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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538 : 조선의 역사 80 (성종실록 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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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538 : 조선의 역사 80 (성종실록 8)

두바퀴인생 2012. 3. 28. 03:17

 

 

 

 

한국의 역사 538 : 조선의 역사 80 (성종실록 8)

 

                                                               

   

         

 

                                                         

 

                            

                                                                                       

제9대 성종실록(1457~1494년, 재위 1469년 11월 ~ 1494년 12월, 25년 1개월)

 

 

6. <경국대전>완성의 의미와 형성 과정

 

고려부터 조선 초에 걸쳐 반포된 법전, 교지, 조례,관례 등을 총망라하여 세조 때부터 편찬해오던 <경국대전>이 수차의 개정 끝에 25년 만인 1485년 완성되어 반포되었다. 이것은 조선시대 통치의 기본 법전으로 우리 나라에 전해져오는 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문헌적 가치가 대단히 크다.

 

이 책의 편찬 연혁은 세조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세조는 즉위하자마자 당시까지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각종 법전들을 총체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법전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육정상정소'를 설치하고 통일 법전 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까지 조선의 법전은 임시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왕이 즉위하거나 사건이 생일 때마다 새로운 법령이 계속 쌓였고, 이에 대한 결함이 발견될 때마다 속전을 간행해 보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통일 법전의 편찬 작업은 1460년 세조 6년 7월에 시작되었다. 먼저 재정 경제의 기본이 되는 '호전'과 '호전등록'을 완성하여 이를 '경국대전호전'이라고 했다. 이듬해 7월에는 형전을 완성하여 공포 시행했다. 1466년에는 나머지 이전, 예전, 병전, 공전 등을 완성하였으며 이미 만든 호전과 형전도 다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1468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그러나 세조는 이때 마련된 법전을 최종적인 것으로 확정하지는 않았다.

 

이 법전이 아직까지 미비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까닭이다. 그래서 세조 대에는 통일 법전 작업이 거기에서 멈추었고, 나머지 작업은 예종 대로 넘어갔다.

 

예종도 육전상정소를 설치하여 1469년 9월까지 작업을 매듭짓고 이듬해 1월 1일에 반포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예종이 갑자기 죽은 바람에 그 일은 성종 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성종은 즉위하자 <경국대전>을 수정하여 1471년 1월 1일부터 공포하여 시행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신묘대전>이다. 하지만 이 책은 누락된 조문이 많아 다시 개수하여 3년 뒤인 1474년 2월 1일부터 시행하였는데, 이 책이 <갑오대전>이다. 이 대전에 수록되지 않은 법령 중에 시행의 필요성이 있는 72개 조문은 따로 속록을 만들어 함께 시행하였다. 그러나 1481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논의가 있자 감교청을 설치하고 대전과 속록을 대대적으로 개수하여 1485년 을사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였는데, 이것이 <을사대전>이다.

 

<을사대전>을 시행할 때는 앞으로 다시는 개수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 <을사대전>은 최종적으로 확정된 조선왕조 영세불변의 만세성전이 되었다. 25년 동안 참으로 끈질긴 노력의 결실이었다.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전해오는 <경국대전>은 마로 이 <을사대전>을 가리키며 <신묘대전>, <갑오대전>을 비롯한 그 이전의 법전들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을사대전>은 현재까지 우리 나라에서 전해지고 있는 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일한 법전이 되는 셈이다.

 

<경국대전>은 <경제육전>과 같이 6분 방식에 따라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각 법전마다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하여 규정되어 있다 또 조문은 <경제육전>과는 달리 추상화, 일반화 되어 있어 유권해석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20여 년에 걸친 탁마의 결정체로서 손색이 없는 것이며, 명실상부한 조선의 최고 법전으로서 면모를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각 법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전에는 통치의 기본이 되는 중앙과 지방의 관제, 관리의 종별, 관리의 임면, 사령 등에 관한 사항이 마련되어 있다. 

 

호전에는 개정 경제와 그에 관련된 사항으로서 호적, 조세제도를 비롯하여 녹봉, 통화, 부채, 상업과 잠업, 창고와 환곡, 종운, 어장, 염장에 관한 규정과 토지, 가옥, 노비, 우마에 관한 매매와 오늘날 등기제도에 해당하는 입안에 관한 것, 그리고 채무의 변제와 이자율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는 문과, 무과, 잡과 등의 과거 규정과 관리의 의장 및 외교, 제례, 상장, 묘지, 관인, 그 밖에 여러 가지 공문서의 서식에 관한 규정을 비롯하여 상복제도, 봉사, 입후, 혼인 등 친족법 규범이 마련되어 있다.

 

병전에는 군제와 군사에 관한 규정이, 형전에는 형벌, 재판, 공노비, 사노비에 관한 규정과 재산상속법에 관한 규정이, 공전에는 도로, 교량, 도량형, 식산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경국대전>의 편찬, 시행을 통해 조선은 우선 법치주의에 입각한 왕조 통치의 법적 기초인 통치 규법체계를 확립하고, 다음으로 중국법에 무비판적으로 의존하던 관행을 없앰으로써 법치주의의 자주성을 이룰 수 있었다.

 

이 <경국대전>이 시행된 뒤에도 <대전속록>, <대전화통>, <대전통편> 등과 같은 법전이 편찬되어 이 조문이 실제로 개정되거나 폐지된 적도 있었지만 그 기본 이념은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내려와 조선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따라서 <경국대전>은 조선인들의 법치주의적 염원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