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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미래사회

우면산의 여름 4 : 빛바랜 보훈 정책, 무너지는 국가안보

 

 

 

 

우면산의 여름 4 : 빛바랜 보훈 정책, 무너지는 국가안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호국보훈의 달 6월도 어느듯 마지막 주를 지나고 있다. 오늘은 6·25 전쟁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호국보훈의 달이라지만 매년 행사에 그치고 실질적인 호국보훈 정책은 빛바랜 보훈청 건물처럼 부실하기 짝이없다. 6.25 전상자 보훈 금액이 20만원도 안되는 보훈정책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권력형 비리 금액 일부만 할애하더라도 그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누가 이런 나라에 유사시 목숨을 내던지고 나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가 정책에서 보훈 정책은 항상 뒷전이다. 독립유공자 및 그 후손들에 대한 보훈 및 예우, 친일 청산 및 후손들에 대한 청산작업 미흡, 납북자에 대한 송환 노력 부실, 한국전쟁 및 월남전, 기타 해외파병 전몰 국군 장병에 대한 유골 발굴 미흡 및 그 유가족에 대한 예우 부실, 탈북 국군포로에 대한 송환 노력과 예우 부실, 보훈 심사제도 기준 및 보훈 급여 에 대한 수준 미달, 보훈 유가족들에 대한 취업 등 생계 보장 대책 미흡, 보훈에 대한 국가 정책 최우선순위 선정 및 유가족에 대한 파격적인 예우 미실시 등 보훈정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은 곱지는 않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나라는 그 후손들에 대한 보훈정책이 미흡하거나 인식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내가 나라를 위해 죽어도 나의 가족들은 나라에서 책임지고 모든 것을 돌봐줄 것이라는 기대치가 낮다는 점이다. 선진국 보훈정책의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보훈정책이 아쉽기만 하다. 그렇지 않으면 유사시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인지 의문이다.   

 

멀리는 420여 년전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선조들이 이 땅과 바다에서 선혈을 뿌리며 죽어갔고, 청나라가 침공한 정묘.병자호란 때도 수많은 백성들이 떼 죽음을 당하였다. 당시 한양 길거리는 청군들이 학살한 민간인 시체들이 산을 이루었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후 궁으로 들어가는 데 시체를 일일이 치우고 가야했다고 한다. 조선은 이 때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고 망국의 기운이 이 때부터 싹텄다고 볼 수 있다.

 

유교의 허례허식과 이상론에 빠져 권력 투쟁과 탐욕에 전념하던 조선은 국왕부터 아래 말단 관리까지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더니 결국 외세를 끌여들여 피튀기는 권력쟁탈전을 벌이다가 결국 일제에 조선이 망하고 일제치하에서는 수많은 인사들이 국내외에서 독립을 외치며 피를 뿌렸다. 또 수많은 젊은 청년, 처녀들이 전선으로 끌려가 탄환받이나 정신대가 되었고 군수공장이나 탄광으로 끌려가 노예처럼 착취받았다. 이렇게 인명과 물자를 송두리채 빼앗아가던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여 무조선 항복을 하게 되자 36년간 이러한 모진 노예같은 삶을 살아오다 갑자기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해방은 우리들이 이루어낸 해방이 아니었다. 만약 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나라는 커녕 우리는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에게 천시받으며 노예로 살아오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도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차별정책은 변화가 없다.

 

해방을 맞은 우리는 남북으로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남북이 갈라지고 남과 북에서는 미국과 소련을 등에 업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쳐온 고집스런 임정 간부들은 대부분 배척당하거나 숙청, 암살당하고 미군과 소련군에 빌붙어 말 잘듣던 이승만과 김일성이 결국 정권을 잡았다. 그 사람들이 임정을 대신하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모두가 방계승통도 아닌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두 사람은 서로가 한반도의 주인이라며 큰 소리를 치면서 싸우다가 결국 소련군을 등에 업은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시키기 위해, 즉 적화통일을 위해 남침을 개시한 것이 바로 한국전쟁, 즉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이다.

