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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변화와 기회에 대하여

삼복더위 같은 현실, 그리고 보신탕...

 

삼복더위 같은 현실, 그리고 보신탕...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연일 32-35도를 웃도는 기온에다 후덥지근한 슴도까지 더하여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는 열대야로 잠을 설치기가 대부분이다. 수백만 피서객들이 동해로 서해로 달려가 즐거운 피서를 보내고 있지만 아프팔트 열기가 푹푹찌는 서울에서 여름나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타고 내일이 보장된 미래가 보이는 것도 아니오 뉴스마다 터저나오는 저질스런 정치이야기는 더위에 더욱 짜증스런 세상이다.

 

하루살이 군무

올해는 여름 곤충의 출현이 늦다. 매미는 이제야 울기 시작하고 모기도 예년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마도 늦여름 모기의 대대적인 공습이 있을 것이다. 불 속으로 돌진하는 하루살이의 어지러운 군무도 아직은 미미하다. 원인은 지난 봄날이 너무 추워서 곤충들의 변태(變態)가 늦어졌기 때문이란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곤충의 변태는 생각할수록 참으로 신비롭다. 알에서 유충으로, 다시 번데기에서 성체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생명의 외경’ 그 자체이다. 매미의 유충은 짧게는 7년, 길게는 17년 동안 땅 속에 있단다. 우리 도시에 여름마다 매미가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것은 도시에 아직 희망이 있음이다. 매미들 울음은 가로수를 더욱 푸르게 하고 우리네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소음 때문에 차들의 경적보다 더 날카롭게 울어야만 짝을 부를 수 있음이 안쓰럽다.

하루살이의 일생은 더욱 치열하여 눈물겹다. 하루살이는 호수 밑에서 그날을 기다린다. 알이 성충이 될 때까지는 대략 천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허물을 25번이나 벗는다고 하니, 수많은 변신을 해야만 단 하루를 얻을 수 있다. 천일 동안 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하루에 할 일을 점검할 것이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단 하루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루살이가 천일 동안 하루를 준비한다면 지상의 하루는 생의 마지막 불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살이에게는 입이 없단다. 하기야 하루를 보내는데 먹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날기만 한다니 하루살이의 어지러운 비상(飛翔)을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루살이는 그렇게 정신없이,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지도 모른다. 하루살이는 하루 동안 종족을 번식시키는 등 물속에서 계획한 모든 일을 해치워야 한다. 불만 보면 뛰어드는 하루살이, 그것은 물속에서 태어나 불 속에 생을 태우는 ‘가장 극적인 죽음’인지도 모른다.

물속에서 천일, 지상에서 하루. 하루살이와 천년을 사는 은행나무, 어느 삶이 더 치열한 것인가. 긴 것이 무엇이고 짧은 것이 무엇인가. 하찮은 것이 무엇이고 또 귀한 것이 무엇인가. 한여름밤 하루살이의 군무, 참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제주도 해군 기지가 다시 제주도와 의회의 반발에 부딪힌 모양이다. 모든 법적인 절차를 밟아 추진하여 왔지만 민선 지자체장들이 공약을 이유로 다시 발목을 잡고 있다.

 

 

 

 

