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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미래사회

우면산의 봄 7 : 내일 선거에 즈음하여......

 

 

우면산의 봄 7 : 내일 선거에 즈음하여......

 

  

 

                                                                                 반포천 산책로(일주일전 모습)

 

사방에 봄의 전령들이 분주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무마다 새순이 돋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벗꽃  등 긴 겨울을 기다리다 지친 열정의 꽃들은 이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새벽 기온도 영상으로 자전거 타기에도 좋다. 빌라옆 공터에 비닐을 치고 상치와 쑥갓씨를 뿌렸다. 애호박씨를 아직 구하지 못해 호박씨는심지를 못했다. 장미도 가지치기를 하고 묶어 주었다. 텃밭에 물을 주다보니 새싹이 조금 올라오는 듯하다. 목련과 벗꽃이 개화를 앞두고 분주하다.

 

이렇게 이 땅은 봄이 오고 있는데, 우리 주변의 국제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고, 우리 사회는 총선을 치루면서 권력에 대한 탐욕과 갈등으로 대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국력이 줄줄이 새고 있음은 물론 저질 수준의 후보들이 난립하여 막말과 거짓, 과장과 눈물 등으로 유권자들을 속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또 유권자들은 그런 그들의 실현성도 없는 거짓 공약과 선전. 선동, 홍보 전략에 표심이 흔들리고 있다.

 

마치 고려 무인시대 권력을 잡기 위해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노려보던 무인들과 비슷하다. 능력도 자질도 없는 고려 무인들이 무신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후 정중부, 이의방, 정중부 부자, 경대승, 최충헌 등이 갖은 암수와 계략으로 집권자를 제거하면서 계속된 뒤집기로 정권을 농단한지 20년...... 그리고 최충헌 이후 최씨 무인정권 60년 도합 80년 동안 무인정권시대가 전개되면서 고려 농민들은 집권층의 부패와 탐관들의 수탈로 인해 고려 사회는 농민들의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무신정권에 반기를 든 '조위총의 난'으로부터 시작하여 '효심 김사미의 난', '망이.망소이의 난' 등도 그런 측면에서 발생된 난이었다.   

 

거리마다 붙은 선거 홍보물을 비롯하여 가두 유세 방송이 귀를 따갑게 하고 있다. 인간 말종같은 저급한 인간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가면을 쓴 체 후보를 사퇴 못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애비가 목사라고 하니 개신교의 부끄럼이요 그런 후보를 공천한 정당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정치인들의 수준이 이럴진데 그런 사람들이 진출한 우리 국회가 과연 양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과 사고로 나라일을 처리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요즘 드라마 '무신'을 즐겨보고 있다. 드라마에서 김준의 연인 월아가 김준과 결혼을 앞두고 종년인 춘심이의 질투로 보쌈을 당하여 최우의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스스로 독을 마시고 자진하였다. 춘심이가 잡혀가면서 이렇게 말한다."그까짓 몸뚱아리 한 번 주면 어떤데, 죽긴 왜죽어......바보 같은 년......"

 

그래 맞다. 몸뚱아리 한 번 주면 어떤데......이것이 춘심이 생각이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는 그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리는 시기와 질투심,  그것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야권과 진보들의 행동과 비숫하다고 생각되었다.썩어 문드러질 몸뚱아리가 무엇이 그리 소중한거니?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면쓴 진보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고와 비슷하다. 젊은 시절 열정이 넘쳐 열렬 좌파 학생운동을 벌이던 여성들이나, 지리산 험한 산골에서 빨치산 투쟁을 벌이던 여성 대원들이 자신의 몸을 당과 수령을 위해 헌신짝처럼 봉사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녀들은 투쟁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뚱아리는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아래는 문창극 대기자의 사설을 참고로 보충하여 쓴 글이다.

