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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624 : 조선의 역사 166 (선조실록 31)

두바퀴인생 2012. 6. 22. 01:31

 

 

 

한국의 역사 624 : 조선의 역사 166 (선조실록 31)

 

  

            

                                                    임진왜란 경과                                                                                                                    

                                                                                                                                                                                   

 

제14대 선조실록(1552~1608년, 재위: 1567년 7월~1608년 2월, 40년 7개월)                             

 

 

산같이 정중하라(靜重如山)

 

5월 6일. 두 함대는 당포항을 출발하여 거제도 남단에 위치한 송미포에 닻을 내리고 밤을 지냈다. 이튼날이 5월 7일. 조선 함대는 아침 일찍 가덕도를 향해 돛을 올렸다. 그리고 옥포로 이동하던 중인 정오 무렵, 탐색대로부터 '옥포만에서 왜선 발견했다.'는 급보가 신기전 발사 신호로 알려져 왔다.

 

이 소식은 곧 사령선인 기함 기라졸(수기병)들의 수기 신호를 통해 전 함대에 알려졌다.

 

"거제도 송미포 앞바다에 이르니 날이 저물었으므로 밤을 보냈습니다. 7일 새벽 다 같이 출발하여 적선들이 정박해 있는 천성과 가덕을 향해 갔는데 정오에 옥포 앞바다에 이르니 척후장인 사도 첨사 김왕, 여도 권관 김인영 등이 신기전을 쏘아 올려 변고를 알리므로 적선이 있는 줄 알고 다시금 여러 장수들에게 신칙하기를 '망령되어 움직이지 말고 산같이 정중하라'고 지시한 후......"(옥포파왜병장. 1592.5.10)

 

 

 

 

 

 

 

첯 출전으로 인한 두려움과 긴장감 때문인지 병사들의 몸은 평소 훈련 때와는 달리 굳어 있었고, 이순신은 감지했다. 이에 곧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고 산같이 정중하라'는 깃발이 기함에 내걸렸다. 이는 각 기지대장들에게 '병사들을 돌려해서 전투태세를 엄히 갖추게 하라'는 명령이었다. 조선 함대는 양지암을 돌아 곧장 옥포만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옥포만은 왜군들의 약탈과 방화로 시커먼 연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그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수십 척의 왜선들이 옥포 선창에 정박해 있는 것이 보였다. 전투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왜군 측 병사들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선체에 둘러쳐진 오색의 대형 휘장과 크고 작은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렸다.

 

"함대 전투 속력으로!"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조선 함대의 선봉, 중군, 후군은 위용을 갖추고 힘차게 군악을 울리며 왜선단을 향해 돌진하였다.

 

분탕질에 여념이 없었던 왜군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과 귀를 의심하며 잠시 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조선 함대는 모두 도망가고 없다'는 생각에 천하태평으로 분탕질에 나선 터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선단이 나타나 처음 듣는 요란한 군악을 울리면서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군악 소리와 병선의 모양으로 보아서 그것은 분명 왜군 함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시리(時理,時利)와 지리(地理,地利)에서의 우위

 

다급해진 왜군측은 급히 징을 치고 고동을 불면서 인근 마을에 나가 있는 왜군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약탈을 위해 멀리 나가 있던 왜군들은 10~20리 밖까지 떨어져 있었으므로 때맞춰 돌아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군 함대는 기동력과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고 조선 함대는 시리가 매우 유리한 입장이었다. 또한 만 안에 밀집해 있던 왜군 함대는 뒷편의 함선은 앞쪽 함선에 의해 시계가 차장되어 전투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반면 조선 함대는 일렬로 진을 형성하고 있었고, 전 함대가 일제 사격에 나설 수 있는 '학익진' 형태로 진법과 지리에서도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 포구 앞바다에 줄지어 나란히 들어가 보니, 왜선 50여 척이 옥포 선창에 나뉘어 정박해 있었습니다. 큰 배는 사방으로 온갖 무늬를 그린 비단 휘장을 둘러첬고, 그 휘장 주변으로는 대나무 막대기를 꽂아 놓았으며, 붉은 색과 흰 색의 작은 깃발들을 어지럽게 매달아 놓았는데, 깃발 모양은 마치 펄럭이는 천이나 매달린 모양으로 모두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바람에 따라 펄럭이는 모습이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그런데 우리들이 그 포구로 들어가니 분탕질을 쳐서 피어오른 연기가 온 산에 가득 찼는데, 왜군 무리들은 우리 수군의 배를 돌아보더니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뿔뿔이 흩어져 뛰어가서 배를 타고는 아우성을 치며 노를 재촉하여 바다 가운데로는 나오지 못하고 기슭을 따라 배를 저어가는데, 6척이 선봉에서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옥포파왜병장 1592. 5.10)

