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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우면산의 봄 12 : 가정의 달을 보내며......

 

 

우면산의 봄 12 : 가정의 달을 보내며......

 

 

                                                                      한강 야경, 멀리 잠수교(반포대교)가 보인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을 포함하여 어버이 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입양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정과 존중, 존경, 사랑이 넘치는 달이기도 하다. 

 

가정이란 인간 생활의 기장 기본적인 생활 단위이기도 하고 삶의 원천이기도 하다. 가정이 화목해야 자녀들의 성격형성이나 인격형성이 반듯하게 자라면서 형성될 수가 있으며 그렇지 못 할 경우에는 자녀들의 성장에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성격이 형성되기 쉽다.

 

그렇다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꼭 훌륭한 인격이 형성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정의 화목과 가정 교육의 질이 문제이다. 젊은 시절 고생도 하고 틈틈이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웅지를 키운다면 훌륭한 인재가 될 수도 있다. 부자집에서 비싼 사교육을 받으며 자란 젊은이들이라고 꼭 흉륭한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비리, 부패, 사기, 불륜 등으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대부분 부자집 배운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못 배운 사람보다 배운 눔이 더 못된 짓을 하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불 수 있는 사실이다.  

 

고구려의 미천왕의 이름은 을불이다. 그의 아버지 돌고는 고구려 최고의 무장으로 많은 무공을 세워 조정과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돌고의 형 봉상왕은 시기심이 많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 되자 그의 숙부였던 안국군 달가를 죽이고 그의 동생이며 을불의 아버지인 돌고를 역모죄를 씌여 죽이고 을불을 찿았다. 그러나 을불은 미리 이 사실을 알고 도망쳤다. 그래서 그는 전국을 떠돌면서 소금장수, 머슴살이를 하면서 목숨을 유지했고 결국 국상 창조리의 반정이 일어나 폭정을 일삼던 삼촌 봉상왕이 폐위되고 머슴살이를 하며 숨어 지내던 을불을 신하들이 천신만고 끝에 찿아내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비록 태자 교육을 받지도 않았지만 즉위 후 고구려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하면서 부국강병을 이룬 유능한 왕이 되었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일단은 자본주의 사회이니 경제적인 안정이 우선이다. 경제적인 안정이 되지 못하면 어떠한 가정이라도 화목한 가정이 되기가 쉽지 않다. 먹고, 입고, 살고,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이 돈이라는 경제적인 재화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30~40대는 사회적으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을 즈음이기에 주변 동료들과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가족들은 가정 살림을 곧잘 주변 동료들의 가정과 비교하여 남편을 졸라댄다. 그러나 40대가 넘어서고 직위가 달라지고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승진이나 진급한 가정보다 그러지 못한 가정은 상대적인 박탈감 내지 상실감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 둘 쌓이면 부부싸움이 되고 자기 남편의 능력 한계를 그때서야 깨닭게 된다. 그래서 그러한 허전함을 달래주는 것은 물질적인 욕구만족이며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돈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돈을 버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그 돈이 내가 바란다고 나에게 오는 것도 아니다. 재운이 없다고 할까? 아무리 노력하고 잘 나가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쪽박을 차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지만 이 사회가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못하고 달콤한 감언에 사기를 당하거나 저축은행 사건처럼 또 다른 무수한 돌발 변수에 의해 가진 돈을 빼앗기거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까? 꼭 그러 것도 아니다.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면 당신은 어쩔 것인가? 우리 주변에 로또에 당첨되어이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찿아오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며 살고 있을까? 넓은 저택에 외제차를 굴리며 풍족하게 살고 있으며 부귀영화를 누리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상대적 박탈감에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불법상속을 한다던가 그들의 자녀들이 돈을 펑펑 쓰면서 각종 추태를 저지르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상대적인 분노를 더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들이다. 명품 옷에 명품 가방에 명품 시계에 명품 구두를 신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산해진미를 먹고 살아도 모두가 보통 사람들이 세끼 먹는 식사와 다를바는 없다. 단지 혀끝을 스쳐가는 즐거움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러한 모든 것이 우리를 스쳐가는 바람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는 빈부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똑같은 재화를 나누어주고 살아보라면 어떤 사람은 재화를 늘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탐욕과 욕심에 대부분의 재화를 낭비하거나 날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난해진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부자가 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미워하게 된다. 부자가 될 기회가 상실되면 될 수록 가난은 영원히 자손대대로 대물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가난했던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된다면 어찌될까? 누구나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면 지금 욕하고 있는 지금의 부자처럼 가난한 사람도 사람이기에 그들과 비슷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욕을 하면서도 부러워하고 비난하면서도 자신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위치에 가면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크지며 언행이 거만해지고 사치하며 사업과 일을 핑계로 가정을 등한시 하고 바깥으로 돌아다니다가 바람을 피우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자녀들의 가정교육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못하고 일류 대학을 나와도 인격형성에 문제가 많은 인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사회의 주요한 자리에 가서 저지르는 것들이 주변에 물의를 일으키는 등 사회적인 비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멀리 반포대교에서 분수가 내뿜어지고 있다