 

                                                                                      산책로 개나리(며칠전 모습)

 

내일은 선거날이다. 모두들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예민해져 있다. '나꼼수'를 얘기하면 벌써 편이 갈린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어느 편을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보다 중요한 것이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우리 세대만 살다가 갈 나라가 아니다. 우리 아들딸, 손자들에게 물려줄 나라다. 그래서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것이다. 바로 그 나라가 걱정이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산다.

 

노원구에 출마한 나꼼수 진행자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자의 자리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지지하기 위해 수천 명이 시청 앞으로 모여든다. 수백만 명이 그들이 만드는 인터넷 방송을 방문하고 있다. 그 조회수가 그들을 인기인으로 만들었다. 인기는 표가 된다. 정치는 표를 원하니 후보가 된 것이다. 그 인기의 실체는 무엇인가. 병든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일탈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다. 우리 민주주의가 이렇게 막장까지 다다랐다는 증거다.

 

  

 

 

그들을 감싸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놀랍다. 서울대 교수, 인기 소설가, 판사, 야당의 수뇌급 인사들…. 스스로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다.

 

진보의 신념은 무엇인가. 이성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교육과 계몽을 통해 완전한 인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역사의 진전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참담한 일들은 역사가 진보했기 때문인가? 아니, 진보가 너무 나가 썩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영이다. 밖에서는 우리를 존경의 눈으로 보아준다. 경제도 잘하고 민주주의도 잘하는 모범국가라고 … 정말 그런가.

 

                                                                       산책로 개나리(지난 일요일 모습)

 

 

 

우리의 정치는 지금 어디 와 있는가. 한마디로 타락의 정치다. 민주주의는 이미 타락해 포퓰리즘 늪에 빠져 있다. 정치인들은 누구도 미래를 말하고 있지 않다. 현재의 달콤함과 편리함만을 부추기고 있다.

 

경제는 어떤가? 가진 자는 더 탐욕을 부리고, 없는 자는 시기와 질투에 매여 있다. 자기 노력으로 잘살려 하기보다는 남이 가진 것을 나누기만을 바라고 있다. 독립심보다 의타심이 팽배하다.

 

윤리는 어떤가? 이 나라에서 정중함과 예의 바름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저속함과 뻔뻔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반듯한 사람은 왕따가 되고 삐딱하게 꼬인 인간은 박수를 받는다. 이런 정신으로 건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가? 역사에서 그런 예는 없다. 로마의 몰락은 로마 시민의 타락에서, 유럽의 쇠퇴는 부패해진 종교와 이성을 따라가던 유럽인들의 정신의 쇠퇴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른들이 밭에 일하러 간 사이에 동네 아이들은 요술피리 소리에 홀려 그들을 쫓아갔다.

 

우리 기성세대가 물질의 풍요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간 사이에 우리 아이들의 영혼은 엉뚱한 사람들이 빼앗아 갔다. 피리 소리에 홀린 아이들이 돌아오도록 경성(警醒)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그 나팔 소리가 울려야 한다.

 

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의 문제다. 국민을 얼마나 얕보았으면 이런 인물을 공천할 수 있는가.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인간들을 대표자로 뽑을 수 있는가. 국민이 어리석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조차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 미래가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ㅈ니정 이 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룩하자면 그들의 선전.선동에 현혹되어서도 안 될 것이며 유권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문제는 달콤한 헛된 공약이나 복지 포플리즘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자질이 저급한 인물을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된 국회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서로 견제하며 협의하고 국익을 위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창조적이고 효율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유권자들이 잘 못 선택한다면 가뜩이나 후진국형의 한국 정치계는 혼란과 위기의 주변 국제정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국난을 당하였던 조선의 당파싸움에 비견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각 가정에서부터 각성이 일어나야 한다. 이 사태의 책임은 요술피리를 쫓아간 아이들에게 있기보다는 그들을 방치한 어른들에게 있다. 가정은 무엇을 했으며, 학교는 무엇을 가르쳤으며, 종교는 무엇을 했는가. 문제의 장본인이 성직자의 아들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의 모습으로는 젊은이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기득권을 무기로 윽박지른다고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삶의 모범만이 향기가 나는 법이다. 그런 진정성만이 설득력을 가진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젊은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정한 민주 시민이 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자유와 참여가 소중한 만큼 책임과 의무를 함께 져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민주주의가 다수결로 결정된다고 해서 다중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민이 다중의 일원으로 묻혀버릴 때 우중(愚衆)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민이다'라는 것에 긍지를 갖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시내가 모여 강을 이루듯이 건강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야 건전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한 사람이 중요하다. 결국 민주주의도 한 사람에게 달렸다는 얘기다. 내 한 표가 중요하다는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다'는 말을 잊지 말자.

