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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우면산의 가을 30 : 갈등과 탐욕의 세월

 

 

우면산의 가을 30 : 갈등과 탐욕의 세월

 

 

                                                                                  새벽길 가로등과 달

 

 

가을의 막바지이며 겨울의 문턱인 11월을 맞았다. 벌써 한 해도 마지막을 향해 소리없이 달리고 있다. 새벽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가로수 나무마다 낙엽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고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낙엽 쓸기에도 바쁜 모습이다. 스산한 새벽 바람에 휘날리며 떨어지는 낙엽을 보노라면 꼭 나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아 씁슬하기만 하다. 어차피 한 세월 살다가 갈 것인데 너무 악착스럽게 살아온 게 아닌지? 그런다고 별로 이룬것고 없는 인생이 아닌가? 또 무엇이던지 이룬들 그것들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 것인지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내가 허무주의에 빠져 잇는 것도 아니다. 또 현실을 비판한다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왜 현실을 이렇게 비판하고 허무함을 느낄까?

 

그것은 아마 여러 나라 역사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느낀 결과일 것이다. 고대 로마사, 중국사, 한국사를 읽고 올리면서 그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나라를 세우고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혔고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년에서 천년 이상 왕조를 이루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다 허물어져가는 돌무덤이나 유적 뿐이다. 나라마다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구축했던 그 웅장하던 궁궐도, 99칸이 넘는 황궁보다 더 크고 넓은 저택을 지어서 살았다는 60년 최씨 무신정권의 시조인 개경의 최충헌 집도, 그 흔적을 찿을 수가 없다. 그 웅비하던 동북아의 패자였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허물어져가는 돌무덤과 비석만이 우리들에게 전해올 뿐이다. 로마와 카르타고가 200년 이상 폐권을 벌인 전쟁인 '포에니 전쟁'의 영웅 '한니발 장군'의 유적이나 카르타고의 유적은 흔적도 없다. 그 중에서도 로마의 유적이 비교적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는 편이며 그 웅대함이나 규모에 그져 감탄할 뿐이다.

 

그런대도 역사를 보면 인간들은 살아 있을 동안 무소불위의 권세와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치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탐욕으로 점철되어 있다. 또 그들은 누구에게나 찿아오는 죽음을 외면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지금 서기 2011년을 마무리 하고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말이다. 낙엽은 싸고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을 먹고 자라 곡식이 되고 열매가 되고 뿌리가 되어 초목으로 성장하여 번성하여 자란다. 그것을 후손들은 다시 먹고 마시고 하며 또다시 탐욕을 저지르며 일생을 살다가 죽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이 우리들 인생의 출생과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인 자연의 현상을 볼 때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권세와 부귀영화 모두가  다 허망한 일인지를 인간들은 알면서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들인지도 모른다.  

 

지난 서울 시장 보선에서 젊은층과 중장년층의 세대간의 갈등을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 작은 혁명이라고도 한다. 구태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결국 표심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이번 선거 혁명을 주도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몰론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 썩은 정치를 도려내고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는 것은 과거에도 시도되었고 지금도 시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 권력이 오래되고 뿌리가 강하면 강할수록 개혁에는 피를 수반하는 혁명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힘의 지배 시대가 아닌 오늘날에는 소셜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고 있다. 트위트로 실시간 정보를 주고 받으며 팔로워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면서 그 폭발적인 힘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일수록 그 영향력은 그 만큼 더 클 것이다. 원래 유권자의 판단력은 각자 견해에 따라 다르며 선호도도 다르다. 그래서 부부도 지지자가 다르며 자신의 판단력보다 주변의 군중 심리에 의해 쉽게 변질되기 쉽다. 군중들이 흥분하는 것은 자극적인 언사와 호소, 선전.선동에 취약하다. 그것은 사이비 종교 단체의 교주가 신도들에게 자신이 천상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혹세무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판단력이 무지한 유권자가 마음이 끌리듯이 신도들도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아들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었으며 선지자도 아니었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성군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가 없으며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줄수는 없다. 똑같은 부를 똑같이 나누어 주어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개인의 성향과 태도, 판단력, 능력에 따라 부자와 빈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새벽길

 

 

지나번 영풍문고에서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인으로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씨가 그 후 연이어 내놓은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와 '십자군 이야기 (1권)'라는 책을 사서 지금 읽고 있다. 지난번 '로마인 이야기'를 전부 다 읽지를 못하여 미루고 있는데 실제는 15권 전체 책값이 부담되어 미루어 왔고 다음 번에는 나머지를 사서 볼 예정이다. 그래서 우선 이 책을 먼저 샀던 것이다.

    

새벽에 고속터미널 근방 뉴코아 백화점과 킹스 클럽을 지나다 보니 조명 업체가 나와 크레인을 동원하여 년말 크리스마스 트리와 조명 장식이 한창이다. 백화점은 대중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대표적인 대형 점포이다. 경쾌하고 은은한 캐럴송과 휘황찬란한 트리를 만들어 네온사인으로 불밝히고 소비자들을 들뜨게 만들어 소비 심리를 부추기고 부유층을 포함하여 증산층 주부들까지 몰려다니면서 서로 부자행세를 내려고 마구잡이로 비싼 상품을 구매하는 등 충동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해외 유명 상표의 옷가지, 가방, 악세서리 등을 파는 면세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수백, 수천 만원씩하는 상품이 날개돗히듯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새벽 주유소 24시

 

 

우리 사회의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주부들이다. 여자라며누 누구나 양귀비, 무비같은 미모에 온 몸에는 금은보화를 걸치고 산해진미에 수많은 궁녀들을 거느리고 무소불위의 권세를 부리며 왕비처럼 사는 게 꿈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족들에게 벼슬과 부를 주어 천세만세 영화를 누리기를 바랄 것이다. 그 사치와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수많은 영웅호걸이 나라를 망쳤고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대부분의 가장들이 성실하게 노력하여 겨우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지만, 일부 부유층은 각가지 부도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 허영과 사치에 빠지기 쉬운 지혜롭지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한 속이 빈 마누라의 사치와 허영을 채워주기 위해 돈을 물쓰듯 하는 부류가 있기에 그럴 것이다.  

