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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403 : 고려의 역사 172(삼별초의 대몽항쟁에 대한 평가 1) 본문
한국의 역사 403 : 고려의 역사 172(삼별초의 대몽항쟁에 대한 평가 1)
삼별초 대몽항쟁에 대한 평가 1
이제 고종 실록을 마감하면서 고려의 대몽항쟁 중 삼별초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를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그동안 고려의 역사와 무신정권 역사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KBS에서 몇 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한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드라마를 줄곧 보았다. 그래서 역사적인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글쓰기에도 재미기 있었다.
고려의 역사는 후삼국 사대의 영웅들의 웅장한 무용담과 삶과 죽음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태조 왕건이 자력에 의한 후삼국 통일과정, 초기 호족들의 득세, 광종의 피비린내 나는 개혁으로 노비안건법, 과거제를 도입하여 호족들의 세력을 누르고 중앙집권화와 왕권을 확립하였던 고려는 불교 진흥으로 백성들을 교화시키고 유교를 중시하여 문신들의 천하가 되었다. 이자겸 일족들이 벌인 외척정치는 왕권을 위협하였고 고려 왕실의 멸망까지 넘보던 위기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절대권력을 누렸던 이자겸의 외척정치는 부패의 극을 달렸고 척준경에 의해 이자겸을 겨우 제거했던 인종이 개경의 문신귀족들에게게 실망한 나머지 새로운 방책을 찿던 중 묘청의 등장으로 서경천도론에 빠져 궁궐을 짓는 등 천도까지 생각하였으나 개경문신들의 완강한 반대로 그 실현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묘청은 서경 군사력을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반란에 참여한 세경 세력은 대부분 북방의 군부세력으로 위세를 떨쳤으나 결국 토벌군을 이끌고 출전한 김부식에게 반란이 진압되자 묘청을 위시한 서경파의 무신들이 대대적으로 숙청당하되게 된다.
이 사건 결과 개경의 문신들이 권력을 잡고 농단하였고 의종대에는 내시와 문신들이 사치방탕에 빠지면서 무신들을 천시하자, 그것을 참다못한 정중부, 이의방, 이고, 채원 등이 무신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무엇이던지 한 쪽이 과하면 다른 쪽에서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것, 전쟁이 없던 그 시절 군을 무시하고 천시하던 사회 풍토는 무신들의 불만을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신만을 우대하던 고려 조정이 정중부의 무신정변 이후 정중부- 이의방-정중부 부자-경대승-이의민에 이어지는 20년 동안 무신들끼리 극심한 권력투쟁이 반복되었고 부패와 수탈은 극심해졌다. 결국 최충헌.최충수 형제에 의한 반정으로 절대권력을 누리면서 부패를 일삼던 이의민 일족이 제거되면서 최씨 무신정권이 집권하기를 60년, 거의 80여 년 가까운 무신시대를 지내면서 왕은 허수아비요, 난신적자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권력을 농단하면서 부패와 수탈은 극심하였고 망이. 망소이, 김사미.효심의 난 등 백성들은 초적이 되어 각지에서 봉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몽고군이 침공하면서 고려군이 무력하게 무너지고 전국이 초토화 되자 무신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벌였다.
7차에 걸친 몽고군의 침공으로 고려는 초토화 되었고, 무신정권은 강화도에서 몽고군에게 끈질기게 저항하면서 한편으로는 반탕과 사치를 일삼고 최충헌-최의-최항-최의-김준-임연-임유무로 이어지는 권력승계가 쿠테타로 이어지고 있었다. 몽고와 강화가 가시화되고 원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원종이 개경으로 들어가면서 출륙환도가 이루어지자 무신정권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살해되면서 무신정권이 붕괴되었다. 무신정권의 하수인이요 사병집단이면서도 민중탄압의 도구로 이용되었고, 대몽항쟁의 추제세력이면서 무신정권을 유지하는 핵심 세력이었던 삼별초는 결국 주인을 잃게 되었고 이는 곧 자신들의 붕괴를 가져올 것은 당연하므로 결국 고려 왕실과 몽고군에 대항하여 집단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삼별초의 반란
삼별초는 야별초의 좌, 우별초와 신의군으로 구성되었다. 이중 야별초는 고려시대에 수도 치안을 맡은 정규군인 금오위와 수도의 방위를 맡은 3위가 있었음을 감안할때 반란, 봉기 전담 특수 부대였다는 것이 현재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나중에 결성된 신의군은 몽고에서 탈출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로 주로 구성되었다.