 

  

 

사진첩을 뒤지다가 우연히 지난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과거에 찍어 두었던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초점이 흐린 것은 사진을 휴대폰으로 재촬영했기 때문이다. 인물 초상권 침해 방지를 위해서 그런 것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군대 시절, 테니스장에서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영내 영관급 이상 전 간부는 특별한 임무 수행을 제외하고 테니스장으로 집합시켰다. 그래서 어두워질 때까지 테니스를 치고 부대내 목욕탕에서 목욕과 사우나를 하고 휴게실에서 맥주를 한 잔씩 마시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테니스를 통해 저녁내기를 하거나 소주와 삽겹살을 사기로 하여 통상 저녁 식사는 가족이 기다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같이 식사를 하였다.

 

특히 내린천이 내려다보이는 삽겹살 고기집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방태산의 어둠이 밀려오는 그 곳은 술맛도 좋았고 고기맛도 일품이었다. 매일 캠핑하며 즐기는 행복감이었다. 비록 강원 산간 오지의 귀양생활이었지만 이러한 즐거움으로 3년 동안의 무료함을 달랬고 외로움을 떨칠 수가 있었다. 

 

눈이 오는 겨울에도 테니스를 쳤는데 비닐 천늘 덮어두고 관리병이 전담 관리를 하였다. 테니스장 관리병은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정비를 열심히 하여 매일 오후 4시면 어김없이 테니스를 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당시 테니스 관리병은 부대내에서 보직이 가장 인기가 좋았는데, 테니스장이 자신의 왕국이었고 포상 휴가도 자주가고 일상 근무에서 열외되기 때문에 심적인 고통도 적었고 단지 육제적인 노력만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부대앞 내린천에서 고무보트 타기

 

매년 여름날 비 온 뒤 내린천 물이 불어나 급류가 형성된다. 그리 심한 급류는 아니지만 부대앞 근방에서는 급류가 좀 심한 편이었다. 그래서 매년 여름이면 비가온 뒤는 전간부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내린천 물길을 따라 보트타기 훈련을 했다. 상남  쪽에서 출발하여 부대앞을 지나 현리 근방 황소유원지까지 약 2~3킬로미터 거리였다. 마지막 종점에서는 막걸리와 삽겹살을 준비하여 놓고 전 간부들이 같이 즐거움을 만끽했다.

 

아마 말이 많아 지금은 이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렇게 훈련을 했다. 간부들이 오지의 오로움을 이렇게 해서라도 풀지 못하면 이 곳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기 때문이다. 공기 좋고 물도 좋지만 부대 근무 환경도 열악하고 문화시설이 없고 정보도 늦을 뿐 아니라 시장과 학교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여 가족들이 같이 살기도 힘들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부대 관사도 오래되어 노후화되었고 우선 순위도 끗발에 밀려 떨어진다.

 

김영삼 시절 군에서 '하나회' 사건이 터졌을 때 하나회 회원이었던 영관급 및 장성들이 대부분 강원 오지 이곳으로 유배되어 온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곳에서 울분을 삭히며 세월을 보내다가 순한 양이되어 대부분 군복을 벗었다.

