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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시대의 흐름

우면산의 봄 4 : 죽은 노무현과 살아있는 박근혜의 대결

 

 

 

우면산의 봄 4 :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의 대결

 

                                                                                     반포지역 고층 아파트 전경

 

춘분이 지났지만 봄을 시샘하는 시샘 추위는 강풍과 황사,진눈깨비를 동원한채 주말에 심술을 부렸다. 지난 주말에는 대전의 아들네 집에 손자 백일이라하여 양가 부모.친지들을 모시고 식사를 간단히 한다하여 내려갔다 왔다. 군대로치면 신병이 백일 동안 열심히 근무하면 앞으로 군대 생활도 무사히 잘 할 수 있다고 하여 전입 백일 행사와 개인별로 휴가를 주기도 한다. 신병들이 전입와서 통상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백일 동안 군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느냐 아니면 견뎌내지 못하고 탈영을 하거나 스스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도 태어나서 백일 동안 잘 자라기만 하면 앞으로도 잘 자잘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부족함도 많았고 어슬픈 준비였지만 마음만은 즐겁ㅁ고 풍요로운 모습이라 양가 부모. 친지들이 더담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실제 양가 사돈끼리는 만날일도 잘 없고 친숙해질 일이 잘 없다. 이렇게나마 만나서 같이 술도 한 잔하면서 서로 칭찬을 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원해 줄 기회이기도 하다. 대전 지방의 '린'이라는 소주가 도수가 좀 약하지만 계속된 원샷에 취기도 얼큰하게 올랐고 사돈 어른들도 외손주가 대견스러운지 연신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큰 어머니,고모, 사촌들도 같이 와서 자리를 빛내주었다.

 

아들 집에서 밤을 보내고 토요일 오전에 사울로 올라왔다. 딸네 부부와 아들 부부가 같이 서울로 올라와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은 서울 집에서 같이 지내고 식사도 같이 하고 손자 재롱도 보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부터 20년 후 쯤이면 저 손주 녀석이 성년이 될 것이고 그때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혼돈과 격동의 세월을 저 녀석이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나는 부디 이 행복이 불행으로 사라지지 말기를 바랄뿐이다. 부디 행복하거라......

 

 

 

 

이 세상의 만물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과거 대대장 시절 하사관들이 만들어준 기념 액자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모습으로 아직도 벽에 걸려 있고 철원 지방의 유명한 구멍이 숭숭뚤린 화산석으로 만든 기념품에는 구멍마다 이끼와 난초가 아직도 자라고 있다. 선물로 받은 백골부대장의 기념 탁상 시계는 앞 유리가 떨어지고 글씨와 페인트가 벗겨졌지만 아직도 짹깍거리며 초침이 돌아가고 있다.

 

현역 시절 동안 받은 많은 액자와 기념품,명패,방패,수건,사진 등이 있었지만 이사를 가면서 대부분 부담스런 짐이 되어 대부분 버리기도 했고 아직도 집안 구석에 남이 있던 물건들을 하나 둘 정리했다. 지나온 과거는 추억에 불과하고 오로지 현재가 중요하며 미래가 불투명하기만 하다.     

 

 

 

 

죽은 노무현의 후예들과 살아 있는 박근혜의 추종자들이 현 여권의 실정을 반면삼아 당권을 장악하고 대결을 벌이고 있다. 공천과 당권 경쟁에서 갖가지 탈법과 사기 수법이 동원되고 그러고도 당당하고 미안한 구석이 없는 얼굴들이다. 원래 그들은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여야 공천자 중에서  범법자 출신인 전과자들이 약 4분지 1, 군미필자가 열명 중 한 명 꼴이라고 한다. 또 탈락자들의 반발로 공천 시비와 후유증이 갈등의 골을 깊게 파고 있다. 물갈이는 말 뿐이고 권력과 재물에 눈이 먼 정치모리배들이 천여 명 가까이 총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바야흐로 한반도 남쪽은 바깥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무감각한채 4월 총선이라는 권력투쟁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허울좋은 민주주의는 말 뿐이고 유권자들은 정치모리배들의 웃음과 악수에 한치 속도 모르고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반포종합운동장 테니스장 전경

 

중국이 내분을 겪고 있다. 세상에 절대권력이 없듯이 중국 공산당도 내부적으로 점차 곪아가고 있는 듯하다. 티베트, 신강-위그루, 만주, 내몽고, 황하 북부,황하 남부, 양쯔강 이남, 산서성, 산동성 등 소수민족과 지역별로 분리 독립한다면 아시아의 평화가 보장될지도 모른다.

