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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국방/군의 현실

불신의 바다에 빠진 천안함

 

 

 

불신의 바다에 빠진 천안함

 

조선 강국 대한민국이 서해의 50미터도 안되는 얕은 바다에 원인불명의 폭발로 침몰된 천안함 구조에 온 나라가 갈등과 불신의 소용돌이속에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 진다면  적의 침투를 사전 탐지.차단하지 못하고 야간 해상에서 불의에 공격을 받은 한국 해군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허둥거린 군이나 정부는 국민들의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고귀한 생명 46명과 수천억짜리 함선이 침몰되고 말았다. 온 나라가 불신의 두터운 장벽속에 갈등은 분출되었고 그러한 불신의 바다에 빠진 천안함은 아직 구조도 못하고 인양도 못하고 있다.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 잠긴 그날 밤 이 나라도 바다에 잠겼다. 불신의 바다로 또다시 순식간에 빠져 들어갔다. 천안함을 두 동강 낸 물기둥이 있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침몰 순간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과 적의(敵意)의 물기둥이 치솟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천안함 생존장병 57명의 증언이 군 당국의 1차 조사결과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실망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일도, 각본대로 짜맞춘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침몰 직후부터 유력언론들이 패를 나눠 북한 소행입네 아닙네 줄다리기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불신은 분명 군이 자초했다. 군은 무려 2주 동안 침몰시간조차 아귀를 맞추지 못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29분이 지나 합참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보낸 첫 보고는 ‘천안함이 침수되고 있다.’였다. 그러나 군의 모자람을 따지는 한편으로 불신을 키워 내기에 너무도 비옥한 사회적 토양도 직시해야 한다. 앞뒤 자른 채 장관 해임부터 요구하고, 군 기밀이 존재이유를 상실한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군이 하나를 설명하면 의문이 10개가 붙는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당한 장병 말은 믿어도 다각도로 상황을 파악한 ‘당국’은 믿지 못하는 현실을 봐야 한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끌어올릴 것이 너무도 많다. 천안함 실종자와 함체를 건져 올리고, 천안함의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아울러 불신의 바다에 던져진 우리 사회도 함께 끌어내야 한다. 불신의 질(質)을 살펴 정부를 못 믿겠다는 쪽과 안 믿겠다는 쪽을 가리고, 안 믿겠다를 못 믿겠다로, 못 믿겠다를 지켜보겠다로 바꿔나가야 한다. 불신의 뿌리를 찾아 신뢰로 치환할 처방을 구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향후 대응과 별개로 국민 불신을 달래기 위해 초계함 한 척을 끌어올리는 것조차 외세가 필요한 신뢰 부재의 사회자본으로 황차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신뢰하기 위해 불신한다고 한다. 이 불신의 역설이 담고 있는 신뢰 회복의 가능성을 정부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천안함이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구조요청일 것이다.

 

 

천안함 사건 조사 후 결론이 나온 이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부폭발이나 자연현상, 기타 아군의 실수로 밝혀 진다면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번 기회에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과 보완책이 강구되어야 하며 군부도 새로운 각오로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무능한 군부가 되지 않도록 새로운 각오로 대폭적인 쇄신을 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군의 위상은 되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질적인 군내 각종 비리를 포함하여 예산배분, 교육/훈련, 전술/전략, 보안, 정보/첩보 수집능력, 전비태세, 위기메뉴얼, 구조/구호, 정비/보급, 군사력 배치, 장병복지, 보훈, 상벌, 진급, 보직 등에 대해서 전면적인 검토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희생자에 대한 국가 보훈 정책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국가를 위해 희생된 유가족과 직계존비속에 대한 국가적인 보훈정책이 새롭게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당했다면 그들의 가족이나 직계존비속들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후한 생계보장으로 평생 국가적인 배려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소방,경찰 등을 포함하여 별정직 공무원들에 대한 보훈특별법을 새로 제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의 행위가 확실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무력보복이 가능할 것인가? 그러나 지금까지 무력보복은 한 번도 시행된 적도 없으며 할 수도 없었다. 유엔을 포함한 북에 대한 제제방안에 대하여 심층깊게 우방국과 논의 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북은 금강산 부동산을 동결하였으며 남북경협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면 금간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어찌될 것이며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현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지금부터라도 면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묘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그들의 공갈.협박에 순순히 응해서도 안될 것이며 단호한 결단을 보여주는 것만이 국민들의 성원을 받을 수 있으며 유야무야 넘어갈 경우에는 무능한 지도자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실종 가족-생존 장병 만남…또 ‘눈물바다’

