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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겨울 6 : 눈내린 겨울 정취,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 본문
우면산의 겨울 6 : 눈내린 겨울 정취,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
새벽 여명
수요일 낮부터 눈이 내렸다. 골목길 눈을 여러번 치우고 다니는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쓸고 또 쓸었다. 영하로 냐려간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진다니 결빙된 도로는 위험하여 당분간 눈이 녹을 때까지는 자전거를 탈 수가 없을 것 같다. 모처럼 늦잠도 좀 푹 자고 우면산도 올라가 아침 공기를 마시게 될 것 같다.
같은 산을 매일 오르는 것은 지루하다. 산의 경치를 주간이면 몰라도 새벽에는 별로 볼 것도 없고 또 혼자 다니기에는 좀 위험하기도 할 것 같다. 특히 여자가 혼자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가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젊은층의 여자들은 혼자서 새벽 산을 오르는 것은 요즘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고 무차별적인 성폭행을 일삼는 경우가 많아 위험할 것 같다.
자전거를 탈 때도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사람이나 걸어가는 사람을 지나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뒤에서 오는 자전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갑자기 팔을 편다던가 방향을 틀 경우에는 부딪히기 쉽다. 인도는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라 인도에서 사고가 나면 자전거가 불리하다. 또 스스로 와서 자전거에 충격을 가하고 넘어지면 골치가 아프게 된다. 물론 자전거 보험은 들었지만......
아침 하늘
목요일도 하루 종일 흐린 날씨에 눈이 내린 도로는 빙판길이 되어 곳곳에서 접촉 사고가 빈발하였다. 제설 작업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폭설에 효과적인 방법은 아직 미온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염화칼슘은 값이 싸지만 효과가 미미하고 제설차는 예산부족으로 충분히 확보를 하지 못하고 있다. 도로에 전열선을 설치하는 방안은 도로 설치 예산이 과다하게 소요되어 우선적으로 응달 구간에 설치한 곳이 더러 있다. 그러나 초기 설치 예산과 과다한 전기료 등이 문제점일 것이다. 또 터널, 교량, 고가차도 구간에는 결빙 온도가 낮아 다른 곳에 비해서 미끄러운 곳이 먾다. 그래서 눈이 내린 이런 동계 결빙 기간에는 과속이나 급정차는 사고를 유발하기 쉽고 오르막 길이나 내리막 길에는 차가 미끄러지면서 충돌하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주택가 주변이 언덕이 있는 곳은 가족들이 미끄러저 다치는 사람도 많다. 특히 나이 많은 노인들은 이런 겨울철에 넘어지면 대부분 골절상을 입기 쉽다.
청춘열차를 타보셨나요?
청춘열차를 타고 춘천을 다녀오다.
지난 2주전에는 친척 자녀 결혼식이 있어 처음으로 청춘열차를 타고 춘천을 다녀왔다. 청춘 열차는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열차라는데, 2층 열차도 있었다. 코레일에 회원 가입만 하면 인터넷으로 예약과 승차권 출력이 가능하고 원하는 곳에 가서 열차 시간에 맞춰 승차하면 춘천까지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급행은 중간 정차역이 없어 조금 더 빠르다.
