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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국방/군의 현실

금문도 사건, 쿠바 사태, 그리고 연평도

 

금문도 사건, 쿠바 사태, 그리고 연평도

   

                                                     

                                                                   적의 포격하에서도 반격준비에 여념이 없는 해병,한국 해병의 표상이다.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지 못했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고 군은 국가 안보의 헛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서북 5개 도서 주민들이 떠나가고 빈 섬들이 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연평해전, 천안함 사건,이번 연평도 포격 등 불법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나라가 위대한 나라인가? 무능한 나라인가?

 

미국의 핵우산 아래 피땀나는 노력으로 오늘의 부를 일구었다. 안보를 남에게 맡겨두고 부를 일구는데 바빴지 정신은 피폐해졌고 자체 안보는 결과적으로 허물어졌다. 지난 13년 동안 대북 유화정책으로 국방백서에 주적도 사라졌다. 그러니 주적이 포격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주적도 아닌 북한의 포격으로 주민과 병사들이 죽었다.

 

그동안 해군과 해병대가 그토록 서북 5개 도서에 대한 방비강화를 요구했지만 육군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는 국방부는 흉내만 냈을 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해병은 해군에 예속되어 버렸고 모든 인적.물적 할당은 해군이 주도했다. 군은 그동안 각종 비리와 부패로 썩을대로 썩어 버렸다. 10.26 이후 정치군인들이 나타나면서 군 본연의 임무를 상실해 버렸다. 그 후 군은 대숙청이 이루어졌지만 대북 유화정책 추진으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권이 군을 불신하고 국민이 군을 천시하는 이 나라는 결국 안보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해병은 서북 도서에서 지상에 노출된 진지와 막사, 노후화된 포, 고장난 레이다, 대응능력도 없는 화력으로 찬바람 굿은비 맞으며 지금까지 맨몸으로 서북 도서를 지켜왔다. 전략.전술도 허술하고 보복 능력도 없었다. 적은 굴을 파고 숨어서 빠꿈히 고개를 내밀고 포격하곤 숨어 버렸다. 지하동굴 속에 숨은 적을 무슨 수로 타격할 것인가? 기껏 교통호나 공막사를 타격했다고 한다. 적의 포격에 이럴진데, 상륙부대로 서북 도서를 기습 점령한다면 무슨 대책이 있는가 묻고 싶다. 그때도 말로만 대량보복이요, 확전방지하라며 주문할 것인가? 미국에 전화걸어 보고하고 지시받으면 그들이 대량보복을 하라고 할 것인가? 1000킬로미터가 넘는 작전 반경을 가지고 최첨단 장비와 무기로 무장한 미항공모함 전대가 서해에 나타나 합동훈련한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언제까지 우리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줄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자주국방을 외치던 박대통령이 지하에서 무어라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연평도 사건은 언제던지 발생 가능한 사태로 평시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적이 공격시에는 끝까지 싸우다가 해병이 전원 옥쇄하는 것이 유일한 작전개념일 뿐이다. 장비도 화력도 부실한 해병에게 오로지 할 수 있는 작전은 그것 뿐이었다. 이번 포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것은 정부의 위기조치 능력과 군의 대응시스템, 서북 도서 방어 시스템, 군의 정신 자세, 외교. 안보라인의 무능과 무책임, 단호한 의지가 없는 지도자 모두가 합동으로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장수를 바꾼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무능한 안보라인이 존재하는 한 유능한 장수는 조기에 물러나게 되어 있다. 국민에게 눈물과 고통을 안겨주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정의가 사라진 이 나라에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지혜로운 새로운 선구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해 본다.

 

비슷한 사건으로 금문도 사건과 쿠바 사태를 들 수 있겠다. 그 당시 대만의 장개석 국민군이 어떻게 대응했으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불의에 맞선 싸움에서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사람에게는 치욕의 역사를 기록하였고 고뇌에 찬 결단으로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던 사람들은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며 그러한 지도자를 갖지 못한 우리들의 슬픈 운명일까?

