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의 여름 27 : 중국, 역사의 트라우마
비가 내린 후 물이찬 반포천
폭염이 계속되는 지난밤도 잠을 설쳤다. 고속도로로 대도시를 빠져 나가는 차량이 42만대가 넘었다고 하고 인천공항을 빠져 나가는 사람들도 부지기 수다. 해운대는 이미 물반 사람반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이런 더운 날씨에 새벽 자전거 타기에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 요즘은 좀 일찍 일어나 출발한다. 어제 토요일 강남역 근방에는 밤을 새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차량과 오토바이가 즐비하고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와 외제차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젊음의 한 순간일 것이다. 젊은날에는 친구들과 강남도 간다고 하지 않는가! 탈선도 해보고 모험도 해보는게 젊은이들이다.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음식점이나 주점, 통닭을 파는 집 앞에는 인도변에 의자와 탁자를 놓고 생맥주를 마시며 밤을 새며 지낸 친구들과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택시 미터기르 조작하여 요금을 더 받는 가 하면 주유소도 요금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5만원어치를 넣어달라면 4만원 어치를 넣고 결재도 5만우너을 50만원으로 하는 경우도 경험하였다. 물론 금방 돌아와서 다시 취소하고 결재하였지만......특히 휴가철에 피곤한 운전자들이 방심하기 쉬운 경우에는 이러한 속임수를 쓰는 경우가 많다. 조심들 하시길.....
중국에서는 고속열차가 다리 아래로 떨어져 많은 사상자가 났으며 노르위이에서는 기독교 원리주의자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저지른 폭탄 테러로 인해 9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평화의 나라가 통곡의 나라로 변했다.
명품이 무엇인지... 년간 5조원 가까운 매출 규모를 보이는 명품 시장은 대기업을 포함 너도나도 명품 점포를 열고 여중생. 직장여성, 신부들까지 명품에 목말라하고 있다. 물론 유행을 들타고 오래 사용이 가능하며 모나지 않는 디자인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명품을 찿는 겨웅가 더 많다고 한다. 명품 점포 앞에는 노숙자 금식소 같은 긴 줄이 서있다. 난 아무리 명품을 들고 다녀도 내 눈에는 그냥 보통으로 보일 뿐이다. 명품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만큼 명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고 겉치장과 가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일게다. 수십 만원 하는 명품 가방을 들고 옷을 입고 앞에 서 있어도 그것이 명품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명품을 좋아하는사람들이나 가게 사장들이 제일 기분나쁠 것이다.
반포천옆 자전가 전용도로가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한반도에 역사적으로 항상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주변국들이 강대국으로 부상할 때마다 한반도는 그들의 각축장이 되어 수난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임진왜란, 조선말기, 2차대전 후 한국전쟁......그 때마다 한반도는 새로이 등장한 강대국에 시달렸고 결국 그들의 지배를 받아온 나라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백성들이포로로 잡혀 갔다. 부녀자들은 성노리개로 끌려갔고 돌아온 그녀들은 환향녀로 가족과 남편에게 버림맏고 남은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다. 문화재는 물론이요 이 땅에 나는 것이라고는 모조리 걷어간 그들이었다. 현재는 강대국이 설호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잇지만 어느 쪽이 무너지는 때는 또 다시 한반도는 회오리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제 중국이 일본을 앞지르고 미국을 추월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힘이 한반도에서 물러나는 때는 한반도는 다시 한 번 격동을 시간을 격어야 할지 모른다.