제주도 해군기지 제동

제주도와 도의회가 서귀포 강정마을에 들어설 예정인 해군기지 건설 관련 공사를 모두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민 갈등을 유발하고 정책 결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다.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합법적 절차를 이미 거쳤고, 부지 매입과 보상도 절반 이상 진행된 상태다. 그런데 새삼 딴죽을 거는 속내가 궁금하다. 보상에 불만을 품은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의 논리에 도와 의회가 휘둘려 건설을 방해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했다는 제주도와 의회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사실과도 다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제주도민 400여 명이 해군기지 설립 계획을 취소하라며 국방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계획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해군이 최초 사업계획 승인 후 환경영향평가를 했고, 제주도와의 협의 및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 의견을 보완하는 과정을 밟아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작년에는 도내 일부 시민단체들이 주동이 돼 사업 추진에 앞장섰던 김태환 당시 지사를 상대로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했으나 도민 90%가 투표에 응하지 않아 성립되지 못했다. 도민 대다수는 관광복합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그런데도 도지사가 바뀌자 곧바로 기지건설 반대운동을 펼치는 것은 도민의 의지에 역행하는 처사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다. 1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 이지스함을 비롯한 군함 20여 척과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계류시설, 함상공원 등이 들어선다. 군사기지를 겸한 관광항구로 개발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인구 유입과 관광수요 증진 등으로 연간 1000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예상되는 알짜 사업이다. 오히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지자체가 유치에 발벗고 나서고 건설에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해야 할 판에 뚜렷한 명분도 없이 반대하는 것은 차려준 밥상을 제발로 걷어차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무엇보다 사실상 해양국가인 대한민국 최남단에 해군기지가 없다는 자체가 국가안보 측면에서 어불성설이다. 제주 발전을 위해서도,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제주도와 의회는 중단 요청을 철회하고 기지 건설에 협조하기 바란다.

 

 

 

 

 

 

 

반대를 위한 반대

현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사업이 성공하면 야권은 정권탈환의 기회가 상실된다.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대부분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도 지자체장들이 반대하자 국토부에서 계속 공사 여부를 선택하도록 공문을 보낸 모양이다. 죽은 강을 살리자는 목적인데 환경을 핑계로 반대하는 부류들은 과거 경부고속도로 착공시 반대하던 김대중.김영삼 등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정책에 반대하였지 원칙적인 목적에는 반대한게 아니다는 것이다. 보 설치와 대규모 준설은 반대하지만 기타 위임된 공사는 검토 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겟다는 것이다. 그토록 반대하던 집단들은 이제는 말을 바꾸며 화살을 피해가려 하고 있다. 썩은 물이 흘러 물고기도 살지 못하는 강을 살리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한강의 기적을 알고 있는가? 한강 고수부지 설치 계획을 발표했을 때 그토록 반대하던 인간들은 다 어디갔는가? 한강변 고수부지 자전거 전용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동쪽 끝 하남에서 행주대교까지 달려보라!  반대를 위한 반대, 여기에 무리수가 늘어 힘을 길러온 종교단체까지 가세하여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목사가 목사가 아니오 스님이 스님이 아니다. 혹세무민하는 이야기로 설교와 설법을 통해 순진한 신도들을 선동하고 자신이 미치 정의의 사도처럼 위세를 부리고 있다. 모여든 중생들은 짧은 지식과 식견에 그들의 선동에 동조하면 그들은 마치 이 세상의 불의를 척결하려는 선구자 같은 언행으로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스스로 자기 최면에 빠져 교주가 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교세와 재산을 쟁탈하기 위해 서로 몽둥이 싸움을 벌이며 탈세.사기는 물론 부인을 죽이고 신도들을 농락하거나 자신이 마치 만병을 낫게 하는 교주처럼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자신이 예수나 부처가 환생한 것처럼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모습이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반군 두목 홍수전이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그리스도 국가를 건설하려던 태평천국군도 결국에는 권력다툼으로 분해되어 태평천국군의 본거지인 남경이 최후에 관군에 점령되었을 때 홍수전의 처첩들이 수도 없이 연못에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종교집단들이 헌금과 시주돈으로 호의호식하며 그들의 성전을 높이 세우고 그들의 교세를 확장하여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는 자체가 망상이며 썩은 종교집단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사회봉사활동이나 병원.양로원.고아원 등을 설립하여 이 사회의 음지를 밝게 만드려는 시도는 인정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사업에 비해 대부분은 탐욕과 욕심이 넘처나고 기름진 얼굴과 교활한 눈빛을 가진 자들로 뒷구멍으로  부동산 투기를 벌이며 밤에는 룸 살롱을 찿아 향략을 즐기는 위선에 가득찬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돈이 넘처나고 교세가 신장되니 이제는 정치에 뛰어들어 간섭하려는 이익집단으로 변하고 있다. 평양가서 남한 정부를 비난하는 목사는 목사인가, 혁명투사인가, 아니면 정신병자인가?