 

최근 '보시라이 사건'을 둘러싼 자욱한 안개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개혁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둘러싼 중국의 치열한 고민이다. 중국이 휘황찬란한 경제적 성공을 자랑하지만, 빈부격차가 무섭게 벌어지고, 농민과 노동자들이 소외되고, 부정부패 등 심각한 정치·경제·사회적 문제가 곪아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중국의 좌파와 우파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시장의 부작용을 청산하고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게 신좌파였다. 2007년 충칭 서기로 부임한 보시라이는 공평했던 과거에 대한 대중의 향수를 읽어냈고 신좌파의 이론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국유기업의 수익을 사회로 돌리고,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임대주택과 복지를 제공하는 정책을 약속했다. ‘충칭 모델’은 보시라이를 만나 생명력을 얻은 듯했지만, 결국은 보시라이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 공정과 분배가 사회와 시민의 권리 강화를 통해 이뤄지지 않고, 강력한 국가와 인물이 베푸는 시혜처럼 되어버렸다. 보시라이가 ‘범죄와의 전쟁’에서 강압수사를 통해 기업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반대파를 숙청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반포종합운동장 옆 산책길

 

 

이와 대척점에 선 개혁파(우파)들의 청사진은 최근 세계은행과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이 공동 발표한 ‘중국 2030’ 보고서에 집약돼 있다. 리커창 부총리의 지원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의 요점은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민간의 힘을 키우고,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분배와 기회를 제공하는 개혁을 긴급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강한 특권을 누리는 국유기업을 수술하는 ‘중국판 재벌개혁’을 강조하고 있고, 민영기업 발전, 노동자 임금 인상, 농민들의 토지권리 보호 등을 제안하고 있다. 중국이 이런 발전모델을 실행하려면 기존 기득권 세력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고 국민과 사회가 권리와 감독권을 가지게 하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밀스럽고 삼엄한 권력투쟁의 안개 속에서, 중국은 절박하게 길을 묻고 있다.

 

 

죽은 노무현과 살아있는 박근혜의 대결

 

새누리당 공천 탈락자나 공천 보류자의 70% 이상이 이명박 대통령 직계 그룹이고, 민주당 공천 확정자 중 70% 이상이 친노(親盧) 또는 열린우리당 출신이다. 새누리당 친이(親李) 계파와 민주당 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은 강제 퇴장당했다. 4월 총선판이 박근혜 세력 대 노무현 세력의 대결 구도로 짜이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5년은 국민이 노무현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려 나라고 국정(國政)이고 한시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 대통령이 앞장을 서서 서울을 강남과 강북으로, 나라 전체는 좋은 집에 태어나 많이 배운 사람과 어려운 집에 태어나서 못 배운 사람으로 패를 갈랐다. 노 전 대통령 어록(語錄)에 '법보다 밥이 먼저'라는 게 있다. 이 발언을 경계로 나라가 '법을 지키는 바보들'과 '자기 이해 앞에선 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뱃심 좋은 집단'으로 두 토막이 나 사회가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지고 말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530만표 차라는 역대 최대 득표 차로 승리하도록 등을 밀어준 것은 나라를 쪼개고 가르고 나누는 이런 정치에 신물이 난 민심이었다. 그렇게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았던 노무현 세력이 아무런 반성 없이 정치 무대로 복귀해 민주당 지도부를 장악하고 이명박 정권의 실정(失政)에 고개를 흔드는 민심에 무임승차해서 차기 집권은 따 놓은 당상인 양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07년 대선 전엔 행동으로건 내건 이념으로건 보수의 중심(中心)에 서있었다. 그랬던 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세종시 수정 문제를 비롯한 정권의 핵심 현안에 선뜻 힘을 보탠 적이 거의 없다. 실질적인 야당 대표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친박 진영은 지난해 여당 지도부를 장악하고선 경제·복지·사회·대북 정책 할 것 없이 야당을 절반쯤 뒤쫓아 가는 듯한 현 정권과의 차별화에만 골몰한 느낌을 주고 있다.

