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의 가을 36 : 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6
무기 개발·관리의 선진화
“리베이트만 없애도 탱크 같은 무기 도입 비용의 20%를 줄일 수 있다.”(2009년 7월 정부 예산안 보고 자리)
“무기 구입과 조달, 병무 업무는 근원적으로 비리가 생길 틈이 있다. 획기적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2009년 12월8일 국무회의)
이명박 대통령이 무기체계 리베이트를 공식 거론해 파문을 낳았다. 무기 구매의 투명성을 국방개혁의 주요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그 후 검찰이 대대적으로 방산업체 리베이트 수사에 나섰고, 정부는 지금까지 1년여간 무기체계 획득과 개발을 둘러싼 비리 고리를 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기체계 관련 비리가 안보강국으로 가는 데 최대 걸림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무기는 비리 온상’ 낙인 떼야
1970년대 이후 군의 전력 증강은 대부분 외국산 무기 구매로 이뤄졌다. 우리의 무기 개발 경험이 일천한 탓이다. 여기에다 미래의 불특정 위협까지 고려한 첨단 신무기 도입 일변도의 국방정책을 고수하면서 무기 도입은 각 군 참모총장의 보여주기 식 힘겨루기 양상으로 흘렀고, 각 군과 국방부·합참 간에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 결과 군은 야전(병사)과 무기 도입이 따로 노는 기형이 됐다. 기존 무기의 성능 개량을 통해 운용성을 제고하는 노력은 없이 오직 ‘첨단무기’만을 고집하는 전력 증강이 관행화됐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리베이트가 오갔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들의 뇌리에는 무기는 비리의 온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혔다.
이제 우리나라는 여러 무기체계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쳐 국방기술 수준이 세계 11위권에 올라섰다. 최근 T-50 고등훈련기의 인도네시아 수출 성사로 분위기는 더욱 고무됐다. 하지만 고성능 전투기와 잠수함, 위성 감시정찰체계 등 첨단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많은 돈을 들여 외국의 첨단 무기체계나 기술을 사와야 한다는 얘기다. 무기 도입을 둘러싼 리베이트 소문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비리가 드러났거나 검찰 등의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은 수십 건에 이르고 부당이득은 500억원을 넘는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율곡사업 비리 수사 이후 최대 규모다.
무기 도입 리베이트를 근절하려는 정부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방위사업청은 무기 거래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리는 리베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의원입법으로 발의했던 ‘원가부정방지법’에서 리베이트 금지 조항을 최근 삭제했다. 해외에서 도입하는 무기가 많은 상황에서 법에 따라 일일이 중개수수료를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자유경쟁을 제한해 업체 간 담합을 조장할 우려가 크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적에 국회가 동조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정부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무기체계 개발 과감히 민간에 이양해야
21세기 미래전은 군사력의 양적 확대보다는 첨단기술 위주의 질적 능력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첨단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기체계 연구개발은 1970년대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장기적인 국방획득정책 부재와 주요 무기체계의 해외구매 의존심화로 기술력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정보기술(IT) 발전 등으로 민간 기술력이 급속도로 진보한 반면, 무기체계 개발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ADD 몫으로 남았다. 민간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는 과감히 민간으로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설계 등의 잘못으로 한순간에 명품무기에서 불량무기로 추락한 K계열 무기체계를 개혁하려면 ADD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결국 지난 4월15일 국방부와 지식경제부, 방위사업청, 미래기획위원회는 청와대에서 회의를 갖고 ADD가 주관하던 6조5000억원 규모의 11개 무기체계 개발사업을 민간에 이양한다고 밝혔다. 당시 노대래 방사청장은 “2012년 이후 시작하는 모든 일반무기 분야는 민간업체가 주관할 것”이라며 “일반 무기개발을 민간에 넘기는 대신 ADD는 스텔스 등의 기초핵심기술과 전략무기 개발에 전념토록 개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무기체계 개발·관리에 민간기술을 적극 도입하겠다는 의도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개발이 완료되더라도 군에서 소요로 확정된다는 보장이 없고, 해외제품과 품질·가격 면에서 경쟁이 불확실해 민간이 연구개발을 기피하는 분야는 정부가 맡고 나머지 돈이 되는 무기체계 개발은 과감히 민간에 이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술기획’ 없이 좋은 무기 없다
국방기술기획이란 미래전에 대비해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이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획득하느냐는 전략을 수립·제시하는 활동으로 무기체계 개발 및 관리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주요 무기체계를 해외에서 직접 사다 쓰거나 조립생산을 하다보니 무기체계 핵심기술 개발을 위한 체계적 기획 활동은 소홀히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첨단 무기체계의 소요 증대와 선진국의 기술이전 통제가 강화되면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구개발 투자효율을 높여 전문적인 핵심기술을 습득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렵게 된 것이다.
정부도 무기체계 개발에 관한 중장기 계획수립과 체계개발 업체의 연구개발 확대, 고도정밀무기체계와 핵심기술 및 부품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조기전력화를 요구하는 군의 획득시스템과 기술력 부족으로 변화는 더딘 형편이다. 각 군의 이해에 따른 전력 소요 제기와 과도한 성능(ROC) 요구 등도 무기체계 개발·관리의 장애물로 꼽힌다.
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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