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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가을 8 ; 인조 시대와 오늘날의 우리 모습

두바퀴인생 2012. 10. 21. 17:03

 

 

 

우면산의 가을 8 ; 인조 시대와 오늘날의 우리 모습

 

 

 

                                                             효령대군의 묻혀 있는 청권사, 효령빌딩, 그리고 아침 가을 하늘

 

청명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다가 비 온 뒤 기온이 다소 떨어졌으나 다시 맑은 가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가을 단풍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탈서울 사태가 벌어지고 고속도로는 차량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가을은 식물이나 돌물에게 결실의 계절이라 퐁요로운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삶의 고통을 벗어버리고 옛 고교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던 것처럼 설레이는 마음으로 출발하였을 것이고 짠한 추억의 기억들도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인간이나 동.식물 등 모든 아름다운 것은 순간이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드는 것처럼 사람들도 언젠가는 단풍처럼 마지막 빛을 발하고 대지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에서 남자아 여자, 부귀공명을 떠나 가장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얼마전  엉덩이 수술로 거의 완치되어 가지만 다른 건으로 지금도 병원에 계속 다니고 있다. 지난 주 병원에서 본 풍경이다. 병원에 가면 접수를 하고 사람들이 진료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다. 나이드신 할아버지, 할머니, 중장년 아저씨와 아주머니, 미니 스커트에 명품 백을 멘 예쁜 젊은 아가씨 등 그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면 하나같이 불안하고 심각한 얼굴이다. 아마 천국과 지옥을 가는 기로에 서서 생전에 살아온 삶에 대해서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어떤 아주머니는 사람이 없는 복도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며 울고 있었다. 삶을 열심히 살아오다보니 어느새 몸은 병들고 심각한 상태가 된 모양이다. 사람들 중에는 여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여자들에게는 부인병이 많고 대부분 힘들게 살아오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나이드신 어떤 부부는 다정히 손을 잡고 진료를 받으려 이리저리 다니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병원은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곳이지만 결국은 의료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병을 부풀리고 환자 한 사람에게 병원에서는 뽑아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하는 듯하다. 일단 나처럼 간단한 수술을 한다면 일단 피 검사, 소변 검사, X-래이 쵤영 등 환자의 몸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 상태를 검사한다. 간단한 수술이라도 수술이 완료되면 입원을 시킨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가능하면 마취가 풀릴때까지 입원을 권유하고 입원 중 한끼라도 더 식사 하도록 권유한다. 또 입원 중 병원비 중간 정산을 강요하고 회복에 필요한 물품을 사도록 권유하거나 의료기구를 추천한다. 그것은 수술, 입원, 식사, 물품 등에서 많은 이윤을 남기기 때문이다. 또 검사 결과에 따라 혈압, 당뇨, 간염, 심전도 검사, 시티 촬영 등 결과에 대해서 기준치 보다 낮거나 높은 각종 비정상 수치에 대해 내과나 외과 등 관련 의사에게 진료토록 권유하며 미리 예약을 받는다. 예약 하루 전에는 친절하게 안내하는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진료를 받으면 1주  후 재진, 2주후 재진, 한 달 후 재진 등 계속 진료를 질질 끌어나간다. 물론 진료마다 필요한 약을 처방해주면 병원 인접 약국은 매출이 급증한다. 아마 인접 약국은 병원에 감사하다고 생각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환자들이 굳이 멀리가서 약을 구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누라 등쌀과 병원 매출에 기여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병원을 다녀야 할 것 같다.      

 

 

                                                                                              내방역 아침 여명

 

 

나의 블로그에는 인조 시대를 끝내고 효종 시대로 접어들었다. 효종 시대 윤휴란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지난 주 고속터미널에 들러 이덕일씨의 저서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란 책을 사서 지금 보고 있다. 선조 시대와 마찬가지로 인조 시대도 조선이 외침으로 엄청난 병화를 입었고 참담한 세월을 보낸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조 시대보다 인조 시대은 통분을 금할 수가 없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이 충과 효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를 유일한 정치 사상으로 삼아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이 곳곳에 넘쳐나지만 그것은 단지 명분 뿐, 내면에 감추어진 이중적인 성향의 인간의 탐욕은 공자의 사상을 펼치기에는 이상에 불과하였고 그런 상황에서도인조 시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광해군의 실정으로 인조 반정이라는 역모를 일으켜 왕위를  이은 인조는 조선 역사상 선조보다 더 무능했던 임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 당시 조정에서 대북파에게 쫒겨난 서인과 남인들의 호응을 얻어 반정에 성공하여 왕권을 빼앗고  인조 시대를 열었으나 정묘.병자호란의 외침을 당하여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무능하였고 백성들은 후금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시기였다. 

 

 

                                                                                      내방역 아침 여명

 

 

블로그에 조선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선조에 이어 인조 시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외침이라는 국난을 당하여 나라의 존망이 불투명했던 시기였고 조선의 역사에서 큰 변곡점을 이루는 사건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은 이러한 국난을 당하여 어쩌면 망할뻔했던 나라를 다시 유지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았고 그러한 국난을 당한 후에도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지 못한채 왕실과 지도층이 권력만 탐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결국 나라가 일제에 어떻게 망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단초가 될 것이다.