 

“저만 돌아와 죄송” “너라도 살아와 다행”

“너라도 살아와줘서 고맙다.”, “어머님, 저만 돌아와 죄송합니다.”
 
▲ 애끊는 만남
온통 울음바다였다. 애끊는 모정이었고, 그리운 어머니였다. “니들이라도 살아와줘서 고맙다.”, “어머니 죄송합니다.”라고 하면서 다들 흐느꼈다. 천안함 생존 장병 39명과 실종자 가족 59명이 8일 저녁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정비지구 식당에서 만났다. 한 실종자 어머니와 생존자 장병이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 8일 저녁 경기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정비지구 식당에서 천안함 실종자의 어머니가 생존 장병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실종자 가족 59명은 생존 장병 39명과 만나 아픔을 다독이며 사고 당시 상황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사진공동취재단

‘결론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부 요인이면 군 지휘부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일은 끝난다. 사고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조치가 가능한가. 그것은 동북아 국제정치와 남북관계와 핵 협상의 큰 틀에서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사고 원인을 예단하지 말자는 말을 되풀이하다 2일에는 국회에 나간 국방부 장관에게 북한 개입으로 치우친 발언을 하지 말라는 VIP메모를 보내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 대통령의 고민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나 기뢰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확실한 결론이 나와도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조치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사건 후 한 달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 북방한계선(NLL) 너머에 있는 북한의 잠수정 기지나 해안포 기지에 물리적인 공격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공격이 촉발할 국지적인 충돌 같은 파장을 생각하면 그것은 최악의 경우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가장 낮은 선택이다. 경제적인 제재는 가능한가.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개성공단 말고는 북한에 돈 넘어가는 루트를 모두 차단했다. 그래서 북한에 고통이 되고 부담이 될 지렛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결국 외교적인 제재가 남는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유엔 안보리 제소가 암시되었다. 북한 개입의 확실한 물증이 나오면 사건을 안보리로 가져가서 북한의 도발행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럴 경우 북한이 취할 태도는 예측 가능하다. 북한은 일단 모르쇠로 나올 것이다. 그러다 궁지에 몰리면 남한 함정이 해상경계선을 넘어 북한 영해를 침범한 데 대한 자위행위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지도 모른다.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은 백령도 남쪽이다. 안보리에서 중국이 취할 태도도 미지수다. 그게 북한이면 북한 급변사태까지 시야에 둔 북한 대책을 다시 세우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책임을 묻는 조치와는 별도로 군의 신뢰 회복과 대통령의 리더십 복원이 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군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국방부 장관은 북한 개입을 예단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번번이 묵살하다 문제의 VIP메모를 받았다. 안보상 위기 대처에 난맥상이 노출되고 대통령의 리더십이 휘청거렸다. 한마디로 대통령과 정부와 군은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은 무책임하고 상식 이하였다. 천안함과 함께 반쯤 물에 잠긴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회의 양식과 군의 신뢰를 구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도 대북보복은 없었다.

