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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변화와 기회에 대하여

우면산의 가을 45 : 깊어가는 가을, 100년 전과 오늘

 

 

 

우면산의 가을 45 : 깊어가는 가을, 100년 전과 오늘

 

 

 

                                                                         우리 동네 고개길

 

 

날씨가 너무 많이 풀리더니 주말에는 비가 내렸다. 새벽길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다가 비가 내려 다시 돌아왔으나 오는 도중에 비가 그쳤다 하늘을 보니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아서 다시 출발하여 한 바퀴 돌아 방배동 근방에 오니 빗줄기가 굵어졌다. 비상용 우산을 들고 걸어서 오다가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다시 타고 달렸다. 문제는 조명등이 물에 젖어서 합선을 일으켜 고장이 날까봐서 등을 끄고 왔다. 집에 와서 물기를 닦고 선풍기로 물기를 말리고 점검 후에 정리하였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기온이 내려갈 전망이라 했다. 계속 날씨가 따뜻하니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모기퇴치용 제품 매출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철을 모르는 꽃이 피고 개구리 등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겨울잠을 잘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날씨다.

 

우리집 뒤로 올라가면 산정현 교회와 고급 주택인 현대빌라가 나오고 그 뒤로 산비탈에 판자촌인 산청마을이 나오고 마을 옆으로 올라가면 고개길이 나오는데, 그 고개길을 넘으면 방배동이 며 내방역이 나온다. 뒷 산은 긴 능선으로 연걸된 공원으로 대법원, 정보사 뒷 산을 통해 팔레스 호텔, 국립 도서관 뒤로 누애다리를 거쳐 검찰청과 강남 성모병원으로 넘어 갈 수가 있다. 고개길은 가끔 이용하는데, 산행을 하거나 내방역으로 갈 때 가끔 이용한다. 고개길은 가을이 짙어가고 낙엽들이 곱게 물들어 있다. 사진은 고개길을 넘어가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블로그에 고려의 역사를 올리다보니 벌써 충혜왕 시대까지 왔다. 이제 고려의 역사도 마지막 종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 신라의 천년 사직이 부패와 무능으로 조정이 통치력이 무너지자 지방 곳곳에서 농민들과 초적들이 지방 세력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켜 후삼국 시대가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궁예, 양길을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이 초연히 일어섰다가 이슬처럼 사라져갔다. 그 중에서 견훤과 왕건이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기치를 내걸고 세력을 겨루다가 결국 왕건에 의해 삼한이 통일되는 위업을 이루게 된다. 왕건은 수많은 호족들의 집합체이며 민족 대화합의 결정체인 고려를 창업한 이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갔다. 혜종과 정종에 이어 광종의 개혁정치를 거치면서 고려 조정의 권력 핵심을 이루던 호족들이 하나 둘 숙청되었고 왕권이 확립되면서 중압집권화가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3차에 걸친 거란의 침공을 서희, 강감찬 등에 의해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왕권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과거제로 등용된 신진관료들이 조정을 장악하면서 유교와 불교가 발흥하였고 문민우위의 정치질서가 확립되면서 무신들이 천시받기 시작하였다. 의종의 난정으로 내시들과 환관, 문신들이 왕의 주변에서 사치방탕을 일삼으며 나라가 부패와 무능에 빠지자 괄시받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시키고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권력을 장악한 무신정권은  정중부-이의방 정중부 부자-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지는 무신정권의 확장기에 접어들어 20여 년동안 고려 조정을 지배하면서 왕권이 농단되었고 무신들의 사치와 부패는 극을 달렸으며 백성들은 탐관들에 의해 수탈되고 거지가 되어 방랑하는 유랑민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최충헌에 의해 이의민 일족이 제거되면서 최씨 무신정권이 대를 이어 권력을 장악하면서 최충헌-최우-최항-최의로 이어지는 무신정권은 거의 60여 년 동안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고려의 역사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그동안 KBS 드라마 '무인시대'를  다시보기로 근 한달 이상 160여 회나 되는 것을 열심히 보았다. 비교적 충실하게 드라마를 제작하였으나 실록과는 다른 점도 많다. 물론 흥행과 재미를 위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제작하였을 것이나 실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왜곡한 점이 다소 아쉽다. 물론 실록이라고 모든 내용이 진실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독자들은 모두 그렇게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왜곡된 기억만 남기 때문이다.

