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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550 : 조선의 역사 92 (성종시대를 마치며......) 본문
한국의 역사 550 : 조선의 역사 92 (성종시대를 마치며)
드라마 '인수대비'를 보면서......
지금 방송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말 역사 드라마 '무신', '광개토대왕', '인수대비'가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어 다시보기로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무신'은 과거 방영된 '무인시대'를 이어서 최충헌 말년 이후 최우, 최항, 최의 시대를 이어갈 것이고, 주인공 김준(김인준)이 최의를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후 무장 임연에게 살해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때까지 방영할 것인지 아니면 이후까지 전개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드라마가 박진감 있게 전개되며 흥미를 돋우고 있어 역사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 '광개토대왕'은 이미 80회를 넘기고 있으나 드라마 내용이 대왕의 업적에 비해 박진감이 없고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어 시청울은 떨어지나 역사 공부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그 중 드라마 '인수대비'는 실록에 없는 내용이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엮어 전혀 허구가 아닌 사실에 가까운 스토리로 드라마를 엮어가는 작가의 상상력과 스토리 전개가 당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흥미롭게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인수대비'는 성종 시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시간이 되시면 꼭 이 드라마를 다시보기로 보시기 바란다.
이 드라마의 중요성은 이씨 조선의 부도덕성과 유교 문화의 폐악, 권력찬탈로 빚어진 반역과 반정의 역사가 정당성을 날조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점과 그 변곡점은 바로 조선의 역사를 바꾼 폐비 윤씨 사건의 발생과정이다.
이 드라마에서 성종의 즉위 과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조선의 역사를 바꾼 폐비 윤씨의 성장과 성종, 인수대비, 정희왕후과의 관계가 잘 나타나고 있으며 그녀가 어떻게 성종의 왕후가 되었는지, 왜 폐비를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결국에는 사약까지 받게 되었는지, 그녀와 성종, 인수대비와의 상관 관계를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갈등의 폭풍이 지나간 뒤에 결국 성종이 죽자 폐비 윤씨의 아들인 세자 융(연산군)이 즉위하게 된다.
조선의 역사는 성종 시대를 정점으로 하여 전성기를 누리다가 이후 큰 흐름이 바뀌면서 험난한 질곡의 계곡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조선의 망국의 뿌리는 태조의 쿠테타와 권력찬탈, 고려 멸망과 이씨 조선의 건국, 피비린내나는 왕자의 난, 태종의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와 육조직계제 실시, 태종을 이은 세종의 문화통치의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국운융성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나, 문종의 짧은 치세와 어린 단종의 즉위, 신권과 왕권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된 세조의 계유정난에서부터 질곡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드라마를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이 드라마에서 성종은 수빈의 둘째 아들이며 세조의 장자로 요절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다. 수빈(소혜왕후, 후에 인수대비)은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키려할 때 세조의 책사 이상으로 과감하고 지혜로운 조언을 서슴치 않았던 인물로 세조가 욍위에 즉위한 다음에는 항상 며느리인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가 측은하기도 하였겠지만 왕위를 이을 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빈은 두 아들과 같이 의경세자가 죽고 난 후 궁중에서 나와서 10년 가까이 사가에서 머물며 고뇌와 울분의 세월을 보냈다. 세조비인 정희왕후는 며느리의 똑똑함과 과단성 있고 당돌한 언행에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세조가 그녀을 총애하는 것 조차도 보기싫어 했다. 일종의 열등감과 질투심인지도 모르겠다. 수빈(소혜왕후, 후에 인수대비)은 계유정난이 일어나기전 고뇌하던 세조에게 자신을 왕비로 만들어 달라며 주문할 정도로 세조를 당황하게 만든 성격의 소유자였다.
10년 만에 세조는 다시 그녀를 궁궐로 불러 차를 마시면서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측은해 하면서도 무척 반가워 한다. 세조는 그녀에게 소원을 말해보라며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세조의 내심을 살피면서 해양대군(예종)이 즉위하면 그 다음 왕위는 자신의 아들인 월산대군으로 지명하도록 은근히 압력을 가한다. 세조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눈물로 하소연하는 그녀를 위로하며 세조의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왕위 자리를 놓친 그녀의 입장에서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받은 정희왕후는 수빈을 멀리하고 경계하게 된다. 또 한명회와 사돈 관계인 수빈이 한명회와 무슨 꿍꿍이를 꾸밀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한명회도 경계를 하고 있었다. 정희왕후는 예종의 어린 아들 제안대군으로 예종의 후계자로 삼고 싶은 마음이었다. 예종의 후계자는 에종의 적장자인 어린 제안대군이 자라서 성년이 될 때까지 시기만을 기다리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조가 죽고 격심한 장례 행사로 효를 다하던 병약하던 예종이 즉위 14개월 만에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그러자 조정은 일대 대혼란이 일어났다. 예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후계자 선택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만약 후계자 선정에 시간이 지체되면 왕위 찬탈에 대한 두려움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희왕후는 오전에 예종이 죽고 오후에 조정 대신들을 불러모아 예종의 후사에 대해 두루 의견을 듣는다. 대신들은 적장자인 제안대군이 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명회는 지금 4살인 제안대군이 후사를 잇는 다면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섭정을 해야한다면서 반대를 한다. 또 의경세자와 수빈의 첯째 아들인 월산대군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병약한 몸이라 안된다고 한다. 이렇게 대신들의 여러 의견을 들으면서 고민하던 정희왕후는 결국 결론을 내는데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은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고 의경세자의 아들인 월산대군은 심약하고 기개가 없으며 병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고민끝에 월산대군의 동생인 자산군(자을산군, 성종)을 지목하게 된다.