 

 

섬유원지에서 마누라를 만나 강북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걸었다. 날은 점점 어두어지고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마누라와 같이 반포대교까지 약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걸어면서 많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두어지자 자전거족들이 각종 경광등을 켜고 달리고 있다. 또 운동내지 산보삼아 강변을 걷는 사람들도 많다. 젊은 남녀가 어둠이 짙어지는 강변 벤치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도 부럽다. 우리들에게도 언제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주말에 어린이 날이고 어버이 날이 다가온다면서 대전에서 아들 내외가 손자를 데리고 온다고 했다. 마누라는 아들내외와 손자가 온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렇게도 좋은지..... 힘있고 능력 있을 때 자식이 부모를 섬기지만, 중병치레나 하고 능력없고 가진 것 없으면 자식들도 무관심해지고 무시하기가 쉽다. 마누라는 갈비를 준비하는 등 맛있는  반찬 준비에 시장을 보는 등 분산을 떠는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다. 내가 '자식들에게 너무 잘해주려고 애쓰지 마라'고 했지만, 마누라 왈, '자신은 시부모나 친정 부모 사랑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나는 잘해주고 싶다'고 했다. ㅎ ㅎ  할말이 없다. 

 

 

                                   반포대교 분수 전경, 아래 사진을 보면 사진마다 조명과 분수를 뿜어내는 형태가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

 

 

반포대교의 장관이다. 서울시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설치한 장관인데, 일정한 시간에만 분수를 내뿜는다. 많은 사람들이 분수를 보려 밤에 잠수교에 나와서 사진도 찍고 가족, 연인들과 장관을 구경한다. 전문 사진 기사들도 망원 사진기를 설치해 놓고 분수를 찍고 있었다. 방송으로 분수 시간을 예고하고 대략 30분 단위로 낮과 저녁 시간대에 내뿜는 모양이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오면 가족, 친지, 연인들과 같이 저녁에 시원한 한강변으로 나가서 구경하시면 좋을 것이다.

 

 

 

 

 

 

충.효.결혼.장례 등 유교의 악습과 권력자 주변 인물들의 비리와 부패 악습에서 벗어나야......

 

