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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변화와 기회에 대하여

우면산의 여름 35 : 죽음의 고속도로, 타이어 펑크, 저승사자와 천사

 

 

 

우면산의 여름 35 : 죽음의 고속도로, 타이어 펑크, 저승사자와 천사

 

                                                 대전을 내려가며, 경부고속도로 전경

 

 

지난주에는 아들 문제로 대전을 다녀 왔다. 장거리를 잘 다니지 않는 편이라 차량을 점검하였으나 별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오일과 연료를 점검하고 타이어도 점검했지만 엔진은 그런대로 아직도 생생한 편이다. 방심 탓일까?   오만과 타성, 방심으로 장거리를 가다가 저승사자가 나를 만나려 왔다가 그냥 갔다.

 

짝쿵과 강아지 두 마리를 같이 싣고 얼음물을 챙기고 샌드위치도 만들고 목줄도 챙긴 다음 오후에 출발했다. 저녁 식사 약속이 되어 있고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게릴라성 소나기가 내리다가 그치고를 반복하였고 차량은 이상없이 잘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속도를 100킬로 이하로 줄여 천천히 달렸다. 오빠와 형을 만나로 가는 길이라 강아지들도 눈치를 챘는지 흥분하여 밖을 구경하며 설치다가 나중에는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여행을 즐기고 있는 듯 하였다.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강아지들 대.소변을 보게 하였으나 긴장한 탓인지 보지를 않았다. 샌드위치를 주었으나 큰 눔은 받아 먹었지만 작은 눔은 먹지를 않았다. 작은 눔이 겁이 많고 많이 긴장한 탓인 모양이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였다.

 

오랫만에 달려보는 고속도로였고 기분도 좋았다. 짝쿵은 아들 보려 간다는 사실에 그냥 즐거운 모양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남편보다 자식이 더 소중하고 둘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라면 아마 아들을 대부분 선택할 것이다. 역사를 보아도 어머니들이 남편을 포기하더라도 자식은 포기하지 않았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사례가 무수히 많다. 한 고조의 여태후, 당의 측천무후, 고려의 천추태후, 청나라의 서태후, 조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등을 들 수 있겠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들집을 찿아가는 데 대전 지리가 어두워 몇 바퀴 돌았다. 강아지들이 아들을 보자 반가워 난리를 쳤다. 집에 도착하여 옷을 갈아입고 약속 장소인 유성으로 향했다. 아들은 걱정이 되는 지 가는 도중  통 말이 없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여자 친구 부모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좀 성질이 고약하여 무슨 말을 할 지 모른다며 속 상하더리도 참으시라며 나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등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도 미리 이야기를 듣고 대전 내려오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나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여자 아버지가 기가 세다면, 기가 센 사람은 초반에 더 센 기로 눌리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서로 만나서 식사를 시작하고 날씨 이야기와 장마 이야기로 분위기를 잡으며 탐색전을 펴다가 내가 먼저 돌파구를 열었다. 그래서 결국 이야기는 예상대로 잘 되었고 상호 양보를 하면서 긍정적으로 상호합의에 도달하였다. 강하면서도 솔직하게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저들끼리 좋다니 어쩔 것이냐, 빨리 날짜를 잡는 게 어떠시냐, 서로 어려운 처지인 만큼 욕심내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하자, 귀한 딸을 참 잘 키우셨다, 어리고 철이 없어 보이지만 이미 성인이 아니냐, 그래서 이것 저것 서로 따지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서로가 인연인 모양이데 빨리 결혼시켰으면 좋겠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는  등  칭찬과 타협, 주장을 내세우며 이야기 하다보니 상대도 긍정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결론을 냈다.