 

조선은 두 번의 큰 외침을 당하면서 망국의 기로에서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다시 명맥을 유지했다는 점이 경이롭다. 선조대의 임진왜란은 그래도 명나라 지원군의 도움과 조선의 일부 부유한 사대부들이 일으킨 의병, 그리고 세계 해전 역사상 영원히 남을 전적을 세운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그리고 행주대첩의 영웅 도원수 권율 등 명장들이 있었기에 다행히 국본을 다시 세울 수 있었으나, 인조 시대의 정묘.병자호란은 오랑캐로 천시하고 무시해왔던 조선이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국본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점이 특히하다. 그래서 한마디로 이씨 왕조가 사라질뻔 하였고 나라가 멸망당할뻔 했던 대사건이었다.

 

조선의 이씨 왕조와 사대부, 그리고 양반 계층이 유교를 국시로 삼아 이상론에 불과한 사상의 공리공론에 빠져 말과 글에는 충효가 철철 넘치는 사회였으나 막상 국난을 당하면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지도 못한채 제 몸 사리기에도 바쁜 졸부로 변했던 것이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도로 양반 계층이 나머지 신분 계층 대부분을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노예처럼 부리며 자신들은 치부하고 부귀영화를 누렸왔던 계층이었다. 양반, 즉 사대부인 그들만의 나라였고 그들만의 사회였던 것이다. 그래서 양반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와 노비를 바탕으로 평생 놀고 먹으면서 글 공부나 하여 과거를 보아 출세하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고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도 초야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첩도 여럿 거느리고 성적인 만족을 누리면서 살았던 평생 세습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역사서에 이성계의 반역을 좋게 표현하여 '위화도 회군'이라는 것은 결국 '역성혁명'이었던 것이다. 쿠테타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고려 시대 창궐하여 부패의 극을 달리던 불교의 폐해를 실감하고 유교를 국시로 삼아 숭유억불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이후 조선은 일부 시대를 제외하고는 정도전이 주장하던 신권우위의 조정이 유지되면서 신권이 왕권을 음양으로 구속하였고 왕자의 난, 세조의 왕위찬탈, 중종 반정, 인조 반정을 통해 수없이 배출된 각종 훈구공신들에 의해 권력이 자손대대로 유지되면서 200여 년 가까이  평화기를 누려왔다.

 

그러면서 임금들은 항상 왕권 유지와 승계, 정통성 확보에 연연하였고 성종대부터는 훈구 세력에 억눌린 왕권을 세우기 위해 재야 사대부들을 등용하여 훈구 세력에 대응하는 세력으로 키우고자 하였으나 훈구 세력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사대부들을 각종 사회를 일으켜 숙청하는 데 성공하기를 여러번, 그러나 선조대에 들어서는 유교의 이상론에 근거하여 상호견제를 이루도록 당쟁을 조장하는 한편 결국 훈구 세력들을 몰아낸 사대부들이 권력을 잡자 이제는 그들끼리 다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군자의 당'이 아닌 '소인의 당'에 불과한 학연, 지연에 다른 파벌과 분파를 조성하여 조정의 각종 정책마다 백성과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한 당쟁이 아니라 당론에 따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당쟁을 일삼다가 임진왜란을 맞았던 것이다. 모든 사상이 그러하듯이 이상은 좋으나 현실은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탐욕이 굴곡진 역사를 이어왔듯이 그들도 당쟁의 세월을 보내면서 내부적으로는 점점 부패하여 갔으며 국제정세에 까막눈이 된 채 문약에 흘러 무를 천시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연적으로 국방은 소홀해져 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전화를 겪으면서 선조와 조정의 무능함이 여지없이 드러나면서 왕권이 실추되었고 적통 후계자 얻기에 고심하던 선조가 50줄이 넘은 나이에 10대의 인목대비를 맞아들여 영창대군을 낳으니 광해군의 몰락과 인조반정의 불씨는 여기서 이미 비롯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전란 중 전공을 세운 의병 출신 등 대북파의 강력한 지원하에 어린 인목대비의 고심 긑에 내린 언문 교지로 어렵사리 왕위를 승계하게 된 광해군은 임진.정유 7년 동안 전쟁의 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란 당사자로써 전후복구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한편으로 만주 지방에서 나름대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태양처럼 떠오르는 후금과 만력제 이후 저물어가는 명나라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에 고민하였다. 광해군은 전쟁의 참상을 이미 임진왜란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기에 중립외교를 펼치며 조선이 전화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강홍립의 조선군을 명의 요구에 의해 파견하면서도 강홍립에게 밀지를 내려 적절히 대처하라는 등 절치부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통성 부재라는 불안한 왕권은 물론 대북파는 자신들의 세력을 확고히 하기 위한 일련의 정적 제거 과정이 자신을 옹립한 대북파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그래서 당시 왕권을 위협하던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의 유배와 살해, 인목대비 유폐 등 대북파들의 지나친 숙청작업으로 인해 '폐모론'과 '폐륜군주'라는 유교 사회의 절대적인 도덕 및 윤리 추락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친형을 잃은 능양군이 복수를 칼을 갈고 있었고, 조정에서 쫓겨난 서인.남인들이 뇌화부동하여 반정의 싹이 터고 있었던바, 그들의 명분은 대명사대론과 폐륜군주와 폐모론 등 그럴듯한 충효의 논리를 내세웠으나 속으로는 자신들의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 서로 영합함으로써 인조반정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쿠테타가 일어나 광해군이 좇겨나고 능양군이 즉위함에 바로 인조였다.