 

과거 북한의 기습적인 도발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사건들은 예외 없이 한국의 자제와 국제적 해법으로 마무리됐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은 김신조를 비롯한 124군 특수부대원 31명을 청와대 수백m 앞까지 내려 보내, 최규식 종로경찰서장 등 7명을 사살했다. 이틀 뒤인 23일엔 동해안 공해상에 있던 미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납치, 승무원 83명을 억류했다. 격분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군과 주한미군이 보복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월남전에 발이 묶여 있던 린든 존슨 미 대통령은 한국의 자제를 원했다. 박 대통령이 “그렇다면 우리 단독으로라도 평양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고집을 굽히지 않자, 존슨 대통령은 “한국이 다시는 북한에 수모를 당하지 않게 군비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이 문제는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설득했다. 결국 한국은 대북 공격을 포기하는 대신 숙원이던 M16 소총과 팬텀 전투기 등 1억 달러어치의 미제 첨단 무기를 지원받아 '자주국방'의 첫 삽을 떴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이 아웅산 국립묘지에 참배하기 직전 북한 공작원들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고위 관리 17명이 숨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노한 전 대통령과 군 장성들은 평양을 폭격해서라도 따끔한 맛을 보여야 한다고 발을 굴렀다. 그러나 사태 악화를 원치 않는 미국의 압박과, 86 아시안게임 준비에 한창인 국내 사정을 감안한 전 대통령은 강경 대응을 포기했다. 대신 평양에 “또 다시 도발하면 상응하는 보복이 있을 것”이라 경고하고, 미얀마가 북한과 단교토록 압박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했다.

1987년 11월 29일 김현희 등 북한 테러리스트 2명이 은닉한 폭탄에 탑승자 115명이 몰살당한 KAL 858기 사건 역시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소련과의 획기적인 미사일 감축협상 성사를 앞두고 있던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원치 않았다. 16년 만의 대통령 선거와 88 올림픽을 앞둔 한국도 군사행동을 하기엔 부담이 컸다. 결국 유엔에서 북한을 규탄하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불량국가 낙인을 찍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 보름을 넘겼다. 현재까지 드러난 결과로 보면 외부 충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 소행이 틀림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절대 예단해선 안 된다. 한국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국격을 자랑하는 글로벌 리더 국가의 하나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답답하더라도 과학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것만이 이후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어줄 답이다. 만에 하나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한국이 취할 수 있는 핵심 카드의 하나는 과거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국제적 해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게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다. 그걸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국민들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가 진행 중인 조사작업을 차분히 지켜보며 힘을 실어주는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다.

 

 

천안함 사건 혼란 와중 북의 금강산 자산동결

 

북한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려는가. 북한은 어제 한국 정부가 550억원을 투입, 건설한 이산가족면회소를 비롯해 문화회관·온천장·면세점 등 남측 자산을 동결하겠다고 위협했다. 또 “현대와의 관광 합의 계약이 더 이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돼 새로운 사업자와 금강산 관광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비이성적인 체제라 하더라도 이렇게 막무가내일 수는 없다. 정부는 북한의 위협에 휘둘려선 안 되고 의연히 맞서길 바란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좌초에 이른 것은 전적으로 북한 책임이다. 2008년 7월 북한 초병이 남한 주부 관광객을 총으로 쏴 숨지게 했기 때문이다. 자국민이 피살되는 사건이 터지자 남측 정부로선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없이는 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조치다. 남측 국민 대부분의 컨센서스이기도 하다. 따라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북한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게 1차적 관건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책임을 따진다면 (피살자) 본인의 불찰”이라는 등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남측 주민을 억류하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수십 일이 지나도 아무런 해명이 없다. 남측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조치를 도저히 취할 수 없게 원인 제공을 한 것이 바로 북측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명명백백한데도 북한은 오히려 협박의 수위를 더 높이는 어깃장을 놓고 있다. 금강산에 소재한 남측 부동산 등 자산을 강제로 빼앗고, 막대한 대가를 챙긴 현대와의 기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나.

