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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98 : 고려의 역사 166 (제24대 원종실록 2) 본문
한국의 역사 398 : 고려의 역사 166 (제24대 원종실록 2)
제24대 원종실록
(1219~1274년, 재위 1259년 6월~1274년 6월, 15년)
1. 원종의 친원정책과 무신정권의 종식(계속)
이런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원종은 몽고측의 출륙환도 요구와 무신들의 강화도 고수 주장 사이에서 고심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그는 내심 몽고의 힘을 이용하여 무신들에게 빼앗긴 왕권을 환수하고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몽고의 요구에 따라 우선적으로 출륙환도를 단행하고 다음에 독자적인 힘을 키워 원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의지는 무신들의 강한 반발로 한동안 실행되지 못하게 된다.
새로운 무신정권을 이끌고 있던 사람은 김준이었다. 최의를 제거하던 당시에는 유경이 권좌에 있었으나 권력두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난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김준이 유경을 밀어내고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최씨 무신정권이 무너진 이후 왕은 형식적으로는 왕권을 되찿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힘이 없었다. 이 때문에 강화 궁궐에 도착한 원종은 정사는 뒷전으로 미루고 궁녀들과 음란한 행각을 벌이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게 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몽고와의 유대강화에 주력한다. 원종의 이같은 노력은 무신정권을 몰아내고 동시에 왕권을 회복하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원종은 친몽전책의 일환으로 1261년에 태자 심을 원에 보내어 쿠빌라이가 아라패가를 축출한 것을 축하한다. 이 때 파견된 전문윤은 쿠빌라이를 직접 만나 속리대가 없는 일을 꾸며 참소하는 바람에 여몽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하여 쿠빌라이로부터 다시는 속리대를 고려에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기도 했다. 1264년에는 원으로부터 원종에 대한 친조 요구가 있자 그해 8월에 김준의 동의를 얻어 연도(북경)으로 떠났다. 그리고 9월에 연도에 도착하여 10월까지 머물다가 귀국하였다.
원종의 친조 이후 원의 고려에 대한 경게심도 대폭 완화되었다. 하지만 원에 머물고 있던 홍다구, 조이 등의 고려인들이 고려가 일본과 손을 잡고 원에 대항하려 한다고 참소하여 다시금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 즈음 원은 일본이 자신들에게 사신을 보내지 않는다고 책망하고 고려가 일본을 설득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원에 조공할 것을 거부하였다. 이 때문에 원 조정 내부에서는 일본정벌론이 대두되었고, 이 시점에 홍다구, 조이 등이 고려가 일본과 내통하여 원에 대항하려 한다고 무고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은 1268년 고려에 송나라 정벌을 위한 원군을 요청하였다. 원은 김준 부자 및 아우 김충으로 하여금 원병을 이끌고 연도로 올 것을 요구했는데, 김준은 몽고에 가면 권좌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생각에 원나라 사신을 죽이고 섬으로 들어가 항전할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원종은 김준의 그같은 의견에 반대했다.
원종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원나라 사신을 제거하지 못한 김준이 고민에 빠져 있자 장군 차송우는 원종을 폐할 것을 권고한다. 이에 김준도 원종을 폐립시킬 생각으로 도병마녹사 엄수안을 자신의 아우 김충에게 보내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엄수안은 김준의 생각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충을 설득하여 원종 폐립계획을 저지시킨다. 그후 김준 부자와 김충은 결국 몽고를 별탈없이 다녀왔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김준과 원종의 관계는 매우 악회된다. 김준은 몽고의 사신을 영접하는 일이 없었고, 몽고의 요구에 대해서는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몽고 사신에게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원종은 김준을 극도로 미워하였고, 급기야 1268년 12월 임연을 시켜 김준과 김충을 살해케 했다.
