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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마음의 평안

우면산의 가을 24 : 가을과 흔적

 

 

우면산의 가을 24 : 가을과 흔적

 

 

                                                                                     새벽 동작대교 전경

 

가을은 우리들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종말을 보는 듯하고 살아아온 지난 날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난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인가? 과연 난 자신의 인생 목표를 이룬 것인가? 앞으로 나의 인생은 어떻게 종말을 맞아할 것인가? 

 

옛날 연정을 품고 첯사랑을 나누었던 고향 또순이는 어디서 잘 살고 있을까? 혹시 지금도 날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현실이 어렵고 힘들고 지치면 지칠수록 그런 생각이 나는 것은 막연한 동경일까? 만약 그때 그녀와 결혼을 했더라면 지금은 어떨까?  이런 막연한 허망하기 짝이 없는 그리움을 생각해 보지만 인생은 오십보 백보인 것을 우리는 모른다. 궁금증과 호기심이 사라지면 무관심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지겨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더욱 향기나 나고 보고 싶고 긍금해지는 것은 기대하는 환상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내 마음을 100%로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을 그 때마다 만족시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멋이 아니라 속에서 나타나는 맛이다. 사람의 종류는 네 가지가 있는데, 멋은 있으나 맛이 없고, 맛은 있으나 멋이 없고, 멋도 맛도 없는 사람과 멋도 있고 맛도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어느쪽에 속하는가?  

 

 

리비아 카다피의 죽음이 뉴스로 전해졌다. 절대권력을 40여 년 이상 누리던 독재자가 드디어 종말을 맞았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며 독재정치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주변 시리아, 예멘의 지도자도 불안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 부자는 어떨가? 아마 그들은 경제는 파탄났으나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한 천년만년 그들의 정권이 지속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고려 무신정권이 80여 년 이상 집권한 것을 보면  아직도 더 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백성을 토탄에 빠지게 한 정권, 아사자가 속출하고 탈북자가 줄을 잇는 그들의 현실을 제대로 판단하고 역사에 대해서 바른 인식을 한다면 그들 지배층 사람들도 북한 정권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절대권력이나 독재권력은 절대부패하며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고려 의종의 무능과  타락, 사치방탕이 계속되고 과거제로 등용된 문신들이 우대받는 사회구조로 바뀌고 절대권력을 누리던 문신들이 무신들을 천시하자, 이를 보다 참지 못한 정중부, 이의방 등이 무신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된다. 그 후 20여 년 동안 정중부-이의방-정중부 부자-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지는 무신정권이 절대권력을 누리면서 부패가 만연하였고 최충헌이 이의민 세력을 제거하고 최씨 무신정권을 60여 년간 집권하여 무신정권이 총 80여 년의 세월 동안 집권하게 된다. 최충헌-최우-최항-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무신정권은 절대권력을 누리면서 왕은 허수아비였고 권력을 농단하였다. 최충헌은 대궐같은 집을 짓고 호위 군사들이 10리 밖까지 전개하여 호위하였으며 정규군을 능가하는 사병 집단을 거느리고 독재정치를 구현하였다. 최우는 아버지 최우헌의 애첨을 겁탈하는 것은 물론 길을 가다가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처녀건 유부녀건 눈에 보이는 대로 데려다가 겁탈하였고, 수백 채의 민가를 부수고 격구장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집을 지었다. 절대권력이 계속되자 매관매직은 당연하고 비리와 부패는 당연히 뒤따르는 법, 탐관들에 의한 백성들의 수탈은 극에 달하였다.

 

고려 인종시 외척 이자겸의 난으로 고려 왕실이 종말의 위기를 겪었고, 말로만 북벌을 외치며 서경천도론을 주장하여 개경파 세력을 무력으로 누려려던 묘청의 난이 실패하자 서경 군부세력이 대부분 숙청되었으며, 무신정권에 항거하여 일어난 김보당의 난이 실패하자 문신들이 대거 숙청되었고, 의종 폐위를 구실삼아 일어난 서경 유수 조위총의 난이 실패하자 또 한 번 서경 군부 세력이 대대적인 숙청을 당하였다. 지방 민란으로는 탐관의 학정에 맞서 일어난 광주 명학소의 망이.망소이의 난, 농민들이 일으킨 김사미.효심의 난, 청주 민란 등 반란과 민란이 끓이지 않았으며 무신정권은 이를 무력으로 모두 진압하였다.