 

정치란 모두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복리를 위하고 국가 미래를 위한 명확한 목표가 있고 통치자의 확고한 신념과 이상이 있다면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너무나 우유부단하고 줏대가 없는 모습이다. 정치권 주변의 기생충들이 벌이는 권력 남용과 법규와 절차의 오류는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글로 말로 행동으로 현실정치를 비난하는 모든 사람들 마찬가지 그들이 권력을 잡는 등 위치가 바뀐다면 똑같은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일 뿐이다.

 

 

 

 

상생은 무슨 얼어죽을 상생...

며칠 전 재계로부터 이례적인 현 정부 비판이 나왔다. 어찌 보면 이 회장의 북경발언보다 내용이 더 자극적이다. 전경련의 제주 하계포럼 개회사를 통해서다. 최종적으로 삭제되긴 했지만 언론에 애초 배포된 개회사 초안엔 더 심한 표현이 들어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리더들이 장차 국가가 어떻게 나가야 될지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와 정부도 갈팡질팡한다.' 관행화되다시피한 원고 사전 배포는 실제 발언과 다름없는 게 상례다. 발언 시점도 묘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부처 장관, 한나라당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취지의 압박을 잇따라 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전경련의 개회사 파문을 전후해 정부가 중소기업의 '수호천사'를 자처하고 나서고 있어 이채롭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부처 장관들이 줄줄이 채찍을 드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낯설다. 올 초 중소기업들이 원자재값 급등을 못이겨 납품단가 현실화를 요구하며 어려움을 호소할 때는 뒷짐만 지더니 "수십 조 원의 현금을 쌓아놓았으면서 어음으로 대금 결제를 하는 행위는 욕심이 아닌 탐욕"이라고 다그친다. 혼란스럽고 헷갈린다. 전후사정이 어찌됐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국가적 어젠다가 된 것은 다행스럽다. 납품단가와 대금지급을 둘러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갑을(甲乙)'거래는 해묵은 난제이자 고질병이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수백 번도 더 나왔던 얘기고 대책도 부지기수다. 중요한 것은 말보다 의지며 더 중요한 것은 제도적 뒷받침과 일관된 정책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요? 당장은 좋죠. 그러나 박수칠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1~2년 뒤에 한번 보십시오. 어찌 되어 있는지." 한 중소기업가의 이야기는 얼마 동안은 관심사가 되겠지만 이내 '중소기업이 어려운 게 어제오늘 일이냐'는 식으로 흘러갈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과연 정부가 "앞으로도 두고 보십시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대기업들은 협력업체 지원을 늘리겠다며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전방위 압박 뒤에 오는 시늉 같아서 미덥지 못하다. 상생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골목상권까지 차지하려는 대기업의 SSM(기업형 슈퍼) 기습 개점은 계속되고 있다. 중소상인들의 냉소적인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상생은 무슨 얼어 죽을 상생."

 

 

여름이 여름다워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구의 기상변화로 시기와 기간이 변동되고 온도가 달라지면 지구상의 동식물의 생태계 변화도 무시못할 것이다. 초여름 이상 저온으로 금년에는 모기가 적다고 하지만 새벽 우면산 등산시에는 이동간에는 달려들지 않으나 운동기구앞에서 몇 초간만 서 있으면 산중의 모기는 금방 달려든다. 모처럼 다가온 성찬을 모기들이 방치할리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자체 재정자립도 부실

 

민선 5기 지방자치단체장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지방재정 부실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채무가 급증하고 있는 까닭이다.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예산의 조기 집행과 과감한 적자예산 편성으로 지난해 말 기준 지방채 잔액은 25조6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자체 규모별로 보면 광역시도의 빚이 불어났다. 광역시도의 경우 지방채 잔액이 97년 8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17조7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에 비해 시군구는 같은 기간 6조5000억원에서 7조8000억원으로 20%가 증가했다.