조선의 인종이 재위 9개월 만에 갑자기 병사하자 인종의 후사가 없어 당시 12세밖에 안 된 경원대군 환이 왕위를 이었다. 인종은 효행이 지극한 사람으로 자신의 생모인 장경왕후 윤씨가 인종을 낳자마자 산욕으로 죽고 계비인 문정왕후 손에 의해 길러졌다. 그래서 인종은 자라면서 문정왕후에 대해 생모 이상으로 효행을 다했다. 그러나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게 되자 문정왕후는 '자신과 명종을 언제쯤 죽일 것인가'라며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가던 인종에게 표독스런 언행으로 인종을 무던히도 괴롭혔던 모양이다. 그러나 인종은 문정왕후가 자신에게 하는 모든 언사가 부모에 대한 효행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며 스스로를 나무라며 모든 굴욕을 참아내며 지냈고 문정왕후가 후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은 후사를 두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침 문안 인사를 간 인종에게 문정왕후가 웃음을 머금으면서 주는 떡을 기쁘게 먹고 그 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던 것이다. 야사에서는 그 떡에 독이 들어 있어 인종이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명종은 문정왕후의 아들로 12세에 불과한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았다. 명종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학문을 좋아하고 총명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중종의 계비이며 자신의 모후인 문정왕후의 극악스러움에 눌려 평생 눈물로 왕위를 지켜야 했던 왕이었다.

 

명종은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아들로 이름은 환이며 자는 대양으로 태어나자마자 경원군에 봉해졌다. 이후 인종이 즉위하자 1544년 경원대군에 봉해졌으며, 이듬해 인종이 재위 9개월 만에 갑자기 병사하자 왕위를 이었다.

 

문정왕후는 원래 자녀를 5명 낳았으나 그 중에 아들은 명종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다. 그녀가 명종을 낳았을 때 중종의 첯 번째 게비 장경왕후의 아들인 인종의 나이는 이미 20세였다. 때문에 명종이 왕이 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인종에게는 후사가 없었으므로 만약 인종이 그대로 죽게 된다면 명종의 왕위 계승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문정왕후는 그런 결과를 노리고 있었고, 마침내 그것은 이루어졌다.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기 때문에 8년 동안 모후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아야 했다. 문정황후가  수렴청정으로 왕권을 대신하게 되자 조정의 대세는 문정왕후의 외척인 윤형원 일파에게 돌아갔다. 윤형원은 문정왕후의 친동생으로 1537년 중종 32년 김안로가 실각한 뒤에 등용된 인물이었다. 그는 중종시대부터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 일파와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윤임 일파를 대윤, 윤형원 일파를 소윤이라고 했다.

 

인종 즉위 당시에는 한때 대윤파가 득세하여 이언적 등 사림 세력을 등용하여 기세를 떨쳤으나, 명종이 즉위하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시태는 반전되었다. 윤형원은 명종이 즉위하자마자 곧바로 윤임 세력의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윤형원은 윤임이 중종의 여덟째 아들 봉성군에게 왕위를 옮기려 했다고 무고하는 한편, 인종이 죽을 당시에는 윤임이 성종의 셋째 아들 계성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그리고 이를 구실 삼아 문정왕후에게 이들의 숙청을 강청하여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사사케 하고, 이들의 일가와 그 일파인 사림 세력들을 유배시켰다. 명종 즉위년인 1545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을사사화'라 한다.

 

을사사화로 조정을 장악한 윤형원은 미처 제거하지 못한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양재역 벽서사건'을 일으킨다. 이 사건으로 윤형원을 탄핵하여 삭직시킨 바 있는 송인수, 윤임 집안과 혼인 관계에 있던 이약수 등이 사사되고, 이언적, 백인걸 등 사림 세력 20여 명은 유배되었다. 또한 윤형원은 자신의 애첩 정난정을 궁중에 들여보내 중종의 아들 봉성군을 역모와 연루되었다고 무고하여 사사시키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도 많은 인물들을 희생시켰다.

 

윤형원 일파가 이렇게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자 이른바 '외척 전횡 시대'가 도래했고, 이때부터 명종은 그들의 횡포에 시달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윤형원은 막상 권력을 독점하게 되자 그동안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친형 윤원로를 유배시켜 사사시키는가 하면, 자신의 애첩 정난정과 공모하여 정실부인 김씨를 독살하고 노비 출신인 그녀를 정경부인 자리에 올려놓았다.

