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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미래사회

우면산의 봄 30 : 신의 존재와 천지창조설을 부정한 천재 물리학자

 

 

 

우면산의 봄 30 : 신의 존재와 천지창조설을 부정한 천재 물리학자

 

 

 

새벽 밤하늘은 무수한 별들과 달이 어울려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지구는 둥글고 자전하면서 공전을 통해 태양을 돌고 있다. 그래서  밤과 낮이 있고 사계절이 있으며 지구상의 동.식물들이 태양의 에너지로 생명을 잉태하고 자라고 다시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 지난번 채소도 음달쪽은 잘 자라지를 못하고 있다. 태양이 없는 지구는 암흑의 천지일 것이며 죽음의 지구가 될 것이다. 인간들의 생명이나 동식물들의 생명이나 태어나고 죽는 것은 시간상의 차이가 있을 지언정 무엇이던지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런데 모든 종교의 도입부는 태초에 이 지구의 동.식물과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만든이가 자신들의 종교 주체자이거나 하느님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모시는 신은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부했다. 역사를 보아도 고구려의 광개토왕비문에도 천손의 자손들이라 했다. 아담과 이브를 포함하여 예수도 하느님의 아들이라 했다. 그런데 예수는 마리아라는 여자를 통해 하느님의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났다고 한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이미 마리아와 사이에 예수의 형제들을 여럿 낳았고 그 중에 한 명이 예수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거짓이지만 이야기가  좀 그렇다. 그러나 하느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니 예수와 비슷하게 만든 흐릿한 얼굴의 하느님 얼굴 그림들이 종교계에서는 유행했다. 창세기에는 하늘과 땅, 우주와 태양, 달,  지구의 동.식물과 물, 그리고 인간을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했다.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고 했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으며 그래서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가 만들어져 살기좋은 낙원에서 살게 했다고 했다. 그들이 닉원에서 발가벗고 무위도식하며 잘 지내다가 어느날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지혜의 과실인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하느님 같이 밝은 눈이 되려다가 낙원에서 쫒겨났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이처럼 태초부터 원죄를 지고 대를 이어 평생 살아야 한다고 했다. 모세 5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태교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무형의 신을 유일신으로 삼아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했다. 유태교에서 파생되어 나온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와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숭배하고 있으며, 천주교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포함하여 삼신으로 모시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죽으면 심판을 받으며 지옥과 천국으로 간다고 했다. 여기도 천국, 저기도 천국이다. 결국 인간은 죽으면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는 이야기다. 위대한 황제도, 가난한 거지도, 위대한 장군도, 평범한 시민도 모두가 똑같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는 것 또한 죽음이다. 천국!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천국이라는 단어의 무형상품으로 수 천년 동안 지구의 인류를 기만해온 단어이며 이것이 그리스도 종교의 허구의 핵심사상이다.

 

과학은 종교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학문으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나 사회에서는 종교를 위한 과학에 불과하였고 그러면서 과학이 탄압과 배척을 받았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종교 지도자와 광신도들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과학자가 종교 재판을 받았고 독일의 니체가 '신은 죽었다' 했다가 죽기 직전에 종교계의 압력으로 '아니다'라고 번복했다. 중세 유렵이서는 과거 예수를 고발한 유태인을 '개토'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어 놓고 살게 했으며 마녀사냥과 학살은 물론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강요하였다. 그래서 유태인은 기원후 70년 로마제국에 반기를 들다가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저항을 끝으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영구히 추방되어 2000년 동안 세계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천대받고 멸시받으며 살아야 했고, 하층 기능공이나 상업에 종사하면서 부가 쌓이자 대부업을 전문으로 재력을 쌓아갔다. 유태교는 특히 우상숭배를 지양하는데, 가나안 땅이 보이는 언덕에서 죽은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죽자 그의 무덤을 흔적없이 해버렸다. 왜냐면 후대에 모세를 숭배하여 신전 등이 세워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태교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가 신격화한 예수를 부정한다. 이슬람교도 알라신 외에는 예수를 유태교 랍비 정도로 생각하며 신격화를 부정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자신들이 신격화하여 가장 숭배하는 예수를 부정하는 종교들이니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근본이 다르니 반길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태교와 이슬람은 비슷하지만 천주교및 기독교와는 갈등의 요인이 상존한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그들의 확산과 영역 싸움으로 얼룩져 왔으며 종교 분쟁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계적인 천재 물리학자인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가 '천국과 사후세계도 없다'고 했다. '그건 동화일 뿐 삶에서 잠재력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천국이나 사후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라고 했다.