 

빚이 늘면서 재정자립도는 하락했다. 재정자립도{[(지방세 수입+세외 수입)/일반회계예산]×100}는 95년 63.5%에서 계속 하락해 올해에는 52.2%로 떨어졌다. 재정자립도가 50% 미만인 지자체가 211곳으로 전체의 85.8%에 달한다. 특히 군 지역의 재정자립도는 18%로 지방자치의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열악하다. 도, 자치구, 시의 재정자립도 역시 각각 32%, 35%, 40%에 불과한 실정이다. 자립도가 워낙 낮다 보니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급여도 지급하기 어려운 지자체가 많다.

 

지방세와 세외 수입으로 구성되는 자체 수입으로 해당 공무원의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40곳으로 전체의 16%에 해당한다. 이 역시 98년 38곳(20%)에서 2000년 28곳(11%)으로 감소한 후 다시 증가한 것이다. 군 지역은 86개 가운데 3분의 1인 27개가 이에 포함돼 군 지역의 재정 상태 악화가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채무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지방채무잔액지수(지방채무 순현재액/일반재원결산액×100)가 30%를 넘는 곳도 16개나 된다. 자칫하면 지방재정이 부도날 가능성이 큰 지역들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지방재정이 왜 이처럼 악화된 것일까? 첫째는 국내 지자체는 ‘2할 자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세 대비 지방세 비중은 21%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40%가 넘는다. 게다가 경기 변동 등에 따라 세입 변화가 별로 없는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와 같은 비탄력적 재산 과세 비중이 46.2%로 높고, 보다 탄력적인 소득과 소비 과세 비중은 각각 16.7%, 19.5%에 불과하다.

 

두 번째 원인은 복지비와 같은 경직적 지출이 늘고 있는 점이다. 자자체 재정 지출을 기능별로 보면 90년대 초반에는 산업·중소기업 등 경제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았으나, 현재는 사회복지·환경보호·보건 등 복지성 지출 비중이 가장 높다.

 

셋째는 지방채 관리가 허술한 점이다. 지방채 발행 한도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예외가 많아 지난해 지방채 발행액은 전년 대비 161.7% 증가했다. 지자체의 계속 사업이나 주민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인 경우 한도 초과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입 예산 중 지방채 비중은 2008년 2.6%에서 지난해 6.2%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 실시 이후 행사와 축제성 경비 그리고 민간 사회단체에 대한 지원과 같은 선심성 예산 증가도 재정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 민선 시장이 선호하는 축제, 전시박람회, 체육대회 관련 경비의 세출 결산 대비 비율이 2004년 0.48%에서 2008년 0.61%로 증가했다. 각종 사회단체에 지급하는 민간이전경비 비율도 같은 기간에 3.12%에서 5.13%로 늘었다. 지방자치 이후 문화관광부에 등록한 지역 축제만도 2001년 591건에서 2008년 926건으로 57%나 증가했다. 지방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지출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고, 기업 투자와 관광 유치를 통해 재원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정력이 뭐길레...

장대비와 땡볕이 반복되고 있다. 더우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뭘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예부터 조상들은 복날에 보양식을 먹으며 체력을 보강하느라 애썼다. 그 결과 동물들이 수난을 당했다. 요즘도 복날이라면 뭐라도 한 사발 흐뭇하게 먹어야지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병아리, 강아지, 장어, 오리 등. 그 외에도 개, 물개, 곰, 뱀, 사슴, 자라, 개구리 등등 기운을 나게 해주는 동물들이 참 많기도 많다.

 

우리는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늙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자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새치가 하나 둘 눈에 띄고 눈가에 주름도 생기면 ‘어머, 나도 늙나봐’라며 나이 듦을 서글퍼하지만, 남자는 작년 같지 않다고 서러움을 느낄 때가 바로 ‘정력’이 떨어졌을 때다.