 

아까운 아들을 그런 집안에 보내는 게 내심 기분이 찜찜하지만 서로가 좋다니 난 반대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 결혼시 나 자신도 상대를 스스로 결정하였고 그래서 부모님께 실망을 주었지만 오늘날까지 살아온 게 아닌가! 아무리 골라봐야 소용없고, 기대만큼 실망이 크고, 알고보면 허당이요, 바꿔봐야 오십보 백보이다. 인연이 생겨 눈에 콩깍지가 씌었을 때 후다닥 해치우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쥐꼬리 같은 자존심, 알랑한 재산, 간판 학벌, 뜯어고친 얼굴, 가식 속에 숨어 있는 사악함과 탐욕을 감추고 상대하기 때문에 내심은 아무도 모른다. 이조 말 흥선이 민비를 간택할 때 외척의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고민하고 생각하여 고르고 골랐지만, 결국 민비를 선택했다. 그러나 민비가 자신의 운명을 뒤흔들며 결국 나라까지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줄 꿈에나 생각했던가! 

 

 

                                                   우리 동네 골목길

 

홀까분한 마음으로 아들 집으로 돌아와서 커피 한 잔하고 짐을 챙기고 강아지를 대리고 서울로 출발했다.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대전 톨게이트에서 하이패스 출구로 잘못 들어가서 경고음이 울렸다. 톨게이트 직원이 나오더니 그냥 가란다. 목적지에서 계산하면 된다나? 암튼 모처럼 장거리 이동하면서 하이패스도 없고 네비도 없는 고물차를 몰고 갖가지 어려움에 봉착하였고, 시대에 뒤처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후회는 없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고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오다 청원을 지나 중부고속도로 갈림길을 막 지나서 달리던 중이었다. 차량들이 총알처럼 옆을 스치고 지나가고 도로는 구름낀 날씨라 칠흑처럼 어두웠다. 그런데 갑자기 '퍼버벅'하더니, '쿠쿠쿵'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리면서 차량이 약간 요동쳤다. 속도는 80킬로 정도였는데, 뒷차가 깜박이를 연신 켜댔다. 알고보니 내 차에 이상이 있는 것을 알고 옆으로 대려는데, 우측 차선 화물차들이 달리면서 비상등을 켜고 라이트를 깜박거렸다. 당황한 가운데 깜빡이를 켜고 서서히 우측 차선으로 이동하여 겨우 노견에 차를 대고 나가보니 뒷 바퀴가 완전히 파스가 나 있었다.

 

'헉 이럴수가!' 갑자기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펑커가 났으니 긴장되고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노견도 좁았고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들이 겁이 났다. 우선 비상등을 켜고 드렁크를 열고 고장표시판을 꺼내 뒷쪽 약 50미터 정도 후방에 세우고 짝쿵보고 손을 흔들어 뒤에서 오는 차량들이 천천히 지나가도록 했다. 드렁크에는 다행히 바람이 들어 있는  예비 타이어가 있었고 작키를 꺼내 작동하려 하였으니 후라쉬도 없었고 당황하여 작키를 받칠 곳을 찿지 못해 제대로 잘 되지 않았다. 또 좁은 노견이 몹시 불안하였다. 뒤에 세운 고장표시판도 오물이 묻어 반사판이 잘 보이지도 않는 상태라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빨리 타이어를 교체해야하므로 한참 타이어 교체를 위해 씨름하고 있는 중에 뒤에 고속도로 순찰차가 비상라이트를 켜고 나타났다. 경찰이 다가와서 하는 말이, "오면서 보니 내 차가 비상등도 보이지 않고 고장표시판도 잘 보이지 않는다"며 "아저씨 이러다가 큰 사고난다'면서 경찰이 야단을 쳤다. 경찰 순찰차가 뒷쪽에서 비상등을 켜 주었고 경찰의 도움으로 겨우 작키를 지지하고 타이어 볼트를 풀려하였으나 영 풀리지가 않았다. 너무 오랫만에 타이어 교체 작업이었고 어두운 고속도로에서라 당황하기만 하였다. 경찰에 이어 내가 또 볼트를 풀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볼트는 풀리지 않았다. 차를 자주 타는 편도 아니었고 그냥 오래 세워둔 차량이라 녹이 서려 볼트가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할 수 없이 보험사에 긴급 구조 요청을 했다. 보험사는 ARS로 신분과 차량을 확인 후 위치추적을 요구했고 난 1번을 눌러 허락했다. 그러자 이어 상담원이 나왔고 나는 현재의 위치와 상황을 말했다. 나의 말은 급했고 보험사 고객센터 직원은 너무나 태평했다. 위치 감각도 없고 말귀를 잘 알아 듣지를 못했다. 난 목이 타고 갈증이 생겼다. 얼음물을 마시고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결국 상담 직원은 곧바로 구난차를 수배하여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고장난 위치가 대전과 청원 경계선 근방이라 업체가 서로 미루는 등 애를 먹이더니 나중에야 결국 대전 업체가 출동한다고 연락이 왔다. 20~30분이 지나야 도착할 거란다.