김준이 살해되자 김창세, 허인세 등의 김준 세력의 도당들도 함께 제거되었다. 이렇게 김준 세력을 제거한 원종은 개경 환도를 서두르며 친몽정책에 박차를 가하였다. 하지만 무신정권을 이끌고 있던 임연은 원종의 이 같은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임연은 재상들을 모아 원종을 폐위키로 결정하고 왕의 친서 형식을 빌려 원종의 병이 위독하여 안경공 창에게 선위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원나라에 보냈다. 그리고 1269년 6월 22일 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 창을 왕으로 세웠다. 이 때 태자 심(충렬왕)은 몇 개월 전에 몽고로 떠나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왕위에서 쫓겨난 원종은 태상왕으로 되면서 숭녕부에 머물렀다. 그 무렵 태자 심은 원종이 물러났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가 개성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정주의 관노 정오부가 임연이 왕을 폐립한 사실을 고해 바쳤다. 이에 태자는 몽골에 선위서신을 가지고 갔던 곽여필을 붙잡아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연경으로 급히 되돌아가 쿠빌라이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심의 요청을 받은 쿠빌라이는 즉시 알탈아불화를 보내 국왕 폐립 사건에 대해 추궁하였으나 임연은 원종이 병으로 선위하였다고 대답한다. 이에 몽고측은 병부시랑 흑적을 파견하여 원종과 안경공 창, 임연 등을 연경으로 호출한다. 사태가 이렇게 번지자 임연은 그해 11월 재추들과 논의 하여 안경공을 폐위하고 원종의 왕위를 다시 회복하였다.
그 며칠 뒤에 원종은 왕창과 함게 쿠빌라이의 호출에 호응하여 몽고로 떠났고, 임연은 몽고측의 추궁을 두려워한 나머지 병을 핑계 삼아 자신의 아들 임유간과 심복들을 보냈다.
쿠빌라이 앞에 선 임유간은 원종 폐립문제를 추궁당하자 이장용과 신사전, 원부 탓으로 돌렸고, 이에 격분한 쿠빌라이는 임유간을 옥에 가두고 임연을 다시 호출했다. 하지만 임연은 몽고 입조를 거부하고 야별초로 하여금 백성들을 섬으로 이주토록 하여 몽고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임연은 근심과 울화증을 이기지 못하고 1270년 2월 등창으로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 즈음 원종은 연경을 떠나 귀국길에 올랐고, 임연의 교정별감직은 임유무가 계승하였다.
원종은 몽고에서 돌아오면서 바로 개경 환도를 시행하려 했다. 하지만 임유무는 방호사 및 각 산성별감 등을 각지에 파견하여 백성들을 육지로 나오지 못하게 하면서 원종의 개경 환도를 강력하게 저지했다. 이에 원종은 어사중승 홍문계와 직문하성사 송송례를 시켜 임유무를 제거하였다. 이로써 1백 년 동안 지속되던 무신정권은 종식되었고, 40년 가까이 머무르던 강화도 궁궐 시대도 끝이 났다.
원종이 개경에 환도하고 친몽정권이 들어서자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난을 일으켰다. 배중손은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세우고 관청부서를 설치하여 대장군 유존혁, 상서좌승 이신손 등을 좌우 승선으로 삼았다.
삼별초가 난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받은 원종은 우선 유경 등을 강화도로 보내 삼별초를 달랬다. 하지만 삼별초 지휘부가 새로운 왕을 옹립하고 진도로 이동하여 반란의지를 분명히 하자 원종은 추밀원사 김방경을 전라도 추토사로 삼아 토벌작전을 감행했다. 이 때 몽고의 원수 아해도 군사를 이끌고 연합군으로 형성했다.
삼별초는 여몽연합군으로 구성된 토벌대에 대항하기 위해 제주도와 남해안 섬에 거점을 세웠다. 그 후 삼별초는 남해안의 재해권을 장악하며 위세를 떨쳤으나 1273년 2월 여몽연합군에 의해 토벌된다.
마지막 반몽 세력인 삼별초가 몰락하자 고려 조정은 거의 원에 복속되었으며, 1274년에는 원나라의 매빙사가 와서 남편이 없는 부녀자 140명을 요구하자,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민간에 혼자 사는 여자와 역적의 처, 노비의 딸 등을 뽑아 원에 공녀로 보내는 처지가 되었다. 또한 이 해에 태자 심이 원의 부마가 됨으로써 고려에 대한 원의 입김은 더욱 강화된다.
그런 가운데 원종은 1274년 6월 태자 심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능호는 소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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