 

사극이 대선을 앞두고 꼭 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극이 현실 정치를 비판하며 본보기로 방영되는 점도 있을 것이다. "소위 국가의 지도자가 되거나 정치하겠다는 인간들아 이 역사 드라마 좀 봐라, 그 따위로 하다가는 이런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니 정신차려라!"  아니면 "인간들아, 이런 군주를 닮아 바른 정치를 펴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좀 해봐라!" 이런 의도도 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가 거침없다. 목민이란 원래 자신부터 수양이 되어야 하고 언행이 일치되어야 하며 분수를 알고 비리와 부패를 멀리하며 사치와 방탕은 치명적인 독소가 된다. 서민만을 위해서도 안되고 부자들만을 위해서도 안된다.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민이다. 인정과 파벌에 이끌려서도 안되며 편파적인 인사는 물론 편향적인 사상이나 태도, 종교 등에도 평등한 사고를 가져야 할 것이다. 또 스스로 몸가짐이나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할 것이며 비리와 부패를 멀리해야 하며 치부와 사치는 목민으로써 금물이다. 기업을 등쳐 후원금을 받거나 포플리즘을 위해 예산을 함부로 전용하는 행위도 금물이다.

 

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거나 적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는 것은 서울 시장으로써 자격이 없을 것이다. 또 법과 행정을 집행함에 공정해야 하며 엄격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억울한 피해는 당하는 행정과 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해야 할 것이다. 전시 행정, 뉴타운 개발, 강제 철거, 불평등 계약, 재난/재해 등 권력의 남용과 가진자들의 횡포를 방치하여 전재산을 날리고 피해를 보아야 하는 주민, 철거민들이나 상인들이 재산 소유권, 권리금, 시설비를 빼앗기고 알거지로 나가야 한다면 누가 그냥 고분고분 나갈 것인가?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정책적인 행보가 거침없으며 환경 미화원과 대화, 지하철 출근, 현장을 직접 찿고 취임식 등 허례와 형식적인 낭비를 배격하는 태도는 고무적이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어느 정당 정파에 속하지 않은 무소속이라는 입지가 주는 자유스러움 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장의 권한을 벗어난 도를 지나친 월권행위와 지나친 포를리즘은 스스로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지기 쉬운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그리스를 포함하여 이탈리아 등 유럽의 선진국들이 과잉 복지정책의 실패로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도 과다한 복지재정의 지출로 인해 발생된 것이기에 더욱 염려스럽다.

 

또 남은 재임기간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 실적을 남기려는 욕심도 경계해야 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오던 정책을 한꺼번에 백지화시키는 행위도 재고해야 할 것이다. 그로인해 발생되는 모든 피해는 모두 시민들에게 돌아 올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민들과 다양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저소득층과 약자, 서민들에게 일자리와 안정적인 수입, 그리고 편안함 삶을 보장해 줄수 있는 정책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행보가 염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박 시장은 서울역 노숙인 문제를 거론하면서 노숙인들을 서울역에서 지낼 수 있도록 코레일측에 이야기한 모양이다. 그러나 코레일측은 거부했다. 노숙인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구걸, 술판, 싸움, 흉기난동 등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유발하고 심지어 50대 여성이 흉기는 찔리는 등 야간이면 그곳을 지나기가 겁이 날 정도이니 그것을 다시 허용해주라는 것은 시장으로써 책무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수용소는 텅텅 비어 있는 상태이며 여행객들에게 심대한 불편과 불안을 초래하는 노숙인들을 다시 서울역사에 수용하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무책임한 언행이다. 

