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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962 : 일제강점기 7 ('야스쿠니'는 일본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의 역사 962 : 일제강점기 7 ('야스쿠니'는 일본에게 어떤 의미인가?)

 

                            

                                                          일제식민지 통감부 건물(철거전 모습)

 

 

'야스쿠니'는 일본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여름 평일에 찿은 신사 모습, "일반인에게는 벗꽃놀이 장소뿐......"

 

덥다. 「Weekly경향」 역사연중기획 취재팀이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한 날은 7월 26일. 바다에 인접한 도시여서인지 도쿄의 습도는 높았다. 온도가 서울보다 3~4도는 더 높아 보였다. 올해는 유난히 더웠던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 만난 일본인도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 경내 하이덴(배전, 拜殿) 전경. 방문객들이 참배하는 장소로, 위패가 모셔져 있는 혼덴(본전, 本殿)은 하이덴 뒤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 도심에 자리 잡은 신사다. 지하철 구단역이나 이차가야역, 이이다바시역에서 도보로 5분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입구. 거대한 문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신사에는 모두 도리이(鳥居)라는 문이 있다. 두 개의 기둥이 있고 가로 질러 위쪽에 다시 두 개의 기둥이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도리이는 성(聖)과 속(俗)을 나누는 기준이다. 야스쿠니의 도리이는 위압적이다. 이 도리이의 이름은 다이이치도리이(第一鳥居). 그러니까 ‘제일 문’이라는 뜻이다. 신사 측의 자료를 보면 “일본에서 가장 큰 도리이”라고 자랑한다. 높이는 25m다. 1943년에 철거된 것을 1975년 ‘참전전우’가 기증해 다시 만든 것이라고 되어 있다. 한참을 들어가면 다이이치도리이보다 조금 작은 다이니도리이(第二鳥居)가 있다. 이 역시 “청동제 도리이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크다”고 야스쿠니 신사 안내 팸플릿에 적혀 있다.

 

민주당 정권교체 후 총리참배 안해
매년 8월 종전기념일(15일)이 되면 이 일대는 전국에서 모여든 참배객으로 북적거린다. 지난해에는 이날 약 15만명이 참배하고 돌아갔다. 단순 참배객이 아니다. 자민당 의원 등 보수정객들의 참배가 줄을 잇는가 하면, 2차대전 당시 군복차림의 우익단체 회원들의 집단시위도 이어진다. 이들이 이날 야스쿠니를 찾는 이유는 일본의 일부 보수우익세력에게 야스쿠니가 갖는 의미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측의 설명에 따르면 야스쿠니에 모셔 있는 영혼의 수는 약 246만6000명. 이들의 공통점은 일본의 시각에서 ‘조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1978년 이른바 태평양전쟁의 책임이 있는 ‘A급 전범’이 합사되면서 야스쿠니 신사는 국제적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일본의 역대 총리가 공식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하면서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는 것이 아니냐’는 국제적 비난을 받아왔다. 타국의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정권의 총리들은 ‘개인 소신’ 등을 내세우며 참배를 강행했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후 총리 참배는 중단되었다. 일본 민주당은 2001년부터 “별도의 전몰자 추도시설을 만들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이에 따라 하토야마 전 총리나 간 나오토 총리 모두 “재임 중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야스쿠니 측은 국제적 비난 목소리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스쿠니 측이 낸 안내 팸플릿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야스쿠니 신사가 다른 나라의 전몰자 추모시설과 다른 점은, 조국 수호라는 공무 집행 중에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고귀한 정령이 모셔져 있다는 것…(중략)…그러나 이는 죽은 이의 영혼을 ‘신’으로 섬겨 숭배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죽은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하는 일본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야스쿠니 신사는 결코 별난 시설이 아니다.” 일본의 ‘전통’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비난이라는 것이다.

 

 


유슈칸(遊就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2차세계대전 당시 제로식(零式) 전투기. 이 전투기는 미쓰비시사가 만들었다.


 

날이 더워서인지 참배객은 많지 않았다. 어쨌든 ‘전통’ 주장은 찾는 이에게는 통하고 있었다. 다이이치도리이를 지나 오테미즈샤(大手水舍), 그러니까 참배 이전에 손과 입을 씻는 정화샘이라는 시설이 있다. 서양인 관광객들이 ‘이것이 일본 전통’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참배 절차를 따라 하고 있다. 손을 씻은 뒤 가는 곳은 하이덴(拜展)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곳 앞에는 경비원이 배치되어 있다. 경비원은 본지 취재팀이 참배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것을 가로막았다. 참배객들의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들었지만 영 탐탁치 않은 표정의 취재팀 분위기가 전달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우익 역사 인식 집약한 유슈칸
야스쿠니는 사람만 기리는 것이 아니었다. 옆에는 전몰마 위령상, 구혼탑, 군견 위령상이라는 것도 있었다. 각각 전쟁으로 희생된 말과 통신용 비둘기, 개를 추모하는 동상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들 위령동상은 각각 1958년, 1982년, 1992년에 세워졌다. 모자상이라는 것도 있다. 1974년 만들어진 이 동상은 전쟁과부에게 헌정된 것이다. 동상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은 어른이 된 자녀들이 만든 것으로, 어머니에 대한 자녀들의 감사의 마음을 상징한다.’

하이덴 옆 쪽에 자리잡은 유슈칸(遊就館)이라는 박물관은 2차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비행기, 대포 등 무기류와 증기기관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 우파의 전쟁과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집약된 곳이다. 한편에는 기념품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사탕이나 민속공예품 같은 평범한 기념품도 있지만 일본국기나 2차 대전 당시 일본 전투기, 군함 프라모델 등이 박물관의 ‘테마’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일본군의 군모 역시 판매되고 있는데 가격은 2300엔에서 5200엔으로 꽤 비싼 편이다. 7월 16일 산케이신문에서 나온 <국민의 유서(國民の遺書)>라는 책이 수백권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점원의 설명에 따르면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는 246만여명이 남긴 ‘유서’ 중에서 감동적인 100편을 선정해 실어놓은 책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기획하여 상영·판매되고 있는 영화 DVD의 주제 역시 비슷하다.

이날 야스쿠니를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에 모여들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다. 땡볕더위를 피해 에어컨 바람에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를 나왔다. 길 건너 경신존황(敬神尊皇) 즉 ‘신을 공경하고 황제를 받든다’는 구호를 크게 써 붙인 우익 방송차량이 유턴하여 정차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안내를 맡은 재일교포 3세 이진환씨에게 보통 일본사람들에게 야스쿠니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들과 두세 차례 와본 적은 있는데, 저쪽(일본 우파) 사람들이 부여하는 그런 의미보다는 봄철 벚꽃놀이에 좋은 장소로 인식하는 것 같다”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들으면 통탄할 이야기일진 모르지만, 어쩌면 그게 정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