여기서 실록에서는 한명회와 정희왕후의 정치적인 밀약설이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정희왕후는 글을 제대로 읽을 줄 몰랐다. 그래서 평소 수빈에 대한 열등감이 심하였을 뿐 아니라 수빈이 젊은 시절부터 시어머니에게 언행이 당당함은 물론 시아버지인 수양대군에게 자신을 왕비로 만들어 달라는 등 수빈의 당돌함과 영악함을 경계하고 있었기에 수빈의 아들로 왕위를 잇게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희왕후는 대국적으로 생각했을 때 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린 제안대군보다 조정 중신이며 공신인 한명회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며 그와 사돈 관계인 자을산군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어쩌면 정희왕후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셋 중에서 자을산군이 그래도 가장 언변이나 행실이 뛰어났고 총애를 받던 손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빈이었다. 만약 수빈이 성종을 끼고 수렴청정을 하겠다면 그 꼴도 보기 싫을 뿐만 아니라 성종의 왕권에 가장 위협적인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의 생명을 보장할 수가 없음은 물론 자신도 결국 수빈에게 멸시받을 뿐 아니라 권력에서 밀려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희왕후의 계산 속에 회의에서 난항을 거듭한 끝에 자을산군을 선택하게 된다. 조정 중신들이 일부 반대를 하였지만 대비의 의중이 워낙 강력하였기 때문에 대비의 의견에 결국 동조하게 된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자을산군이 즉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는 한편 정희왕후는 수빈이 수렴청정을 못하게 하는 방법을 구상하다가 대전 상궁의 이야기를 듣고 묘안을 떠올리게 된다. 그 묘안이란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을 동원하여 '왕비를 하지 않은 사람은 수렴청정이 불가하다'는 법규를 가지고 시비를 걸도록 하여 스스로 물러나도록 할 계획이었다. 수빈은 왕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수빈은 성종 즉위식 날 임영대군의 강력한 상소에 결국 스스로 물러나 사가로 쫒겨나게 된다.
한편 폐비 윤씨는 수빈의 사가에 머물다가 정희왕후가 어린 성종이 어머니 수빈이 쫒겨나고 왕비 한씨는 병약하여 수빈의 사가에 머물고 있는 관계로 어린 성종이 시름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괴로움에 빠져 있다고 판단하고 대전 상궁의 견의를 듣고 성종과 사가에서 같이 지내던 폐비 윤씨(드라마 이름 '송이')를 궁중으로 불러오게 한다. 그래서 성종은 폐비 윤씨를 보자 반가워하며 같이 식사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출세욕에 불타던 폐비 윤씨는 어린 성종을 다독이며 밤낮을 갖이 지내면서 깊은 정이 들게 된다.
이상 내용이 드라마 '인수대비'의 35회까지의 요약 내용으로 성종의 즉위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역사 실록을 읽고 그와 관련된 드라마를 보면 그만큼 내용이 이해가 빠르고 흥미롭다.
우리가 낯선 곳을 여행을 가더라도 그 지역에 얽혀 있는 역사적인 내용을 읽고 현지를 답사를 한다면 그만큼 더 흥미롭고 보람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전적지 답사는 당시 전투 상황을 사전 공부하여 현지를 답사한다면 그만큼 더 흥미가 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태리를 여행가지만 경치;만 보고 유적지를 둘러보고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단편적이고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인 이야기' 전체 15권을 읽고 로마의 창업과정, 포에니 전쟁 중 한니발 전쟁 전적지 답사 등이다. 그러면 터키의 '토로이 전쟁 유적지-그리스(여러 도시 유적지와 섬)-로마(유적지, 성곽, 도로, 경기장, 왕궁 등)-트리폴리(카르타고 수도, 자마전투 전적지, 등)-스페인 남부 (한니발 당시 식민지 통치 지역 및 수도, 로마군과 전적지)- 한니발 장군 이동로(프랑스 남부-알프스 이동로)-이태리 북부 전적지 2곳- 이태리 중부 1곳-이태리 남부 여러 곳 중 '칸내전투' 전적지-로마 남부 여러 도시와 유적지,전적지-시칠리아(여러 도시, 전적지)-소아시아 전적지(터키,이란,시리아)-팔레스타인, 이스라엘(지중해변 도시, 엘루살렘, 예수탄생 유적지, 마사다 요새 등)-이집트(삼각주, 알렉산드리아, 피라미트, 홍해, 나일강, 유적지 등) 등지를 돌아본다면 유익한 해외여행이 될 것이다.
이후 내용은 드라마를 본 후에 혹시 시간이 되면 기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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