 

뉴스를 보면,  박 시장이 그저께 ISD(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 조항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하였다 한다. 소송을 당해 패소하면 서울시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며 또 자동차세 세율구간 축소와 세율 인하로 예상되는 약 260억원 세수 감소에 대한 중앙정부의 세수 보전 대책과 미국계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무차별적 한국 시장 진입 가능성에 따른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 ISD 실무위원회에 서울시도 참여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FTA에 따른 피해 현황과 보호 대책을 함께 협의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박 시장이 취임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벌써부터 중앙정부와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를 빚는 것은 적절한 처신인지 의문이며, 박 시장이 의견이 있다면 국무회의에 참석해 얼마든지 중앙정부와 협의해 조율할 수도 있지만 대외적으로 한계를 벗어난 무책임한 언행을 함부로 하고 있다. 그는 한ㆍ미 FTA가 1000만 서울시민 삶을 좌우하는 문제임을 내세우지만 서울 시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ㆍ미 FTA는 여야가 사활을 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더욱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지방자치법에서도 지방정부의 국가사무 처리를 제한하고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도 선풀직 공무원을 망각하고 시민단체장 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미 FTA 비준을 놓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시작한 눔들이 지금은 반대하고 반대하던 눔들이 지금은 국회통과에 목을 메고 있다. 말을 바꾸고 새로운 사안을 들고 나와서 시비를 걸고 있다. 처음부터 협상할 당시 그들은 그것을 몰랐던가? 지론도 없고 명분도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대화하여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정치 현실이 실망스러울 뿐이다. 오늘도 상임위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과연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지금의 쟁점은 강대국 미국에 유리하고 약소국의 입장인 우리들에게 불리한 불평등한 협상이라는 점일 것이다. 한·미 FTA 비준의 핵심쟁점인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찬반논쟁이 거리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안을 최초부터 협상 과정에서 사전 추출하여 타협하고 조정하고 설득하지 못한 점도 문제거니와 그런 인재도 없고 자신들의 위치에서 대통령의 지시에만 복종하는 영혼이 없는  추종자들 뿐이기 때문이가?

 

자유시장을 개방하여 수많은 기업 사냥꾼들이 한국의 국부를 훌쳐간 사례는 많으며 지금도 론스타 문제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부가 흘러나가면 결국은 국민들의 삶이 그만큼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살려놓은 금융권들이 위로부터 낙하산 인사로 썩을 대로 썩어가고 있고 지금도 돈잔치를 벌이며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어도 정부는 무력하게 대응할 뿐이다. 금융권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한 통속이 되어 세금을 훔쳐가도 눈 먼 장님처럼 처다만 보는 꼴이 결국은 저축은행 사건으로 터지고 말았다. 관련된 고위층을 모조리 발본색원하여 처벌하지 못하는 썩어빠진 검찰도 문제거니와 비리와 부패가 국가 지도층인 위로부터 시작되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미 FTA가 미국 의회를 통과했으니 이제 여당은 발등이 불이 떨어진 것이나 진배없을 것이다. 이 갈등의 골을 설득과 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도 문제거니와 그런 인물도 없다는 한미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 이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문 때문에 말들이 많다. 미국의 어느 전문기관에서 작성을 의뢰하여 작성되었다며 야댱들이 성토하고 있다. 미 의회의원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설득력 있는 내용으로 긍적적인 반응을 받아내기 위해 작성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참 별 것 가지고 다들 난리다.

