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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국방/군의 현실

우면산의 가을 33 : 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3

 

 

 

 

우면산의 가을 33 : 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3

 

강군육성의 요람, 논산훈련소

 

하늘 찌를 듯한 사기…나를 버리고 필승의 전사로 새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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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우린 더 강해져야 합니다.”

지난 20일 오후 논산 육군훈련소 각개전투훈련장. 4주차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훈련병들이 ‘각개’, ‘전투’ 구호를 외치며 훈련장 출발선상에 도열했다. 이윽고 교관의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지자 ‘와’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훈련병들이 고지를 향해 돌진했다. 훈련장 곳곳에서 쏟아지는 포성과 공포탄 소음에 고막은 찢어질 듯했고, 대지에선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훈련병들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국방개혁 상부지휘구조 개편과 관련된 ‘용병’(用兵)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양병’(養兵)의 요람을 찾은 것은 이곳이 바로 강군 육성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야외훈련장 65개소, 건물 531개동에 총면적 628만여㎡.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의 40% 이상이 이 훈련소에서 교육받는다.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이면 ‘논산훈련소’로 더 귀에 익은 곳이다. 1951년 훈련소 개소 이래 지금까지 728만1000여명의 신병을 배출했다. 1년 평균 12만5000여명을 배출해낸 셈인데 올해는 12만3300여명을 양성한다.

올 2월부터 신병교육이 5주에서 8주로 늘었지만 육군훈련소는 5주의 훈련을 담당한다. 나머지 3주는 배치된 자대에서 소화한다. 이곳에선 하루 평균 1만2000여명의 훈련병들이 야전에서 요구하는 전투역량을 키우기 위해 개인화기, 각개전투, 제식훈련, 체력단련 등 모두 17개 과목 290시간의 훈련 일정을 소화해낸다. 하루 실탄 5만여발과 수류탄 600여발이 사용된다. 이들의 식사를 위해 하루 쌀 300가마니에 우유 1만6500개, 돼지 12마리, 닭 827마리, 소 1.7마리, 달걀 1만3200개가 들어간다.

26연대 1교육대장 이상개 소령은 “사회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다가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모든 생활을 통제받다보니 처음에는 훈련병들의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게 사실”이라며 “그러다 5주차가 되면 특별한 통제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자율적으로 생활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대 변천과 더불어 훈련소 풍경도 달라졌다. 훈련병 막사는 대부분 현대식으로 교체됐고 각종 편의시설도 갖춰졌다. 땀에 찌든 훈련복을 세탁하는 동양 최대 세탁공장까지 지어져 1980년대 후반 이곳을 거쳐갔던 기자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훈련병 가족 면회제도도 13년 만에 부활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훈련병 사망 사건으로 훈련소 측은 곤혹스러운 눈치였다.


지난 20일 논산 육군훈련소 유격장에서 훈련병들이 참호격투를 벌인 뒤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육군 제공

훈련소는 훈련의 최대 목표를 ‘전투형’ 군인 양성에 두고 훈련병의 안보관·가치관 교정에 주력하고 있다. 유철상 논산훈련소 정훈공보참모(중령)는 “과거 정신교육이 투철한 군인정신을 가르치는 데 힘을 쏟았다면, 현재는 안보관 정립에 공을 들이고 있다”면서 “아울러 역사교육과 단체생활을 통한 공동체 의식 함양, 부모의 과보호 탈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상당수 훈련병들은 북한이 남침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과거 정부가 정권유지 차원에서 안보를 악용해왔으며, 북한은 같은 민족끼리의 평화공존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전투형 군인을 만들기에 앞서 훈련소가 정신교육에 주력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덕에 훈련병들의 의식은 변화하고 있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겪은 뒤 그 추세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훈련소 측은 전했다.