 

또한 정난정은 윤형원의 권세를 이용하여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부를 축적하엿다. 이 때문에 윤형원의 집에는 뇌물이 폭주하여, 한성 내에 집이 15채나 되었으며 남의 노예와 전장을 빼앗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 도 없었고, 죽고 사는 것이 그의 손에 달렸다는 말이 오갈 지경이었다. 당시 권력을 탐햇던 조신들은 앞다투어 정난정의 자녀들과 혼인줄을 놓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정난정은 봉은사의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켰고,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교가 융성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이조 시대의 사회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정왕후의 폭정과 을사사화, 외척인 윤형원의 20년 권력독점, 윤씨 가문의 권력투쟁으로 조선은 병들고 말았던 것처럼 최근 최고 권력층 가까운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밝혀지고 있고 저축은행 사건도 마찬가지로 한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고려 시대 불교, 조선 시대 유교가 부패하듯이 최근 우리 사회는 불교, 기독교 등 종교가 비대해지자 종권세습, 재산다툼, 종권탈취, 권력과 밀착, 불륜, 투기, 사채, 재산 불리기, 도박, 사기 등 부패와 비리가 빠른 속도로 부패해지고 있다. 또 사회적으로 충, 효, 결혼, 장례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습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국방을 무시함은 물론 군이 갈 곳이 없을 정도이고 군 출신을 배척하는 나라, 군 기지 하나 제대로 설치하지 못하고 있으며, 개발을 빌미로 군부대가 산으로 외지로 쫒겨나가는 나라, 군인들이 아파트에 민간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입주자들이 집값이 떨어진다고 반대하는 나라, 진급. 보직 등을 빌미로 벌어지고 있는 군내부의 비리, 또 각종 군납비리로 얼룩진 방사청과 각군 본부,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지도층, 위로부터 아래까지 온통 썩고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이런 썩은 나라에 목숨을 버리며 누가 충성할 것인가?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가 해체되고 핵가족화가 가속화되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격심한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충에 대한 개념도 희석되어 가고 있지만 효에 대한 가치관도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권위적이고 명령형의 효가 이제는 배려와 칭찬의 개념으로 바뀌고 잇다. 또 맞벌이 부부에 아린 아기를 키우기가 여간 여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부모를 모신다는 개념도 바뀌고 늙은 부모가 자식에게 신세를 지려고 하지도 않지만, 능력이 없는 노부모를 어느 누가 가정과 생계를 버리며 모실 것이며 병치레와 치매 수발을 누가 들 것인가? 자녀 키우기에도 벅찬 현실에 말이다.

 

최근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증가, 치열한 경쟁의 대학 입시, 학벌 위주의 사회 시스템 등으로 전인교육 시스템이 사라지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가져온 병폐에 더하여, 전교조와 좌파 교육감의 등장으로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하면서 체벌이 전면 금지되자 학생과 스승에 대한 개념도 변질되어 스승의 권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에는 기존 교육계의 고질적인 비리와 부패, 여성 교사의 절대적인 증가, 교육개혁의 실패 등 변화를 싫어하는 교육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그 원인일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독거노인층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새벽 길거리 골목마다 노인들이 폐지 줍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 수이다. 노인정책이 상실된 지금 정치권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이것은 우리들이 누구나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인바,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일 것이다.

 

과다한 결혼 비용에 가산이 탕진될 정도이다. 혼수와 결혼 조건을 내세우며 상대를 우롱하는 파렴치한 부모의 가정이 어디 한 둘인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씩 쏟아붓는 결혼 가정은 기둥뿌리가 뽑혀 나가도 아픈 표정을 지을 수가 없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재물을 사랑하고 사랑이 아니라 돈이다. 호화사치 결혼식을 제도적으로 제한시키는 방법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 장례 문화는 어떤가? 헬기를 타고 가다보면 산마다 무덤이 없는 곳이 없다. 특히 경기도 일원은 온 천지가 무덤이요 공원묘지이다. 조상을 기리는 거도 좋지만 나라 땅이 모조리 무덤판이 될 지경이다. 또 하루 종일 광고 방송을 내보내는 상조회사마다 사기꾼이 아닌 상조회사가 없을 정도이다. 납골당에 안치하는 데 수천만원이 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그래서 장례문화도 사회 제도적으로 간소화시켜 강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파트 대출 계약해지 집단소송 피해 급증