 

또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에서도 살 수도 있는 상품을 유명 상표만 붙여 상품 가격에는 수수료가 50% 이상 부과하여 소비자를 우롱하며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입점 상인들을 울리고 있다. 그들은 입점 상인들에게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면서 언제라도 퇴출을 강요할 수 있고 불평등 조약으로 권리금과 시설비를 포기하고 보증금만 겨우 받고 알거지가 되어 쫓겨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정반합의 원리에 의해 정의 정점에서 이제 새로운 반의 싸이클에 들어선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사회에서 탄생한 대기업의 횡포이며 가진자들이 벌이는 약자에 대한 수탈행위나 마찬가지이다. 또 카드사, 증권사, 보험사들이 대표적으로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허가된 도적들이나 마찬가지이다. 또 정부는 이러한 대기업들에게 수익의 극대회를 가져가도록 방치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정치헌금 등 뒷돈을 받으며 그들이 부를 축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나 진배없는 꼴이다. 

 

아래는 세대 분열과 갈등, 그리고 카드,증권,보험사들의 탐욕에 대한 사설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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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분열과 갈등

 

시민단체를 집권세력으로 만든 지난 10·26 선거를 '작은 혁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SNS는 서로 알리고, 부추기고, 응원하고, 성(城)을 무너뜨리는 일에는 제격이었다. 온·오프라인 광장에 사람을 모으는 일에도 효율적이었다. 이제 그 SNS와 시민운동가들이 미래를 위해 새로운 성을 쌓고, 협상 끝에 온건한 합의를 도출하고, 밭을 갈고, 곡식을 거두고,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일에도 잘 맞을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혁명은 두 달 동안 할 일을 단 이틀 만에 해치우기도 하지만 200년 동안 공들인 일을 2년 만에 무너뜨리기도 한다"고 했다. 무상복지가 고삐 풀린 것처럼 계속될 경우 국가 재정의 지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채의 짐이 커질까 봐, 그 짐을 지금 20~40대가 짊어지게 될까 봐 50·60대는 아직도 불안하다.

50·60대가 학생일 땐 등록금이 거저였고, 졸업만 하면 직장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기에 "청춘이 설렌다"고 했던 건 아니다. 20~40대가 민태원의 수필집 '청춘예찬'을 낡은 고문서쯤으로 던져버리고 '멘토'라는 야릇한 이름의 흥행 문필가들로부터 달콤하고 부드러운 위로의 사탕을 입에 넣어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반포천 산책로 입구

 

 

탐욕에 찌든 증권, 보험, 카드사

 

올해 사상 최대인 30조원 순익을 예상하는 국내 금융권의 이기적 탐욕이 그칠 줄 모른다. 증권업계는 여전히 각종 수수료 인하에 소극적이고, 보험업계는 담합을 통한 보험료 인상에 급급하다. 자영업자 가맹점 수수료를 찔끔 낮춘 카드업계는 수익 감소분을 국민한테 덮어씌우는 판이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에 시달리는 서민 고통을 외면한 천민 금융자본의 냄새가 넘쳐난다.

우선 주가가 오르든 말든 가만히 앉아 연간 최대 9조원의 수수료를 챙기는 증권업계의 고통 분담 노력이 아쉽다. 주식 위탁매매 및 펀드 수수료로만 당기순이익의 3배에 육박하는 한 해 평균 7조6000억원을 번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겐 삼성전자보다 많은 고액 연봉을 퍼주고, 순익의 절반 이상을 주주한테 배당하는 돈잔치를 계속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분노의 ‘월가 시위’가 한국에서 언제 폭발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보험사 역시 탐욕에서 예외가 아니다. 손해보험업계는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80%를 넘었다며 보험료를 전격 인상했다. 하지만 올 들어 손해율은 70%대로 하락했고 당기순이익은 작년보다 50% 이상 늘었는데도 보험료는 요지부동이다. 보험료를 올려 주주들 배만 불린 꼴이다. 생명보험업계의 보험료 담합도 지탄받아야 한다. 2007년 500억원, 2008년 265억원에 이은 올해 3600억원의 공정위 과징금은 생보사들의 도덕성을 의심케 한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반포천 산책로

신용카드사들의 대(對)고객 부가서비스 축소는 더 치졸하다. 이달부터 마일리지 포인트 축소, 할인혜택 기준 상향, 주유소ㆍ놀이공원ㆍ영화관 요금할인 축소 등에 나선 것이다. 이러니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호텔ㆍ병의원 등 모든 업종에서 비난을 사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카드 결제비중 사상 첫 60%, 결제금액 500조원대 시대에 걸맞지 않은 약탈적 영업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불투명한 수수료 체계 및 기준을 당장 정비하기 바란다.

금융은 정부가 허가한 대표적인 라이선스 산업이다. 고통 분담 요구를 단순한 포퓰리즘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금융권마다 최고 품질의 서비스를 최저 수준으로 공급해야 한다. 감독당국은 자신들의 전관예우나 밥그릇 싸움에 앞서 금융회사의 일방적인 탐욕을 사전에 제거, 국민 신뢰를 높이기 바란다. 그게 감독당국의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