 

아내는 뒤늦게 이것을 감지하고 팔랑 귀가 돼 정력에 좋다는 것은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찾아 남편에게 먹여댄다. 자기 남편의 정력을 과시하는 친구나 허풍떠는 사람들이 ‘뭘 먹었더니 확 좋아졌다더라’라는 눈덩이 같은 유언비어에 솔깃해진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검증되지 않은 벌레에도 돈다발을 기꺼이 뿌린다.

 

그런데 정력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이것을 ‘기운’으로만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정력은 한마디로 ‘피’다. 음경에는 수세미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말랑말랑한 해면체가 3개 있다. 성적 자극을 받아 중추신경이 발기 명령을 내리면 해면체가 이완돼 피가 쏠리는데, 이때 음경 정맥에서는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성관계가 끝나면 가득 찼던 피가 샤프심같이 가는 정맥으로 천천히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정 후에도 한참동안 발기 상태가 유지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력은 곧 피의 순환이다. 평소의 7배나 되는 피가 순식간에 해면체로 몰려오는 만큼 혈관이 건강하고 탄력성이 있어야 돌덩이 같은 발기가 유지된다.

 

그렇다면 중년들은 정력을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뭘 먹어서 불끈불끈 기운이 솟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달리기 같은 유산소운동에 매진하는 게 우선이다. 유산소운동을 하면 심장이 강하게 펌프질하면서 혈액순환이 빨라지고 혈관 탄력성이 증가된다. 또 온몸에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성욕도 꿈틀거린다. 이뿐 아니라 달리기를 하면 천연 비아그라로 불리는 산화질소의 분비가 촉진되는데, 이는 해면체 주위 근육을 이완시켜 해면체로 피를 끌어들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과학자들이 정력을 위해 인공 산화질소 개발에 끙끙대며 매달려 있는데,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달리기만 하면 몸속에서 산화질소가 저절로 생성되니 비아그라가 필요 없다. 그 밖에 수영, 골프, 체조, 등산 등도 정력에는 그만이다.

 

보통 정력이 떨어지는 것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하지만 오래도록 자기 몸에 애정을 쏟아왔다면 예외일 수 있다. 죽어라 음주와 흡연을 하고, 기름 질질 흐르는 고기 배터지게 먹으며 방바닥에 엎드려 숨쉬기운동만 한 경우라면 바로 고혈압·동맥경화·당뇨 3종 세트가 다가오면서 정력은 저만치 달아난다. 웬만큼 화끈한 성적 자극에는 끄떡도 안한다. 모처럼 분위기 잡은 결정적 순간에 그놈이 속 썩여 화기애애해야 할 잠자리가 불발되거나, 사정이 잘 안 돼 힘만 쓰고 머쓱해 할 수도 있다. 이런 횟수가 서너 번 반복되다보면 완전히 고개를 팍 숙이게 된다.

 

남편의 정력을 위해 기꺼이 땀방울을 흘리고 싶은 아내는 생각만 해도 실실 웃음이 날 정도로 예쁘다.  

 

 

 

 

 

복날은 간다

충분히 드셨습니까. 네 접니다, 멍멍이. 당신들이 기분 좋을 땐 견공(犬公), 아닐 땐 '개XX'라고 부르는 그놈입니다. 벌써 말복이 코앞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개고기를 (음식으로) 허하라'와 '개고기를 금하라'가 맞서 시끌벅적하더니만 올해도 예외는 아니네요. 버스·지하철에서 이런 문구 보셨죠. '그만 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한 동물보호단체가 초복부터 펼치고 있는 '친구 먹지 말기' 캠페인입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캠페인 따로, 보신탕집 앞 문전성시 따로, 정부 못 본 척하기 따로'가 올여름에도 여전합니다.

