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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667 : 조선의 역사 209 (선조실록 74)

두바퀴인생 2012. 8. 4. 03:01

 

 

 

 

한국의 역사 667 : 조선의 역사 209 (선조실록 74)

 

 

 

                                              

                                                                                           임진왜란 경과                                                                                                                    

                                                                                                                                                                                   

 

제14대 선조실록(1552~1608년, 재위: 1567년 7월~1608년 2월, 40년 7개월)            

 

 

 

 

 

 

 

 

 

 

임진왜란 전투목록

 

아래 임진왜란 전투 목록임진왜란 중 있었던 전투 목록이다. 시간 순으로 작성되었으며, 모두 음력으로 날짜순대로 표시했다. 주요 전투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1592년

  • 다대포 전투 : 4월 13일 ~ 4월 15일
  • 부산진 전투 : 4월 14일
  • 동래성 전투 : 4월 15일
  • 경상도 및 충청도 함락 : 4월 17일~4월 28일
  • 상주 전투 : 4월 25일
  • 충주 탄금대 전투 : 4월 28일
  • 한강 전투 : 5월 2일
  • 옥포 해전 : 5월 7일
  • 합포 해전 : 5월 7일
  • 적진포 해전 : 5월 8일
  • 해유령 전투 : 5월 16일
  • 임진강 전투 : 5월 18일
  • 기강 전투 : 5월 18일
  • 사천 해전 : 5월 29일
  • 당포 해전 : 6월 2일
  • 당항포 해전 : 6월 5일
  • 용인 전투 : 6월 5일
  • 무계 전투 : 6월 6일
  • 율포 해전 : 6월 6일
  • 정암진 전투 : 6월 8일
  • 여주 전투 : 6월 10일
  • 제1차 평양 전투 : 6월 15일
  • 웅치 전투 : 7월 7일
  • 이치 전투 : 7월 8일
  • 한산도 대첩 : 7월 8일
  • 제1차 금산 전투 : 7월 9일
  • 안골포 해전 : 7월 10일
  • 우척현 전투 : 7월 10일
  • 제2차 평양 전투 : 7월 17일
  • 영천성 전투 : 7월 24일~7월 27일
  • 지례 전투 : 7월 29일
  • 제3차 평양 전투 : 8월 1일
  • 청주 전투 : 8월 1일
  • 제1차 경주 전투: 8월 2일
  • 제2차 금산 전투 : 8월 18일
  • 영원산성 전투 : 8월 25일
  • 장림포 해전 : 8월 29일
  • 화준구미 해전 : 9월 1일
  • 다대포 해전 : 9월 1일
  • 서평도 해전 : 9월 1일
  • 절영도 해전 : 9월 1일
  • 초량목 해전 : 9월 1일
  • 부산포 해전 : 9월 1일
  • 연안 전투 : 9월 2일
  • 제2차 경주 전투 : 9월 8일
  • 북관대첩 : 1592년 9월 16일~1593년 1월 28일
  • 창원 전투 : 9월 27일
  • 제1차 진주성 전투 : 10월 10일
  • 독성산성 전투 : 12월 11일

 

1593년

  • 제4차 평양 전투 : 1월 9일
  • 성주 전투 : 1월 15일
  • 벽제관 전투 : 1월 27일
  • 웅포 해전 : 2월 10일~3월 6일
  • 행주 대첩 : 2월 12일
  • 제2차 진주성 전투 : 6월 29일

 

1594년

  • 제2차 당항포 해전 : 3월 4일
  • 영등포 해전 : 10월 1일
  • 장문포 해전 : 10월 4일

 

 

1597년

  • 칠천량 해전 : 7월 16일
  • 고령 전투 : 8월 15일
  • 남원 전투 : 8월 16일
  • 황석산성 전투 : 8월 16일
  • 어란포 해전 : 8월 27일
  • 직산 전투 : 9월 7일
  • 벽파진 해전 : 9월 7일
  • 명량 해전 : 9월 16일
  • 제1차 울산성 전투 : 12월 24일

 

1598년

  • 절이도 해전 : 7월 19일
  • 제2차 울산성 전투 : 9월 21일
  • 사천성 전투 : 9월 28일
  • 순천성 전투 : 9월 20일~10월 7일
  • 노량 해전 :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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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량대첩도

임진왜란 해전 목록

 

아래의 목록은 임진왜란의 해전 목록이다. 정렬 순서는 시간순이다.