 

정보에 밝았던 이순신은 왜선들이 비단 휘장을 둘러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불에 타기쉬운 것으로 특히 화약무기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일본 함선의 모습을 보자 이순신은 마음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왜군 측에서 보면 분탕질은 군수물자 조달을 위한 일종의 약탈행위였다. 당시 옥포에 주둔해 있던 왜군 함대의 주장은 '도도 다카도라'(1556-1630)라는 맹장이었는데, 그가 거느린 병력 규모는 약 3000명 정도의 연대급으로 요즘 해군으로 치면 전대급 규모였다.

 

왜군들은 분탕질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보초를 세워두었으나 조선 수륙군 대부분이 도망가고 없는 상태에서 긴장감도 없이 대다수의 보초들은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5월(양력 6월)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평선 너머에서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대함대가 다가왔고, 시야에 펼쳐진 크고 작은 병선들을 합쳐 모두 100여 척이 되어 보이는 대함대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함대의 진형도 오와 열이 질서정연하여 전체의 모습은 마치 산이 다가오는 것 같은 위용이었다.

 

기급을 한 왜의 초병들은 급히 소리를 치면서 소라고동을 불어 위급함을 알렸다. 이에 선상의 왜군들과 분탕질에 나섰던 왜군 단위부대들, 사령관도 모두 놀랐다. 

                                                                                                

기함 누각 위에서 차양막을 치고 곤한 단잠에 빠져 있던 도도는 갑작스런 소리에 벌떡 일어나 장막을 젖혔다. 밖을 내다보니 군사들이 이리 저리 뛰며 소리를 질렀고, 바다쪽을 바라보니 왠 낯선 대함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왜장 도도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저것은 분명 조선 수군이 아닌가?' 도도는 투구와 칼을 집어 들고 부리나케 갑판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전원 전투준비! 대장들은 함교를 지켜라."

 

왜군들은 부산에 닿은 이후 지금까지 조선의 수군이라고는 배 한 척, 사람 한 명 구경해 보지 못햇고, 탐색선을 보내 경상도 해안의 여러 수군 기지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배와 무기를 파하고 모두 달아난 후였다. 때문에 도도 역시 조선 수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온 터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햇던 적 함대의 출현에 도도는 크게 당황했다. 자신의 함대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으며 적에게 완벽한 기습을 허용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안되겠다! 이곳을 빠져나갈 것이니 즉각 이동 가능한 병선을 모아라!" 다급해진 도도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장졸간에 당한 기습이라 도도에게는 자존심 따위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엇다. 자신의 방심을 탓해볼들 죽고 난 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약탈을 위해 뭍으로 나갔던 왜군들이 속속 돌아와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가운데 사령관 도도의 탈출을 돕기 위해 몇 척의 왜선들이 그가 탄 배를 호위하며 기슭을 타고 급히 노를 저어 갔다. 왜군 쪽에서는 조선 함대가 외항 쪽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해안선을 따라 탈출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학익진(鶴翼陣), 그리고 일시집중타(一時集中打), 편현일제타방(片舷一齊打方)

 

"신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이 한 마음으로 분발하여 모두 죽을 각오로 힘을 다하니 배 안에 있던 관리와 군사들 또한 그 뜻을 본받아 서로 격려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공을 세우려 하였습니다."(옥포파왜병장 1592.5.10)

 

장계에서 조선 수군들이 이렇게 분발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첯째, 시리와 지리에 모두에서 조선 함대는 유리한 입장이었엇고, 거기에다 도망치는 적을 보자 사기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적은 해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꼬리를 내린 겪이었으므로, 조선 함대 측에서는 일찌감치 승리를 예감할 수 있었다.