 

최씨 무신정권은 이러한 수많은 민란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면서 백성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불가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는 수십.수백 명규모의 소규모의 봉기가 수 없이 발생하였는데, 이들은 지방 관헌을 죽이고 창고를 탈취하고 부자들이 공격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무신정권은 고심끝에 사병 중 우수한자를 뽑아 야별초라는 방범대를 조직하여 도적들을 막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소요가 일자 야별초를 지방으로 내려보내 도적을 막게 하였다. 그러자 점점 그 수요가 부족하자 야별초를 증강하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었다. 여기에다가 몽고군에게 잡혀 갔다가 도망쳐온 사람들로 신의군을 만들어 이름하여 '삼별초'로 불리게 되었다.

 

삼별초는 최씨 무신정권의 수호 세력으로 권력 투쟁에 이용되었고 민란을 진압하는 데 이용되었다. 최의가 제거될 때도, 최의를 제거한 유경이 제거될 때도, 유경을 제거한 김준이 제거될 때도 삼별초가 이용되었다. 그래서 삼별초는 태생적으로 무신정권의 권력자 하수인으로 태어났으며 민중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태어났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5.16 혁명시 해병대, 전두환 권력 장악과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진압시 특전사쯤 될 것이다. 삼별초 그들은 녹봉도 높았고 권력자로부터 보너스도 자주 많이 받았으며 진급도 빠른 특혜를 누렸다. 1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하수인이 대우받는 것은 어쩐지 비슷하기만 하다.

 

고려 원종이 몽고를 등에 업고 몽고 입조 후 무신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몽고군을 이끌고 돌아오다 개경으로 들어가 강화도의 무신정권에게 출륙환도하도록 명령을 내렸으나 거부하였고 이런 가운데 무신정권 자체 내분으로 무너지자 원종은 무신정권의 하수 세력인 삼별초를 해체하려 하면서 명단을 입수하자 그들은 장군 배중손의 주도하에 강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몽고군에게 항복하는 순간 그들은 모두 처형 대상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 병력과 귀족 가족 백성 등을 1천여 척의 배에 싣고 진도로 이동하여 왕궁과 성곽을 세우고 항전하였으며 당시 백성들이 지지와 호응도 대단하였다.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기도 하였고, 전주.인천까지 진출하여 위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경상. 전라도 조세 운반선을 차단하여 개경 조정에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몽연합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진도가 함락되면서 배중손이 전사하고 삼별초가 왕으로 옹립한 승화후 온까지 전사하자 김방경이 잔여 세력을 규합하여 제주도로 이동하여 최후까지 항전하다 1천 3백 여명의 남은 병력이 항복하면서 삼별초의 난은 종막을 고하였다.

 

삼별초의 대몽항쟁에 대한 평가는 블로그에 별도로 올렸다. 그들이 대몽항쟁의 화신이었는가 아니면 민중탄압의 하수인이었는가? 아마 그 글을 읽게 되면 삼별초에 대한 통념적인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가을 단풍이 내장산까지 내려간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풍구경을 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서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고교 시절수학 여행을 오대산과 설악산으로 간 기억이 난다. 주변의 올망쫄망한 산들을 보며 자라서 그런지 오대산 월정사 앞 계곡에 붉게 물든 단풍을 보고 탄성을 자아낸 적이 있다. 산도 붉지만 물속 바닥에도 온통 단풍들이 떨어져 저녁 석양과 어우러져 붉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사진도 찍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젖어 밤 깊은 줄 모르고 이야기하며 지새던 기억이 난다.

 

