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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539 : 조선의 역사 81 (성종실록 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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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539 : 조선의 역사 81 (성종실록 9)

두바퀴인생 2012. 3. 29. 05:26

 

 

 

 

한국의 역사 539 : 조선의 역사 81 (성종실록 9)

 

                                                               

   

         

 

                                                         

 

                            

                                                                                       

제9대 성종실록(1457~1494년, 재위 1469년 11월 ~ 1494년 12월, 25년 1개월)

 

 

7. 활발한 문화 서적의 편찬

 

성종 대의 업적 가운데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것은 역사, 지리, 문학, 음악 등을 집대성한 서적들을 편찬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책들이 조선 전기 대표적인 관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 삼국시대 이후 전승된 4천 3백여 편의 시문들을 한데 모은 <동문선>, 당시까지의 의궤와 악보를 총정리한 <악학궤범>, 신라 초에서 고려 말에 이르는 역사를 집대성한 <동국통감>등이다.

 

성종은 이러한 서적의 편찬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던 도학정치의 이념을 확립하려 했는데, 특히 <동국통감>은 성종 자신이 적극 개입하고 신진 사림이 참여하여 만든 것으로서 성종과 사림의 역사의식이 잘 반영된 역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이 책은 1481년 성종 12년에 50권으로 편찬되었다. 내용은 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다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의 시문을 참고로 첨가한 것이다. 편찬체제는 남송의 <방여승람>과 <대명일통지>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 등에 의해 이뤄졌는데, 이때 시문에 대한 정리와 연혁, 풍속, 인물 편목에 대한 교정, 그리고 <대명일통지>의 구성에 따라 고적 편목이 첨가되었으며, 중국 지리지에 없는 성씨, 봉화불을 꼿던 봉수의 양조 등이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 임사홍, 성현 등이 부분적인 교정과 보충을 가하였으나 내용상으로는 큰 변동이 없었다.

 

제3차 수정은  증보를 위한 것으로서 1528년 중종 23년에 착수하여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신증'이라는 두 자를 삽입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고 했다. 이 중종시대본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희귀해져, 현재는 일본 경도대학 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 광해 3년에 복간을 위한 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이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 책 머리에는 진점문, 서문,교수관원직명과 구본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노사신의 진전문, 서거정의 서문 및 교수관직명, 찬수관직명, 목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책의 끝에는 홍언필, 임사홍, 김종직의 발문이 실려 있어 간행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몇몇 권에는 경도, 한성부, 경기도, 개성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등 각 지방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는데, 경도 앞에는 조선전도인 팔도총도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첯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십입되어 있다.

 

이 지도들은 실측과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한결같이 동서의 폭은 넓고 남북의 길이는 짧아 기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팔도총서의 모양은 꼭 실제 지형을 위에서 꾹 눌려놓은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당시의 지도들이 이 같은 모양을 띠게 된 것은 남북의 교통로에 비해 동서의 교통로가 전혀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한반도 지형이 동고서저, 즉 서쪽에 평야가 모여 있고 동쪽에 산악이 집중되어 있기에 동서쪽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고 남북쪽의 거리는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어쨌던 지도의 정확성 여부를 떠나 지리지에 지도를 첨부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편집이었다. 또한 내용에서도 각 도의 연혁과 총론에서 성씨, 인물, 풍속, 봉수, 능묘, 교량 위치 등 세세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인물 속에는 관원뿐 아니라 효자, 열녀 등이 포함되어 있고, 행정 구역에 관해서도 지역의 변천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는 세종 대의 지리지가 지녔던 장점인 토지의 면적, 조세, 인구 등 경제, 군사, 행정적인 측면이 약화된 반면에 인물, 예속, 시문 등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세종 대에 비해 성종 대가 그만큼 평화스러웠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