 

이는 호킹 박사가 16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인간의 뇌가 마지막 순간을 위해 깜박이고 있을 때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뇌는 고장나면 작동을 멈춘 컴퓨터라 생각된다. 고장안 컴퓨터를 위한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고 했다. 또 '우리의 삶을 잘 활용해 이 세상에서 잠재력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우리 삶의 행동의 위대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며 저서를 통해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과학이 신을 불필요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런던에서 '구글 시대정신 연례회의'에서 강연할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를 주제로 강연이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과학이 종교의 가면을 벗기다. 스티븐 월리엄 호킹 박사, 그는 누구인가?

 

스티븐 윌리엄 호킹

 

스티븐 윌리엄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CH, CBE, 1942년 1월 8일~)은 케임브리지 대학루카스 수학 석좌 교수로 있는 영국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특히 블랙홀이 있는 상황에서의) 우주론양자 중력의 연구에 크게 기여했으며, 자신의 이론 및 일반적인 우주론을 다룬 여러 대중 과학서를 저술했다. 그 중 시간의 역사는 런던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최고기록인 237주 동안 실렸다.

 

호킹은 스물한 살 때부터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을 앓아 현재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중요한 과학적 업적으로는 로저 펜로즈와 함께 일반상대론특이점에 대한 여러 정리를 증명한 것과 함께, 블랙홀열복사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 있다(이는 호킹 복사 혹은 베켄슈타인-호킹 복사로 불린다.). 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이다.

 

 

스티븐 윌리엄 호킹
Stephen Hawking.StarChild.jpg
출생 1942년 1월 8일(1942-01-08) (69)
잉글랜드의 국기 잉글랜드 옥스퍼드
국적 영국의 국기 영국
분야 이론물리학
소속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 대학 옥스퍼드 대학교
주요 업적 일반상대론적 특이점에 대한 정리
호킹 복사
종교 없음(무신론자)
루게릭병을 앓아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

 

 

생애

학창시절

스티븐 호킹은 1942년 1월 8일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지 300주년이 되는 날 태어났다. 10대 시절 그는 친구들과 초감각 지각(ESP, extra sensory perception)을 실험하고 LUCE와 같은 원시적 컴퓨터를 만드는 등 과학에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미 과학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에 과학자로서의 삶은 정해진 길이었으나 전공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었다. 의사인 아버지와 달리 생물학에는 큰 관심을 보지 않았고 물리학을 '모든 과학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수학에 대한 애정 또한 컸기에 쉽게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모교인 옥스포드 대학에 자식을 보내고 싶어했고 당시 옥스포드 유니버설 칼리지에는 수학전공이 없었기에 1959년 10월 17살의 나이로 그는 옥스포드 대학 물리학과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3년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우주론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루 게릭병

영국출신의 호킹 박사는 22살 때 근육 및 신경계 난치병인 근위축성 측생경화증(루 게릭병) 진단을 받고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의사들의 이같은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갔다.

 

이후 연구 활동

호킹은 32살이던 1974년 5월 2일 왕립학회에 역사상 가장 젊은 회원으로 추대된다. 왕립학회는 새로 선출된 회원들이 직접 걸어나가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걷기는 물론 글씨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스티븐에게는 참 힘든 일이었고 당시 노벨 생물학상 수상자이자 왕립학회 수장인 엘런 호드킨이 명부를 밑으로 가져 가고 스티븐이 힘겹게 서명을 하자 우뢰와 같은 갈채가 터져 나왔다. 당시 다른 일로 왕립학회에 방문해 있던 그 유명한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 모습을 보러 참석했다가 "이미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저서

  • 1988년 시간의 역사 ISBN 89-7291-405-3
  • 1997년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ISBN 8972911585
  • 2001년 호두껍질 속의 우주 ISBN 89-7291-301-4
  • 2010년 위대한 설계

 

수상 내역

  • 1975년 영국 왕립천문학회 에딩턴 메달
  • 1975년 로마 바오로 6세 피우스 3세 메달
  • 1976년 영국 왕립학회 휴즈메달
  • 1982년 영국 CBE 훈장
  • 1985년 영국 왕립천문학회 골드 메달
  • 1988년 이스라엘 울프 재단 울프 물리학상
  • 1989년 영국 CH(Companion of Honour) 훈장
  • 1999년 미국 줄리어스 에거드 릴리엔펠트상
  • 2002년 아벤티스 과학 서적상 '호두껍질 속의 우주'
  • 2009년 미국 대통령 자유의 메달

 

 