 

  

                                                                                                  청명한 아침 하늘

 

결과론적으로 인조는 태어나지 말아야할 인물이었다. 인조반정은 '반정'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 쿠테타'였다. 오로지 대북 세력에 의지한 광해군의 실정이 그 원인이 되었지만 광해군의 결정적인 실수는 너무나 많은 정적 제거와 인목대비의 유폐였다. 반정의 명분 중에 '폐모론'과 '폐륜군주'라는 부정적인 낙인은 재야 사대부들의 호응을 얻게 되었고 반정에 동조하는 세력을 얻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인조 반정은 광해군 주변 인물들이 대부분 이미 반정군에 포섭된 상태였고 반정의 기미를 알면서도 보고를 받고도 광해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임금을 호위하는 훈련도감 군사들이 반정군에 창의문과 궁궐문을 스스로 열어주는 바람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반정군이 밀려들자 광해군은 부랴부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으나 결국 반정군에 체포되어 강화도에서 오랜 유배생활 동안 복위를 꿈꾸며 한많은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제주도에서 눈을 감았다. 광해는 반정의 기미를 알아차리고도 별다른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의문이다. 어쩌면 그는 더 이상의 왕권유지는 무의미하고 불가하다고 생각하였을까?  

 

반정에 성공한 능양군(인조)는 김류, 이귀 등 반정 공신들에게 휘둘리는 임금이 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이들과 상의하여 결정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한마디로 반정군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 임금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당시 후금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무서운 속도로 궐기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던 시기라 명나라가 후금과의 전투에서 계속 무너지면서 명의 멸망도 머지않은 시기였고 조선의 대명사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태도에 불만을 품은 후금의 노골적인 압박이 시시각각으로 조여오던 시기였다.

 

그러나 인간 만사가 그렇듯이 성공과 자만 뒤에는 반드시 추락이 기다리고 있는 법, 반정공신들의 권력독점은 물론 그들끼리도 서로 권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반대파에 대한 음해와 중상모략을 일삼다가 급기야는 반정공신이며 서북지역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이괄을 음해하여 궁지로 몰자 이에 격분한 이괄이 서북 지역 방어군 태반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괄의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내려오면서 도원수 장만이 있던 평양을 우회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토벌군을 격파한 다음 한양으로 진격하자 인조는 급히 공주로 피난을 떠나게 된다. 이어 이괄은 반정군 사상 최초로 한양을 무혈 점령하고 승리에 도취해 자만에 빠져 있다가 반정군을 뒤다라 온 장만.정충신 등이 이끈 관군이 무학고개 근방 안산에서 한양을 위협하자 관군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이다가 대패하게 된다. 이에 이괄을 비롯한 반란군은 사태가 기울어진 것을 알고 남은 일부 기병 병력을 이끌고 몰래 한양을 빠져나가 이천으로 도망을 치게 된다. 그러자  이미 반정군이 대패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도망치는 등 패배를 실감한 이괄의 수하들에 의해 이괄을 포함한 반정군 지휘부가 대부분 살해되면서 이괄의 난은 허무하게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괄의 난으로 서북방면 방어군 태반이 반정군에 가담하여 소멸되는 바람에 서북 방면 방어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양으로 돌아온 인조와 조정은 반정 사태를 수습하며 흩어진 민심을 무마하는 한편 서북 방면의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병사와 물자를 보급하려도 국가 재정이 바닥난 상태라 병력 보충이 거의 불가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종심방어와 축차방어 두 가지 방어 전략을 놓고 왈가왈부 하던 중 '청북포기론'이 대두되어 결국 청북 지역을 포기하고 강화도와 남한산성을 잇는 선에서 최후 방어선을 정하여 적과 결전을 벌인다는 전략을 세우고 두 곳을 축성하기로 하고 강화도를 축성하면서 경기.어영청 병력과 남도 수군 등으로 보강하였으며 남한산성에 수어청을 설치하는 등 방어 태세를 준비하였다. 당시 청북 지역은 후금의 위협과 관리들의 수탈, 가도에 머물고 있던 명나라 모문룡의 오랜 작폐로 인해 인구가 태반이 빠져나가고 농토가 황폐한 상태로 무인지경이나 다름이 없어 방어의 실효성이 의문시되던 상태라 이에 조정에서 결정한 방어 전략이었다.

 