 

금융감독원이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월말 기준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부실채권 비율은 0.71%로 지난해 말보다 0.11%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2007년 3월(0.71%) 이후 5년래 최고치다. 아파트 중도금처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이뤄지는 집단대출 연체율은 1.8%로 지난해 말보다 0.45%포인트 상승했다. 연체 잔액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집단대출 연체율이 최근의 가계대출 부실채권비율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소송 당사자들은 중도금·잔금을 내지 않아 기존 재산에 가압류가 걸리고 신용등급 하락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계약해제 소송과 함께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진행해 소송 기간에는 중도금을 내지 않아도 신용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은 계약자가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만약 패소하면 신용등급 하락, 카드정지 등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 15~20%의 연체이자도 연체한 시점으로 소급해서 적용돼 막대한 이자를 물어야 한다.

 

 

 

 

 

비리로 얼룩진 대덕연구단지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잇단 정부출연연구원 간부들 비리로 얼룩지고 있다고 한다. 사업성 평가 권한을 악용해 업체들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거나, 사업성 평가를 빌미로 돈을 챙긴 수법 등이 드러나면서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전지검 특수부는 지난 2일 태양광 발전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연구용역을 의뢰한 지자체들로부터 용역비를 편취한 대덕특구 A연구원 전 센터장 B씨(56)를 뇌물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B씨에게 억대 뇌물을 준 태양광 업체 관계자 C씨(42) 등 3명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국책연구기관 예산 배정 등 편의를 대가로 수천만 원을 챙긴 지식경제부 서기관 등 2명과 금품을 제공한 연구원이 구속된 지 불과 2주일 만에 또다시 터져나온 일이다. 이에 앞서 지난 1월에는 우리 육군의 주력 전차인 K-1 전차의 조향(방향조절) 장치 설계도면을 미국으로 빼돌린 연구원이 검찰에 의해 구속되기도 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출연금 횡령 등으로 '경고' 이상 징계를 받은 정부 산하 출연연구기관 직원이 2008년 이후 지난해 9월까지 172명이나 된다.

 

툭하면 터지는 뇌물 비리는 국책사업 발전의 질적 저하는 물론 경제질서 문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심각하다. 무엇보다 연구원으로서 가져야 할 직업 윤리의식 부재와 감사부서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런 다양한 수법의 뇌물구조 형성과 거래 원인에 대해 출연연의 취약한 검증 시스템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기관은 예산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업체들을 조정하고 또다시 연구원을 지배하는 구조로 돼 있어 비리가 순환된다는 것이다. 허술한 연구기관 감시체계와 검증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손질할 때가 됐다. 위에서 해 먹으니 자연적으로 밑에서도 해 먹는 것은 당연지사, 과학사회가 비리의 오명에서 조속히 벗어나길 기대한다.

 

 

 

 

 

한전의 파렴치한 두 얼굴

 

한국전력이 최근 평균 13.1%의 전기료 인상 요구안을 지식경제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지경부가 한전 입장에 공감하고 있는 터라 종(種)별 인상률과 시기만 남았을 뿐 전기료 인상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이번에 전기료가 오르면 지난해 8월 4.5%, 12월 4.9%에 이어 불과 1년 사이 세 번째가 된다.

한전은 원가 회수율이 87.4%에 머물러 팔수록 손해인 원가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전의 지난 4년간 누적적자가 8조원에 달하고 지난해 부채가 10조원 넘게 는 이유가 낮은 원가회수율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가회수율이 107% 수준은 돼야 경영정상화와 투자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겨울철에도 전력예비율이 안정선(10%) 밑으로 떨어질 정도로 늘어나는 전력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서도 요금인상은 절실하다.