 

우리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10명 중 3명은 6.25전쟁 발발한 날도 모르고 있으며 남한이 북침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역사에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한국 정부를 부정하고 북한을 찬양하며 김일성 교조사상에 물들은 좌익 출신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교육받은 결과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알고 오류를 두 번 다시 범하지 않으려는 절치부심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주변 강대국의 무력앞에 나라가 망하여 다시 노예같은 굴욕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이 참전하고 뒤이어 중공군이 참전하여 밀고 밀리는 3년간의 지리한 공방전을 벌이던 한국전쟁은 결국 휴전으로 마감되었지만 이 땅은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이 모두가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하면서 일어난 불행이었다. 조선의 이씨 왕조와 그 후손들은 민족앞에 자손대대로 사죄하고 천민처럼 살아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 이씨 왕조 후손이라고 자부하던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갖가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면서 정치권력을 연명하다가 4.19를 맞아 정권이 붕괴되고 이승만은 하야하고 하와이로 떠났다. 4.19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윤보선의 제2공화국은 조선의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처럼 반정을 통해 즉위한 왕의 왕권이 허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젊은 혁명주체세력들이 거센 발언권에 휘둘리면서 허약한 정치 권력으로 인해 정치적 안정을 기하지 못하고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정치권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였고, "평양으로 가자!" 고 외치는 혁명세력들의 무분별한 행태에 사회는 온통 갈등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체제의 붕괴조짐마져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보다못한 군부가 일어섰으니 바로 5.16 군사혁명이었다.

 

박정권은 강력한 혁명세력을 바탕으로 정치, 사회 전분야에 새로운 개혁의 불을 당겼고 그 결과 경제발전을 강력하게 견인하여 오늘날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이룩하였다. 그 사이 월남파병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의 댓가로 미국의 지원과 조를 받을 수 있었고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여 외화를 벌어 들였다. 또 일본과 한일회담을 성사시켜 대일청구권 자금인 경제지원을 받아냈고 그러한 자금을 바탕으로 고속도로와 항만, 공업단지 등을 건설하였고 농촌은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여 도로, 가옥, 수리 시설, 개간, 농지정리, 농업기술혁신, 농촌 복지 등을 개선시켜 백성들의 가난과 배고픔을 잊게 해 주었다. 50~60년대 마을마다 거리마다 그 수많은 거지들이 세끼 끼니때마다 밥을 얻으려 다니던 시절이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지 생활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후손들인 우리들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왜냐면 우리들 선조들 누구도 그러한 자신의 구차한 과거를 후손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경제발전 좀 했다고 배가 부르니 비만이 넘쳐나고 남을 우습게 보이고 거드럼을 피우며 자신보다 잘 된 눔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에 배가 아프고 나라가 망해도 내만 잘되면 된다는 사고가 팽배해진 현실이다. 국론이 분열되는 것이 건전한 갈등관계라면 이해를 하지만 친북.종북 세력이 판을 치고 있는 현 정치권의 실정은 북한을 적으로 마주보고 있는 현실에서는 그것은 용납될 수도 없는 세력들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우유부단하고 단호함이 없고 주변 인물들이 비리와 부패 등 탐욕에 찌들어 있다면 그것은 망국의 징조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G20이 상징하듯 세계 속에서 그 위상을 높였다. 세계적인 미래학자들은 한국을 21세기에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할 나라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다방면에 걸쳐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다.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그에 따른 소란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나라라고 하는 울타리,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자유와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지와 희생으로 지킬 때만 누릴 수 있다는 전쟁의 교훈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대신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장병들의 희생의 의미를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보자. 과거의 교훈을 잊는 자, 그 과오를 되풀이한다.

 

 



 

                                                              

2009년도에 국립국악원에서 벌어진 농악대회 모습

 

나라가 평온하면 백성들이 이처럼 풍악을 울리고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농악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자체별로 많은 예산을 들여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지방 사람들을 동원하여 연습을 시키고 훈련시켜 대회에 참여시킨 것이다. 지금 지방의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전통놀이와 풍악을 즐기는 곳은 거의 없다. 유.무형문화제를 전승하여 민족의 전통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많은 예산을 들이며 애를 쓰는 모습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국악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고 선호하는 젊은이들은 찿아보기도 힘들다. 물론 그 중에는 국악을 되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민족의 전통 문화는 서구의 문화에 밀려 점점 소외되고 있으며 사라져가고 있다.