훈련병들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묻어났다. 중앙대 불문과를 다니다 지난 4월 입대한 박성익(21) 훈련병은 “솔직히 군에 오기 싫었지만 막상 와서 4주차 훈련을 받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다. 그동안 나라를 지킨다는 건 그냥 지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싸우게 된다면 이기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용훈(21·용인대) 훈련병은 “군대가 나무라면 훈련병은 그 뿌리이고, 나무 아래 그늘은 우리 사회라고 생각한다”며 군의 존재 의미를 우회적으로 설명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사업을 하다 28살 늦깎이로 입대한 권용빈 훈련병은 “입대를 미루다보니 두려움이 컸지만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을 겪고 영장을 받아들었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들어와보니 사회와 똑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자진입대해 한국을 배우려는 병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해외 영주권자 입대는 2009년 198명에서 2010년 263명으로 증가했고 올 들어서만 106명이 육군훈련소를 찾았다. 부모 권유에서부터 한국 가요·드라마의 영향, 한국사회 적응 등 입대 동기는 다양했다. 한국 군대를 다녀온 친구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입대했다는 미국 영주권자 김중식(30) 훈련병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분노했다”면서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훈련소 입구인 ‘연무대’를 나서는 동안 김 훈련병의 목소리가 내내 귀에 맴돌았다.

논산=박병진 기자

 

 

예비군 전력화

 

105㎜ 포사격 “와”… 6·25때 쓰던 카빈 “헉”

땀에 젖은 예비역 병사의 목덜미가 6월 땡볕에 번들거렸다. 턱 끝에 매달린 땀방울이 그가 든 구리빛 포탄 위에 떨어졌다. 지난해 포병으로 전역한 이 병사의 근육은 현역 시절 기억 그대로 포탄을 105㎜ 곡사포에 능숙하게 장전했다.

“하나포 포탄 장전 완료!”

“준비!”

“쏴!”

“쾅!” 하는 포성이 지축을 흔들었다. 포탄은 “쉬이익∼” 소리를 내며 하늘을 길게 갈랐다.

“포구 이상무!”

이어 상황실 무전기 건너 울려퍼지는 소리.

“명중했습니다!”

낮기온이 28도를 오르내리던 2일 오후 2시 경기 연천군 60진지 훈련장에서 예비군 포사격 훈련이 벌어졌다. 훈련에 참가한 250명 중 예비군이 170명이었다. 누가 현역이고 누가 예비역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가슴과 철모의 이름표를 눈여겨봐야 했다. 예비군들은 현역과 한 조를 이뤄 사수, 부사수, 포수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5.6㎞ 떨어진 표적지역에 지뢰살포탄(FASCAM)을 명중시켰다. 훈련 시나리오상 남하하던 적 기계화부대와 보병부대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다.

한탄강 강변의 또 다른 예비군 훈련장. 최첨단 마일즈(MILES·다중통합레이저교전체제) 장비를 착용한 병력 400명이 일전을 준비했다. 현역 250여명이 저항군을 맡고 예비군 310여명이 강둑 진지를 방어했다. 강변 풀숲에서 시커멓게 저항군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교전이 시작됐다. 총에 맞았음을 알리는 마일즈 경보음이 곳곳에서 ‘삐∼’ 하고 터졌다. 이번 교전에선 예비군이 일시 후퇴했다. 전열을 정비한 예비군과 저항군의 공방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2일 경기도 연천군 일대에서 실시된 73사단 ‘쌍용훈련’에 참가한 한 예비군이 포사격을 위해 조준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연천=송원영 기자

예비군 훈련이 변했다. 훈련 강도가 높아지고 예비역의 자세는 진지해졌다. 1∼3일 경기 연천, 전곡 일대에서 벌어진 73사단 ‘쌍용훈련’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현역 1000여명, 예비역 2000여명이 참가한 국내 최대 동원훈련이다. 전차와 장갑차, 화포, 항공전력 등 화력과 기동전력이 망라됐다. 예비군 최초로 주야 연속 철야 훈련과 야간 포탄 실사격이 이어졌다. 훈련 강도에 참가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예비군 1년차 김민(24·취업준비생)씨는 “203 특공여단 출신인데 현역 때 못지않은 훈련이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날 현역병 한 명은 예비역과의 공방전 와중에 탈진해 들것에 실려갔다.

예비군은 국가총력전 체제인 현대전에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예비군 전력은 300만명에 달한다. 국방부는 예비군 전력을 정예화하기 위해 훈련을 체계화하고 강화하는 노력을 해왔다.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식 훈련장을 도입하고 훈련 성적이 우수한 예비군을 조기 퇴근시키는 당근도 내놓았다.