그러나 김자점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축차방어 전략을 채택하여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 선에서 후금군을 축차적으로 방어한다는 개념을 주장하여 그 전략에 따라 주요 지역 산성을 보강하고 후방의 병력을 보충하는 등 방어준비를 하였으나,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를 못하였다. 실제 정묘.병자호란 시에는 그러한 전략이 아무런 역활을 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후금군은 기병을 주축으로 조선군이 주둔한 산성을 우회하여 평야지대를 통해 신속하게 남하하는 바람에 주로 산성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은 아무런 역활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군은 후방 지역에서 올라온 병력은 오합지졸로 훈련이 제대로 되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후금군의 철기병인 팔기군을 방어할 수 있는 전술도,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보병 위주의 오합지졸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조선군은 후금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미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의 대기병 장애물과 조총 운용 전술을 모르고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기병 전술을 전개하다가 7천 조선군이 전멸한 전례가 있었다. 그러나 정묘.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은 후금군의 팔기병을 전혀 효과적으로 방어할 무기나 전술도 개발하지 못했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였으니 그동안 조선 조정이 반정과 반란, 내부 갈등 등으로 국력배양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고 얼마나 군비 혁신에 소홀하엿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결국 병자호란은 남한산성에서 46일을 버티다가 근왕병들의 대패와 강화도의 함락, 지독한 혹한, 그리고 군량이 떨어지자 인조의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으로 끝났다. 삼학사와 소현세자 봉림대군 등 볼모는 물론 일부 사료에는 50만이 넘는 포로들이 끌려갔다고 한다. 남자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은 성노리개로 전락하여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연명하다가 다행히 가족들이 돈을 구하여 속환되어 돌아오기도 하였으나 가난한 가족은 그것조차도 어려운 실정이라 통곡소리만 넘쳐나고 있었다. 또 일부 포로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도망쳐 왔지만 청의 강력한 요구로 다시 잡혀 청으로 끌려가서 발목을 짤리는 혹형을 당하였다. 사대부 부녀자들을 포함하여 석방되어 돌아온 여자들은 이미 청나라에서 이눔 저눔에게 더렵혀진 몸으로 지금의 홍제동 근방 냇가에서 몸을 씻고 환향녀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가 외면하거나 손가락질하는 형편이었으니 그녀들이 집으로 돌아와도 살아갈 엄두를 못내고 이혼을 당하거나 스스로 자결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집을 나가 거지가 되고 미친년이 되어 전국 산천을 떠돌다가 굶주림과 약탈, 강간 등을 당하는 등 이름모를 산하에서 소리없이 죽어갔다.

 

이것이 무능한 지도자와 지도층을 만난 백성들의 고통이요 슬픔이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다. 이런 조상의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원통하고 분함을 억누르기 힘들고 슬픔과 눈물이 절로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후손들이 아니다. 이게 조선의 역사인가? 이것이 이씨 왕조라는 조선인가? 이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 백성들이 한없이 불쌍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조선의 이씨 왕조와 조선 사대부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현상이 나만의 현상인가?

 

우리들이 싸이의 말춤을 추며 즐기고 있을 동안 지금 우리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과거 인조 시대에 버금가는 비참한 역사를 다시 반복하려는 듯하다. 풍전등화같은 이 시대의 난국을 우리는 과연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를 우리 모두가 인조 시대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격변하는 국제정세와 시대의 흐름, 내부적인 취약점, 각자의 사고와 생각 등을 한 번 쯤은 곰곰히 생각해 볼 때일 것이다.

 

 

 

 

                                                                                        우면산의 가을 꽃

 

 

인조 시대 이후 3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과연 조선의 인조 시대를 넘어서는 선진 사회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물론 과학과 문화가 발전하였고 사회가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고난의 시기를 벗어나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지금은 비만이 넘쳐나고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선진국 문턱까지 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이 바뀌었고 세월만 흘렀을 뿐, 지금 우리 주변은 인접한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자신의 세력하에 두기 위해 궁리에 몰두하고 있고 호전적인 북한 집단은 통일전쟁을 언제라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들은 그러한 위협과 우려 속에서 살아남을 전략을 수립하고 내실을 기하며 국력배양에 전력하고 있는지를 한 번 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인조 시대에 버금가는 지금 한국의 모습을 비교하기 위해 최근 사설을 몇 가지 골라 올려 본다.

 

 

블법.탈법 폭로 대선전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폭로한 NLL(북방한계선) 논란과 민주당 배재정 의원이 공개한 정수장학회 관련 통화 기록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면서 새누리당 박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 대선전이 불법.탈법 폭로 대선전으로 나라 꼴이 접입가경이다.

 

대선 후보 진영들이 위기의 미래를 논하기에도 바쁜 이 시점에 상대방의 과거사에 험집 내기에 혈안이 된 모습들이 우리 정치 수준이며 현실이다. 하는 골들이 인조 시대 인조반정을 성공하고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과거사에 매달려 대명사대주의에 빠져 결국 정묘.병자호란을 당하여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갔던 그 시절이 떠오르게 한다.

 

여야가 40년 전 유신(維新)을 놓고 지금도 논란을 벌이는 이유는 정치가 거창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불법 부당한 수단을 쓰고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순간 민주주의가 형해화(形骸化)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입으론 '새 정치'를 말하면서 불법이나 부도덕한 수단을 서슴없이 동원하는 건 민주주의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다.

 

 

 

 

 

국가 지정기록물, 30년 보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 국정 관련 기록물을 제대로 인계하지 않은 데다 기록물 사본을 사저(私邸)로 무단 유출해 크게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대통령이 재임 중 생산한 기록물은 국가의 소유라는 점에서 명백히 잘못된 처사였다.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느냐를 놓고 여야 간에 공방전이 일면서 대통령 관련 기록물의 열람 문제로 논란이 뜨겁다. 발언 여부는 회담록 내용을 확인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

2007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반적인 비밀기록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지정기록물’이라는 항목을 따로 두었다. 지정기록물은 지정권자인 대통령 본인 외에는 10년, 15년, 30년의 보호기간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열람할 수 없고, 보호기간 내에 열람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게 했다. 군사 외교 통일에 관한 비밀뿐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사생활과 정치적 견해를 담은 기록도 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기록원에 넘긴 825만여 건의 기록 중 34만 건이 지정기록물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 회담록은 보호기간 30년의 지정기록물로 분류돼 있다.

