제거하려는 진효공을 설득해 그 일을 막는다. 공자 영건은 위앙에게 복수하려고 일부러 죽은 척 한다. 공손가는 초국 상인인척 영사를 찾아가고 위앙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거짓을 꾸며낸다. 진효공은 위앙과 함께 함곡관에 오르고 그곳에서 영사에게 가르침을 준다. 진효공은 재위 기간 동안 숙원이던 하서를 수복했다는 사실에 감격해 한다.

     

    제45회   

    진효공이 함곡관에서 숨을 거두자 온 나라가 비통에 잠긴 채 장례를 치른다. 진효공의 승하 소식은 6국에 퍼지고 위국은 이 틈을 타 하서 땅을 되찾기로 한다. 영사가 즉위하고 역사 상 진 혜문왕이라 불리게 된다. 흑백은 상심하여 진효공의 무덤 곁에서 자결하고 왕식이 성을 벗어나 무덤을 지키려 하자 상앙은 법을 어기고 왕식이 복귀하도록 하는 한편, 다시금 은퇴 의사를 밝힌다. 영사는 영건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기뻐하고 감룡은 비밀리에 감성에게 원로들의 움직임을 지시한다.

     

    제46회   

    상앙은 은퇴 전에 정국을 정리하기 위해 원로 부족들을 유인하려고 사직서를 제출한다. 이에 원로들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명사 조량은 상앙을 찾아와 혹독한 관리라고 꾸짖는다. 혜문왕은 경감을 불러 재야인사 등용에 관해 논의를 한다 상앙은 시류를 파악한 후 재야인사 등용을 동의한다. 혜문왕은 공자 영건을 만나 도움을 청한다.

     

    제47회   

    감룡은 군주에게 상앙의 죄목을 밝히며 벌할 것을 청한다. 상앙은 형옥을 설득해 진효공이 유언으로 남긴 법 수호를 위한 군사를 철수시키고 밀서를 불태운다. 영사는 차영과 공손가를 보내 감룡이 고발한 상앙의 반란군에 대해 진상을 밝히도록 한다. 형옥은 영사를 찾아가 진효공의 밀서 내용을 알리며 반란군은 음모로 날조된 것임을 일깨워준다.

     

    제48회   

    영사는 상앙의 수하를 제거하기 위해 경감과 차영, 왕식의 권력을 빼앗는다. 상앙은 저리질을 만나 상군 봉읍을 건설하라는 진효공의 밀서를 해결하려 한다. 공손가와 공자 영건은 상앙을 체포하려 하나 상오 민중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공손가는 자안의 손에 죽고 자안은 공자 영건의 은혜를 갚기 위해 자결한다. 상앙은 뒷일을 형남에게 부탁하고 함양으로 돌아온다.

     

    제49회   

    형남에게 상앙의 소식을 전해 들은 백설은 상앙과 함께 죽을 각오로 진국으로 향한다. 영건은 영사가 상앙을 죽이도록 부추기고 형옥은 상심하여 병을 얻는다. 6국 특사가 조례에 참석해 상앙을 죽이라 압력을 넣고 원로들도 상앙의 처결을 강력히 주장한다.

     

    제50회   

    경감과 차영은 형옥을 데리고 상앙을 만나러 감옥에 간다. 경감과 차영, 상앙 세 사람은 상앙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을 ‘상군서’로 정한다. 백성들은 상앙을 구해달라고 청하고 후영은 감룡 일당을 찾아와 경고를 한다. 공자 영건은 백설에게 그 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조례에서 대신들은 상앙의 처결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원로들은 상앙을 거열형에 처하자고 입을 모은다.

     

    제51회   

    영사는 감룡에게 명을 내려 상앙의 형을 확정하는 일을 태사부와 정의부에서 공동으로 결정하게 한다. 또한 상앙을 찾아가 진국의 앞날에 대해 가르침을 부탁한다. 상앙은 위수 강의 형을 받게 되고 감룡, 영건 등이 주축이 되어 형을 집행한다. 형 집행을 앞두고 백설이 찾아오고 두 사람은 마지막 술을 나눈다. 상앙의 형이 집행되고 진국 산천은 하얀 눈으로 뒤덮인다.