 

날짜 해전 장소 조선군 일본군 비고
1592년 6월 16일
(음력 5월 7일)
옥포 해전 거제시 옥포 이순신 도도 다카토라 조선군의 첫 승리
1592년 6월 16일
(음력 5월 7일)
합포 해전 진해시 웅천동 이순신
1592년 6월 17일
(음력 5월 8일)
적진포 해전 고성군 거류면 통영시 광도면 이순신
1592년
(음력 5월 29일)
사천 해전 사천시 용현면 이순신 구루지마 미치유키 처음으로 거북선을 사용
1592년
(음력 6월 2일)
당포 해전 통영시 산양읍 이순신 카메이 코레노리
1592년
(음력 6월 5일)
당항포 해전 경남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리 이순신
이억기
1592년
(음력 6월 6일)
율포 해전 거제시 장목면 이순신
1592년 8월 14일
(음력 7월 8일)
한산도 대첩 통영시 한산면 이순신
원균
이억기
와키사카 야스하루
1592년 8월 16일
(음력 7월 10일)
안골포 해전 진해시 안골동 이순신
원균
이억기
구키 요시아키
1592년
(음력 8월 29일)
장림포 해전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화준구미 해전 부산시 사하구 몰운대 인근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다대포 해전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서평포 해전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감천항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절영도 해전 부산시 영도구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초량목 해전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부산포 해전 부산시 동구 좌천동 이순신
1593년 3월 6일
(음력 2월 10일)
웅포 해전 경남 진해시 웅천동 이순신
1594년
(음력 3월 4일)
제2차 당항포 해전 경남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리 어영담
1594년
(음력 10월 4일)
장문포 해전 경남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이순신
1597년 8월 28일
(음력 7월 16일)
칠천량 해전 거제도 인근 칠천량 원균
이억기
배설
도도 다카토라
와키사카 야스하루
고니시 유키나가
조선군의 유일한 패배.
원균, 이억기 전사
1597년
(음력 8월 27일)
어란포 해전 전남 해남군 송지면 어란포 이순신
1597년 10월 16일
(음력 9월 7일)
벽파진 해전 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진 이순신
1597년 10월 25일
(음력 9월 16일)
명량 해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진도군 녹진리 이순신 도도 다카토라
구루시마 미치후사
가토 요시아키
와키사카 야스하루
1598년
(음력 7월 19일)
절이도 해전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이순신
1598년 10월 19일 -
11월 6일
장도 해전 전남 순천시 장도 이순신
진린
고니시 유키나가
159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노량 해전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이순신
진린
고니시 유키나가
시마즈 요시히로
와키사카 야스하루
소오 요시토시
가토 기요마사
이순신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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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도 해전

 

 

절이도 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 해전 이후 약 1여 년이 지난 때인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해(선조 31, 1598, 10) 10월에 전남 고흥군 금산면 신촌리 고라금해수욕장 앞바다 절이도(현재 거금도)에서 왜군들과 전투를 벌여 왜적선 50여 척을 침몰시키고 왜적의 머리 71급을 베는 전과를 올린 해전 이다.

 

그러나 이 절이도 해전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해전을 절이도(거금도)해전이라 하는데, 망국적인 사대·왕조사가들이 왜곡 집필한 「이충무공전서」에 이 사실이 누락되어 있는데 이유는 명나라 수군이 주도적으로 해전을 치르지 않았다 하여 집필자가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이다. 그러나 <선조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어 알 수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해전을 간과하기 쉽지만, 당시 이순신이 명나라 수군을 배후 지원세력으로 업고서 명량 대첩의 전훈을 되살리면서, 원균의 하극상에 의해 실패한 장문포·영등포 해전(칠전량 해전)의 쓰라림을 생각할 때, 결코 허술하게 대처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절이도 해전
(임진왜란의 일부)
날짜 1598년 무술년 음력 7월 19일
장소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신촌리 고라금해수욕장
결과 조선,명 연합 수군의 승리
교전국
조선,명나라 일본
지휘관
이순신(충무공)
권준
이순신
(무의공)
이영남
우치적
황세득
송희립
진린
등자룡
도도 다카토라Japanese Crest Tuta.png
가토 요시아키
병력
판옥선 85척, 병력 1만 7000명,
명 사선 25척, 명 호선 77척, 병력 2만 6000명
아타케부네 100여 척, 병력 16,600여 명
피해 규모
불명 아타케부네 50여 척 침몰

 

 

명나라 수군이 도착한 지 2일째 되는 1598년 7월 18일, 드디어 적함대 100여 척이 금당도(고금도와 거금도 중간의 섬)로 침범해 온다는 급보에 접하고서 이순신은 전함대에 출동태세를 갖추도록 한 다음 그날 밤에 길목인 금당도로 전진 결진하여 그 곳에서 경야했다.

