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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시대의 흐름

우면산의 가을 49 : 소셜네트워크의 반란

 

 

 

우면산의 가을 49 : 소셜네트워크의 반란

 

                                                                                      새벽달과 가로등

 

시대는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보수는 낙오하고 진보는 달리기 마련이다. 

 

어제는 영하로 떨어진 날씨였지만 자전거를 탔다. 발가락과 손가락이 시리고 차가운 바람이 스며든다. 그래도 달리다보면 열기가 생겨 별 지장은 없다.

 

드디어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최류탄이 터진 가운데 날치기 통과를 했다. 집권 여당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며 절대절명의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정치는 흥정이며 일종의 거래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적절한 선에서 양보하면서 실익을 챙기는 그것이다. 한편으로는 사전에 야당과 모종의 밀약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든다.

 

중국이 한중일 FTA를 제안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다급한 심정인지도 모른다. 농수산물을 제외한 기타 부분은 우리들이 유리한 입장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지혜를 모아 전략적인 협상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내년 예산 증액이 총 11조 5000억원으로 선심성, 복지, 지영구 사업,기초노령연금, 반값등록금, FTA 이행 농어촌지원금 등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계수조정소위에서 민원성 지역 예산이 합쳐지면 더 증액될 전망이라고 한다.

 

한전 전기료가 10% 인상될 기미다. 전기요금이 원가보상율이 90.3%로 팔면 팔수록 손해라고 한다. 지난 3년간 영업적자가 6조 154억원, 누적부채가 33조 4000억원이라 한다. 또 올 겨울 전력 에비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질 날이 많아 대정전도 에상된다고 한다. 가계부채 900조원, 저소득층 엥겔지수가 5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서민들 가게에 고통이 더해질 것이므로 산업용을 올리고 서민 요금은 내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산업용을 올리면 물가를 부채질하게 되고 경쟁력이 저하된다고 할 것이지만, 원가보상율이 산업용은 89%이나 가정용은 94%라 하니 연료비 변동제를 신축적으로 적용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기료가 일본의 39%, 영국의 50%, 미국의 77%에 불과하다고 하니 개선이 시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방만한 운영의 한전 체제도 이 참에 개선시켜야 할 것이다. 돈잔치를 벌인다던가 목고 놀면서 책상만 지키고 잇는 수많은 낙하산 감사들도 모조리 퇴출시키고 각 부분에 걸쳐 지금가지 낭비와 허레허식에 지출하던 모든 비경제적인 부분을 도려내고 경제적인 운영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취업시 그 사람의 내면적인 인격과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평소에 인터넷에서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거나 한 내용을 모조리 조사하는 기업이 있다고 한다. 평소 악필이나 못된 버릇을 일삼던 젊은이들은 그것으로 인해 인성이 들통나서 취업에 떨어지는 경우도 잇다고 하니 ㅇ니터넷에 글을 쓸 때나 댓글을 함부로 달거나 하는 짓은 문화인으로서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 생각만 옳다는 고루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안철수를 비방하는 글을 쓴 블로그에 수백 명이 욕설로 댓글을 달아 놓을 것을 보았다. 다 부질없는 짓인대도 굳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비방과 욕설을 좋아하는 네티즌들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보수나 좌익 지식인, 종교인들도 자신의 사상과 종교를 비방한 글에 대하여 욕설을 하거나 삭제를 요청하거나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상이나 종교, 인간들은 편협한 사고와 사상에 빠진 사이비 광신도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안철수는 계속부각하고 있고 여당인 한나라당은 불안하기만 한 모양이다. 서울 시장 선거와 안철수의 등장, 진원지를 알 수 없는 괴단과 유언비아가 폭주하면서 유권자들이 쓸물처럼 빠져나가는 오늘날의 이 현상을 어떻게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해야 할 것인지 암담할 것이다. 이런 추세로는 내년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는 중론인 모양이다. 그래서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는 한편 단속 법안까지 준비중인 모양이다.

 

고려는 몽고 치하 100년을 겪으면서 왕들이 폐위와 복위를 반복하였고 권문세족들이 농민들을 수탈하며 거대한 농장을 경영하면서 부와 사치를 누렸다. 몽고 출신 왕비는 수시로 원나라에 왕을 고발하였으며 왕은 수시로 연경으로 호출되어 불려갔다. 고려 왕이 구금되거나 유배를 가야했고 조정은 왕이 없는 상태에서 권문세족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농단하였다. 또 고려 사회는 변발 등 몽고풍이 유행하였고 내부적으로 반란과 심양왕의 왕고의 계속된  고려 왕위 쟁탈전으로 홍역을 치루어야 했고 외부적으로는 2차에 걸친 홍건적의 대대적인 침입으로 수도 개경이 함락되어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을 가야 했고 개경의 궁궐이 불타는 등 피해도 막심하였다. 또 남.서해안에 왜구의 침공으로 백성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처럼 한 나라가 강대국의 속국이 되면 그 나라는 이렇게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소셜네트워크의 반란