 

반면 서울 강남 뒷골목에는 밤마다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돌아가는 무대에서 수많은 젊은 남여가 광란의 춤을 추며 밤을 지새고 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쓰레기 천지요 포장마차에서 분식집에서 찾집에서 아침까지 진한 화장,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를 빡빡 피우면서, 서로의 짝이나 호구, 봉을 찿아 헤메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국악 소리가 흘러넘치는 곳은 없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앞 조명분수대 모습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조정의 문신들의 모습을 보면 오늘날 우리 정치권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아래는 당시 조선 조정이 임진왜란을 맞아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자  

 

 

수전맹(水戰盲), 육전맹(陸戰盲)의 선조와 조정 문신들

 

세종대왕 때는 수군을 육성하여 대마도를 정벌하였으나 섬 전체가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척박한 섬으로 인해 점령 가치에 비해 막대한 군대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대마도주의 조공 약조만 받고 결국 조선 수군은 철수하였다. 거제도, 남해안에는 세종 때 쌓은 성들의 유적이 오늘에까지 전해져 온다. 하지만 선조 무렵에는 조정이 수전맹, 해운맹에 빠져 있었고, 때문에 부산포 앞바다, 한강, 임진강, 대동강에서 막을 수 있었던 것이나 결국 일본군의 침략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였다.

 

또 조선은 육전맹이었는데, 당시 군사제도에 따라 주요 방어 지역에 주변 군사들을 집결시켜 조정에서 장수가 내려와서 통솔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적정에 대한 정보제공 시스템이 부재하였고 급조한 부대라 훈련도 제데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태였다  또  조정에서 장수가 제때에 내려오지 않아 대구처럼 군사들이 일본군의 침공 소식만 듣고도 흩어져 버리거나 주요 길목의 성주나 관리, 군사들이 무기와 물자를 방치한채 도망치기에 바빴다.

 

또 일본군이 진격하는 주요 길목에 천혜의 장벽인 소백산맥 일대의 죽령, 조령, 추풍령 등에 군사를 배치하지 않고 적정도 모른체 급조한 오합지졸을 훈련시키다 패전한 상주전투의 이일이나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8천 기마대로 탄금대 전투에서 전원 패전한 신립처럼 허허발판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해안에 상륙하기 전에 삼도수군을 집결시켜 부산포 앞바다에서 해상전으로 막을 수 있었던 기회도 놓치고, 한강, 임진강, 대동강 등 주요 하천선 방어 작전도 대부분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군령체계가 혼란하였고 장수들의 결전의지가 부족하여 대부분 장수들이 먼저 도망치면 뒤이어 군사들도 흩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신립도 한양에서 병력을 모을 수가 없자 소수의 병력만 데리고 충주로 내려가면서 경기, 충청도의 역마 등를 모조리 동원하여 끌고 갔고, 이에 경상, 전라, 충청, 경기도엔 파발조직이 무너졌으며, 이로인한 조정과 지방의 명령전달 체계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인해 말할 수 없는 혼란과 통신 불능 사태가 야기되고 말았다.

 

또 각 섬에 목장을 두어 군마를 키우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수군이 무너지는 바람에 말들이 섬에 방치되고 있었고 효과적으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이 역시 군마 관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육전맹인 조정 문신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왜란은 개전 초에 막을 수 있었다는 이순신의 증언이 '부원경상도장' 장계에 잘 나타나 있다.

 

"지난날 부산과 동래 연해안 여러 장수들이 만약 전선과 노를 잘 정비하여 바다 가득히 진을 치고 있다가 왜적의 배들을 들이칠 위세를 보이면서 정세와 힘을 잘 살피고 헤아려서 적절히 병법대로 나아가고 물러남으로써 적들이 뭍으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더라면, 나라를 욕되게 하는 환란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앗을 것입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감정이 더욱 북받쳐, 원컨데 한 번 죽기를 각오하고 곧바로 왜적의 소굴을 짓이겨서 요망한 기운들을 쓸어버리고 나라의 부끄러움을 만분의 일이라도 씻고자 하옵니다. 성공과 실패, 잘되고 못되는 것이야 신으로서는 미리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옵니다."(부원경상도장, 1592. 4.30)

