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한국의 역사 438 : 고려의 역사 207 (제31대 공민왕실록 10) 본문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국의 역사 438 : 고려의 역사 207 (제31대 공민왕실록 10)

두바퀴인생 2011. 12. 2. 04:08

 

 

 

한국의 역사 438 : 고려의 역사 207 (제31대 공민왕실록 10)   

 

 

제31대 공민왕실록

(1330~1374년, 재위 1351년 10월~1374년 9월, 22년 11개월)

 

3. 공민왕시대의 반란사건들

 

조일신의 임진정변

 

조일신은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시종을 도맡아 하던 인물이다. 그 공으로 공민왕이 즉위한 이후에는 참리 벼슬을 받고, 왕과 함께 귀국한 이후에는 찬성사로 승진하여 시종공의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하지만 그는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큰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왕이 원나라에 머물러 있을 때 많은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했는데, 그 공로를 내세우며 횡포와 전횡을 일삼았다. 또한 그는 원에 오래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친원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곧잘 공민왕에게 원나라 조정에서 권세를 얻은 고려인들의 친족들에게 벼슬을 내릴 것을 권고하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공민왕의 정방 철폐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공민왕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였다. 공민왕은 오랜 원나라 생활을 통해 이미 원 왕조가 몰락하고 있음을 직시하였기에, 국권을 회복하고 무신정권 이후에 완전히 무력해진 왕권을 되찿을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공민왕은 최우 시대 이후 인사권을 도맡아온 '정방'을 철폐하여 일부 권신의 권력 독점을 막고 중앙집권적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하였다.

 

그런데 조일신은 정방의 부활을 주장하며 공민왕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는 정방의 철폐로  말미암아 벼슬을 내라는 일이 너무 까다로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방이 유지될 때는 벼슬을 내려 신하를 세우는 일이 간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정방을 장악하고 있는 권신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벼슬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방이 폐지되고 인사에 대한 업무가 각 부로 이관된 이후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단 한 명의 관리를 세우는 일도 여러 절차와 결재가 요구되었던 까닭이다. 조일신은 원나라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자들의 청탁을 받고 벼술을 내리고 싶었는데 인사행정의 까다로운 절차로 인해 원하던 바를 이룰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화가 난 조일신이 공민왕을 찿아가 정방을 부활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이에 공민왕은 옛 정을 생각하여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옛 제도를 회복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또 개편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그대가 부탁할 일이 있거든 내게 말하시오. 내가 그 인사 소임을 맡은 사람에게 지시하면 누가 복종하지 않으리오?"

 

이 말을 듣고 조일신은 화가 난 음성으로,

"제 말을 듣지 않으시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원나라 조정의 사대부들을 보겠습니까?"

 

그 후 조일신은 사직을 청하고 관청에 나오지 않았다.

 

조일신은 공민왕을 돌보아온 자신의 공로를 믿고 왕에게 함부로 상대하였으며, 또 성질도 급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대간에서 조일신의 불법행위를 탄핵한 일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힘을 믿고 "감히 어느 눔이 나를 욕하는지 얼굴이나 한 번 보자." 며 자신을 탄핵한 대관과 대면하기를 요청한 적도 있었다.  또 헌사(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문제를 일으킨 그의 집 종을 가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수하들을 거느리고 와서 옥문을 파괴하고 자신의 종을 대려가기 까지 하였다. 그리고 왕과 함께 놀이를 구경할 때도 왕과 나란히 않는 등 방자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기에 조신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거슬리면 가차없이 제거하였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보복하고 그 가족과 형제들에게까지 불이익을 주는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공민왕도 그같은 그의 행동을 싫어했지만 그동안 공로에 마음도 약하여 마땅히 벌을 줄 만한 일을 찿지 못하여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방을 부활하지 않는 공민왕을 비판하며 사직을 청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공민왕은 그를 달래기 위해 판삼사사 벼슬을 주고 동덕좌리공신의 칭호를 내린다. 하지만 조일신은 이미 자신에게 반대 세력인 기철 일당을 무력으로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처럼 공민왕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후덕하였고 쉽게 내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모양이었다. 결국은 그로 인해 주변 인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쉽게 믿고 씉까지 챙기며 정을 쉽게 끓지 못하는 성격탓이었다고 판단된다. 