성종이 죽으면서 향후 100년 간 폐비 윤씨 관련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죽었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일정 시한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일 수 있으나 앞으로의 대북 정책을 수림해 나가는 데는 전임 대통령이 추진해오던 정책들이나 상대방과 주고 받았던 각종 내용들을 다음 대통령에게 인계인수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국가 정책이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면 단절된 상태로 새로운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협상 상대와 일관된 국가 정책을 펼칠 수가 없을 것이다. 무슨 큰 죄를 지은 내용이 아니라면 숨길 필요도 없을 것이며 그것도 법을 만들어 보호했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국가의 안위와 관련된 것이거나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기록물은 일정 기간 비공개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정기록물이라는 것을 만들어 퇴임 대통령이 임의로 최장 30년까지 내용은커녕 목록조차 아무도 못 보게 대못질을 한 것은 국정의 연속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이 무슨 숨길 것이 그렇게 많았을지도 궁금하다. 잘못된 법은 지금이라도 합리적으로 고쳐야 한다.

국가나 사회나 어디에서도 직책을 인계인수할 때는 모든 업무와 관련 문서를 후임자에게 인계인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음 대통령에게 상세한 국가 현안에 대해서 인계인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정권 교체시기에 이러한 단절된 불법적인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자격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정잡배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일반 회사 나 직장에서도 자리를 교체해도 반드시 업무를 인계인수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다. 그리고 주요 현안은 반드시 후임자에게 주지시키고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는 왜 그런 졸부같은 짓을 했는지가 의문이다. 그것은 국민들이 졸부같은 그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잘못 뽑았다는 결과일 것이다.

 

 

 

 

재난 조치에 대한 한국의 후진적 수준

지난 15일의 독일 바트 팔링보스텔 지역 식품공장 유독가스 누출 사고가 났는데, 지난달 27일 구미 불산가스 사고와 비교할 때 우리 나라의 재난 조치에 대한 수준이 후진국 수준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독일 식품공장 유독가스 저장탱크엔 구미 사고 때 탱크로리에 있던 양의 1.5배에 달하는 1만4000L가 들어 있었는데 독일는 사망자도 한 명도 없고 병우너을 찿은 사람도 거의 없을 정도였으나, 구미에선 5명이 죽고 1만1300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주변 농지와 과실, 농작물이 대부분 말라죽고 토양도 심각하게 오염되어 불안감에 주민드링 이주를 결심하고 줄줄이 그 지역을 떠나고 있어 많은 구미 시민들이 탈 구미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선 사고가 나자 공장 직원 250명이 즉각 대피했고 소방관 1000명이 투입되었는데, 소방대원 대부분이 우주복처럼 생긴 완벽한 방호복을 입은 상태였다. 구미에선 소방관 350명이 출동했지만 방호복이 6벌밖에 안 돼 맨몸으로 물을 뿌렸다. 독일 소방관들은 1명당 작업시간을 20분씩으로 제한해 유독가스 방제작업을 폈지만 구미 소방관들은 현장 출동 후에야 가스 누출 사고라는 걸 알았다. 구미 소방관 가운데 기침·발진 등으로 치료받은 사람이 250명이다. 독일은 인근 고속도로 통행을 막고 열차도 사고 지점 근처 역엔 서지 않도록 했지만 구미에선 인근 공장들이 납기일을 맞춰야 한다며 대피 명령을 무시하고 계속 가동했다.

전국에 유독물질 취급 업소만 6000곳이리고 한다. 대도시 가스·통신·교통·금융 인프라가 멈춰 서는 사고가 터지거나 고층빌딩 화재라도 발생하면 얼마나 큰 혼란이 빚어질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재난.재해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와 재난부처의 수준이 이정도이니 아직도 선진국은 멀었고 후진국 수준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 인권을 무시하는 사회, 서민을 봉으로 생각하는 정부와 기업, 불안함 삶을 살아야 하는 국민들이 불쌍할 뿐이다.

 

이러한 모습은 360여 년 전  조선이 병자호란을 당하여 무능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한 후 50만 이 넘는 조선 백성들이 포로들이 청나라에 끌려가 부녀자는 능욕을 당하고 청 관리나 병사들의 성노리개가 되었고 첩이 되거나 집안의 노예가 되었다. 또 남자들은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팔려가고 그나마 청에서 도망쳐온 사람은 다시 청나라로 잡혀가 발꿈치를 짤리는 혹형을 당하여 평생 일어서지 못하는 병신이가 되었고,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은 그래도 돈을 주고 속환되어 돌아오다 조정의 지시로 홍제동 근방 냇가에서 몸을 씻고 환향녀가 되어 무학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동네에서는 환향녀라 손가락질 하며 손가락질 하고 그래서 집안에서는 이혼을 시키거나 쫓아냈다. 그래서 수많은 환향녀 부녀자들이 스스로 목을 메고 자살하거나 집을 나와 길거리를 떠돌다 거지가 되거나 미친년이 되어 이름모를 산하에서 외로이 사라져갔던 인조 시대의 조선 백성들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한국 청년 희망 직업이 우리 사회의 미래인데......

시대가 불안하긴 불안한가 보다. 대학생 희망 직업 1위가 공무원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 이제는 중고교생들이 희망하는 직업조차 교사, 의사, 공무원이 되어버린 시대가 왔다고 한다. 그런 직업들을 결코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직업을 택한 그들의 이유다.