가평역
우리는 옥수역에서 11시 10분 청춘열차를 탔다. 토요일은 주말이라 2층 열차는 미리 얘약하지 않으면 타기가 어렵다. 나도 예약을 했지만 2층 열차는 자리가 없어 일반칸을 예약했다. 집에서 출발하여 3호선을 타고 옥수역에 도착하니 20분 전이었다. 제 시간에 열차는 정확하게 도착하였고 주말이지만 붐비지도 않았고 비교적 청춘열차는 조용했다. 춘천까지는 가는 열차는 용산, 옥수, 청량리, 상봉역 등에서 일반 열차와 지하철도 이용할 수가 있다. 청춘열차는 도중에 몇 군데 정차하고 계속 춘천으로 달렸다. 지정된 좌석에 앉은 사람 외에는 열차 연결 공간에서 일부 서서 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승차권은 조사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등산복 차림으로 산행을 가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춘천에 일을 보러 갈 경우에는 춘천 가는 길은 대부분 차량으로 경춘가도를 이용하였고 가끔 고속버스를 이용하곤 하였다. 현리에서 근무하던 시절, 현직에 있을 때는 전방을 갈 때 서울에서 양수리를 거쳐 홍천을 경유하여 철정, 아홉사리 고개, 오미재 고개를 넘어 현리에 도착하는 길을 주로 이용했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아홉사리와 오미제 고개를 넘기가 힘들다. 90년대 초 처음 부임지로 가는 날, 간단한 이삿짐을 차량에 싣고 마누라를 태우고 눈내린 아홉사리 고개를 겁도 없이 넘어 갔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부임지로 가는 들 뜬 마음에 아무런 거침없이 고개길을 올라갔지만 별다른 사고없이 그래도 다행히 무시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였던 기억이 난다.
초급 장교시절에는 고등군사반을 마치고 양구로 발령이 나자 사전 준비된 관사도 없이 이사짐을 싣도 무조건 양구로 갔던 기억이 난다. 기는 길도 소양댐을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는데 무척 지루한 길이었다. 준비한 집도 없이 가서 이사짐을 양구에 있는 백두산 부대 사단 비오큐에 내리고 사단 인사처 선배한테 전화해서 잡초가 사람 키 높이로 자란 낡은 15평 짜리 구형 관사에 입주하라는 허락을 받고 집을 수리하고 들어가서 산 적이 있었다. 험한 오지에 가서 근무하는 것을 명예로 생각했고 자부심을 가졌던 시절이었다.
가평역 근방 북한강 전경
그러나 그것은 나의 무지와 정보도 없고 힘도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이라는 점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약삭빠른 동기생들은 수도권 근방을 맴돌며 초급 장교 시절을 대부분을 보냈고 주요 알짜 보직만 차지하고 근무했다. 그래서 그들은 잘 나가는 하나회 선배들과 인간 관계를 맺었고 수방사, 청와대, 경호실, 30단, 33단, 특수부대 등에서 주요 보직을 독차지 하면서 근부 경력을 쌓았다. 그들은 진급도 빨랐고 자신들이 모시던 상관들이 대부분 사단장, 군단장 등으로 잘 풀리니 그들도 따라 근무지를 옮겨 다녔다. 그들의 경력은 휘황찬란했고 수도권을 거의 벗어나는 일이 없었으며 그들은 전방 양구나 현리에서 근무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대부분 하나회 회원들이었다.
청춘열차 내부 모습
오지로 발령난 사람들은 대부분 인사에 관심이 없거나 육본을 찿아다니지도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빽도 없고 힘도 없고 인맥도 없고 돈도 없는 오로지 명예와 충성만 알고 군대 생활을 하던 순수한 사람들이다. 전방 강원도는 폭설이 내리면 통상 눈이 허리까지 빠지고 보급 차량이 올라오지 못하면 소초나 분초가 굶어 죽은 사태가 발생되니 최우선적인 임무가 눈 내리는 날에는 도로 눈 치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이 전투 진지 제설 작업이다. 그런 험지에서 고생은 도맡아 하던 힘없고 빽없는 장교들은 대부분 강원도 오지로 발령이 난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안다. 육군 본부가 어디있는지도 몰랐고 오로지 병사들과 동거동락하면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지휘관이 되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의암댐에서 2군단 사령부를 지나 조금난 더 가면 소양댐이 나온다. 당시에는 군인들이나 군인 가족들이 양구로 들어가려면 홍천으로 돌아가는 비포장길 버스보다 통상 소양댐 배를 이용했다.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배는 사연도 많았다. 휴가 오가는 병사들 이야기며 양구에서 군인 가족 산모가 난산으로 춘천으로 나오다가 배에서 숨을 거둔 이야기라던가 듣는 사람들은 오금이 저린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던 마누라는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런 곳을 오로지 믿을 사람은 남편뿐이고 남편따라 첩첩 산중 오지로 가는 아내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그래서 첯째를 낳기 전에 난 마누라를 대구 우리집으로 보냈다.