아마 역대 정부가 그저 묵묵부답, 가타부타 말 한마디 않고 뭉그적거리는 것 중 첫째가 저희들 문제일 겁니다. 식용개와 보신탕. 키우고 잡고 사고 팔고 먹는 사람 다 있는데, 법만 없습니다. 유령 동물이요 유령 음식인 셈입니다. 저도 지쳤습니다. 제발 무슨 결론이든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더는 무자격자, 무법자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참에 한바탕 하소연이나 늘어놓으렵니다. 맘에 안 들어도 욕은 마십시오. 그저 가는 복날 개소리라고 생각하십시오.

보신탕. 이거 오래됐습니다. 전통과 역사가 만만찮습니다. 선사시대 때까지 거슬러가자는 분도 있지만, 참겠습니다. 식자라면 의당 고증과 문헌을 근거로 말해야 하는 법이니. 중국에선 주나라 때부터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례』에는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요리 중 하나로 개고기가 등장합니다. 『예기』도 보신탕을 종묘에 제사 지낼 때 쓰는 귀한 음식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황제가 먹던 음식, 바로 그겁니다. 항우를 물리친 유방은 개고기 매니어였습니다. 야인시절부터 부하 장수 번쾌의 개고기 요리에 푹 빠졌었는데 황제가 된 후에도 즐겼답니다.

복날 먹는 풍습도 유래가 있습니다. 사마천의『사기』에는 진(秦)나라 덕공 2년에 처음으로 삼복에 개를 잡아 제사를 치렀다고 전합니다. 개고기는 불에 해당하고 복날은 쇠에 해당하니 불로서 쇠를 이기는(火克金) 의식인 셈입니다. 복날의 복(伏)자도 의미심장합니다. 사람(人)과 개(犬)를 합해 만들어졌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려면 누군가 상대를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개가 사람을 먹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다 보니 사람이 개를 먹게 된 것 아닐까요. 참 운명적이랄밖에요.

요즘 복날 개고기 소비가 줄고 있답니다. 대신 삼계탕은 매년 6% 이상씩 판매가 늘고 있답니다. 반겨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그런데 왠지 닭고기와 비교되는 건 자존심 상합니다. 개고기가 더 낫다, 나쁘다 이런 얘긴 않겠습니다. 『동의보감』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각종 효능, 말해봐야 입만 아픕니다. 대신 요즘 식으로 하겠습니다. 개고기는 무엇보다 친환경입니다. 유식한 말로 에코 프렌들리. 웬 친환경이냐고요. 식용 개는 거대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공장입니다. 도사교잡종과 토종, 두 종자 합해서 약 124만 마리가 식용 개로 사육됩니다. 도사교잡종은 하루 평균 2.5kg, 토종은 1kg을 먹습니다. 먹이는 거의 100% 사람이 남긴 음식입니다. 한 해 약 126만t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셈입니다. 개박사로 불리는 안용근 충청대 교수는 “연간 1289억원가량을 절감한다”고 계산했습니다. 닭·오리 따위는 사료를 먹습니다. 친환경은커녕 분뇨를 퍼질러 환경을 해쳐놓기 일쑤죠. 그뿐입니까. 구황 단백질로도 최고입니다. 소·돼지가 걸핏하면 걸리는 구제역, 닭·오리에 있는 조류인플레인자, 개에겐 없습니다.

입 아프게 늘어놨지만 부질없는 자랑입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개고기는 모든 게 무법(無法)입니다. 불법도 아니고 무법. 세상에 푸대접보다 나쁜 게 무대접이라는데, 이젠 제발 아무 대접이든 좀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개고기 안 먹는 세상을 만들든지, 아니면 먹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먹게 만들든지. 이런 어려운 일 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개가 나설 수는 없잖습니까. 하소연은 하지만 기대는 않습니다. 아무 결론 없이 올해도 복날은 갈 겁니다. 또 그렇게.

뱀달이(사족):필자는 개고기를 싫어한다. 먹지도않고 먹어본 적도 없다. 심지어 개고기 먹은 사람과는 말도 하기 싫을정도이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서초동, 사설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