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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410 : 고려의 역사 179 (제25대 충렬왕실록 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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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410 : 고려의 역사 179 (제25대 충렬왕실록 6)

두바퀴인생 2011. 11. 4. 08:12

 

 

 

한국의 역사 410 : 고려의 역사 179 (제25대 충렬왕실록 6)   

 

제25대 충렬왕실록

(1234~1308년, 재위 : 1274 6월~1298년 1월, 1298년 8월 복위~1308년 7월, 1298년부터 동년 8월 초까지는 충선왕 재위기간이므로 총 재위기간은 33년 6개월)  

 

4. 일연과 <삼국유사>

 

몽고의 고려 복속정책이 급속도로 진행되던 13세기 말, 고려의 문화와 역사가 형편없는 취급을 받아 민족성이 사라지고 있던 시기에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기반 마련에 박차를 가하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승려 일연이다.

 

일연은 김언정의 아들로 1206년 경상도 장산(경산)에서 태어났으며, 처음 법명은 견명이고, 처음 자는 회연, 자호는 목암이다. 1214년 지금의 광주 지방인 해양의 무량사에 가서 학문을 닦았으며, 1219년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여러 곳에서 수련하여 구산문 사선의 으뜸이 되었다.

 

1227년에는 승과의 선불장에 응시하여 장원인 상상과에 급제하고 비슬산 보암당에 거처하면서 수년 동안 참선과 수행정진에 몰두하엿다. 1236년에 여몽전쟁이 한창일 때 조정으로부터 삼중대사의 승계를 받앗으며, 1246년에는 선사에 올랐다. 또한 1249년에는 남해의 정림사로 자리를 옮겨 대장경 주조좌업에 참여하였다. 1256년 여름에 윤산의 길상암에 <중편조동오위> 2권을 지었고, 1259년에는 대선사의 승계를 제수받았다. 또한 1261년에는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갔으며, 선월사에 머무르며 설법을 행하고 지눌의 법을 계승하였다.

 

이후 오어사에 머무르다가 인흥사의 만회를 이어 후학을 양성하였고, 1268년에는 조정에서 선.교 양종 승려 1백여 명을 대상으로 대장낙성회향법회를 베풀자 그것을 주관하였다.

 

충렬왕 즉위 후에는 청도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고, 이때부터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1277년에서 1281년 사이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총 5권 2책으로 이뤄져 있으며, 권에 상관없이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력 편은 삼국, 가락국, 후고구려, 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이며, 기이 편은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 단편적인 역사를 57항목으로 서술하였는데 1,2권에 계속된다. 기이 편의 서두에는 이 편의 설정 이유와 서문이 붙어 있다. 흥법 편에는 삼국의 불교 수용과 그 융성에 대한 6항목, 탑상 편에는 탑과 불상에 대한 사실 31항목, 의해 편에는 원광서학조를 비롯한 신라의 고승들에 대한 전기를 중심으로 하는 14항목, 신주 편에는 신라의 밀교 승려들에 관한 3항목, 감통 편에는 신앙의 영적인 면과 감응에 대한 10항목을 다루고 있다. 또 피은 편에는 속세를 초탈한 인물에 대한 행적 10항목, 효선 편에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불교적인 선행에 대한 미담 5항목을 수록하고 있다.

 

이처럼 5권 9편 144항목으로 이뤄진 <삼국유사>의 체제는 그 어떤 책에서도 찿아볼 수 없을 만큼 특이하기 때문에 자칫 설화집이나 민담집 정도로 이해되기 쉽상이다. 하지만 그 형식의 차이가 있을 뿐 일연은 이 책을 분명 역사서로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기이 편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편자의 평가가 부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일연이 청년시절에 사료를 모아 70세 이후의 노년기에 집필한 이 책은 1289년 그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이후에 제자 무극에 의해서 1310년에 처음으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그 내용의 특이성으로 ㅇ니해 고려시대에는 그다지 그 가치를 인정맏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넘어와서는 <동국여지승람>, <동사강목>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물론 이 책들은 <삼국유사>의 기록들이 허황하여 믿을 바가 못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주선 초부터 현재까지 편찬을 거듭하면서 한국의 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유사>의 편찬작업에 인용된 역사, 불교, 설화 등에 관한 서적과 문집류, 고기 등의 문헌들은 지금은 전하지 않는 것들이라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여기에 언급된 '단군이야기'를 비롯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 이야기는 후대 사학자들의 역사 이해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또한 여기에 수록된 14수의 향가는 한국 고대문학 연구의 보석 같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고대의 역사, 지리, 문학, 종교, 언어, 민속, 사상, 미술, 고고학 등 모든 부분의 열쇠를 제공하는 총체적인 문화 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내용들을 후세에 전달하여 민족성을 고취시키고자 했던 일연의 깊은 뜻을 되새기게끔 하고 있다.

 

'충렬왕실록'은 충목왕 2년 1346년 10월 왕명에 의해 편찬되었다. 이 때 부원군 이제현, 찬성사 안축, 한산군 이곡, 안산군 안진, 제학 이인복 등은 왕명에 따라 먼저 민지의 <편년강목>을 보충하여 재편찬하고 충렬, 충선, 충숙의 3대 실록을 함께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