 

'그래, 빨리 좀 오너라, 이눔들아! ' 우리는 경찰과 같이 노견 한쪽에서 구난차를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도로공사 순찰차가 나타나고 그동안 안전을 지켜주던 고마운 경찰과 순찰차는 다음 임무 수행을 위해 가야 한다며 현장을 떠났다. 난 그들에게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도로공사 차량이 경찰 순찰차에 이어 내 차 뒷 편에서 안전 비상등을 계속 켜 주었고 구난 차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도로공사 직원들은 구난차 업체 직원과 다시 통화하여 내 차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우리들이 너무나 위험하니 노견 밖으나 나가 풀밭에 있으라 하였다. 내 눈에는 순찰차와 순경, 도로공사 직원들은 천사처럼 보였고 무섭게 달리며 지나가는 화물차들이 모두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과속으로 달리거나 졸거나, 술취한 회물차 운전사가 있다면, 그리고 내 차를 보지 못하고 달려온다면 난 여지없이 황천길로 갈지도 모른다. 인간의 목숨은 파리목숨이 아닌가!

 

한참을 지나자 구난차가 나타났다. 난 무척 반가웠다. 구난차가 나타나자 도로공사 직원들이 떠나면서 안전표시판을 세워두고 간다며 떠날 때 도로 노견 옆으로 치워달라고 했다. 난 감사하다며 그들을 떠나 보내고 구난차 젊은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구난차에는 타이어 교체 공압장비가 있어 바퀴 볼트는 시도끝에 비교적 쉽게 풀렸다. 왜 비상공구로 볼트가 풀리지 않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공압장비로 바짝 조여 두었기 때문에 잘 풀리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 이동중에는 바퀴를 교체 할 수가 없단 말인가? 그러나 난 작업에 방해가 될까봐 더이상 묻지 않고 타이어 교체를 도왔다. 타이어 바람도 보충하고 5분만에 끝났다. 난 마음 속으로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며 안전표시판을 치우고 구난차를 보내고 바로 뒤따라 출발했다.

 

 

올라오면서 짝쿵도 놀랐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고 나도 불안감과 놀람에 아무런 말을 못했다. 속도를 천천히 하여 이동하였다. 집에 도착할 동안 또 펑커가 날 것같아 조마조마 하였으나 다행히 무시히 도착했다. 내일 정비공장에 갈 작정을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나를 찿아왔던 저승사자들을 전송했다.

 

지면을 빌어 나를 찿아온 저승사자를 물리쳐 준 지난 8월 3일 수요일밤 11시-12시 사이 경부고속도로상에서 그날 나를 도와주었던 고속도로 순찰대 경찰관과 도로공사 순찰대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를 대비하여 오래된 타이어를 전부 신품으로 교체(개당 8~10만원씩)하고 안전/고장표시판, 비상용 후라쉬/표시등, 볼트 풀림 공구 등도 반드시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근방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정비공장 아저씨에게 그날 펑크난 이야기 했더니 오래 세워둔 차량은 장거리 이동시는 매우 위험하다며 앞으로는 반드시 사전 점검을 받고 사전 운행을 해야한다고 했다. 정비공장에는 지난 폭우로 물에 잠긴 차량이 여러대 바쁘게 정비 중이라 시간 여유가 생기면 연락주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