호킹 박사의 무신론, 논쟁이 뜨거운 이유


영국의 세계적인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최근 출간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에서 내세운 무신론으로 과학계와 종교계가 다시 한 번 뜨거운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 호킹 박사의 무신론 주장으로 과학계와 종교계가 다시 한 번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미국 물리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와 함께 쓴 이 책에서 호킹 박사는 “우주는 신성한 존재의 개입이 아니라 물리학 법칙에 따라 발생했다”며 창조론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신이 없다는 또 하나의 근거로 호킹 박사는 1992년 처음 발견된 외계 행성을 들었다. 우주에 태양계와 유사한 행성 시스템이 널려 있다는 것은 지구가 인간을 위해 설계됐다는 천지창조론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 없이 자발적으로 우주와 인간이 존재하게 됐다’는 호킹 박사의 주장이 알려지자 종교계와 창조론자들은 즉각 반박했다. 과학자이면서 현존하는 최고의 신학자로도 불리는 앨리스터 맥그래스 영국 킹스칼리지 교수는 “물리학 법칙 자체가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없다”며 “스티븐 호킹은 과학을 지나친 과장으로 부풀려 오명과 악평의 과학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로완 월리엄스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역시 “물리학만으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결코 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호킹 박사에 대해 반박했다.

영국 유대교 최고 지도자인 조나단 헨리 색스 경은 “과학은 설명에 대한 것이지만 종교는 해석에 대한 것”이라며 호킹 박사의 논리 전개에 대해 “기초적인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 국민 중 약 90%가 가톨릭교를 믿는 콜롬비아에서는 이 소식이 전해지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나올 만큼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호킹 박사는 이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주장을 더욱 확고히 했다. 지난 7일 미국 ABC 뉴스에 출연해 “과학은 신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

그러자 이에 대응하는 창조론자들의 주장도 더 과격해졌다. 영국 왕립연구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수전 그린필드 링컨대 교수는 “호킹 박사처럼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물리학자들이 탈레반처럼 행동한다”는 혹평을 내놓았다.



   중세 초기, 과학은 ‘신학의 시녀’
 

과학은 자연 법칙을 통해 물질세계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이에 비해 종교는 신의 섭리를 통해 정신세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왔다. 이처럼 서로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기에 과학과 종교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자연과학의 발달 수준이 그리 높지 않던 중세 초기만 해도 과학은 ‘신학의 시녀’에 지나지 않았다. 즉, 그 당시 과학의 목적은 성서 해석에 도움을 주는 데 있었다. 따라서 신학을 위한 부수적이며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1543년 폴란드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을 제안하며 종교의 신성한 영역을 침범했다. 그에 의하면 만물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으며 지구는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번 도는 별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가톨릭계의 반응은 극렬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이 성서의 주장이니, 코페르니쿠스의 주장대로라면 기존의 종교적 기반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수리천문학자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 외부에서는 거의 이해되지 않았으며, 천문학자들조차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또 책의 출간 직후 임종했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는 종교계의 박해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며 ‘우주는 태양과 같은 별들이 무한하게 퍼져 있다’는 무한우주론을 주장한 이탈리아의 철학자인 조르다노 부르노는 1600년 로마에서 공개적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근대 천문학의 아버지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 1633년 로마의 종교재판 법정에서 대주교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지동설이 잘못됐다며 참회를 해야 했다.



   1859년, 흔들리기 시작한 종교의 권위
 

▲ 지난 9일 출간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저서 '위대한 설계'

그 후 1859년 11월 일대 파란을 일으킨 책 한 권이 찰스 다윈에 의해 발간됐다. ‘종의 기원’이란 이 책에서 다윈은 ‘인간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성서와 창조론을 뿌리째 흔들어 놓은 엄청난 사건이었고, 종교계는 또 다시 극렬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때와는 달리 종교계가 수세에 몰렸다.

다윈이 쏟아낸 각종 증거와 논리에 대해 과학계가 인정했으며, 이후 그때까지 공고하던 종교적 세계관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과학적으로 재정립한 창조론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잃어버린 고리’로 진화론의 약점을 파고들었으며, 과학이 밝혀낼수록 복잡하고 정교한 생명의 비밀에 대해 오로지 지적 설계자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 설계론’을 들고 나와 진화론에 대응했다.

그러다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석좌교수는 2006년 ‘만들어진 신’이란 베스트셀러를 통해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이라며 아예 대놓고 무신론을 주창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번 저술로 세계는 다시 한 번 무신론 대 유신론의 뜨거운 논쟁에 휩싸이게 됐다.

지금도 진화론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는 진화론을 가설 이상의 중요한 학설로 인정하며, 교회와 진화론이 양립할 수 있다는 타협과 공존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노년기로 접어든 1941년 과학과 종교의 공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아마 여기에 과학계와 종교계의 갈등을 치유할 해답이 들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