 

 

                                                                                        물결이 좀 심한 곳이다

 

 

지금은 어던지 몰라도 당시 육군에서는 수요일 오후는 통상 체육의 날이다. 그 날이면 오후에 부사관 장교 등 전간부가 축구 복장으로 연병장에 집합하여 운동을 했다. 인원이 많으면 축구공 두 개, 적으면 하나를 가지고 편을 갈라 축구경기를 했다. 서로 얼굴도 익히고 친숙함을 도모하였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는 그 날이 가장 즐거운 날이 되었다. 왜냐면 자신의 운동 실력을 전간부들 앞에서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동 경기가 끝나면 같이 모여 등나무 아래 휴식터에서 막걸리와 두부, 돼지머리 등으로 친목의 시간도 가졌다. 공을 잘 차는 친구는 기억에 남아 추겨 세우기도 하고 젊은 부사관들의 얼굴도 익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부대에서는 운동을 잘하는 친구가 대체로 임무수행도 잘하였다. 그것은 자신이 상급자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자신감도 생기고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부모의 칭찬을 듣고 자신감이 생기듯이 군인도 상급자의 칭찬을 듣게되면 어려운 임무라도 임무수행에 자신감을 갖게된다.  

 

                                                                                    어느 여름날 가족과 함께 낙산사에서

 

여름방학이면 가끔 가족을 데리고 한계령을 넘어 동해안을 찿아갔다. 낙산사도 구경하고 대포항에서 회도 먹고 설악산도 구경하고 온천도 했다. 그때 사진아다.

 

또 부대 간부들과도 가끔 설악산 대청봉을 올랐다가 동해안쪽으로 넘어가서 온천도 하고 속초항 바닷가에 가서 회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한계령 약수터에 들러 약수도 먹곤 했다. 인재 쯤 와서 노래방에 들러 노래도 한 곡씩 부르고 즐겁게 지내다가 귀대하기도 했다.

 

봄이면 간부들과 산에 올라 산나물을 채취하기도 하고 더덕도 캤다. 된장에 삽겹살을 준비하고 밥, 국을 준비하여 산을 올라가면 산 정산에는 나물밭이 넓게 펼쳐저 있는데, 그 곳에서 삽겹살을 굽고 앉은채로 손만 뻣으면 취나물, 참나물이 지천에 깔린 나물밭이라 쌈을 싸 먹으면 취나물의 향기로운 그 맛은 진정한 진미였고 신선이 따로 없었다.

 

매년 부대 관사 옆 공터에 텃밭을 만들어 옥수수, 감자, 채소를 심었다. 강원도에는 옥수수와 감자가 잘 된다. 틈 나는대로 김도 메주고 잡초도 뽑아주었다. 닭도 닭장을 만들어 수십마리 키웠다. 그러나 야생 동물들이 닭장을 뚫고 들어가 닭을 대부분 잡아 먹는 바람에 별로 재미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옥수수와 감자는 여름이면 풍족하게 생산되었다. 그래서 수확된 옥수수와 감자를 간부들 집에 나누어주고 또 집을 찿아오는 손님들에게도 한 상자씩 차에 실어드렸다. 봄이면 산에 올라가 각종 나물을 채집하여 한 상자씩 서울 처가집 식구 여러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가끔 동기생이나 친구들 친척들이 방문을 받기도 했다. 대부분 동해안으로 여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찿아왔는데, 관사 앞 마당에 평상을 만들어 놓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삽겹살에 취나물, 참나물로 삼을 싸서 먹으면 꿀맛이었다. 소주 한 잔에 된장국에 저녁도 먹고 도란 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잠을 자거나 떠날 때 쯤이면 옥수수. 감자 한 상자씩을 차에 실어드리면 좋아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다녀간 사람도 많았는데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접받고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을 가까이 했다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다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다. 잠시 아련한 추억에 잠겨보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