그래도 명분이 분명한 교육에 이바지하고 싶어서, 사람을 살리는 인술을 펴고 싶어서, 나라 정책과 살림에 기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들이 내세우는 대부분의 이유는 ‘안정된 직장’이기 때문이다. 안정을 원하는 어린 청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나라의 미래가 불을 보듯 뻔한 느낌이 든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지언정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10대란 이름이 가진 ‘주제’이다. 불안을 꿈꾸기엔 너무나 아까운 젊음이 있고, 안정을 희망하기엔 아직 걸어보지 못한 너무나 많은 길이 있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기 위치도 모르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따위는 가슴에 꽁꽁 박아 둔 채 자기가 해야 할 일들,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일들만 생각하며 꿈을 정해버리는 그대들에게 청춘은 너무나 아깝다.

인생을 80평생으로 누구나 태어나면서 25억이 예치된 인생통장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1초=1원으로 치면 선택하라면 대부분 시간을 선택한다. 요즘 1원짜리 동전은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루 24시간은 60초*60분*24시간= 86,400원이 되고 80 평생은 25억원이 된다. 그래서 하루 86,400원이라는 인생시간이 열심히 일을 하던 안하던 저절로 자신의 인생통장에서 빠져 나간다. 그만큼 젊음은 인생시간이 충분하고 무엇이던지 도전하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안정을 추구하면 삶은 안정될지 몰라도 지루해진다. 매일 반복된 공무원 생활 30~40년 정도 하고 나면 어치피 모든 구조는 피라미트 구조이기에 성공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일반 공무원은 1~2급 공무원, 장.차관이 되는 게 최고의 출세가 될 것이며 총리나 대통령은 정치적인 문제이다. 공직은 안일무사에 빠지기 쉬우며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은 군대로 치면 부사고나 이하를 말한다. 사무관은 별도의 시험을 거쳐 선발하는 것처럼 군대로 치면 소위로 임관하는 것을 말한다. 사무관이 되야 출세가 가능하고 소위로 임관해야 장군을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공무원이나 군인, 경찰이 가난한 것은 오로지 직급에 따른 봉급이 수입의 전부기 때문이다. 물론 맞벌이나 부부 자영업은 가능하다. 그러나 퇴근 후 야간만 가능하고 일직, 훈련, 비상 대기 등 근무하는 날에는 직장에서 나오루 수도 없다. 그래서 열심히 부를 축적한 사람이나 상속을 받은 사람,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린 사람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난할 수밖에 없고 돈에 취약한 것이 공무원들이다. 그래서 뒷돈이나 밥이나 술을 공자를 먹는 공리하면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허가 부서, 공사 시행.감독 부서, 예산 관련 부서, 계약.납품 등을 취급하는 부서 등지에서 근무를 선호하고, 업자나 업체와 인간 관계를 맺고 직구너을 이용하여 혜택을 주고 대가성의 뇌물을 받는 등 뒷거래를 하기 쉬우며 그래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독약인지 양약인지도 모르고 날뛰는 공무원들은 결국 비리가 적발되면 경.중징계 등 처벌을 받게 되면 공직 사회에서는 영원히 사장되기 쉽다. 심지어 감옥 생활을 하거나 노숙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고 좇겨나면서 퇴직금이나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하다하다.

 

군대를 예를 들면 사관학교를 졸업한다고 모두가 장군이 되는 게 아니다. 육사를 예로 들면 매년 200~300여 명 임관하여 1차적으로 장군이 되는 숫자는 대략 30~40명에 불과하고, 2성 장군인 사단장은 그 중에서 10~15명, 3성 장군인 군단장은 사단장 중에서 4~5명, 대장인 군사령관은 2~3명이며 육군총장이나 합참의장은 그 중에서 나오던가 한 사람만 나온다.

 

그래서 정년까지 근무하고 연금이나 받고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중도에 퇴직한다면 사회에서는 천대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사회초년생이 아니라 사회이등병이라고 부른다. 일반 공무원, 군인, 경찰, 교사 등 공직 출신자들은 퇴직과 동시에 주변 사기꾼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기 쉽고 잘못 당하면 퇴직금은 물론 집과 친척들에게 빌린 돈까지 모두 털리고 알거지가 되는 경우도 하다하다. 나의 동기생 한 사람도 퇴직 후 사기를 당하고 부인과 이혼하고 집을 나와서 지금도 노숙자가 되어 구걸하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피어나지도 않은 청춘들이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존재들이다. 감히 말하건대, 안정만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는 청춘에 대한 모독이다, 도전하는 일보다 안주하는 일을 먼저 찾으려 하는 것은 스스로 미래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청춘들이여! 너희 자신을 알아라. 너희를 스스로 한없이 낮추지 마라. 어금니 꽉 깨물고 부닥치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체조 협회의  주도권 알력

리듬체조의 '요정' 손연재 선수가 17일 이탈리아 초청 대회인 '세리에 A'에 선수 등록을 하기 위해 출국하려고 인천공항에 갔다가 항공편 예약취소 통보를 받고 돌아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는 이탈리아 체조협회가 e-메일에서 '대한체조협회로부터 손연재 선수가 오늘 출국하지 못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아 비행기표를 취소한다'고 밝혀 왔다고 한다.