그러나 한전이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전기료 인상에 흔쾌히 동의할 국민은 없다. 하도급 비리, 짝퉁 원전 부품 등 한전의 비리 백태는 얼굴 들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그렇다고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 성과를 크게 낸 것도 아니다. 직원 평균 연봉이 7400만원에 억대 연봉자가 자회사를 합쳐 2000여명이나 된다. 국민의 눈에 비친 도덕적 해이가 이런 상황에서 전기료 인상 요구는 몰염치하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건강한 몸집을 만들면서 전기료 인상을 요구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불합리한 요금체계를 제대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 현재 ㎾h당 전기료는 주택용 119.99원, 일반용 101.69원, 교육용 94.18원, 산업용 81.23원, 농사용 42.72원이다. 일반 가정용에 비해 유흥업소 전기료가 싼 게 지금의 요금체계다. 농사용은 너무 싼 탓에 비닐하우스 난방에 원가가 훨씬 비싼 전기를 쓰는 일이 벌어진다. 종별 요금체계 합리화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이는 비생산적인 곳에 과다하게 쓰는 잘못된 전력소비구조를 개선하는 길이기도 하다.

 

 


 

밀항,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

 

밀항의 역사는 1,500년 전 신라 진평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가 지리산을 넘어 신라를 침범하고 신라가 백성들을 병사로 징발해 겨우 버틸 때 신라 사람들이 병역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기록이 ‘일본 서기’에 남아 있다. 이처럼 한반도 역사에서 1945년 이전의 밀항은 주로 일본을 목적지로 하고 있다.

 

일본으로의 밀항이 늘어나자 일본은 1919년부터 여행증명서 제도 등을 도입해 도일과 밀항을 통제하고 막았다. 그래서 부산 등지에는 고향을 떠나 온 가난한 농민.노동자들이 일본 가는 배를 구하기 위해 떼를 지어 헤매기 일쑤였다고 당시 신문들이 전하고 있다.

 

 농사지을 땅을 빼앗기고, 천재지변으로 수확은 어렵고, 고리채는 커지면서 고향을 도망치듯 떠난 사람들이었고, 밀항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서 밀항은 당시 부산을 상징하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일제 강점기의 밀항은 불법이 아니라 부정 밀항이었다. 식민지이니 자기네 영토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밀항이 불법이 된 것은 1945년 연합군 사령부가 일본인의 조선 입국을 강력히 통제하고 일본으로 가려는 한국인도 강력 통제하면서부터이다. 일본도 해안에 감시초소를 두고 한국인 수용소도 만들었다. 대표적인 수용소가 오무라 수용소. 이곳은 한국인 밀항자를 전담해 수용했다. 이곳에 수용된 한국인은 밀항자, 일본서 형기를 마친 한국인 범법자, 강제송환 대상자 등이었다. 이때부터 밀항은 국가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해방 이후

6.25 전쟁 때까지는 가난, 좌우 이데올로기 충돌에 의한 폭력, 전쟁에 대한 공포, 병역기피, 공산당 체포 회피 등이 밀항의 요인이었다. 6.25 전쟁 때는 밀항을 ‘위험에 처한 국가를 배신하는 비겁한 행동’으로 간주해 부산으로 피난 내려간 국회가 ‘밀항으로 국내를 탈출.도피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1950년 12월부터 1970년 9월까지 오무라 수용소에서 남한으로 송환된 숫자는 1만6천4백 명. 6.25 한국 전쟁과 60년대 들어 국가 체제가 자리를 잡으며 밀항 규모는 크게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0 ~ 1970 년대에는 일자리와 가족 찾기, 학업, 뚜렷한 동기 없는 방황 등이 밀항의 이유가 됐고 밀수와 간첩도 등장했다.