북한이 이런 강수를 둔 배경은 뻔하다고 본다. 남측 사업자들에게 타격을 입히면 남남갈등을 부채질하고, 천안함 사태로 가뜩이나 뒤숭숭한 남측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정말 잘못된 판단임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북한은 이제부터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될 것이다. 연초부터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외자 유치에 나선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계약 상대방의 자산을 강탈하는 국가에 어느 누가 투자하겠는지 헤아려봐라. 남측 사회가 이 정도의 위협에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큰 오산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천안호 침몰사건의 안보적 핵심은 북한의 소행 여부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도발했는지는 당장 밝히기 어렵다. 선체를 인양하여 찢어진 철판의 모양이나 주변의 파편들을 모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해야 한다. 앞으로 정부가 취할 행동 수순은 넒은 안목에서 멀리 보고 판단해야 한다. 한반도의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서 외교 안보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오바마 미 행정부의 핵태세보고서(NPR)는 북한에 대한 핵 사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번 NPR은 오는 12일부터 워싱턴에서 이명박 대통령 등 44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가운데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것이다.

북한은 과거 그들의 핵 개발 명분을 2001년 말에 발표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NPR에 대처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 9·11 테러 3개월 만에 제시한 NPR 내용은 핵 실험을 포함하여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북한·이라크 등 5개국이 화학·생물 무기로 미국이나 동맹국을 공격할 경우, 핵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후 북한이 핵 실험을 두 차례나 한 것에 비춰볼 때, 이번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천안호 침몰의 원인이 어떻게 밝혀지느냐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정세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그 동안 냉각되어온 남북관계는 물론 6자 회담의 재개와 북핵 문제의 향후 사태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어뢰의 직접 타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에 심증을 두는 듯한 발언이다. 반면 원세훈 국정원장은 6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 연계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른바 청와대의 VIP 쪽지도 김 국방의 ‘어뢰 가능성’발언에 제동을 걸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7일 “적당하게 원인을 조사해서 발표하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고 언급한 것은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의 생각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부연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개입 가능성을 에둘러 표현한 것처럼 들린다.

군이나 정부 안에서는 북한 연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쪽이 많은 것 같다. 지금 우리 군은 북한 개입이 드러날 경우, 국지전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득 60년 전 발발한 6·25전쟁 때 더글러스 맥아더 미 태평양사령관의 압록강 건너 만주 폭격 주장과 이에 반대하여 그를 해임한 해리스 트루먼 미국 대통령 간의 갈등이 생각난다.

1950년 9월 중반까지 파죽지세의 북한 인민군 공격에 유엔군과 한국군이 부산까지 후퇴한 상황에서 맥아더는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켰다. 유엔군은 후퇴하는 인민군을 추격해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내친 김에 압록강까지 밀어붙였다.

중공군이 본격적으로 한국전에 개입하자 맥아더는 전 중국 해안의 봉쇄, 만주에 대한 전략적 폭격, 중국 국민당의 본토 침입 등을 주창했다. 그러나 트루먼 행정부는 38선까지의 실지 회복 등 한국전쟁의 제한된 목적에 맥아더 제안이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공군과의 대규모전은 제3차 대전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사령관을 리지웨이로 교체했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맥아더와 트루먼의 갈등을 두고 그의 저서 ‘디플로머시’에서 군사전략과 외교정책을 읽는 안목 차이로 평가했다. 맥아더는 중국과 전면전을 감수하고서라도 한반도에서 군사적으로 결판을 내려했다. 반면 트루먼 행정부는 대 공산권 봉쇄전략에 입각하여 소련의 유럽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소비할 수도 있는) 미국의 힘을 아껴 두려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한국 국민과 이승만 대통령은 그야말로 남북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당연히 맥아더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남한을 뛰어넘어 세계 전역을 놓고 판을 짜고 있었다.

만약 이번 천안호 침몰이 설혹 북한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냉정하게 따지고 준비해야 한다. 군사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유엔안보리 등 국제사회를 통해서도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을 경우에는 남북관계를 긴장과 대결관계로 가져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일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가 ‘G20 정상회의와 한반도 안보’세미나에서 ‘북한 변수’ 관리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 식량, 경제 지원, 금강산 관광 사업 등에서 ‘전략적 양보’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한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천안호의 비극을 보고, 울분을 토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정부는 울분 너머 큰 숲을 봐야 한다.