이러한 역사의 질곡을 게속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로부터 자유롭게 중계자 입장에서 자리메김 할 것인지는 우리들에게 달렸을 것이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또 다시 불행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물이 빠진 후 반포천 모습
중국, 역사의 트라우마
“천빙더(陳炳德·진병덕) 중국군 총참모장이 우리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10여 분간 미국을 비난하는 외교적 결례를 했다지요. 저는 그 뉴스를 듣고, 역사학자로서 1618년 후금의 누르하치(청 태조)가 명(明)에 선전포고를 할 무렵 조선에 보낸 편지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강의였다. 나는 지난 18일 저녁 역사전문 출판사 '푸른역사'의 부설기관 '푸른역사 아카데미'가 마련한 역사 특강 첫 시간에 참석했다. 미리 예고된 주제('G2 시대에 다시 읽는 조선시대의 국제관계')와 강사(한명기 명지대 교수) 이름을 보고 강의에 탐을 냈다. 적지 않은 참가료까지 지불했기에 모두 4번의 강의에서 꼭 본전(?)을 뽑으리라 작심하고 있었다.
후금은 1618년 명나라에 대한 선전포고를 전후해 조선을 '너'라고 호칭하는 국서를 보내는가 하면 명과의 전쟁에 조선은 끼지 말라고 종용한다. 조선은 난처한 와중에 그나마 광해군의 현명한 실리외교로 버틴다. 그러나 인조대에 들어 힘도 없는 주제에 후금을 거스르다 정묘호란(1627년)을 당하고, 이어 병자호란(1636년)이라는 훨씬 참혹한 재앙을 맞는다. 인조는 한겨울에 남한산성을 나와 청의 홍타이지에게 큰절 세 번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 한바탕 승자들의 파티가 끝나고 홍타이지가 갖옷을 선물로 내리자 인조는 다시 “감사합니다”라며 두 번 무릎 꿇고 여섯 번 머리를 조아린다(삼전도 굴욕). 왕이 이럴 정도니 일반 백성의 참상은 말할 것도 없다. 청에 끌려간 포로만도 최대 50만 명. 도망치다 잡혀 발꿈치를 잘린 포로도 부지기수였다. 청에 끌려가 성(性)노리개로 전락한 조선 여인들은 만주인 본처로부터 끓는 물 세례까지 받았다. 어렵게 고국에 돌아와서는 '화냥년(還鄕女)'이라는 욕설의 원조가 되어야 했다. 그 이전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군대의 행패는 또 어땠던가. 백성들은 명군의 가혹한 수탈을 빗대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고 했다.
한명기 교수는 “새로운 강국이 기존 패권국에 도전할 때 한반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위기가 닥쳐왔다”고 분석했다. 중국 대륙의 원·명 교체기, 16세기 일본의 굴기(<5D1B>起), 명·청 교체기, 근대의 청·일 국력 역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왜란·호란에서 국망(國亡)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비극은 모두 기존 패권국과 신흥강국 사이에서 '관계'에 실패할 때 찾아왔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에 '맞짱'을 뜨기 시작한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행운 덕분에 우리가 못 겪어서 그렇지 조상들에게는 중국발(發) 수모가 거의 일상적이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오만과 무례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중국 사신을 황감하게 맞이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 게 불과 115년 전이다.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온갖 위세를 부린 것도 그즈음이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시대의 임진왜란 참전을 '항왜원조(抗倭援朝)'라고 부른다. 419년 뒤에 일어난 6·25 전쟁 참전은 '항미원조(抗美援朝)'다. 당연한 일이지만, 철저하게 자국 위주로 역사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아예 나라를 통째로 빼앗아간 일본에 대한 강렬한 반감과 냉전 시기 죽(竹)의 장막 탓에 중국이라는 수퍼파워를 그나마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제 그런 예외적인 시대는 끝이 났다. 중국·미국 사이에서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조상들의 비극이 형태를 달리해 찾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느 쪽이든 미국만을 상수(常數)로 삼아 국가 진로를 모색하던 시대는 저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천빙더 총참모장이 김관진 장관에게 보인 '결례'는 앞으로 결례 축에도 들지 않을지 모른다. 한명기 교수도 강의를 마무리하며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우리는 상당히 골치 아픈 시간들을 앞두고 있다고 봅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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