즉, 삼별초는 대몽 항쟁을 주로 했던 부대가 아닌 백성들을 탄압하고 정권유지에 쓰이던 무신정권 보위대였던 것이다. 최씨 정권 4대 집권자 최의가 김준에게 죽임을 당할때 동원된 부대도 야별초였다.
1232년 강화도로 천도를 한 이후 최의 -> 김준 -> 임연 -> 임유무 등으로 정변을 거쳐 집권자가 바뀌면서 애초 천도 목적과는 달리 강화도는 정쟁속에 휘말려들었고 백성들의 안위는 잊혀져갔다. 여러 차례 무력 정변의 주력군으로 활용된 삼별초는 주인이 바뀌어도 그 중요성으로 인해 특혜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몽고의 침략 이후 38년, 무신 정변 100년 만에 당시 임금 원종은 송송례, 홍문계등과 함께 임유무를 죽이고 무신정권을 무력화시키자 개경으로 환도하여 몽고와 화평교섭을 맺는다. 무신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했던 특수 부대 삼별초를 해산해서 과거 기득권 세력의 근본을 뿌리뽑으려는 원종의 왕권 회복은 반대로 삼별초 구성원들에게는 기득권의 상실일수 밖에 없었다.
몽고 정부에 입조한 원종에 반해 진정한 대몽 항쟁을 하려 했던 것인지 기득권을 지키려 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삼별초의 난의 이유는 학자마다 다르다. 난을 일으킨지 3일만에 삼별초는 본진을 진도로 옮기면서 몇가지 조치를 취한다.
(삼별초 이동 경로와 전투 범위)
개경 천도 결정에 따라 강화도를 빠져나가던 당시 귀족들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선박 천여 척으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삼별초는 그해 6월 새 독립정부를 세우고 승화후 온을 황제로 받들어 이후 진도 ->제주도로 이어지는 고려 몽고 연합군과의 전투를 개시한다. 여기서 진정한 대몽항쟁이었다면 왜 귀족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았는지, 왜 새로운 황제를 옹립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왜 강화도를 탈출하려는 백성들에게까지 화살을 쏘면서 막고 그들을 진도까지 끌고갔는지도 의문이다.
몽고에 입조한 원종을 부정하고 고려 왕조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의미로 새로운 황제를 옹립했다는 학설이 많기는 하나, 항전을 목적으로 한 군사 부대가 새로운 왕권까지 만들면서 국가의 형태를 갖추려 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즉, 이것은 몽고뿐만 아니라 그간 무신정권에 억눌려 살았던 왕권의 부활을 부정한 행위로 그들이 보위했던 무신정권의 시각과 일치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어떤 다른 목적성이 있었던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한다.
(진도 삼별초의 근거지였던 용장산성)
혹 삼별초의 행동은 그간 누려온 자신들의 기득권을 새로운 황제로부터 계속 인정받고 반대파의 가족을 이용해 안위를 지키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삼별초는 몽고와의 투쟁 내용과 별도로 시작부터 쿠데타 반란군이 되는 셈이다. 그 반란을 진압하는 데 국가 상비군 체제가 약했던 고려는 몽고군과 함께 연합군을 꾸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대몽항쟁으로 미화된 부분이 있다.
결국 삼별초는 1273년 4월 28일 총 160척의 전함으로 공격해온 연합군에게 제주도에서 패하면 서 역사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삼별초와 려몽 연합군 전투장면)
진도 - 제주도 전투 기간의 삼별초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대몽 항쟁의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의 하수인으로 민중을 학대했던 삼별초의 개전 의지가 과연 순수한 대몽항쟁이었는 지 아니면 상실하게 될 기득권에 대한 반발이었는 지는 분명치 않다. 삼별초가 무신 정권의 후원자로서 누려온 입지를 잃고 다시 노비, 천민으로 되돌아갈 위험과 그 명단이 원종에 의해 몽고에 전달될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스스로 해결책을 만든것은 아닐까 ? 즉, 몽고에 대한 항쟁의지보다 는 자신들을 해체할 고려 정부에 대한 반기로서 봉기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 진실은 아마도 초기 진도 전투를 지휘했던 배중손, 노영희등 삼별초 지휘관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속시원히 알수 있을 것 같다. 이유가 어쨌든 5.16 군사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 삼별초의 난이 새로이 부각되고 대몽 항쟁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지게 된 점은 시사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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