 

최근 일부 언론들은 괴담의 근거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지목한다. 디지털 시대에 부상하는 새로운 소통의 채널이 괴담의 진원지라는 것이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뜬소문들이 SNS를 통해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SNS는 소통의 도구이지 진원지가 될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해서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뜬소문들의 진짜 진원지는 권력층이며 정부다. 많은 사회적 물의가 일어낫던 사건들이 모두 진원지는 극소이었다.발표는 허점 툭성이엇고 거짓말이 대부분이엇으며 불리한 정보는 숨겼고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만 과장해서 발표했으니 말이다. 국민들은 이를 지켜보았고 주류 언론들도 동참했다.

일부 언론들은 유언비어라는 말 대신에 더 적합한 괴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신들은 언론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데 뜬소문이 퍼져가니까 괴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검찰은 이에 응답을 하듯이, FTA 관련 괴담 등을 허위사실 유포로 현행범 체포와 구속수사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뉴미디어 심의팀을 신설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죽이기 총 공세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트위터가 표적이다. 나설 수 있는 기관은 모조리 나섰다. 여당,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검찰, 선관위, 정부 출연연구원, 모든 공중파 방송과 모든 보수신문이 동시에 집중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심해지더니 선거결과가 박원순 시장의 승리로 나온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트위터와 선거, 그리고 민주주의의 관계를 연구해온 내게도 매일 서너통씩의 전화가 걸려온다. 요청하는 내용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다. 트위터 상의 괴담, 루머, 트위터의 역기능, 소셜테이너의 나쁜 점에 대해 코멘트 해달라거나 발표해달라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트위터가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치명적으로 불리하며, 트위터를 그대로 두고는 내년 선거를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트위터를 매도하는 여론을 조성하거나 혹은 규제한다고 해서 여론이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고 규제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로 대책을 원한다면 효과도 없는 트위터 죽이기에 나설 일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진지하게 고심해볼 것을 권한다.

첫째, 온·오프라인을 함께 보아야 현실이 보인다. 트위터가 좌파의 온상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정부여당과 밀월관계를 형성하고 그 통제 아래 두었던 전통 미디어가 얼마나 수구의 온상이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기존 매체가 오른 쪽으로 심하게 치우칠수록 뉴미디어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균형과 견제의 원리다.

둘째, 루머니 괴담이니 하는 근거 없는 주장은 그만 거두어들일 것을 권한다. 소셜 미디어를 포함해서 모든 매체는 잘못된 정보를 전파한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의도적인지, 결국에는 수정이 되는지, 얼마나 빨리 수정되는지 등이다.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트위터는 기존 매체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편집권 민주화와 집단지성이라는 두 개의 이유 때문이다. 한 사람이 편집권을 독점하고 있는 기존 매체는 종종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수정 요청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수정되더라도 긴 시간이 걸린다. 편집권이 완전히 분산된 트위터에서는 400만 이용자 중 누구도 의도적으로 왜곡할 능력이 없고, 잘못된 사실이 유포되었을 경우 400만명 중 누군가는 해당 분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수정이 이루어진다. 몇 차례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거듭 확인된 사실이니, 트위터에 루머가 퍼진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루머일 뿐이다.

셋째, 규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규제하는 즉시 규제를 우회하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 분명하고, 공연히 유사한 국내 서비스들에 역차별만 가할 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트위터를 규제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를 보자. 최근 필자의 학생 중 한 명이 전 세계에서 올라오는 중국어 트윗들을 수집해서 간자와 번자를 구분해 본 적이 있다. 간자는 주로 중국 본토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중국 내 트위터 사용 인구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중국어 트윗의 95%가 간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국처럼 강력한 규제를 하더라도 도저히 막을 길이 없다는 뜻이다.

넷째, 트위터의 핵심은 소통, 공감, 연대이다. 전통미디어를 대상으로 할 때처럼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이 소통이 진정성이 있다면 트위터의 400만 네트워크는 비로소 공감하기 시작한다. 공감의 끝은 서로를 끌어안는 연대이다. 트위터의 등장 이후 상상할 수 없었던 놀랍고 감동적인 연대를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희망버스가 그랬고, 홍대앞 두리반이 그랬고, 명동 카페 마리가 그랬다. 이 모두가 작은 소통에서 시작해서 공감을 얻어내고 마침내 연대로 이어진 것들이다. 트위터 때문에 불리해지는 것이 싫다면 내가 일방적 홍보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정한 소통을 시도하는지, 그 소통은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것인지, 또한 나는 99%와 연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1%와 연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일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