 

1352년 9월 기해일, 조일신은 자신의 도당들인 정천기, 최화상, 장승량, 고충질, 임몰륜, 장강주, 한범, 손노개, 박서등, 염백안첨목아, 이송경, 곽윤정 등을 자기 집으로 불러 반대파인 기철, 기륜, 기원, 고용보, 박도라대, 이수산 등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 다음 그들의 집에 자객을 보냈는데, 눈치를 챈 기철 일당이 자리를 피하는 바람에 기원만 죽이고 나머지는 죽이는 데 실패하였다. 그러자 조일신은 자신의 일당을 데리고 왕이 거차하는 이궁을 포위하고 숙직하며 저항하던 판밀직사사 최덕림, 상호군 정환, 호군 정을상 등을 죽였다.

 

이렇게 하여 공민왕은 졸지에 조일신 패거리에게 잡혀 협박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일신은 공민왕을 협박하여 국인을 빼앗아 자신을 우정승 자리에 올려놓고, 정천기는 죄정승, 이권은 판삼사, 나영걸은 판밀직, 장승량은 응양군 상호군으로 임명했다. 또 자신의 도당들인 배천명을 평양도 존무사, 장원석을 강릉도 존무사, 유광대를 철령 방호사, 이수장을 의주 방호사로 각각 임명하여 지방조직까지 장악하려 하였다.

 

그는 정권을 장악하자 간신히 죽음을 면한 기철 등을 찿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그의 가족들을 모두 하옥시키고 전국적으로 포고문을 내려 수색토록 했다. 그리고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함께 거사를 도모했던 동료들을 차례차례 죽이기 시작했다.

 

먼자 조일신은 자신이 주동이 되어 도모한 거사에 대한 책임을 최화상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며칠 뒤 새벽에 함께 입직하고 있다가 최화상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최공이 차고 있는 칼이 참 좋아 보입니다. 어디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이 말에 최화상은, 

"이 칼로 사람께나 죽였지요."

 

하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칼을 내주었다. 그러자 칼을 받아든 조일신이 가차없이 최화상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곧장 공민왕에게 달려가 역적을 토벌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공민왕이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허락하지 않자, 조일신은 막무가내로 자신과 함게 거사를 했던 장승량 등에 대하여 역모혐의를 되집어씌여 모두 죽여 버렸다. 그것은 자신이 역적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손을 썼던 것이었다. 그 후 그는 다시 좌정승으로 승진하고 찬화안사공신에 책록되었다.

 

하지만 조일신의 이 같은 행동은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말았다. 자기 손으로 자신의 도당들을 죽임으로써 급속도로 자신의 힘이 힘이 약해진 것이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민왕은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당시 단양대군 왕유의 집에 머무르고 있던 공민왕은 급히 이인복을 불러들였다. 이인복은 용기 있고 강직한 성격이라 공민왕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이인복을 보자 공민왕은 근심이린 눈빛으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 말 한 마디에 이인복은 공민왕의 의중을 파악하고 직언을 하였다.

"어물어물하다간 전하께 불리하게 됩니다."

 

공민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밀히 백관들을 불러 협의 한 결과 조일신을 처단하기로 결정하고 김첨수에게 명령하여 기습적으로 조일신을 붙잡아오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왕명을 받고 달려간 김첨수에게 조일신은 접혀와서 곧바로 사형에 처해졌으며, 그의 도당 나영걸, 을보, 이권, 고충절, 이종 등 28명도 제거되었다. 이로써 공민왕을 벼랑으로 내몰았던 임진정변은 막을 내린다.

 

이 사건은 공민왕으로 하여금 개혁에 다욱 박차를 가하게 하는 한편 배원정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