 

    

금문도 사건

 

연평도·백령도와 지리학적으로 아주 닮은 곳이 금문도(金門島)다. 대만의 부속 섬이지만 오히려 중국 본토에 가까이 있다. 본토와의 거리가 불과 2㎞다. 헤엄쳐서 건널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우리 영토이긴 하지만 위치상 북측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서해 5도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한의 최북단 섬 백령도에 군 시설을 세우며 전진 기지화할 때 금문도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금문도는 대만 역사의 상징이다. 1949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대만으로 쫓겨날 때 최후의 보루로 삼은 게 금문도였다. 4만 명의 국민당 패전병들은 “죽음으로 금문도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말 그대로 죽음으로써 지켜냈다. 당시 중국군은 국민당 군대의 절반에 달하는 2만 명을 투입, 금문도 상륙까지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었다. 승전은 국민당의 사기를 높였다. 전투는 역사적 상징이 됐다.

중국은 이후에도 호시탐탐 금문도를 노렸다. 급기야 58년 8월 23일엔 대규모 군사도발을 감행한다. 10월 5일까지 44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중국군은 무려 47만 발의 포탄을 쏘아댔다. 기록에 따르면 교전 첫날인 23일 하루에만 5만7000발의 포탄이 발사됐다고 한다.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대만군은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군 포병진지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미국 정부로부터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지원받아 육·해·공군의 입체적 반격전을 폈다. 대만은 또 섬 전체를 땅속으로 그물망처럼 연결해 요새화했다. 이 지하 요새를 시찰한 적이 있다는 이동복 전 자민련 의원(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은 “땅굴은 지하 3층으로 돼있으며 자동차로 섬 어디든 갈 수 있게 돼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였다”고 기억했다.

목숨을 건 대만군의 처절하고 끈질긴 저항과 반격에 중국은 결국 손을 들고 만다. 인구와 물자·전투력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대륙 중국이 코앞의 왜소한 작은 섬, 금문도(동서 20㎞, 남북 길이 5~10㎞)를 집어삼키지 못한 건 왜일까. 그건 죽어서라도 영토를 지키겠다는 대만군의 의지 때문이다. 화력에선 중국군이 앞설지 모르나 심리전에선 단연 대만군이 우세했던 거다. 전쟁에서 심리전이 중요한 이유다.

북한의 포격으로 쑥대밭이 된 연평도가 지금 유령의 섬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가재도구를 챙겨 정든 집과 학교·교회·마을을 뒤로한 채 뭍으로 빠져나갔다. 820가구, 1400여 명의 주민 중 섬에 남은 사람은 이제 2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떠난 주민들을 비난할 순 없다. 그들이라고 정든 삶의 터전을 두고 낯선 뭍으로 떠나고 싶진 않았을 테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만약 북한의 도발이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포탄 공격이 감행된다면 그땐 어떡할 것인가? 그럴 때마다 짐보따리를 짊어지고 배에 몸을 실을 것인가. 북한의 추가 도발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피란에 지친 사람들은 하나 둘 섬을 아주 등지게 될지 모른다. 집값, 땅값이 떨어지고 생계를 이어갈 수단마저 막막해진 주민들이 섬을 떠나면 연평도는 정말 말 그대로 유령의 섬이 될지 모른다. 연평도가 이렇게 되면 그보다 위도상으로 더 북쪽에 있는 백령도는 어찌될 것인가. 대청도·소청도·우도 등 서해 5도가 우리의 영토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이 지나친 비약이고 헛된 망상으로 그치길 간절히 바란다. 정부는 강경한 대응과 응징을 다짐하지만 행동이 뒤따르지 못하니 이런 상상이 엄습하는 것이다. 연평도가 유령의 섬이 되게 내버려둬선 안된다. 그게 북한이 노리는바다. 진정 우리의 영토를 지킬 의사가 있다면 행동해야 한다. 연평도에서 외교안보대책회의를 왜 하지 못하나. 중화력으로 무장한 최신 첨예 무기를 앞세운 군 수뇌부들의 작전회의가 이곳에서 열렸어도 과연 연평도가 유령의 섬으로 변했을까. 부산으로, 광주로, 대전으로 옮겨 다니며 지도부 회의를 하던 정치권은 왜 안보회의를 연평도에서 열지 못하나. 안보상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군 수뇌부들이, 정치 지도자들의 용맹한 행동이 필요한 건 아닐까.