 

둘째, 적의 탈출을 허용한다는 것은 조선 함대 입장에서 보면 일단은 실패작이다. 적의 퇴로를 차단, 단 한 척이라도 남김없이 파괴함으로써 왜군 측의 피해를 최대화하는 것이 이번 출동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양쪽으로 에워싸고 대들면서 대포를 쏘고 화살과 실탄을 쏘아대기를 마치 바람처럼 천둥처럼 하자, 적들도 조총과 화살을 쏘아대다가 기운이 지쳐서 배에 싣고 있던 물건들을 바다에 내던지기에 정신이 없었는데, 화살에 맞은 눔은 부지기수였고,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처서 달아나는 눔도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적들은 일거에 무너져 흩어져서 바위 언덕으로 기어 올라갔는데, 서로 뒤떨어질까봐 겁내었습니다."(옥포파왜병장, 1592.5.10)

 

양지암을 돌아 선봉, 중군, 후군으로 진형을 갖추고 속도와 군악 소리를 높이며 왜선단과의 거리를 좁혀 들어가던 조선 함대는 왜선단 전방 300여 미터에 이르자 대포 소리와 함께 두 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옥포리 포구를 에워싸는 듯한 진형으로 계속 다가갔다.

 

훗날의 장계를 보면, 이와 같은 진법을 이순신은 '학익진(鶴翼陣)'이라고 했는데, 이순신은 다양한 학익진을 여러 가지 해전 상황을 앞두고 사용했다. 옥포만에서 펼친 학익진은 '포위형 학익진'이었다. 이렇게 되면 항만 안에 갇힌 왜선들은 조선 함대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학익진은 마치 체조에서 양팔을 벌린 형태, 즉 학이 날개를 양쪽으로 크게 펼친 모습의 진형이다. 따라서 좌우로 선체를 돌려가면서 '좌현대포 쏘아!', 정면대포 쏘아', '우현대포 쏘아!'를 제자리에서 회전하면서 발포를 계속할 수가 있다. 또 뒷줄에 있는 선단과 교대하여 뜨거워진 포신을 식힐 수 있으므로 전 함대가 정면의 적을 일시에 전 함포로 포격이 가능한 진형이다.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닮았앗다고 하여 붙여진 학익진법은 이순신의 핵심적인 전법으로 현대 해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시집중타'(또는 Salvo 사격법이라고도 한다)의 원조로써 훗날 세계사 각종 해전에서 함대전법의 최초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으로 대승을 거둔 한산도 대첩은 세계 해전 사상 새로운 전법의 신기원을 이룬 해전으로 전사에 기록되어 오늘날 각국의 해군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반면 포위된 일본 함대는 밀집대형으로 몰려 있어 앞 줄과 뒷줄 선단 간의 교대사격이 불가하고 시계도 차장되어 사격이 불가한 형국이었다. 때문에 옥포해전에서 왜선 함대가 조선 함대와 비슷한 화포로 무장하고 있었다해도 진형에서 이미 왜선은 조선 수군을 당할 수가 없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유리한 진형과 조건을 갖춘 조선 함대는 산과 같은 무게로 왜군 선단을 압박해 들어갔다.

 