어느듯 열차는 남춘천 역을 지나 서서히 춘천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도시의 발전된 모습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춘천도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한 모습이다. 춘천은 서울에서 돈 좀 있는 눔들이 자주 들락거리고 돈을 풀면 춘천 시내 좀 반반한 여자들은 대부분 바람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춘천은 외지인들이 많이 찿아오고 외출이 심한 부녀자들이 바람이 잘 난다고 한다. 그리고 미군부대가 상주하였고 전방 군인들이 많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군인들로 인해 매출이 많고 군인들이 뿌리는 돈으로 춘천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암호 주변과 청평, 가평, 강촌 등지의 경춘 가도 곳곳에는 모텔로 불야성을 이루는 곳도 많다.
춘천은 좁다. 그래서 좀 놀고 싶은 여자들은 서울로 간다고 한다. 그래야 소문이 안나고 몰래 바람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실제 서울을 들락거리는 춘천 사람들 중 본의 아니게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연이란 우연한 기회에 만나는 것, 그것을 우리는 불륜이라 한다. 그러나 나의 불륜은 아름다운 로맨스다.
종착역 춘천역
드디어 춘천역에 도착하였다. 역사도 새로 지었고 미군부대가 떠난 자리는 훵하니 비어 있었고 아직도 개발안을 토론 중이라 한다. 미군을 좇아내고 나니 각종 이권단체들이 서로 개발안을 두고 이견을 벌이고 아직도 결론을 찿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미군 항공대가 주둔하였는데 중동전선에 전반적인 항공 화력을 지원하고 있던 부대였다. 인명 구조는 물론 산불 진압까지 미군 헬기를 지원받았고 전방 고지에 물자를 수송할 경우 수송 수단으로 대형 시누크 헬기로 지원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별 볼일 없으나 나가라고 대모를 하고 난리를 피우다가 미군부대가 이전해 간 모양이다.
전방 지역은 70년대까지 농토도 없고 밭 농사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던 시골 마을이 대부분이었다. 군인들에게 술을 팔고 여자를 공급하는 술집, 식당, 하숙집, 여관 등이 번창하던 곳이었다. 군인들이 돈을 풀고 외출을 나오고 휴가를 가거나 면화를 오는 사람들의 돈줄을 이용하여 생계를 유지하여 왔던 지역이다. 군인들이 외출이 중지되면 그 지역은 당장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지역 유지들이 군부대 지휘관을 찿아와서 사정을 하면서 외출을 허용하도록 청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배도 부르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생활이 다소 윤택해지자 주민들이나 지자체들이 개발을 구실로 군부대를 내쫓고 있다.
이디오피아집 전경
결혼식을 끝내고 마누라와 같이 의암호 호반 둘레길을 모처럼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 시간 정도 걸었다. 내가 젊은 시절 춘천에서 유명하던 곳이 두곳이 있었는데 바로 스케이트를 많이 타던 공지천과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던 이디오피아 찻집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이디오피아 찻집은 닭갈비집으로 변해 있었다. 생도 시절 춘천 성신교대 여학생들과 미팅을 하기 위해 이디오피아 찻집에서 만났던 그녀가 문득 생각난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
호반교 위에서 폼을 잡은 반쪽
공지천 의암호 유람선 선착장
의암호 주변 둘레길에는 갈대가 바람에 살랑이고 멀리 물위에는 물오리 떼가 행복하게 물위에서 한 가족들이 같이 즐겁게 노니고 있다. 멀리 2군단 방향 보충대가 보이고 춘천댐 가는 길이 보인다. 낚시하는 사람도 보이고 석양에 의암호의 저녁이 서서이 저녁이 찿아오고 있는 듯하다. 세월의 흐름처럼 빠른 것이 없다고 했다.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암호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다만 사람들이 바뀌고 사라졌을 뿐이다. 이런 호반 주변에 아담한 집을 짓고 노후를 보내고 싶었는데......
이디오피아 찻집은 호수닭갈비로 바뀌었다.