 

 

불신의 바다에 빠진 천안함

 

우리 사회가 믿음을 잃어버린 시점을 사회학자 성경륭은 6·25 전쟁으로 봤다. 한강다리를 폭파해 피란길을 끊은 위정자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언제 이웃의 거짓 밀고로 처형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우리를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홉스적 상태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비단 6·25뿐이겠는가. 우리로 하여금 불신 유전자를 키워가도록 한 현대사의 굽이는 넘쳐날 정도로 많다. 이승만 정권의 무능, 5·16 군사정권의 공포정치,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빈부갈등, 사회지도층의 부도덕, 정치인들이 증폭시킨 지역갈등, 외환위기…. 그런 아귀다툼 속에서 우리는 믿다가 낭패를 보느니 의심하고 배척하며 나를 지키려 했다. 살기 위해 신뢰 대신 불신을 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규정한 ‘저신뢰사회’로 일찌감치 편입해 들어갔다.

2008년 초여름을 뜨겁게 달군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은 바닥까지 떨어진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을 올곧이 보여 줬다. 제아무리 대통령이 아무 문제 없다며 미국 쇠고기를 먹어 보여도 PD수첩의 왜곡·과장보도가 댕긴 서울광장의 촛불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해 겨울의 미네르바 소동은 또 어떤가. 정책당국과 유수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30대 평범한 청년을 한국판 루비니로 떠받들었다.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 잠긴 그날 밤 이 나라도 바다에 잠겼다. 불신의 바다로 또다시 순식간에 빠져 들어갔다. 천안함을 두 동강 낸 물기둥이 있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침몰 순간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과 적의(敵意)의 물기둥이 치솟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천안함 생존장병 57명의 증언이 군 당국의 1차 조사결과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실망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일도, 각본대로 짜맞춘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침몰 직후부터 유력언론들이 패를 나눠 북한 소행입네 아닙네 줄다리기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불신은 분명 군이 자초했다. 군은 무려 2주 동안 침몰시간조차 아귀를 맞추지 못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29분이 지나 합참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보낸 첫 보고는 ‘천안함이 침수되고 있다.’였다. 그러나 군의 모자람을 따지는 한편으로 불신을 키워 내기에 너무도 비옥한 사회적 토양도 직시해야 한다. 앞뒤 자른 채 장관 해임부터 요구하고, 군 기밀이 존재이유를 상실한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군이 하나를 설명하면 의문이 10개가 붙는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당한 장병 말은 믿어도 다각도로 상황을 파악한 ‘당국’은 믿지 못하는 현실을 봐야 한다.

1987년 11월 미얀마 상공에서 벌어진 KAL858기 폭파사건은 20년이 지난 2007년 10월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위 활동이 마무리된 뒤에야 조작의 굴레를 벗었다. 북한공작원 김현희가 그토록 자신의 범행이라고 외쳤지만 ‘정권 연장을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는 의혹은 이후 정권교체와 맞물려 점점 더 몸피를 불려 나갔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그 질긴 의혹의 자양분이었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끌어올릴 것이 너무도 많다. 천안함 실종자와 함체를 건져 올리고, 천안함의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아울러 불신의 바다에 던져진 우리 사회도 함께 끌어내야 한다. 불신의 질(質)을 살펴 정부를 못 믿겠다는 쪽과 안 믿겠다는 쪽을 가리고, 안 믿겠다를 못 믿겠다로, 못 믿겠다를 지켜보겠다로 바꿔나가야 한다. 불신의 뿌리를 찾아 신뢰로 치환할 처방을 구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향후 대응과 별개로 국민 불신을 달래기 위해 초계함 한 척을 끌어올리는 것조차 외세가 필요한 신뢰 부재의 사회자본으로 황차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신뢰하기 위해 불신한다고 한다. 이 불신의 역설이 담고 있는 신뢰 회복의 가능성을 정부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천안함이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구조요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