 

이 말은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하기 전에 해상에서 삼도 수군을 모두 집결시켜 해전으로 적선을 격멸하였더라면 이러한 환란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일본의 여러 차례 전쟁의 경고도, 일본을 직접 방문한 조선 통신사들의 보고도 무시하고 조정이나 변방의 군대에서는 일본군이 전쟁을 일으켜 15만 병력을 배에 싣고 부산포에 상륙할 때까지도 아무도 일본이 침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민심을 동요케 한다면서 그동안 진행해오던 전쟁준비도 중단시킨 조정이었고 임금은 왕권유지에, 조정 권신들은 파당을 이루어 권력장악에 열중하다보니 국재정세에 대해서는 외교맹, 즉 모두가 까막눈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420여년 전 조선 조정의 돌아가는 꼴이 꼭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는 것 같다. 작금의 우리 상황도 주변 4대 강대국들과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정치권은 진보와 보수, 여와 야, 충선과 대선 등 국론분열과 권력투쟁에 전력하고 있으며 군에 대한 불신과 천시풍조가 확산되어 있으며 국제정세는 무감각하다. 또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를 포함하여 사회 각 분야는 비리와 부패로 썩지 않은 곳이 없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삶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비정상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풍전등화! 바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이 투영되는 것 같아, 아 씁쓸하기만 하다......

 

 

 

 

 

 

 

 

인구 5000만 시대, 인구만 늘면 뭐해?

 

지난주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나라들을 ‘20-50클럽’이라고 부르는데,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 6개국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당한 규모의 인구와 경제력을 함께 갖춘 강국들이다. 한국의 지난해 1인당 소득은 2만2778달러로 인구 5000만 명 돌파와 함께 일곱 번째 ‘20-50 클럽’ 멤버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20-50클럽 국가가 되었다고 무슨 대단한 일인양 착각하면 오산이다. 이런 상태로 우리가 그런 위상에 버금가는 선진국 수준을 유지하려면 내부적으로 개선.발전시켜야 할 사안들이 너무나 많다.

 

위상을 계속 지켜 나가려면 외부적으로는 주변국과 선린외교를 통해 잠재적인 안보 위협을 제거해야 함은 통일을 위한 남북대화를 주변국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또 다각적인 지역 및 국가와 무역을 증대시키고 안전한 무역로 확보를 위해서 해상방위력을 강화하고 해상이동로에 대한 안전도 확보되어야 한다. 또 각종 식량 및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대책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오로지 인구뿐인 우리들 입장에서 인구의 고령화는 물론 초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 개선도 시급하다. 

 

새벽 길거리 골목마다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한 노인 빈곤층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 노인층의 빈곤율은 45%로 OECD 평균(13.3%)을 훨씬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현행 복지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고령화에 따라 앞으로 정부 부채는 급증할 전망이다. 국가 재정이 바닥날 때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는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암울한 미래를 피하려면 사회인구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는 일은 물론 기업체 등의 정년을 연장해 생산가능 인구의 외연을 넓히는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앞서나가는 일인지 모르겠으나 현실태와 미래를 생각할 때 인구 감소 문제와 저출산 문제는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인구의 감소에 대한 문제는 해결이 가능할 전망이다. 앞으로 법적.도적적.사회적 합의만 이룬다면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 은행을 설치하여 인공적으로 부화 및 양육이 가능한 날이 올 전망이다. 그러면 인구 감소와 저출산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 문제는 로봇.인터넷.기술 등 문명의 발전으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전망이므로 취업은 앞으로 갈수록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리고 결혼의 어려움, 이혼율 증가, 독신자 증가, 양육부담 증가 등으로 개인이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는 사회구조가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개념의 가정이 분해되는 현상이 가속화 할 것이고 이로 인해 정부가 출산과 양육, 교육까지 책임지는 시대가 올 전망이다.