돌아온 친노가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과 복수를 공언(公言)하고 있다. 권력만 쥐면 당장이라도 한·미 FTA는 폐기하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무효화하겠다며 사나운 기세로 뒤집고 엎을 목록만 늘려가고 있다. 한 나라 한 민족의 역사는 새 흐름을 보태고 낡은 흐름은 덜어 내면서 그침 없이 미래로 흘러가는 법이다. 정권을 잡겠다는 세력마다 하나같이 뒤집고 엎고 쪼개고 가르고 나누는 경쟁에만 정신이 팔린 이 나라 정치가 국민을 또 어디로 데려갈지 걱정이다.

 

 

                                                                               강남 일 길바닥에 뿌려진 전단

 

해품달이 여자들에게 인기였던 이유

 

지난번 드라마 해품달이 여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해품달을 못보게 한 남편이 가장 미운 남자였다는 사실을 그것이 증명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가 왜 그토록 인기였을까? 시청율 40% 이상을 올랐던 드라마였다. 

 

 

미안한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알고 싶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 하나.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었기에, 귀에서 고름이 나올 때까지, 어머니의 공세에 시달렸던 것일까.

세월이 흘러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된 지금에야, 그 '죄'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죄인이며, 이제 아들까지 대를 이어 죄를 짓고 있다. 이런 사정은 다른 집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원죄.

남자의 원죄는 결혼과 동시에 베일을 벗는다. 사랑하는 여성이 원하지 않았던 것들을 대거 떠안기는 반면, 그녀가 정작 원하던 것들은 주지 못하는 원죄.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원치 않았던 것들이란, 어떤 의미와 가치도 찾을 수 없는 노동, 자신의 값어치가 제로로 떨어졌다는 자괴감, 그리고 '시(媤)'자가 붙은 모든 일방적 관계들이다. 무엇보다 피하고 싶었던 것은, 생소함 속에 홀로 남겨진 고립감이었을 게다.

반면 여자가 원했던 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존재감이다. 안정된 생활 속의 소소한 배려와 소통을 통해 그것을 늘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게 여자들의 마음이니까.

하지만 남자들에겐 이 부분도 난감하다. 일과 사랑을 동시에 잘하는 건 TV 드라마의 주인공에게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드라마 각본은 대개 여자들의 작품이다. 남자의 뇌는 여자들만큼 여러 가지 민감한 것을 동시에 다루지 못한다. 한쪽에 몰입하면 다른 한쪽을 놓아둘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 세대는 영민함의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장차 큰 죄를 지어야 할 것을 예감하기 때문일까. 어떤 남성들은 신주단지처럼 아끼던 디지털카메라며 노트북컴퓨터를 팔아 여자 친구에게 명품 가방 같은 것을 선물하기도 한다. 속죄 양 대신 '속죄 가방'인 셈이다.

그러나 원죄는 최고급 속죄 가방으로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없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는 그런 가방 하나 선물하지 못하는 대역 죄인이다.

남자들은, 죄를 추궁당하는 시간이 돌아오면, 언제나 "미안하다"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정말로 사랑하니까 미안한 것이다. 추궁을 당하다 보면 자신으로선 어쩔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시'자 붙은 관계로부터 사소한 속죄 가방 하나 사주지 못하는 것까지,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결국, '미안하다'는 사랑을 표현하는 남자의 가장 솔직한 말이다. 사랑은, 여자에겐 감정의 문제이겠지만, 남자에겐 능력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남편 혹은 남자친구에게 "뭐가 미안한지, 조목조목 말해보라"는 가혹한 요구만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다 미안할 따름이니까.

 

강해진 여자들이여 틈을 보여라

 

사랑하는 여자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남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애의 진행에 따라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그녀의 진짜 얼굴을 보았을 때다. 여기서 '진짜 얼굴'이란 민낯이 아니라 '웃는 얼굴 속에 숨겨 두었던 성격'을 의미한다. 여자를 잘 모르는 남자, 특히 마초 성향일수록 환상을 품는 경우가 많다. 그녀를 자기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그녀는 애교와 배려심, 인내로 참아온 것뿐이다.