 

대만이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금문도를 지킨 게 심리전에서 이겼기 때문이듯 말이다. 연평도를 지키는 건 한국인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키는 일이다.‘쿠바 위기’는 1962년 소련이 핵미사일을 실은 함정을 미국 앞마당인 쿠바로 이동시키면서 발생했다.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던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는 소련의 협조를 받아 미국을 공격하려 했다. 미국인은 두려움에 빠졌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언어와 행동이다. 그는 흐루쇼프나 카스트로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케네디는 소련이 쿠바로 함정 이동을 강행하면 제3차 세계대전도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쿠바 해상을 봉쇄하고 소련 배가 진입하면 무력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함정들을 해상에 출동시켰다.

 

쿠바 사태

‘쿠바 위기’는 1962년 소련이 핵미사일을 실은 함정을 미국 앞마당인 쿠바로 이동시키면서 발생했다.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던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는 소련의 협조를 받아 미국을 공격하려 했다. 미국인은 두려움에 빠졌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언어와 행동이다. 그는 흐루쇼프나 카스트로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케네디는 소련이 쿠바로 함정 이동을 강행하면 제3차 세계대전도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쿠바 해상을 봉쇄하고 소련 배가 진입하면 무력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함정들을 해상에 출동시켰다.

 

                                                          



10월 22일, 케네디의 연설엔 전쟁으로부터 국가를, 두려움으로부터 국민을 구하려는 군 통수권자의 고뇌가 배어 있다. 고뇌의 결론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선택한 길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길은 하나의 국가로서 우리의 기질과 용기,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가장 부합하는 길이다. 자유의 대가는 항상 크다. 미국인은 항상 그 대가를 치러왔다. 우리가 결코 선택하지 않을 길은 항복이나 복종이다. 우리의 목표는 힘의 승리가 아니라 권리의 수호다. 우리의 목표는 자유를 희생해 평화를 얻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자유와 평화를 함께 얻는 것이다. 자유와 평화가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달성되길 희망한다. … 우리는 성급하거나 불필요하게 세계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핵전쟁에 직면해야 한다면 언제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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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겨냥한 소련의 미사일기지]

 

 


전쟁에 직면해야 한다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케네디의 언어와 행동에 흐루쇼프는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 10월 28일, 흐루쇼프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단하고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을 소련으로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흐루쇼프의 굴복에 화가 난 카스트로는 독자적으로 미국의 정찰기를 격추시키겠다고 위협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힘이 부쳤던 것이다.

62년 10월 22일에서 28일까지 ‘쿠바에서의 일주일’은 가장 위대한 전략은 상식이란 걸 잘 보여 준다. ①존재는 공격에 반응한다. ②위험엔 희생이 따른다. ③희생을 회피하면 굴종하며 살아야 한다. ④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이달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해에선 항공모함이 동원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다. 천안함·연평도 공격을 당한 뒤 비로소 이뤄지는 훈련이다. 서해 항모훈련은 원래 지난 7월 하려 했으나 중국의 격렬한 반발로 동해로 옮겼다. 중국과 북한은 그때 한국의 서해 영토 수호 의지를 우습게 여겼는지 모른다. 그래서 연평도를 공격한 게 아닐까.

나흘간 실시될 이번 항모훈련과 그 이후에도 청와대와 군은 정치적 고려보다 존재의 상식에 입각한 도발격퇴 행동 양식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적의 공격 의도는 무엇일까, 아군의 반격 뒤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희생을 치르지 않고 넘어갈 순 없을까 같은 머리만 굴리는 책상머리 전략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연평도 피격과 정부, 군의 대응

 

연평도는 북한 옹진 반도에 인접한 서북 5개 도서 중 하나이다.

 

해병대는 1951년부터 서북 5개 도서를 점령했다. 그때는 '구월산유격대' '8240부대' 등 유격전을 지원하는 기지로 썼다. 정전협정을 하면서 북은 3·8선 이북에 점령하고 있는 섬에서 철수하라고 했지만, 휴전회담을 통해 해상에 NLL(북방한계선)이 설정됐다.