 

 

 

 

 

 

 

 

 

식량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식량위기, 식량안보 그리고 이제는 식량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지구촌의 식량문제. 전세계가 먹을거리 걱정에 비상이 걸렸다. 아프리카 동부는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동아프리카의 1,200만 명이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고, 특히 소말리아는 20년째 이어지는 내전까지 겹쳐 극심한 고통으로 절규하고 있다. 90일 동안 3만명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고, 최소 50만명의 어린이가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다. 또한 아이티에서는 밀가루가 없어서 진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허기를 달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국제 곡물 가격 인상으로 인해 식량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유명 대학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옥수수 생산량은 기후변화에 따른 경작지 감소 등으로 1980년 이후 현재까지 약 2,300만 톤(3.3%)이 줄었다. 또 세계적으로 식습관이 고급화되면서 육류 소비가 늘고 이에 따라 가축사료용 곡물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곡물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식습관의 고급화는 신흥국들의 밥상이 달라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실제 중국은 경제성장으로 국민들 육류 소비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지난 5년간 1인당 소득이 39% 늘어 우유, 달걀, 육류, 생선 등을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인구가 2억2,000만 명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향후에는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러시아는 최근 가뭄에 따른 곡물 수확량 감소를 이유로 곡물 수출제한 가능성을 시사하며 다시 한 번 곡물자원의 무기화 가능성을 내보였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현재 국내 대기업들이 1차 산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국내의 모 기업은 여의도 면적(295㏊)의 23배에 달하는 6,700㏊ 넓이의 농장에 향후 3년간 1,300만 달러를 투자, 오는 2014년에는 연 매출액 375만 달러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콩 4,000톤, 밀 2,000톤, 귀리 1,000톤 등 총 7,000톤의 곡물이 생산될 예정이다.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포착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들이 농업 분야에서 활발하게 신규 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후변화 등에 따른 경작지 감소와 식습관의 고급화, 자원의 무기화 추세 등에 의한 식량 수급 불균형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투자이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UAE, 일본 등은 자국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제3세계 농지를 사들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1,200만㏊의 해외농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본 전체 경지면적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도 필리핀 등지에 대규모 농지를 확보해 곡물 생산에 나서고 있는 등 이미 세계는 해외 농업개발 경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것은 식량이나 사료용 작물을 자국으로 수입하거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바이오 연료의 원료가 되는 작물, 카사바·옥수수·사탕수수와 같은 것들을 재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부는 2009년 해외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2018년에는 곡물수입량의 10%, 2030년 50%를 해외식량기지로부터 확보하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주도적 역할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이 소비하는 식량 가운데 절반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야기되는 식량안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 식량공급 능력을 제고를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동시에 기상이변과 같은 예상할 수 없는 국내외 여건으로 인한 식량 생산 감소에 대비하여 정부와 민간 기업은 반드시 협력하여 해외 식량기지 구축을 성공적으로 완성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 집단대출 연체 급증

 

집단대출은 가계빚 폭탄의 뇌관이다. 아파트 잔금과 중도금을 치르거나 이주비로 쓰려고 빌린 집단대출을 제때 갚지 않는 이들이 급증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사태다.

 

은행 집단대출은 4월 말 102조원으로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3분의 1을 차지한다. 집단대출 연체율은 작년 1분기까지만 해도 0.9%대에 그쳤으나 올해 4월에는 1.56%까지 치솟았다. 개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0.4%)의 4배나 된다.

 

분양받은 아파트 시세가 크게 떨어지자 중도금과 잔금 납부를 거부하며 시행ㆍ시공사와 집단분쟁을 벌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분쟁 사업장은 94곳, 중도금 연체는 1조1000억원에 달한다. 은행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벌이는 이들도 4190명이나 된다. 새 아파트 10곳 중 6곳은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30% 이상 높은 터라 분쟁은 갈수록 확산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대출자와 은행, 건설사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중도금 대출 중 절반은 시공사가 보증한 것이다. 주택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사가 중도금까지 대신 갚아주게 되면 줄줄이 쓰러질 수 있다. 1분기 말 1조2000억원의 집단대출 부실 채권을 안고 있는 은행들은 건설사들이 잘못되면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쪽은 주민들이다. 은행을 상대로 한 채무부존재 소송에서 지면 채무불이행자가 될 뿐만 아니라 13~21%에 이르는 연체이자 폭탄을 맞게 된다. 금융당국은 중도금 연체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사태 확산을 막아야 한다. 특히 분양계약 무효ㆍ취소 소송과 채무부존재 소송은 별개라는 점을 알려 애꿎은 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