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한국의 역사 401 : 고려의 역사 170 (제24대 원종실록 5) 본문
한국의 역사 401 : 고려의 역사 170 (제24대 원종실록 5)
제24대 원종실록
(1219~1274년, 재위 1259년 6월~1274년 6월, 15년)
3. 김준과 임연의 말기 무신정권(계속)
내심 원종을 제거해야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건 건의를 받자 김준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단번에 국왕 폐립모의를 세웠다.
김준은 우선 녹사 엄수안을 시켜 아우 김충에게 모의 사실을 통보하했다. 그런데 엄수안은 오히려 김충을 슬득하여 국왕 폐립모의를 중지하도록 하였다. 이 바람에 김준은 하는 수 없이 병력을 이끌고 몽고에 입조했다가 다행히 별탈없이 돌아왔다. 그러나 몽고에서 돌아온 김준은 그 후부터 몽고 사신을 지나치게 냉대하여 외교적인 문제를 일으키는가 하면 걸핏하면 몽고 사신을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곤 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원종은 드디어 김준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원종은 낭장 강윤소를 불러 김준 제거에 앞장설 인물을 물색했고, 임연을 적임자로 삼았다. 그후 강윤소는 임연을 찿아가 원종의 뜻을 전달하고 김준을 제거할 것을 종용했다.
임연은 한때 김준을 무척 따랐던 인물이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임연을 김준의 양자라고 말할 정도였다. 임연은 최의를 죽일 때도 많은 공을 세웠고, 김준과 함께 위사공신 칭호도 받았다. 또한 그 공으로 추밀원 부사에까지 올랐는데 이때부터 김준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김준은 권력을 독식하게 되자 정사를 너무 함부로 다루었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임연은 그를 싫어하게 되었다.
우너종도 임연이 김준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관계를 이용하여 김준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김준을 죽이라는 원종의 밀명을 받은 임연은 1269년 6월 환관 김경, 최은 등과 함께 힘을 합쳐 김준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임연은 큰 몽둥이를 만들어 궤 속에 감추고 마치 대단한 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꾸며서 궁중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거사일을 잡은 다음 김준이 입궐하기를 기다렸다. 거사일은 왕이 몽고 사신을 영접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 김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종과 임연은 거사계획이 누설된 줄 알고 무척 당황하였다.
거사 예정일 다음 날도 김준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에 원종은 대담하게도 김경을 시켜 왕명이라 하고 김준을 입궐토록 했다. 그런데 그때 김준의 처족인 환관 박문기가 거사계획을 눈치채고 김준에게 달려갔다. 그는 김준의 집으로 달려가던 도중 김준을 만났다. 하지만 그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는데, 호위병들이 너무 많아 접근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김준이 입궐하자 환관 최은은 김준을 편전으로 안내하였다가 그 앞에 이르자 다시 왕이 병중이라고 말하면서 장당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 때 영초 김상이 몽둥이로 김준을 내리쳤다. 그리고 김준이 비명을 지르자 다시 칼로 찔러 죽였다. 그 다음엔 김충이 내전으로 안내되었는데, 김충은 핏자국을 보고 모의를 눈치 채고 달아나려 하였다. 하지만 환관 김자정이 보낸 김자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김준 형제가 피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들의 추종자들이 합문 밖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환관 김자정이 문을 닫고 김준 형제가 이미 죽었음을 선포하자 그들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때 임연은 야별초를 풀어서 김준의 자식들과 측근들을 잡아들여 살해하고 있었다. 이에 김준의 아들 김주가 도당을 이끌고 항전하였으나 야별초에게 밀려 쫓겨다니다가 결국 잡혀 죽었다.