 

현역 시절 백령도 6여단장을 역임했던 예비역 해병 장군의 말을 빌리면,

"1975년 김일성은 '서북도서 바다는 우리 관할이니 섬에 통행하려면 우리가 규정한 항로를 따라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때부터 백령도 등 서북 5개 도서의 전력증강 계획이 세워졌다. 모델로 삼은 것이 중공과 대치한 대만의 '금문도(金門島)'였으며 우리 군에서 직접 금문도를 시찰했다. 서북 5개 도서 전력증강은 방어개념이었다.

섬을 확보하면서 적이 기습상륙할 때 대응하는 것으로 포의 사정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차 연평해전'(1999)이 터진 뒤 해상 상황이 벌어졌을 때 지원하기 위해 K-9 자주포가 배치됐다. 연평도 2문, 백령도 4문이었다.

다시 '2차 연평해전(2002)' 이후 각각 6문으로 증강됐다. 화력배치는 해병대의 권한 밖이며 해병대는 명목상 독립됐지만 예산·인사·군사권이 없다. '무기를 줘야 싸울 게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평도 부대가 당할 때, 해병대 지휘부는 과연 합참과 국방부에 강력한 대응과 보복을 요구했는가? 라는 물음에 그는 "얼마나 요청했는지 모르겠다. 전투기 출격과 폭격 권한은 해병대사령부 권한 위에 있다. 당시 F-15K 전투기가 출격했지만 합참에서는 확전을 우려하여 공격을 하지 못했다. 해병대 사령관이라면 사격을 해달라고 강하게 요청을 하는 것이 맞다."

군으로서 최상의 대응은 무엇었을까?라는 물음에 그는 "해병대 화력으로는 열세다. 상급부대에서 함포나 미사일, 또는 전투기로 북의 해군 8전대, 미사일 기지, 방사포 기지를 공격해줬어야 했다. 나중에 정전협정 위반으로 문제삼을지 모르나 훨씬 강한 응징만이 도발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사후 예방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청와대의 위기상황 관리 능력
이 대통령은 처음에는 '단호한 대응'을 군에 주문하면서도 확전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교전규칙 운운하지만 교전규칙은 이번 사건에서 아무란 소용이 없는 규칙이 되어 버렸다. 즉 제한된 전력을 가진 해병대 입장에서는 북한에 ‘단호한 대응’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연평도와 같은 고립된 장소에서 현장 지휘관인 해병 6여단장이 단호한 대응을 할 수 가 없다. 한다고 해봐야  기껏 자주포를 몇 발 더 발사하는 정도일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호한 대응’이란 공군 전투기나 함포사격 지원 정도는 있어야 가능했다. 즉 합참 단위에서 지·해·공 합동전력을 지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며 이건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의장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며 교전규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사건 첫날 “확전을 방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청와대 발표로 대통령의 위기관리에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청와대는 슬그머니 말을 바꾸더니 돌연 교전규칙 문제를 들고 나왔다. ‘미흡한 대응’의 원인이 대통령이 아니라 군 시스템에 있다는 식으로 전가되는 장치다. 그래서 합참의장은 상황실에서 실시간 상황을 관망하면서도 '20발만 더 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응을 지시했다. 또 교전중 그 시간에 국회에서 시간을 보낸 김국방 장관이 안보회의에도 늦게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군의 초기대응과 대비태세, 국회발언 등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전격 교체되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김국방을 정확하게 겨냥했다는 결론이다..

그 다음으로 청와대는 연평도에 세계 최고 성능의 장비를 대폭 배치하겠다고 하지만 서북 도서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 있는 고립된 장소로 북한 잠수정과 특수부대원들이 제집 드나들듯 할 수 있다. 이런 곳에 첨단 장비를 잔뜩 배치하는 것은 무모한 방책이다. 오히려 대만의 금문도처럼 연평도를 포함한 서북 5개 도서는 전체를 지하요새화하여 병력과 장비를 지하에 배치하여 생화학공격 등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난공불락의 요새로 보강되어야 한다. 핵심 첨단무기를 배치하더라도 지하화하여 유사시에는 지상 노출로 운용하여야 하며 평시부터 지상에 설치하여 써먹기도 전에 격파당할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 