한편 왜군 선단은 포위당한 입장이었으므로 해상으로 탈출이 불가하였고 다만 포위망이 좁혀지기 전에 탈출을 시도했던 사령관 도도의 배와 몇 척의 호위선들만이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 있었다. 탈출을 포기한 왜군 대장들은 육지로 상륙한 부대들이 속속 도착하자 조총수들로 하여금 밀집사격 대형을 갖추게 했고, 왜군 돌격대를 편성하여 일본도를 빼들고 조선 함대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장들은 약탈나간 부대들이 모두 복귀할때까지 초전의 수적 열세를 극복만해 낸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목청을 높여 군사들의 선전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익진을 편 채 포위망을 좁혀오던 조선 함대는 "꽹!~" 하는 징소리와 함께 일본 함선 전방 70미터쯤에서 일제히 멈춰 섰다. 요란하게 울려대던 군악도 그 순간 뚝 멈췄다. 조총으로 조선 수군의 혼을 뺀 뒤 일본도를 휘두르며 노도같이 돌격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왜군들은 조선 함대가 감자기 제자리에 멈춰서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본군은 '자신들게 조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조선 수군이 더 이상 접근해 오지 못하는구나'라고 대체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조선 육군이 파죽지세로 올라가는 일본군에게 연전연패 한 것이 바로 조총이었기 때문이라는 소식을 들었다면 조선 수군이 쉽게 공격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하늘과 바다를 뒤흔드는 포성과 함께 수백 수천 발의 소발화, 중발화, 대발화를 매단 불화살형 포탄들이 옥포 하늘을 새까맣게 수놓으면서 왜선단을 향해 포물선을 긋기 시작했다. 경천동지의 순간이었다. 일본도를 뽑아들고 결전을 준비하고 있던 왜군들은 가공할 대포 소리와 불벼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왜군들로서는 그렇게 크고 많은 대포들이 일시에 사격을 가하는 것은 지금까지 듣짇고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세계 해전사를 통틀어 최초로 선보인 일시집중타, 즉 백병전 없이 순수 함포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독 안에 든 쥐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수천 발의 포탄과 화살탄이 왜선단을 향해 빗발치듯이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외마디 비명 소리가 왜군 진영을 휘몰아쳤고, 연쇄적인 폭음과 함께 발화탄이 터지면서 발생한 폭음과 폭풍에 곤두박질 쳤으며, 왜선들은 각종 비단 휘장으로 인해 쉽게 사방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갔으며 왜병들은 불을 피해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불에 타죽는 등 아비규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층루에서 버티고 서서 한껏 기세를 뽐내던 왜장들도 하나 둘 산탄과 화살을 맞고 층각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몇 차례의 집중타를 얻어맞자 앞줄에 위치한 왜선들은 조선 함대의 공격으로 이미 깨지고 부셔진데다가 크고 작은 화살들이 가시처럼 꽃혀서 불타고 있었다. 휘황찬란하게 나부끼던 깃발과 비단 휘장들은 좋은 불쏘시개가 되었고, 그 불길은 그나마 피해가 가벼웠던 뒷편 병선들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미처 배에 오르지 못한 왜군들은 사무라이 특유의 강단을 살려 급히 조총부대를 규합하여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했다. 콩볶는 듯한 조총사격으로 왜군 측은 잠시 전열을 가다듬는 듯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것은 조선 함대가 조총의 유효 사정거리인 50미터를 벗어나 있었고 그나마 빽빽이 둘러쳐진 방패 뒤에서 쏘고 숨고 또 쏘아대는 조선 함대의 수병들을 자욱한 연기와 무수한 허수아비들 속에서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조준한 표적은 계속 움직이고 있어 쏘아도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왜군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믿었던 조총에 대해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일본도를 들고 돌격전에 나서려던 왜군 돌격대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그들이 일생을 통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겨 온 일본도를 버리고 장막과 깃발, 돛, 선체, 갑옷 그리고 동료들 몸에 붙은 불부터 꺼야 했다. 분신처럼 간직해온 일본도마저 내팽개치고 불끄기에 나섰지만 이미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불길은 잡을 수가 없었다.

 

이때, 왜군 측에서는 퇴각령이 내려졌다. 왜장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이렇게 독 안에 쥐 모양으로 갇혀 있다가는 불에 타 죽거나 적의 집중포화에 걸려 떼 죽음을 당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왜장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해전을 치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 해전이란 먼저 총포류로 사격을 가한 후에 배를 접근시켜 창칼로 적의 배에 올라 육박전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상식이었고, 그것이 자신들의 주특기였다. 그런데 자신들의 주특기는 하나도 통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창칼로 끝장을 내기 위해서는 바짝 접근하여 적선 위로 타넘어 가야 했지만 불타는 배를 이끌고 나아갈 수가 없었다. 뭐가 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은 강했고 자신들을 우롱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지만 살길부터 먼저 찿고 볼 일이었다.