이디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
공지천 자전거 대여소
호수 넘어 지는 태양, 석양은 항상 아름답다
의암호 둘레길
의암호 둘레길, 가끔 걷는 사람들만 보인다
호수에 걸친 석양
의암호 전경
폼 한 번 더 잡은 반쪽
손주 돌잔치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아들 손주 돌이라 대전을 다녀왔다. 내 마음같아서는 돌잔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지 아들 부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친지 가족들을 초청하여 초졸하게 잔치를 열었다. 물론 내가 자랄 때는 돌잔치는 생각도 못했지만 요즘은 살기가 좀 낳은 편이니 자식 사랑이 이런 행사로 표현하는 모양이다. 누가 자기 자식을 밉다고 할 것인가? 여자는 자식을 위해서 남편을 기꺼이 버릴 수 있지만 남자는 출세와 권력, 즉 대의를 위해서는 가족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본성를 지니고 있다. 1년이 되어서 벌써 손주 녀석이 벌써 걸어다니는 모습이 대견하다. 건강하게 잘 자랐다. 모든 것이 아비와 어미가 지극정성을 다하여 잘 키운 점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하고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고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손주 돌잔치
고속도로변 설경
다시 현실로......
도로가 통제되고 도시가 온통 눈밭이 되어 하얀 천국같은 지옥으로 변한 모습이다. 차가 다니는 대로길을 제외하고 이면도로나 인도 위에는 눈을 제대로 치운 곳이 보기 드물다. 도로 노견은 이미 얼어붙어 도로위 오물들로 검게 쌓여 있고 버려진 쓰레기들은 내린 눈에 가려져 깨끗하게 보인다. 비탈길은 이미 얼어 붙은 빙판이 되어 오르내리는 차들이 가던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 간다. 3일간 간간이 내린 눈으로 이 정도이니 폭설이 계속 내렸다면 교통을 전면 마비되고 산간오지에는 환자가 죽고 굶어 죽은 사람도 생길 것이다. 또 도시에는 교통대란이 일어났을 것이고 전력이 끓어진 곳은 지옥으로 변했을 것이며 난방용, 식량, 물 등 필수 생필품을 서로 더 가져가기 위해 상점마다 아귀다툼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우리 사회가 재난에 대한 대비태세가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된다.
우리 집 골목길 안에는 20여 가구가 살고 조그만한 회사도 있지만 그 누구도 나와서 눈을 치우는 사람을 볼 수가 없고 내가 눈을 계속 쓸어도 다른 주민들은 자기 집앞도 쓸지 않는다. 본인이나 자기 가족이 넘어저 골절상을 입어야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 집 현관 처마는 아래로 빗물이 타고 내려 바닥에 떨어져 반지하 계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어 지하는 비만 오면 물바다였는데, 지난번에 바닥 경사를 조정하고 처마 홈통과 물끓기를 설치하고 콤파운드로 빈틈을 메운 결과 물이 떨어지지 않아 바닥이 얼지 않았고 올라오는 입구는 경사지로 작년에 콘크리트로 계단을 만들었다. 이번에 눈이 내리자 빌라 주민들은 현관 바닥이 얼지 않고 올라오는 경사로에 그 계단이 왜 만들어져 있는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고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퇴근길 강남 성모병원
또 이런 동계에는 골목길 쓰레기도 제 날짜에 내놓는 사람이 드물고 아무 날이나 골목길에 내놓고 방치하자 쓰레기들이 눈과 같이 얼어붙어 수거에도 어려움이 많다. 음식물 쓰레기도 얼어 붙어 말 할 것도 없다. 골목길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어도 그릇을 치우는 법이 없고 고양이가 쓰레기를 뒤집고 헤쳐놓아도 정리하고 치우기는 커녕 바람에 쓰레기가 날려 흩어져 있어도 치우는 사람이 드물고 내부 계단 청소를 하는 사람을 한 해가 다 지나가도 한 사람도 찿아보기 힘들다. 이사갈 때는 이사짐 센타 사람들은 사다리 차를 대기 위해 이사 당일 차를 치워달라고 야단이고 화단을 부수거나 담장을 헐거나 주차 차량을 임의로 옮기고 외부 파손은 물론 못 본척 하고 사라진다. 또 이사가는 사람도 재활용이 불가한 각종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많다.