     

     

     

     

    상앙의 말로와 죽음

     

    한 사나이가 입에 재갈을 물리고 수족을 단단히 결박 당한 채로 혜문왕 앞으로 끌려 나왔다. 사나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 었다. 그렇게 끌려 나온 사나이는 불과 몇달 전만 해도 진나라에서 가장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상앙이었다.상앙은 상군이라고도 불린 진나라의 재상이었다.

     

    효공이 임금 이었을 때 삼고초려로 모셔온 상앙은 효공과 의기투합,강력한 법 질서를 마련 하여 춘추 전국시대 열국 중 가장 국력이 미약한 진나라를 재정비하여 막강한 나라로 키웠다. 그러나 강력한 법 정비를 위해서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 했고 공자 건과 공손 가 등 위협적인 정적들은 늘 호시탐탐 상앙을 노려 왔었다.

     

    그러다가 효공이 죽고 그 뒤를 이어 법을 어기다가 폐출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효공이 위독하자 다시 궁으로 들어와 태자가 된  효공의 아들 혜문왕이 뒤를 잇자 드디어 막혀 있던 둑이 터지듯 상앙을 향한 공세가 물밀듯이 들이 치기 시작 했다. 상앙은 끝없는 공세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효공과 이룩한 진나라의 반석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한 만큼 혜문왕을 도와 진나라를 더욱 부국악국으로 우뚝서게 할 생각이었으나 권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그는 효공이 죽기전에도 사직을 자청하였으나 효공은 만류하였고 효공 사후에도  권세에 미련을 버리고 사직서를 내고 낙향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상앙이 결국 재상 자리를 내려 놓고 낙향을 가는 마당에서도 그 위세를 드러 내며 수십의 말과 수레, 병사로 자신을 호위하며 내려 가자 정적들은 그런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여 자객을 보낸다.

     

    미리 첩보를 입수하고 죽을 자리에서 빠져 나온 상앙은 위나라로 피신 하여 위나라 임금 혜왕으로부터 큰 환대를 받자 상앙은 위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진나라에 복수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위나라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의 반감이 극심하였다. 한때 상앙은 진나에 잇을 때 변법을 성공하여 진나라 옛 영토를 찿게 만들었던 관계로 위나라 영토를 노략질하고 살육한 원흉이었으니 뭐라 달리 말하겠는가? 결국 상앙은 자신의 동조 세력을 규합하여 비교적 약소국인 정나라의 변방을 공격해 그곳에 터를 잡고 기회를  보아 다시 진나라로 복귀하기로 결심하였다.

     

    상앙의 이런 움직임에 내심 불안 해진 혜문왕과 그의 측근들은 정나라로 군대를 보내 상앙을 잡아 오도록 하였다. 결국 자결할 틈도 없이 급습당한 상앙은 비참한 모습으로 혜문왕 앞에 잡혀온  것이다. 혜문왕은 상앙을 만 백성이 보는 앞에서 거열형에 처하라 명하였다. 거열형은 네개의 마차에 사지를 묶고 사방으로 당겨 온 몸을 찢기우는 무서운 형벌이었다.

     

    진나라를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약소국에서 부강한 나라로 만든 장본인인 상군 상앙의 말로는 이렇게 비참하게 마감하였다. 많은 이들은 상앙의 잔혹한 법률에 치를 떨기지 했지만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 능력은 인정하였기에 냉혹하도록 인정 없는 정치 논리에 치를 떨며 상앙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이들도 상당 하였다.

     

    드디어 말들에게 채찍이 가해져 왔고 사지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 갔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지난 날의 여러 일들이 스쳐 지나 갔다. 상앙의 온 몸은 속절 없이 허공에 흩어져 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