 

그러나 이때 명나라 수군은 합세하지 않고 안전해역에서 후행하면서 관전하는 자세를 취하였던 것이다. 9월 19일 새벽에 일본 함대는 거금도(절이도)와 도(소록도 근처) 사이로 뚫고서 금당도로 나오는지라 이순신 함대와 거금도 북방 해역에서 해상 요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난중일기의 이 당시 부분이 망실되었고 이충무공전서에도 이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천병을 모욕하는 일은 황제를 모욕한다는 취지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킴), 선조 수정실록(선조 31년 8월)에 보면 이순신 함대가 이를 요격하여 적선 50여 척을 분멸한 것으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 따라서 나머지 50여 척도 대파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순신자령수군(舜臣自領水軍 : 이순신이 수군을 지휘하여) 돌입적중 발화포(突入賊中 發火砲 : 일본함대 속으로 돌진 함포를 발사함으로써), 소오십여척 적축환(燒五十餘隻 賊逐還 : 50여 척을 불태움에 적군이 쫓겨 되돌아갔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때 진린은 구경만 하고 있다가 전과가 욕심이 나서 이순신에게 와서 협박을 함에 할 수 없이 적의 목벤 것 40개를 진린에게 넘겨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국의 원군(援軍)이 참전하지도 않고 소국의 전과를 탈취해도 천군(天軍)으로 대접받는 판이었다.

 

이 해전을 절이도(거금도)해전이라 하는데, 망국적인 사대·왕조사가들이 왜곡 집필한 「이충무공전서」에 이 사실이 누락되어 있어 간과하기 쉽지만, 당시 이순신이 명나라 수군을 배후 지원세력으로 업고서 명량 대첩의 전훈을 되살리면서, 원균의 하극상에 의해 실패한 장문포·영등포 해전(칠전량 해전)의 쓰라림을 생각할 때, 결코 허술하게 대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군 피해없이 적함 50척을 수장시킨 대전과가 정확하고 정직하게 공식 문서에 기록·반영되지 않았음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튼 이 해전의 성과로 이순신 함대는 고금도에서 거금도까지 지배해역을 확대함으로써 고흥 반도 이서의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이때 분멸한 적전선 50척과 대파 내지 반파된 적전선 50척에 탑승한 적군을 산정하면 16,000여명이 된다. 물론 아군은 함선 손실은 없었지만, 전사상자가 30여명이 발생한 것으로 나와있다.

 

이 해전이 격전이었으며 엄청난 적군의 인명손실이 있었기에 사실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1795년에 윤행님(尹行恁)이 편찬한 「이충무공 전서」에는 녹도만호 송여송이 진린에게 적전선 6척과 수급 69개를 상납한 사실이 명기되어 있는 것으로 봐 거금도앞 바다가 적의 시체로 가득찼던 것이 틀림없다.

 

1598년 7월 19일 치러진 거금도 해전에서 이순신 함대는 명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서진중이던 100척 규모의 적함대를 거의 괴멸시키는 대전과를 수립함으로써 적의 요새지인 예교(광양만)까지는 못미치지만 고흥반도까지는 완전 장악하고, 이제 계속 동진하여 여수반도를 끼고 있는 순천만과 남해도의 서측방 광양만을 장악하면 전라도 수역을 확보할 수 있게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나라 수군을 동원하여 연합작전을 펴 일본의 요새 진지인 예교(관음포) 앞 포구에 주박하고 있는 100여 척의 함선을 분멸시키면, 고니시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될 것이고 왕년의 한산도 전진기지를 재탈환 확보함으로써 경상도 해역까지 망라하는 광활한 남해의 제해권을 쥘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이순신은 골몰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예교 공격을 위한 결정적 시기만 탐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사실을 간파한 진린이 사전에 방해공작으로 가로막는지라, 이에 이순신은 여러번 선조에게 장계를 올려 통분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엉뚱한 처방을 내린 선조의 작태가 더욱 한심하다. 내용인즉 명군 경략(총사령관격)에게 건의하여 진린을 육장으로 전임시키고 수군 유격장 계금으로 하여금 명나라 수군과 조선수군을 통합 지휘토록 함으로써 수륙합공으로 예교를 점령하자는 고육지책을 구상한 것이다.

 

이 소식이 진린의 귀에 들어가자, 그는 대노하여 이순신에게 호통을 쳤다. 결국 진린에게 약점만 잡힌 선조는 이 조처를 시행치 못하고 없었던 것으로 하였다.

이 해전이 시작하기 며칠전 칠천량 해전에서 포로가 되었다 돌아온 김완이 귀국을 하여 왜 수군 진격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