새벽길을 자전가를 타고 가다보면 도로변에 몰래 내다 버린 각종 재활용 불가 쓰레기를 많아 본다. 길거리는 가는 곳마다 각종 술병, 음료수 컵이나 병, 과자 껍질, 답배갑, 컵라면 그릇, 커피 컵, 담배공초 등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선진국으로 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 배만 부른 아프리카 어린이들처럼 배만 부르지 내면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문화와 문명이 뒤떨어진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는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메리어트 호텔 야경
금요일에는 또 눈이 내렸다. 전력 사정이 위기 단계를 오르내리고 있다 한다. 한수원의 깊은 비리와 부패의 골병은 이제 서서히 이 나라 백성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업체와 짜고 수의계약을 하면서 원전의 부품을 가짜로 교체하고 운영을 하다가 하나 둘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원래의 수명을 다하기도 전에 언제 엄청난 사고를 유발할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퇴근길 강남성모병원 사거리
대선 후보들을 놓고 언론과 국민들은 제마다 한 마디씩 내뱉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고 이정희 후보가 토론에서 날카로운 공격으로 박 후보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입과 설전으로 상대를 이긴다 해서 대선에서 꼭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지지율 3%도 되지 않는 자격도 없고 상식도 없는 좌파 적색 우두머리가 공공연하게 대선 후보로 나오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이 공공연하게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공언을 서슴치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정희 후보를 토론회에 나오게 만든 것은 야권의 표를 분산시키고 도를 넘은 이정희 후보의 언동에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면 박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사상의 자유가 하용된 민주주의 사회라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좌파를 허용하여 국론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유발발시키는 모양새는 국력의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건전한 비판과 균형을 이루는 세력은 상호 감시와 견제로 부패와 비리가 줄어들고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 질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 실정이다. 국론 분열은 분열대로 갈등의 골은 깊어지는 한편 최고 정점의 청와대부터 권력형 비리와 부패를 포함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되고 있는 비리와 부패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현실이다.
당면한 북한의 야욕은 남한을 적화시켜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김일성 집단에서 본다면 그것은 민족을 위한 위대한 통일사업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후가 문제이다. 만약 한반도가 공산화되어 김일성 세습 체제가 한반도 유일한 정부로 등장한다면 앞날이 어떻게 될까? 과연 그들이 말하는 인민들의 천국이 이루어질까? 아니다, 역사를 보면 그 누구도 어떠한 체제나 사상, 종교적 이상주의를 내세우고 혁명을 시도하거나 봉기를 일으켜 대부분은 실패하였지만 성공한 사례를 보면 그들이 권력을 잡고 이룬 사회는 더 부패하였고 일당 독재로 나라는 나락으로 빠진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 공산주의 몰락이 그렇고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것도 그렇다. 그러나 일당 독재의 중국 공산당이 비록 경제적이 발전은 도모하였지만 사회 내부적인 모순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중국이 현대판 강대국이 되자 패권주의가 노골화되고 있으며 주변국들에게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역사를 왜곡시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힘으로 지배하기 위한 각종 음모와 인권 탄압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그동안 공산당 일당독재로 북한 사회는 그동안 군사력 증강에 심혈을 기울여 왔고 최근에는 체제유지를 위한 마시일과 핵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 개발에 국력 대부분을 투자하여 왔다. 그러다보니 경제발전은 후퇴하기 마련이고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에 탈북자가 늘어나고 꽃재비가 시장 바닥이나 들판에서 죽어가고 압록강. 두만강 일대는 먹을 것을 찿아 만주땅으로 강을 건너다가 총에 맞아 죽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부녀자들은 만주땅에서 몸을 팔고 먹을 것을 구걸하며 창녀처럼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평양의 골수 공산당원 일부만 배불리 먹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북한 병사들이 배가 고파 철책선을 넘어 월남하여 귀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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