연애가 초기 관문을 지나 일상으로 접어들 즈음이면, 웬만한 인내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환상은 비로소 종말을 고하게 된다. 소중하게 키워온 환상이 깨지는 순간을 기뻐할 남자는 없다.

두 번째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툭' 맡겨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다. 결혼 무드가 본격 형성될 무렵이다. 이때 상당수 남자들은 죄어오는 운명의 올가미를 직감하며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다. 사랑엔 변함이 없다. 즐거운 연애가 끝나고 혹독한 인생이 시작될 것이란 두려움에 압도당할 뿐이다. 특히 여성이 독립적이지 못할 경우 '툭' 소리는 매우 작게 들리는 반면에 책임감은 바위보다 크게 느껴진다. 물론 도망 충동을 억제함으로써 남자의 사랑은 친밀의 수준을 벗어나 책임감으로 성숙된다.

세 번째는 그녀가 '틈'을 주지 않을 때다. 그녀의 '남편 관리'가 적정선을 넘어 포위망처럼 좁혀져 올 때 남자들은 부담스러움과 후회의 경계에서 고민하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남자들도 안다. 세상살이가 불안해서 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그만의 숨 쉴 틈' 역시 필요하다. 여자들이 누군가와 수다를 떨거나 오랫동안 전화 통화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봐도 좋겠다.

세상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고도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개인주의에 여성권력 부상과 가부장제의 위기, 세대 대결 양상까지…. 그런 배경 속에서 남녀 관계 역시 고통스럽게 진화하는 중이다.

요즘 남자들, 과거 세대만큼 믿음직스럽지 못하며, 잘나가는 여성의 눈높이로 보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게 사실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건, 앞으로 계속 그럴지도 모른다는 부분이다.

그래도 남자들은 간절하게 바란다. 사랑하는 여자가 무섭게 변하지는 않아 주었으면, 하고 말이다. 이따금 느끼는 부담감이 두려움으로 변화하는 순간, 더 이상 그녀의 남자가 되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하기에.

 

 

 

해품달이 여자들에게 인기인 이유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인기몰이 중이다.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에 눈물 흘리는 아내, 그런 아내에게 말실수했다가 혼났다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꼬리를 잇는다. 여성들이 그토록 '해품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방송분을 틈틈이 보다가 키워드 하나를 발견했다. 주인공들의 대사 중에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켜준다'는 것. 왕과 양명군은 여주인공 연우를 '지켜주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다'며 연거푸 다짐을 하고, 그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지켜주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린다. 연우 역시 왕이 잠든 사이 곁을 지켜주는가 하면 양명군을 위해 거짓말까지 해가며 위신을 지켜준다.

그들은 운명에 의해, 혹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자신의 안위 또는 명분을 위한다면 사랑을 버려야 하며, 사랑을 선택한다면 지위와 명분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들이다. 선택은 본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킴'을 의미한다. 드라마에서도 '얻고자 하면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반복된다.

세 주인공의 선택은 언제나 하나로 귀결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수많은 상처를 입어 만신창이가 되어 가면서도 연인을 지켜주는 셈이다. 여성들을 감동 도가니로 끌어들인 힘이 이 대목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청자들은 세 주인공의 사랑을 보며 자신들 역시 두려움으로부터 누군가가 지켜줄 거란 위안을 받는다. 그 두려움이란 궁중암투로 상징되는 투쟁적 현실일 수도 있고 대왕대비나 철없는 공주 같은 시(媤)자 붙은 주변인일 수도 있으며 영의정류의 나쁜 직장 상사일 수도 있다. 불투명한 미래 역시 두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나마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두려움을 잠시 잊은 채 안심하고 싶은 것이다.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팍팍한 현실과 달리 그런 드라마의 결말은 항상 해피엔딩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드라마 '해품달'은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현실을 우화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가 한국이다. 드라마 속 꽃미남이나 현실의 일반인 남자나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데 드라마의 임금도 지켜내지 못해 쩔쩔매는 사랑을, 현실의 힘도 없고 한낱 월급쟁이에 불과한 남자들은 과연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인생이라는 드라마에는 대본도 없는데. '해품달'을 재미있게 본 남자들 처지에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