서북 5개 도서의 지하 요새화

서북 5개 도서에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면 안보가 저절로 해결된다고 편의적 발상도 문제거니와 서북 해역에 동원할 군사력이 부족해서 북한의 연이은 도발을 허용한 것이 아니다. 변화된 분쟁의 양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예방과 억제를 소홀히 한 결과다. 서북 5개 도서를 지하요새화하고 첨단 무기로 증강하며 주민들의 거주는 준군사적인 성격의 자원자에 한해서 허용하며 유사시에는 예비군으로 해병대와 같이 전투에 투입될수 있는 주민들로 구성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재처럼 주민들이 무방비 상태로 거주하는 한 북한의 도발이 발생될 대마다 민간인들의 희생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특히 꽃게철에는 한시적으로 어민들이 자유롭게 어업에 종사하도록 허용하며 비수기에는 철수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서북 도서에 해병대 병력을 증강하고 신무기를 배치하고 군사요새화하면서 민간인들을 거주토록 하고 민가도 지상 노출이 아닌 반지하화하여 유사시 대피호를 준비하고 장기간 생활도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번처럼 민간이 탈도서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민간인 피해시 북한은 ‘민간인에 대한 군사공격 금지’라는 국제법과 국제적 비난여론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군사력은 적의 군사도발을 억제하여 주민(국민) 생활의 안정을 지키는 것이 존재 이유다. 

국방장관 등 경질 시점도 부적절
불행히도 청와대는 이런 현지 작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익은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며 모두가 이번 교전 양상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소치다. 무엇이 됐든 상관없이 ‘보여주기’식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진돗개 하나’가 발령 중인 상황에서 국방장관과 청와대 국방비서관을 경질한다고 발표했다. 일단 사건이 종결된 후에 용퇴하도록 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이 경황이 없는 와중에 신임 국방장관 후보의 ‘예비 청문회’를 개최하느라 밤을 새웠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한 일들이 혹시 국가와 국민의 안보가 아닌 정권의 안위, 대통령의 지지율을 우선 걱정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지 매우 염려스럽다.

 

군색하게도, 청와대는 김태영 국방장관을 경질하면서 “천안함 후속 조치와 한·미 국방장관 회담 등 연속된 현안 처리를 위해 사퇴서 수리를 미뤄오다가 최근 연속된 군 사고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사의 수용을 결정했다”고 했다. 천안함 침몰로 애꿎은 젊은이들이 몰살했을 때도, ‘전쟁 중 장수는 교체 않는다’고 버티던 청와대의 설명으로는 타당성도 없을 뿐더러 실제 경질 이유도 아닌 구차한 변에 불과하다.

최소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군 대응의 총괄 책임을 물었다고 하든지, 아예 궁지에 처한 이명박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에 대한 국회에서의 김 장관 답변 내용 때문이라고 했어야 솔직했다.

그래도 군에 대한 최종 책임은 군통수권자에게 있고, 확전 자제 발언을 둘러싼 우왕좌왕의 책임 역시 청와대에게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속죄양이거나 대리경질이라고 하는 게 보다 적합한 성격이지만 말이다.

여당의 중진의원은 확전 자제를 건의한 청와대 참모에 ‘개자식’ 운운하고, 극우 정치인들은 능멸의 비난을 쏟아냈지만 확전을 예방한 이명박 대통령의 초기 지시는 합리적이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처음 벌어진 북한의 영토 공격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는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떠나 분단 한국의 대통령이 취할, 취할 수밖에 없는 대응이다. 개인 생각임을 빌려 “단호하고 또 확전 안되도록 하는 게 국가원수로서 책임 있는 말 아니겠느냐”는 김태영 장관의 국회 답변은 정확한 언술이다.

MB의 확전 자제 지시
영토에, 그것도 민간인 지역에 폭격을 했는데 왜 철저히 응징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은 응당 지적할 수 있고, 지적돼야 한다. 군사 도발에 대한 즉자적 대응 공격은 자위권과 정당방위로서 인정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진 국가로서 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백배, 천배의 보복공격을 하자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몇 배로 보복 군사 응징을 하라고 하는 것은 호락호락 옹호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냉전의 시대, 이 땅의 박정희 정권도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백배는커녕 한 배의 물리적 보복도 못했다. 아웅산 테러 사건에 대해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이 정부보다 전쟁 자체를 겁내고, 북한을 덜 적대해서도 아닐 터이다.