 

갑자기 이완용같은 매국노가 등장하고, 100년 전 조선 말기 상황을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암튼 야당은 부조건 반대요 여당은 무조건 추진이다. 이나라 정당들의 수준이 이럴진대 정치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00년 전과 오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선 오늘. 미국과의 수교를 놓고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이 파열음을 울리던 1881년이 생각난다. 충돌의 계기는 한 해 전 일본에 갔던 수신사 김홍집이 청국 외교관 황준헌에게서 받아 온 ‘조선책략’이 제공했다. “러시아의 침략은 조선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오늘 조선의 급무는 러시아를 막는 계책을 세우는 것이다. 오대주(五大洲) 사람들이 다 조선이 위태롭다 하는데 조선인들만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하니, 집에 불이 난지도 모르고 재재거리는 처마 밑 제비나 참새 꼴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가 러시아 침략이 임박했음을 경고하며 던진 ‘연작처당’(燕雀處堂)의 경구는 조선왕조 위정자들의 정수리에 일침으로 꽂혔다. “중국과 친하고(親中國), 일본과 맺고(結日本), 미국과 연대해(聯美國) 자강을 도모하라.” 그가 제시한 러시아 침략 대비책은 고종의 마음을 움직였다. 고종은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 경험을 따라 배우려 했다. 조사(朝士)시찰단과 영선사(領選使)를 보내고 신식군대 별기군도 만들었으며, 대미 수교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양무(洋務)운동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비해 시기적으로 20여년 늦었지만, 대외개방과 부국강병에 나선 고종의 판단은 옳았다.

양반 유생들이 감긴 눈을 뜨길 바란 고종은 정문일침의 깨침을 준 ‘조선책략’을 전국에 배포했다. 그러나 그때 유생들은 “천주교, 기독교와 다르니 포교를 허용해도 큰 탈이 없을 것”이라는 구절을 빌미로 삼아 정부의 개화정책에 반발하는 거국적 시위에 나섰다.

공자와 주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인간세계가 추구할 바른 목표라고 여겼던 선비들에게 유교 외의 모든 사상과 종교는 배척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때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모토로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처형된 홍재학의 상소는 이를 웅변한다. “중국이 시궁창에 빠져 온 세상에 짐승냄새를 풍긴 지 300년이나 되었습니다. 어찌 삼천리 우리 옛 강토가 오늘에 와서 개, 돼지가 사는 곳으로 되고 500년 공자·주자의 예의가 오늘에 와서 똥물에 빠질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유생들은 우물 밖을 나와 큰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을 볼 것을 바란 고종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들은 힘의 정치가 작동하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를 맞이하고도 유교화 정도를 기준으로 세상을 중화와 이적으로 가르는 화이(華夷)론의 세계관을 고집했다.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어리석음을 범한 그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예의염치를 모르는 오랑캐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전국적인 유교 지식인들의 반대에 밀린 정부는 대미 수교 교섭을 중단하고 궁여지책으로 협상실무를 종주국인 청국에 일임하고 말았다. 조약협상 과정에서 청나라가 조선이 자국의 속국임을 명시하려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자주권은 큰 상처를 입었다.

한 세기가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개화정책을 펴려 한 고종과 개화파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소중화(小中華)의 낡은 사상과 양반 지배 체제를 사수하려 한 유생들은 시대착오의 오판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구와 개화 세력이 범한 우(愚)의 차이는 전쟁에서 적에게 등을 보이고 오십 걸음을 달아난 이가 백 걸음을 도망친 사람을 보고 비웃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의로 나라를 세웠기에 남의 땅과 백성을 탐하지 않으며, 굳이 정치에 간여하지도 않는다.” 황준헌이 한 미국에 대한 찬사는 조미조약 제1조에 거중조정(居中調停) 조항이 들어가면서 우리 위정자들에게 사실로 믿겨졌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 비해 고율인 10~30%의 협정관세율도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부당한 간섭이나 침략에 대한 중재를 규정한 거중조정은 외교적 꾸밈말에 지나지 않았으며, 고율관세도 최혜국대우조관으로 인해 명목에 지나지 않았다. 한·미 FTA 비준의 핵심쟁점인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찬반논쟁이 거리로 확산되고 있는 오늘. 훗날 사가(史家)들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기록할지 두렵다. 여야 모두 한 세기 전 아프디아픈 실패의 역사를 곱씹어 교훈과 지혜를 찾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