이렇게 하여 김준시대는 끝나고 임연시대가 도래했다. 그는 정권을 잡자 곧 교정별감에 올라 거사에 함께 한 김경, 최은 등을 죽이고 권력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연 역시 개경 환도 문제로 원종과 부딪힌다. 그러자 정권을 잡은 지 5개월 만인 1269년 11월 조정 대신들과 의논하여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 창을 왕으로 세운다. 그리고 원종이 병으로 인하여 스스로 물러난 것처럼 조서를 꾸며 곽여필로 하여금 원나라에 다녀오도록 한다. 그런데 당시 원에 머물고 있던 태자 심이 원종의 선위소식을 듣고 돌아오던 중에 정주의 관노로부터 임연이 원종을 폐위하였음을 전해듣고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원 세조에게 고발하는 바람에 태자와 몽고군이 달려와 무력 시위를 벌이자 임연은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일로 쿠빌라이는 임연을 비롯한 원종, 안경공 창 등을 원나라로 소환하였다. 이에 임연은 재추들과 의논하여 먼저 원종을 복위시키고 자신은 병을 핑게로 원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대신 그의 아들 임유간을 원으로 보냈다.
임유간이 원에 도착하여 쿠빌라이를 만나자 직접 심문을 받았고, 결국 임연이 원종을 폐위했음이 드러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고 임연은 각 지역에 야별초를 보내 백성들을 산성과 섬으로 이주시키고 몽고와의 일전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고민이 너무 지나쳤던지 그는 갑자기 병으로 드러눕고 말았고, 1270년 결국 억누르고 있던 홧병이 등창으로 터져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임연이 사망하자 원종을 대신해 왕위를 지키고 있던 순안공 왕종은 임연의 둘째 아들 임유무를 교정별감에 임명했다. 이 때 원종은 임유간을 포박한 채 귀국길에 올라 있었다. 그는 강화도로 가지 않고 바로 개경으로 환도할 생각이었고, 이 소식을 들은 임유무는 원종의 개경환도를 막기 위해 야별초를 움직여 경상도 주민들을 섬과 산성으로 이주시키려 했다. 하지만 안찰사 최간과 동경부유수 주열, 판관 엄수인 등이 합의하여 경상도로 진출한 야별초를 모두 체포하는 바람에 이 시도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 원종이 고려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임유무는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어가는 개경에 임박해 있었고, 대세가 기울어졌다고 판단한 홍문계와 송송례에 의해 임유무가 살해됨으로써 1백 년간 지속되던 무신정권 시대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이후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에 의해 의종이 살해되면서 시작된 무신정권은 고려 왕실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후 무신들에 의한 권력 독점으로 정치가 사라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고려 사회는 민란과 반란행렬에 휘말려 몰락으로 치닫는다. 그런 와중에도 최씨 무신정권은 여전히 일인 독재정치를 구축하였고, 그런 상황에서 북쪽에서 원이 일어나 내침을 감횅하여 고려는 결국 몽고에 복속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몽고의 내정간섭으로 무신정권이 몰락하고 왕정이 회복되면서 고려는 급기야 몽고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신들의 마지막 보루인 삼별초가 자신들의 해체 위기에 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삼별초의 대몽항쟁은 오히려 몽고의 내정간섭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이후 고려 사회는 약 1백 년 동안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다. 삼별초의 반란은 결국 백성들의 대몽항쟁과 맞물려 고려의 국권회복 운동으로 전개한다.
무신정권의 독재적 권력이 결국 고려를 몰락으로 이끈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 > 생각의 쉼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역사 403 : 고려의 역사 172(삼별초의 대몽항쟁에 대한 평가 1) (0) | 2011.10.28 |
---|---|
한국의 역사 402 : 고려의 역사 171 (제24대 원종실록 6) (0) | 2011.10.27 |
우면산의 가을 27 : 5.16혁명 50년, 박정희의 권력 평가 2 (0) | 2011.10.25 |
우면산의 가을 25 : 10.26 당시 신재순, "난 딸 둔 이혼녀였다." (0) | 2011.10.25 |
한국의 역사 400 : 고려의 역사 169 (제24대 원종실록 4) (0) | 2011.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