분단 한국의 어떠한 대통령도 전면전을 지지하고, 전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물론 무도한 도발이고 전쟁범죄이지만, 뒤늦게 그것에 보복한다고 전투기를 동원해 보복 폭격을 하라고 지시할 수는 없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고 대한민국 대통령의 운명이다. 확전 자제 발언의 파동을 뒤엎기 위해 “보복을 위해 대통령은 폭격을 검토했는데 국방부 쪽에서 난색을 표했다”고 한 참모야말로 사태를 호도하는 것이고, 국민을 기망하는 것이고, 아니면 군대를 갔다오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무지의 소치다.

16년 전 북한의 영변 폭격을 위해 미국의 항공모함이 동해에 실전배치되는 전쟁의 위기 당시 미국 당국의 보고서는 이랬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군 3만명, 한국군 45만명, 민간인 100만명이 죽거나 다치고 한국 경제의 피해 규모는 1조달러에 달할 것이란 거다. 수도권의 인구가 배가 되고, 경제의 규모가 커진 현재에서 전쟁의 피해는 굳이 보고서를 복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정부 발표 직후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다짐했다. “앞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적극적 억제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고.

하지만 약속한 적극적 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의 포격에 연평도는 유린됐고, 애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죽었다. 박정희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영토가 북한의 공격을 당해 국민들이 죽은 적은 없다. 연평도 국민들은 불안에서 더 못 살겠다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피난했다.

말 폭탄 아닌 실질적 정책 나와야
그래놓고 다시 말로써 막대한 응징 운운한다고 사태가 수습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확전 자제 발언을 안했다고 기를 쓰고, 그것을 덮으려 국방장관을 교체한다고 해서 수습될 턱이 없다.

말의 폭탄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을 막고, 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실질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을 굴복시키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한 채 영토와 국민이 북한의 도발에 속수무책인 상황만을 초래한 대북정책을 점검하고 바꾸는 것이 먼저다.

 

모든 전략.전술은 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병사가 죽고 민간인이 죽었다. 백성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의지할 곳이 없다면 그리고 믿고 신뢰할 수 없다면 민심은 떠나게 되어 있고 전쟁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왜선을 공격할 때도 백성들의 피해가 없을 만한 곳을 선택하여 전투를 벌였고, 포구의 적을 섬멸할 때도 적이 육지로 상륙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힐 것을 우려하여 적선을 한 두 척 남겨두고 침몰시켰고, 왜군이 남은 배를 타고 몰래 도망칠 때를 기다려 매복하고 있던 수군으로 섬멸하였다. 피난민들이 길을 가면  말에서 내려 같이 손을 잡고 위로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위로하였고 백성들은 앞다투어 장군에게 아끼던 귀한 술을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수군 본영 근방에는 주변의 백성들은 물론, 적지의 백성들과 포로로 잡혀 있다 도망쳐 온 백성 등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어 수만호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북 5개 도서 주민들은정부는 뒷짐이나 찜질방 주인의 배려로 일주일째 고통스런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잘난 시장과 도지사는 모두 어디를 갔는지... 

 

 

군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식

군에 가지 않으려고 생니를 뺐다는 일부 연예인,정신분열증 · 우울증 · 대인기피증에 걸렸다는 탤런트,어깨를 탈골시킨 운동선수,손가락을 잘랐다는 사람 등 잔꾀를 부린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금메달을 딴  특정 선수의 병역특혜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군 면제 받은 걸 축하한다는 글도 인터넷에 올랐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군에 가지 않게 된 걸 축하하는 나라다. 그러나 한편 적의 포격으로 불타는 포병 진지에서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해병 병사를 사진으로 보면서 깊은 회한에 빠진다.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사람치고 군에 가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젊은 시절 무절제한 생활에서 탈피하여 집단 생활을 통해 단체생활을 익히고 전우애,봉사,헌신을 배우며 국가관과 애국심을 고양하며 가정과 부모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용기, 정신자세,결단, 자유와 평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용지물 최신 전투기, 대통령과 군 결단의 기회를 놓치다.

