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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여름 6 : 광복절에 돌아보는 역사

 

 

 

강남의 여름 6  : 광복절에 돌아보는 역사

 

 

 

 

 

조선의 외교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다. 중국에는 조공(朝貢)을 바쳤고 일본과 여진에는 회유책(懷柔策)을 폈다. 비굴한 사대주의인가. 아니다. 때로는 허리를 굽혔지만, 때로는 죽을 각오로 싸우기도 했다. 당시의 국력과 국제정세에 비추어 가장 유효적절한 생존전략을 추구해 왔을 따름이다. 중앙아시아와 중국대륙을 군마(軍馬)로 휩쓸던 흉노·선비·거란의 나라들은 오늘날 모두 어디에 있는가.

비분강개해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자진(自盡)하는 것은 차라리 쉬울지 모른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괴로운 나날들을 견뎌내는 삶이야말로 지혜와 용기 없이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대륙과 해양의 강대국들 틈에 낀 비좁은 반도에서 창의적 문화, 고유한 언어, 독창적 문자를 지니고 겨레의 터전을 꿋꿋이 지켜온 우리 민족의 삶은 인류역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기적 같은 생명력의 분출이었다.

국제정치학을 배운 적이 없는 우리의 선인(先人)들은 국가의 존립이 '이념의 논리'가 아니라 '힘의 생리'에 의해 좌우되는 냉혹한 현실을 통찰할 줄 알았다. '동북아균형자'의 거창한 꿈은 없었어도, 민족의 역사를 자손만대에 이어가는 지혜를 품고 있었다. '자주'와 '주체'를 입에 달고 사는 오늘의 누군가가 모르는 그 통찰, 그 지혜를.

 

 

사회주의 깃발 아래 신(新)국가자본주의를 추구하면서 짝퉁 시장의 물량경제(物量經濟)로 G2 강국에 오른 중국은 몽골·티베트·위구르 등 이민족(異民族)의 땅을 강점하고 그들의 독립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할 뿐 아니라, 오만불손한 언동으로 옛 식민제국의 패도(覇道)를 그대로 밟아가는 중이다. 일본의 교활한 독도 야욕만으로도 울화가 치미는 터인데, 이제는 중국이 우리의 이어도를 넘보려 한다. 제주 해녀들의 '이어도타령' 속에 절절한 한(恨)을 품고 있는 숙명의 섬,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에서 시퍼런 영겁(永劫)의 혼을 뿜어내고 있는 한반도 남쪽 끝 섬, 그 이어도를.

신생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짓밟았던 중국이 지금은 북한을 사실상의 속국으로 삼고 종주국 행세를 하면서 소위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역사를 중국 변방사(邊方史)에 흡수하려고 안달이다. '굴복을 모르는 고구려의 후손'임을 내세우는 '주체'의 북한이 정작 고구려 역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중국에는 입도 벙긋 못하고 있으니, 도무지 고구려의 후손답지 않다.

북쪽만이 아니다.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티베트의 현자(賢者)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까지 방문했지만, 아직 한국 땅은 밟지 못했다.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역대 한국 정부의 용렬한 태도 때문이다. 백령도에서 불과 30분 거리인 북한의 공기부양정 기지에는 입을 꾹 다문 사람들이, 해양주권과 무역항로의 요충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에는 '중국을 자극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극력 반대한다.

미국산 쇠고기에는 실체도 없는 광우병 혐의를 덮어씌우면서,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불량식품에는 그 흔한 촛불 한 번 켜든 적이 없다. 탈북자들을 붙잡아 북한의 집단공개총살 형장(刑場)으로 묶어 보내는 중국의 반인륜적 행태에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한 옛 인권투사들의 모습에서 홍위병들의 '반문화적' 문화혁명에 박수를 치던 반달리즘(vandalism)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서글픈 아이러니다.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 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시인 롱펠로의 충고다. 미래의 비전도, 역사의 교훈도 모두 외면하라는 뜻일 리가 없다. 낡고 병든 이념의 환상에 눈멀어 '지금 여기'의 삶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한 억압과 빈곤밖에 남지 않은 '껍데기 사회주의'를 동경(憧憬)하면서 제 나라의 정체성(正體性)과 건국 역사를 헐뜯는 자기부정(自己否定)에 대한 질책이기도 할 것이다.

이 땅의 옛 어른들은 중국의 성당(盛唐)시대에도 슬기로운 용중(用中)의 길을 모색하며 고뇌했을지언정, 얼빠진 종중(從中)의 그늘로 움츠러들지 않았다. 일제 암흑기에도 처절한 항일(抗日)의 투쟁 너머로 찬란한 극일(克日)의 꿈을 품고 있었다.

선인들의 숨결을 이어온 광복과 건국의 달이다. 나라의 가장 큰 명절인 8·15가 언제부터인지 기념식을 따로따로 치르는 우울한 국경일, 갈등의 건국기념일로 변질되곤 했다. 8·15를 또다시 우울한 축제로 맞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