예비군 훈련 강화의 계기는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었다. 이날 포격 훈련을 이끈 양병회 6포병여단장(준장)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국민의 대적관이 변한 것 같다. 예비군 훈련 분위기가 달라졌다”면서 “군도 현실감 있는 훈련으로 방침을 바꿨고 예비군에게 단호하게 시행한다”고 말했다. 전국 예비군 훈련이 모두 이렇게 내실 있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강도는 높아졌다지만 시간때우기식으로 참여하는 예비군도 아직 적지 않다. 예비군 무장 태세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예비군이 사용하는 소총의 절반은 반세기 전에 쓰던 카빈이다. 철모도 55%만 공급됐다. 군 관계자는 “당장 전쟁이 터지면 예비군 태반은 철모 없이, 현역 시절 만져보지도 못한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예비군은 그들대로 불만이 있다. 아무리 국방 의무라지만 생업을 제쳐놓고 훈련하는 데 보상이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예비군은 평균 2만∼3만원의 비용을 들여 훈련에 참가한다. 보상은 교통비 약 4000원과 식비 5000원을 합쳐 1만원 안팎이다. 자영업자는 손해가 더 크다. 독일과 이스라엘이 예비군 소집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전액 보상하고, 스위스가 봉급의 20%를, 미국이 현역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예비군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휘락 국민대 교수는 “예비군이 현역 보조 역할을 한다고 여기는 것은 문제”라면서 “현대 장기전에서는 후방 예비군의 임무가 특히 중요한데 이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아 예비군 훈련과 처우 개선이 겉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군 안팎의 여론을 수렴해 예비군 전력을 상비군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6대 중점과제를 추진 중이다. 전시에 돌입하는 충무2종 사태 이후 총동원령을 선포하도록 된 현행 제도를 개선해 7월부터 국지전이나 국가비상사태 초기인 충무3종 때도 부분동원하도록 했다. 2015년까지 예비군부대에 완전군장과 방독면 등 전투장구류를 100% 확보하는 한편 예비군 저격수 3만명 양성에 돌입했다. 동원훈련 장소를 현재 주소지에서 현역 복무 부대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밖에 성과 위주의 실전적 예비군 훈련과 예비전력 관리 기구 편성 보완도 추진 중이다.

군 일각에서는 예비군을 국민과의 가교로 보고 제도 쇄신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준용 73사단장(준장)은 “예비군은 군의 대국민 접점”이라면 “우리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국민에게 군에 대한 신뢰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천·전곡=안석호 기자

 

 

김재삼 국방부 동원기획관

 

  • “현역 복무를 마쳤다고 국방 의무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비역 복무까지 끝나야 병역 의무를 마치는 것입니다.”

    김재삼 국방부 동원기획관(소장·사진)은 8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방 의무가 2년이 아니라 8년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예비군 훈련에 충실히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김 소장은 우리 예비군이 조금만 충실히 훈련하면 현역에 버금가는 전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예비군은 다른 나라 예비군에 비해 현역 복무 경험이 많고 대부분 현역 때 우수한 전투력을 가지고 제대했다”면서 “일반인이 보기에 군기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주특기별로 전투력을 측정하면 현역에 못지않은 성적을 낸다”고 강조했다.

    우리 예비군의 당면 과제는 국방개혁 등으로 감소하는 현역병의 전력 공백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채워줄 수 있느냐는 것. 김 소장은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화된 훈련을 통해 예비군 전력을 상비군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장기 계획을 밝혔다. 그는 “예비군을 소집 후 즉각 동원해 투입할 수 있도록 훈련, 편성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는 현재 추진되는 국방개혁에 포함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예비군 전력을 증강하려면 양적·질적으로 훈련을 강화해야 하는데, 절대량을 늘리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김 소장은 “예비군 훈련 일수를 현재 2박3일에서 4박5일로 조정하는 등 양적으로 늘리는 것은 먼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대신 전시 임무 중요도에 따라 선별적으로 훈련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병 등 특수병과를 중심으로 훈련을 강화하고 그에 맞춰 보상도 좀 더 현실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돼온 예비군 무장 부실 문제도 대대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김 소장은 “2015년까지 전 예비군이 단독군장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석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