연평도 포격시 공중에 대기중이던 전폭기로 북한 해안포와 주요 기지를 무차별 폭격하였다면 어찌되었을까? 이는 해병 연평부대장의 권한 밖의 문제이다. 이것은 전술적 차원을 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 공군의 최신예 F-15K는 대당 1000억원으로 남한의 경제성장과 대북(對北) 체제경쟁 승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다. 그래서 F-15K로 보복하는 것은 남한이 모든 자원을 동원해 몇 배로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F-15K 폭격'은 남한이 단호한 의지를 단독으로 북한에 보여주는 첫 번째 실천일 수 있으며 세계에 남한의 용기를 과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부적으로는 미망(迷妄)을 폭격하는 것으로 천안함 외부폭발을 소설이라 하고 유엔에까지 달려가 조국을 훼방했던 미망의 세력, 지레 겁을 먹고 확전에 벌벌 떠는 패배주의, 천안함 북한규탄 결의안에 반대했던 맹북(盲北)주의를 폭격하는 일이다. 전략가 대통령, 전략가 합참의장이라면 오히려 이런 기회를 기다렸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방장관, 그리고 합참의장은 하늘이 준 기회를 날려버렸다. 전략과 역사의식 그리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결단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확고한 신념, 강력한 의지 그리고 냉철한 판단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먼저 지도자와 국민은 신념을 가져야 한다. 서해(西海) 국지전이 벌어져도 김정일이 전면전을 감행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만의 하나 전면전이 일어나도 국민이 견뎌주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물론 북한의 장사정포에 서울은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다. 그러나 장사정포나 특수부대, 생화학탄 같은 건 피해를 줄 뿐이지 승패를 결정하진 못한다. 현대전은 공군력과 공습능력에 달려 있다. 이는 미군의 바그다드 공격에서 증명된 것이다.

한·미는 개전 3일 내에 평양~원산 이남의 제공권을 장악하도록 되어 있다. 한·미의 공습능력은 가공할 만하다. 미 태평양 함대의 핵잠수함 3척에만 토마호크 미사일이 462기나 실려있다. 이것만 날려도 평양의 김정일·김정은 집무실·숙소, 노동당사, 인민군 사령부를 모두 부술 수 있다. 여기에 F-15, F-16, 일본서 날아오는 F-22 랩터 그리고 항공모함에 순양함·구축함까지 가세하면 평양은 며칠 내에 바그다드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폭탄을 가졌다 해도 쓸 수는 없다. 북한정권엔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후세인의 최후를 기억하는 김정일은 모험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 전면전을 도발할 수 없을 거란 신념으로 임하면 서해의 국지전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공중전과 해전에서 한·미 전력은 압도적이다. F-15K는 200㎞ 떨어진 곳에서 SLAM-ER 유도탄으로 목표물을 때릴 수 있다. 북한에는 이런 수준의 전폭기가 없다. 미그 29는 겨우 한국의 F-16급이다. 그런 미그 29도 20여 대에 불과한데 F-16은 160여 대나 된다.

대통령과 합참의장은 이런 신념과 판단으로 무장하고 F-15K 폭격을 명령했어야 한다. 국민의 섬마을이 불바다가 됐는데 대체 교전규칙 따위가 뭐란 말인가. F-15K는 국민이 피와 땀과 눈물로 사준 국민의 무기다. 바로 연평도 사태 같은 때에 쓰라고 사준 무기다. 그런데 군은 그런 무기를 비겁과 패배주의란 쇠줄에 묶어 놓았다. 조원건 전 공군작전사령관은 나에게 “모든 걸 종합해볼 때 F-15K로 때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합참의장은 역사적인 폭격 순간을 놓쳐버렸다. 흔히들 주먹이 운다고 한다. 지금 대구 공군기지에선 F-15K 45대가 울고 있다. 유약한 지휘관에게 화가 나고 천안함 46인과 연평도 4인이 불쌍해 F-15K가 울고 있다.

                                                                                                                         -사설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