손 선수의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는 손 선수가 참가를 희망했고 옐레나 리표르도바 코치도 출전을 권장했는데 체조협회가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체조협회는 선수 등록을 위해 이탈리아까지 간다는 건 지나치다는 판단 아래 선수 보호 차원에서 불참을 통보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손 선수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선수 관리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스포츠계의 알력 때문이라는 게 스포츠계의 지적이다. 협회 입장에서는 올림픽 이후 상업적 활동에 선수가 휘둘린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그동안 공들여 키운 선수를 협회가 발목을 잡는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중요한 건 매니지먼트사도 협회도 아닌 손 선수다. 손 선수는 아직 10대여서 혼자서 자신의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선수에게 이처럼 상처를 안겨준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가고 싶은 대회에 참가해 기량을 겨루고 경험을 쌓게 하는 건 선수에게 중요하다. 그건 협회가 오히려 도와야 할 일이다. 협회는 수많은 선수를 일일이 관리할 수 없다. 따라서 그동안 매니지먼트사가 선수를 관리해온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

매니지먼트사도 선수 입장을 고려한 합리적 관리가 절실하다. 실제로 손 선수는 런던 올림픽 이후 각종 스케줄로 바쁜 일정을 보내 왔다. 손 선수는 스포츠 선수로서 꾸준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기량도 더욱 길러야 한다. 각종 국제대회 참가를 통해 경험도 풍부하게 쌓아야 할 처지다.

자라나는 선수의 미래를 위해 대한체조협회와 매니지먼트사가 한 발씩 양보해 접점을 찾아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손 선수를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는 것은 협회와 매니지먼트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체육 관련 각종 협회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각종 비리와 부패,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

최근 공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고 있는 공기업이 엄격한 잣대로 공직윤리를 지키기는커녕 각종 비리를 일삼거나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이 "민간 기업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비리의 백화점"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횡령·도박·마약...' 범죄의 온상 공기업=경마장을 운영하는 한국마사회는 비리의 온상임이 드러났다. 직원들이 공금 횡령은 물론 도박, 향응 등 비리의 백태를 보여준 것.

 

김우남 민주통합당 의원은 마사회 직원들이 2007~2009년까지 현금과 한우선물세트, 장뇌삼, 룸살롱 비용 등 총 32회에 걸쳐727만3000원의 향응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82회에 걸쳐 6676만6000원을 횡령한 직원이 적발됐는가하면,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도박한 직원, 향정신성 의약품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투약하다 적발된 직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기를 파는 한국전력엔 전기를 도둑질한 직원들이 많았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 6월까지 한전 임직원 및 검침원이 전기 사용량 등을 조작해 전기요금을 내지 않은 사례가 13건에 달했다. 특히 한 직원은 10년간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저렴한 일반용 전기를 주택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만경영' 아이콘 공기업, "국민혈세 펑펑 낭비"=사기업과 달리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들의 방만 경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13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안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가 불미스러운 일로 파면된 직원에게도 수억 원의 퇴직금을 줬다고 지적했다. LH공사는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직무상 비리로 파면·해임된 직원 19명에게 총 5억1274만 여원의 퇴직금을 지급했는데,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란 분석이다.

 

농협은 11조원의 빚까지 져가며 추진한 신경분리 이후 임원 숫자를 늘리고, 기본급의 700%까지 상여금을 지급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주홍 민주통합당 의원은 농협이 신경분리 이후 임원을 290명에서 348명으로 20%나 늘렸다고 밝혔다. 또 농협 금융지주 대표 연봉이 2억7000만원이고, 생보 대표가 2억5000만원인데 기본급의 80%까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부장급이 포함되는 M급이 연봉이 1억2000만원이고, 직원들도 기본급의 700%까지 상여금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유연백 지식경제부 감사관은 "국민들을 위해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기업들이 투철한 사명의식 없이 범법행위를 하거나 방만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며 "주인의식이 결여됐기 때문에 이 같은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국정감사를 계기로 엄격한 내부통제 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리백화점 농협, 차라리 없애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농협의 몰염치 경영이 다시 도마위에 올랐는데, 국감에서 드러난 중앙회를 비롯한 지역 단위농협들의 비리 시리즈는 더 이상 농협을 농협으로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농협은 스스로 ‘협동과 혁신으로 농업인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고객에게는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여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한다’는 것을 존재 이유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경영 내막을 들여다보면 비리가 비리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농협의 비리를 포함하여 역대 농협 중앙회장들의 비리와 부패로 인해 쇠고랑을 찬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농협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농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기관으로 둔갑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한마디로 농민들에게 각종 농자금을 지원하면서 고리대금업을 수행하여 왔고 낙하산 보은인사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러한 원인은 농협이 엄청난 지금을 운용하면서 정권이 바뀔때마다 정치권의 자금줄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국감 자료에 따르면 경제와 금융으로 지주 분리되면서 늘어난 농협의 임원 총 103명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 대선캠프나 전직 고위관료 등 낙하산 인사가 20명이나 된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 인사들이 유독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다. 한마디로 농협이 보은인사의 울타리라는 얘기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농협의 곳간을 빼먹으며 정권내내 무위도식하는 인사들이 넘쳐나고 정치권에 굽실대야 할 정도로 떳떳하지 못한 뭔가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농협중앙회를 흔히 ‘복마전’이라 부르는 까닭이 충분히 짐작되는 대목은 더 있다. 비상임이사들마저 회의 몇 번 참석에 7000만원에 이르는 연봉을 챙긴다. 여기에 조합장까지 겸하는 이들은 억대가 넘는다. 비상임이사들이 1인당 1700만원대의 호화 외유까지 서슴지 않았다. 돈에 쪼들리면서 직원 평균 상여금은 기본급의 700%나 된다.