 

왜장들에게 허용된 선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달아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해상의 포위망을 뚫는 것이었다. 육지로 도망친다면 당장은 목숨을 건질 수는 있겠지만 적들이 자신들의 도주를 그냥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또 육지에서 또 다른 조선군이 매복하여 있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미 많은 수의 병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토록 자신하던 백병전도 무의미 했다. 혹 무사히 목숨을 건진다해도 부산까지 걸어서 간다는 것은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육지 쪽을 선택했다가는 전멸로 이어질 공산이 컸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 가능한 방법은 해상으로 탈출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지만 적이 포위망을 더욱 좁혀 오기 전에 탈출을 시도해야 했다. 

 

 

 

특공선단들의 활약

 

이순신은 멀리 기함의 함교 위에서 전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투는 그의 의도대로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는 해전을 마무리 해야 할 시점이었다. 이순신은 왜군들이 포위망을 똟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고 전 선단을 내세워 공세에 맞설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엇다. 승패는 이미 갈라진 상황이었으므로 무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군이 해상 탈출을 위해 마지막 돌격전을 감행할 것으로 판단한 이순신은 즉각 "특공선단 앞으로!"를 명령했다. 북이 울리자 방패를 빽빽하게 세우고 현자포에 산탄으로 무장한 협선들이 왜선단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탈출을 시도하는 중.소형 왜선들을 향해 현자포로 산탄 세레를 퍼부었다. 

 

왜군들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 틈에 조선의 협선들은 선체에 불화살을 쏘아 맞췄다. 각 전선에서는 "명중을 높여라!", "저기 기어 나오는 왜선을 쏴라!" 등과 같은 조준사격 지시가 숨가쁘게 내려졌다. 이에 사수들은 대포의 조준사격에 한층 열을 올렸고, 불화살의 시위를 당기는 궁수들의 모습에도 분연한 각오가 넘쳐 흘렀다. 

 

조선 함대의 조준사격은 선체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백발백중으로 왜선들을 타격했다. 이에 돌격전으로 해상 탈출을 시도하려던 왜군들의 전열이 흩어졌고 주력 병기였던 조총은 탄환을 장전하는 데 1분이나 걸렸기 때문에 제대로 반격한 번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왜병들은 태반이 즉사 내지 익사했다.

 

이순신은 사활을 건 왜군들의 마지막 돌격전을 이렇듯 간단하게 봉쇄해버렸다.

 

왜군들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전우들의 시체와 기밀문서를 수정시킨 뒤 육지로 도망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바다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방패로 몸을 가리면서 화살탄이 날아오지 않는 선단 뒤쪽 바다로 뛰어들었다.

 

특공산단에서는 왜선단 코앞까지 접근해 들어가서 발화탄을 매단 화살을 쉴 새 없이 발사했다. 이렇게 되자 이제 화염에 휩싸이지 않은 왜선은 없었다. 보기에도 아찔한 검붉은 불길이 바닷바람을 타고 옥포리 앞바다와 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간신히 육지까지 기어 올라간 왜군들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아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이순신은 '바위 언덕으로 기어 올라갔는데, 서로 뒤떨어질까봐 겁내는 것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지옥같은 전장에서 벗어나 산위로 도망친 왜군들은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씻을 길 없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군은 수많은 전장터를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벌떼 같은 함포공격을 생각할 때마다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바다의 나라라는 일본의 선봉 함대로서 그까짓 조선 해군 따위에게 이렇다 할 응전 한 번 못해 보고 도망쳐 왔기 때문에 심한 자기 모멸감에 빠져있었다. 땅을 치고 통곡하다 못해 할복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배도 잃었고, 늘 자신의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일본도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앙처럼 믿어 왔던 조총도 실전에서는 거추장스런 무기였을 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너무도 분했고,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심한 허기가 물려들었다. 식량은 어디서 구하고 과연 안전하게 귀대할 수 있을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