요즘의 밀항은 구직과 도피가 대부분이지만 과거의 밀항은 앞에서 보면 조국에 대한 배신이고 뒤에서 보면 슬픔과 상처뿐인 국가 체제를 벗어나려는 절박하고 위험한 선택인 경우도 많았다. 조국의 현실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할 때 인내하며 참다가 혁명의 때를 맞아 공감하고 연대해 분출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밀항처럼 개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소극적 저항도 있다는 해석인 듯싶다.

 

 

 

 

미래저축은행의 김찬경 회장, 지난 3일 회사 공금 200억 원을 인출해 그날 밤 경기 화성 궁평항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해양경찰에 붙잡혔다. 저축은행 대주주의 횡령이 있긴 했지만 직접 공금을 주머니에 넣고 도망치려 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빼 돌린 돈이 270 억 원 더 있는 걸로 보고 수사 중이라는 소식이다.

 

최근 밀항 사례들을 보면 일본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사람들은 주로 부산항을 이용한다. 죄 짓고 도망치는 사람들은 서해를 통해 중국으로 간다. 일본보다는 중국이 치안이 허술해 몸을 피신하기 좋고 여차하면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로 튈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밀항을 돕는 범죄조직들은 이름 있는 항구보다는 작은 포구들을 이용해 밀항자들을 빼돌리는데 이번 사건의 현장인 궁평항도 그래서 선택된 듯.

2009년 4조원대의 다단계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사기꾼 조희팔도 서해 태안 앞바다를 통해 빠져 나갔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이라 칭해지는 조희팔은 서민들을 상대로 전국에 5만 여 명의 피해자를 남기고 튀었다. 자살과 화병으로 숨진 피해자만 10명에 이른다.

조희팔이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과정에 비리 경찰의 비호가 있었다고 진정이 제기되었지만 진상이 다 밝혀지진 못했다. 중국 공민권을 갖고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현재 인터폴 적색지명 수배자 신분이다.

토착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 모 전 당진군수도 중국 밀항을 시도하려다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일본인들이 대지진과 원전 폭발로 일본을 빠져 나올 때 일본으로 밀항하다 붙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3,40대 청년과 여성들로 후쿠오카 등지의 공장이나 유흥업소에 일자리를 찾으로 가려던 사람들이었다. 지진과 원전 사태로 일본의 해상 치안이 느슨해진 틈을 노렸던 것이다.

 

 

 

 

탈북자 인권보호는 한국 정부의 책무

 

국가는 헌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해외체류 탈북자를 재외(在外)국민으로 보호할 의무를 지며, 또 헌법 제10조에 따라 이들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탈북자 구원은 대한민국의 책무다. 더욱이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중국산 인육캡슐 재료의 대부분이 탈북여성들의 태아를 살해해 만들어진다는 증언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춘천) 의원은 지난 10일 오후 강원일보사 대강당에서 열린 2012 강원여성정치지도자 과정 특강에서 “북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여성이 아이를 낳을 경우 인민군들이 산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죽인 후 냉동해 중국 브로커에 판매한다는 증언과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가슴이 미어지고 할 말을 잃게 한다.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이주민이 2007년 1만 명 시대를 맞이한 이래, 3년 만인 2010년 11월 누적 인원이 2만 명에 도달했고 현재에는 2만4,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제반 문제를 살펴볼 때 한국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탈북자 인권보다는 권력투쟁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다.

 

 

 

가정의 달 5월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우주의 시간을 따라 어김없이 지나가고 있다. 역사의 시간처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후손들에게 부끄럼 없는 시대의 조상들이 되기에 부끄러운 현실이다.

 

결손가정, 다문화 가정, 청소년 가장, 독거노인, 미혼모, 원하지 않은 임신, 이혼, 사고, 소년소녀가장, 원조교제, 메춘, 성폭행, 성추행, 가정파괴범, 강간 등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들 삶 주변에서 사라져야 할 것들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어려운 가정을 살펴보는 미덕을 베푸는 것이 바로 천국을 만드는 길임을 누가 알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