더 가관인 것은 NH인터넷 쇼핑몰은 우리 농산물 유통엔 뒷전이고 비(非)농산물은 물론 수입 농산물까지 버젓이 판매해 왔다는 사실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기관은 수입 농산물을 거래할 수 없는데도 최근 5년간 5억5000만원어치를 팔았다. 말로만 신토불이였던 셈이다. 개혁의 발판이라던 금융사업은 비리의 몸통이나 다름없다. 최근 5년간 금융사고 총액이 636억7300만원에 이르고 횡령은 200억원대에 달한다. 금리조작을 통해 고객을 농단하는 것은 예사이고 금품수수로 처벌받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농협중앙회의 조직 통제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으로 이원화한 ‘신경 분리’를 통해 경영난을 타개하겠다고 늘 큰소리쳐 왔다. 정부로부터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고도 혁신은 수년째 겉돌고, 수입은 흥청망청 ‘집안잔치’ 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에다 태풍과 홍수 등으로 시름에 빠져 있는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한전이나 농혐이나 마찬가지로 모두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우리는 실감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공공의 적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할 것서으로 생각된다. 전면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차라리 농협을 없애버리는 것이 어떨까? 공공기관 주요 직위 민간인 영입 제도, 정부 각 공기업 산하기관에 대한 낙하산 보은인사, 퇴직 후 공무원들의 제취업 등에 대해서 지혜로운 법안을 만들어 이 비리와 부패의 온상을 잘라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규제 천국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한창우 일본 마루한 회장은 해외에서 활동하며 한국을 빛낸 저명 인사다. 그런데 이들은 모처럼 한국에 들러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규제’ 문제에 대해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 총재는 이번주 초 서울대 학생들과의 대담에서 "서울대 법인화 준비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서울대가 모든 의사결정을 할 때 교과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자신 다트머스대학 총장을 역임할 당시여서 미국 대학의 현실과 상호 비교돼 그 당시 충격을 지금까지 거론한 것이다. 서울대의 현실을 알아보면 법인화 이후에도 모든 예산 항목, 교수 정원도 통제하고 있으며 심지어 교수 연봉까지도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 사이엔 "이러러면 법인화를 왜 했느냐. 차라리 법인화 이전으로 환원해 퇴직연금이라도 더 받자"는 분위기라고 한다. 일반 대학 학무실에선 "대학은 교육부의 노예"라고까지 할 정도다.

 

한창우 마루한 회장은 영종도에 1조1180억원을 투자하기 위해 ’한상드림아일랜드’를 건립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를 국토해양부에 제출해 놓은 거액 투자가다. 일본 최대 파친코사업을 운영하는 한 회장은 "한국에 외국인투자촉진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공무원들로부터 일단 관련 규정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답변을 너무 많이 듣는다"고 한 인터뷰에서 불평을 털어놨다. 그는 한국보다 훨씬 못한 캄보디아에서 은행업 진출을 하는 데 1년밖에 안 걸렸고 라오스, 베트남 투자도 쉽게 인가가 나는데 한국은 앞으로도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 사업은 한상(韓商)과 51% 대 49%의 합작사업이어서 성사되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의 반응을 알아보면 "해당지역이 용도 지정이 아직 안 돼 있고 사계절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니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국민이 목청껏 외쳐봐야 공무원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번 국감자료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 4년간 규제와의 전쟁을 한다더니 정부규제는 2008년 5186건에서 금년 8월 현재 1만3729건으로 165%나 급증했다고 한다. 특히 경제 관련 규제(4625건)는 두 배, 규제 강도가 강한 사전승인규제(3376건)는 3배가량이나 늘었다고 한다. 김 총재, 한 회장의 눈에 이 정도니 한국에 투자하러 오는 외국인의 눈에는 얼마나 이상한 나라이겠는가.

 

 

 

 

 

 

 

 


서울대 '담배 성폭력' 논란

19일 서울대에서는 '페미니즘'과 관련한 2차 논쟁이 벌어졌다. 전날 한 여성주의운동가(페미니스트)가 '담배를 피우며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전 남자친구를 '성폭력'으로 학생회에 제소했고, 이를 반려한 사회대 학생회장 유모(22·여)씨가 물러난 사실이 공개되면서 학생들 사이에 논란이 된 것이다. 물러난 사회대 학생회장 유씨는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의 딸이다.

학생 간 논란의 쟁점은 "성폭력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하느냐"는 것이었는데, "담배 피운 것을 성폭력에 포함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 여학생은 인터넷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에서 "담배가 남성적이면 담배 피우는 여자는 남성성을 따라 하는 겁니까, 지배하는 겁니까?"라면서 "담배는 남성의 전유물이니 여자는 피우지 말라고 주장한 과거 세대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이번 사건으로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같은 논리라면 미니스커트도 여성성을 과시하였기 때문에 성폭력이냐"는 주장도 나왔다. 한 학생은 "얄팍한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야말로 여성 해방에 가장 암적인 존재"라고 했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한 학생은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 우리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피해자인 여성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했다. "이번 일로 페미니즘에 대해 통째로 매도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었다.

 

이제는 여성을 가까이 하기도 쳐다보기도 힘들어 질 것 같다. 말을 걸거나 쳐다보면 성추행, 가까이 있으면 성폭행, 뒤에 따라가면 성폭행범, 이더 여성들이 무서워서 살기 힘든 사회로 변질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이런 문제가 도를 넘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약자임을 자처하는 결과를 낳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