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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국방/군의 현실

녹스는 전투력...주적없는 군대,편히 쉬는 군대

 

 

주적없는 군대, 편히 쉬는 군기…

병사들 전투력 녹슨다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7-06-26 20:01 | 최종수정 2007-06-27 09:05 기사원문보기

[동아닷컴]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은 얼마 전 초임 소대장으로 일하던 부대를 방문했다가 화들짝 놀랐다. 40년 전과 인프라가 달라진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간의 소득수준에 걸맞은 군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국방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다. 신세대 병사들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막사 1520동을 짓는 게 군의 목표다.

 

”생활은 편하게 하고 임무는 철저하게 하면 된다. 힘들어야 군기가 나온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윤우 공군 17전투비행단장.준장)”

 

비행복을 입고 인터뷰에 나선 윤 단장의 문제의식과 수사(修辭)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러나 육군훈련소(충남 논산시 연무읍 죽평리)와 전후방의 기성부대에서 벌어지는 일일(日日)은 놀라웠다. 외환위기 직전의 거품경제 시절 대학에 들어갔고 천방지축 X세대로 불리던 기자가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일병과 상병이 반말로 대화하는가 하면, 장교와 병사가 형 동생처럼 지낸다. 같은 내무반 병사들이 서로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한 부대는 선진 병영문화의 모범이라면서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각개전투 교장에 민간인이 찾아와 도끼와 칼로 위협하는가 하면, 신병에게서조차 군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6월 중순 육군훈련소를 11년 만에 찾았다. 육군훈련소는 한마디로 천지개벽해 있었다. 임무에 매몰돼 인권개념이 전무하다시피 하던 관행이 확 줄어들었다.

“예전 군대는 일본식이었다. 훈련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장종대 육군훈련소장·육군 소장)

 

군대가 바뀌고 있다. 비합리적인 문화가 눈에 띄게 줄었으며 병사 인권도 소 닭 보듯 하지 않는다. 훈련병이 쓰는 화장실 비데는 옛날 군대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2005년 육군훈련소 중대장이 훈련병에게 인분을 먹인 사건이 눈앞에 겹친다.

 

그러나 군 원로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처럼 빠른 변화를 두고 군 기강 해이를 걱정한다. 군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스실에서 방독면 벗을 자원자?”

 

화생방 교장은 군 복무를 마친 남성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추억의 장소다. 그런데 요즘엔 사고가 날까 봐 가스실에서 훈련병의 방독면을 벗기지 않는단다. 몇몇 훈련병이 가스실에서 방독면을 벗어보겠다고 나섰다.

 

”너희들 몸 건강하지? 강제로 시키는 것 아니다. 자발적으로 지원한 거다.”

 

훈련병을 다루는 태도가 사뭇 조심스럽다. 뒷말이 나올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사진기자와 함께 K-1 방독면을 쓰고 가스실에 들어갔다. 방독면의 끈을 헐겁게 조인 때문인지 가스가 조금씩 들어온다. 헐거운 방독면만큼이나 화생방 훈련은 느슨했다. 군가를 부르며 눈물 콧물을 흘리던 옛 기억이 스쳐간다.

 

“가스실에서 군가를 부르게 하거나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킨 건 모두가 쓸데없는 짓이었죠. 사실 방독면 사용법만 제대로 숙지하면 되는데요.”(장교 A씨)

 

각개전투 교장에선 느닷없이 도끼와 칼을 쥔 이웃 주민이 나타났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라는데 훈련장 소음이 시끄럽다며 행패를 부렸다. 이 사람이 소란을 피운 탓인지 훈련은 싱거웠다. “훈련병들이 편해 보인다”는 질문에 한 장교는 “여름이 문제다. 날씨가 더워서 걱정”이라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갓 입대한 신세대 훈련병들에게서는 군기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니요. 재미있어요”라고 대답하며 키득키득 웃는다. 훈련 도중 조교들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고, 카메라를 향해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훈련병도 있었다. 거리낌 없는 훈련병들의 행동에서 기강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꼭 소풍 나온 학생들 같았다.

 

“나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분대장(훈련소에서 ‘조교’ 구실을 하는 사병을 분대장이라고 부른다)들이 불쌍해요. 이런 시스템에서 제대로 통솔할 수 있겠습니까?”(장교 B씨)

 

군인 역시 대한민국 시민이므로 그들의 인권은 철두철미하게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생활도 느슨하고, 훈련도 싱거워서는 안 된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야 할 각개전투 교장에서 병사들이 싱겁게 웃는 건 개혁이 아니다.

 

장교들의 의견은 ‘공식’ 인터뷰와 ‘비공식’ 인터뷰의 내용이 크게 달랐다. 취재팀이 비공식적으로 접촉한 영관급, 위관급 장교의 절대 다수가 병사들의 군기와 자세가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중 두 장교의 주장을 들어보자.

 

“지휘관 대다수가 전투력 증대보다 사고 예방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진급 때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병들이 더 편하게 생활하게끔 하겠다며 부대들이 경쟁하는 지금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앞으로는 허물 없이 임기를 마치려면 병사 부모의 눈치까지 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병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군기는 살아 있어야 한다.”

 

일부 전후방부대의 군 시설 개선은 눈부시다. 당연히 더욱 좋아져야 한다. 그러나 그만큼 군 기강도 바로서야 하지 않을까? 군 원로들의 우려가‘기우(杞憂)’인것만 같지는 않다. 군이 키워나가야 할 소프트파워의 핵심인 병사들이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었다.

 

<주간동아>

-지금 발매 중인 <주간동아> 592호 커버스토리 ‘약군(弱軍)시대’에서 전후방 부대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의 생활 및 훈련 모습 등 자세한 내용의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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