가을은 사계절 중 가장 풍요롭고 아름답다. 인생으로 치면 50~60대쯤 될 것이다. 완숙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여름을 보내고 교미와 교접을 통해 후손을 생산하고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최고의 직위에 올라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기도 하고 자아실현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마슬로우'의 '인간의 욕구 5단계' 중 4단계와 5단계에 해당될 것이다.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노후를 준비하며 낙향하여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기부와 봉사로 사화적 약자에 대해서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기쁨을 느끼고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행복이 되고 즐거움이 될 것이며 삶의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느끼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인간 생활에서 좋은 흔적은 쉽게 잊혀지거나 지워지지만 나쁜 흔적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감사와 은혜는 바위위에 새기고 원망과 미움은 보래위에 새겨야 하나 통상 사람들은 반대로 새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나쁜 것을 오래 기억하고 좋은 것은 쉽게 잊어버린다. 오늘날 권력자는 권력을 이용하여 반대파나 정적에 대해 도청, 미행, 추적 등으로 개인 정보를 빼내어 정보를 존안하며 필요시에 그것으로 상대를 제거하는 데 사용한다. 그런 정보에는 통상 여자 관계, 원조교제, 세금 탈세, 부동산 투기, 음주 뺑소니, 향응 제공, 정치자금 제공, 도박 등 관련 정보가 주종을 이룬다. 누구나 자신에 관렴된 이런 정보가 노출될 경우에는  그 사람의 사회적 생명은 종말을 고하는 경우가 많다.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울긋불긋한 단풍이 바람결에 일렁인다. 산정에 물들기 시작했던 단풍이 어느새 성큼 내려와 설악의 허리를 온통 붉게 휘어감았다. 거칠 것 없는 설악의 가을은 그렇게 깊어간다.

한국 사회에서 좀 잘 나간다는 사람들의 인생 흔적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상상해 볼 수 있다.

 

복권이 당첨되었던, 사기를 쳐서 거액을 모았던, 투기를 해서 성공하였던, 사업이 잘되서 거부가 되었던 누구나 재물이 분수에 넘쳐나면 좋은 집과 좋은 차, 수백 수천만원하는 비싼 명품 옷과 가방, 구두 등 사 입고 각종 악세서리나 비싼 보석을 온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전국에 유명한 이름난 음식점을 찿아다니며 먹고 즐기고 해변가나 호수가 고급 호텔에서 숙박하며 즐기고 자녀들을 어학연수나 유명 대학 유학을 보내고 수시로 해외로 나가 미국과 유럽, 남미 등지를 돌아다니며 세계 여행을 즐기고 보신 관광을 포함 비싼 바다 낚시도 즐긴다. 또 국내에서는 비싼 요트를 구입하여 틈틈이 정치권, 법조계, 경찰, 지자체 장. 국회의원 등 고관들을 초대하여 밤새 질펀하게 즐기도록 해준다. 물론 그런 자리에는 이름난 인기있는 연예인, 가수, 연예인 지망생, 모델, 대학생, 이혼녀, 주부 등 고급 매춘을 전문으로 중계하는 연예계 마담 뚜를 통해 연결된다. 또 고급 요정 마담이나 일본인 현지처를 통해서도 연결되며 그녀들에게 거액의 화대를 주며 손님을 풀코스로 모시도록 즐기도록 해준다. 물론 그럴 때는 개별적으로 은밀하게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접대를 받은 사회 지도층은 그 사람에게 코가 꿰여 각종 불법적인 일도 편의를 봐주며 이권을 챙겨준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각종 비리가 이런 관계에서 비롯되며 태생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은 당연하다.

 

또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위세를 부리기 위해 동창회나 향우회에 나가 거액을 기부하고 회장도 하고 고문도 한다. 또 자신이 다니는 교회나 성당, 사찰에 각종 명목으로 거액을 헌금하고 종교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대부분 이런 헌금은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모은 재물이 대부분이다. 또 가끔 불우이웃 돕기에 거액의 성금도 내고 선행을 자랑하기도 한다. 또 지역 지방 지자체 장, 지방의회 의원, 실무 관리들에게 수시로 용돈 등 뇌물을 주고 공사.계약 등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사업적인 편의를 도움 받기도 한다. 물론 이익에 대해서는 절절하게 보상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나라 지자체의 뇌물 비리는 지방 업체와 연결고리가 뿌리 깊게 확산되어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잘 나가거나 미래가 촉망되는 판.검사, 경찰관, 변호사, 정치인, 공무원, 군장성 등을 한 두 명 정도 사귀면서 서폰서 역활도 한다. 가끔 그들을 불러내어 고급 요정에서 밥도 사고 술도 사고 봉투도 찔러주며 거나하게 술판을 벌인 다음 강남 일대의 고급 롬살롱으로 대리고 가서 220대 초반의 미모에 잘 빠진 여자애를 붙여주어 풀코스로 질펀하게 즐기도록 해준다. 그러한 인간 관계는 은밀하게 기록하고 증거를 남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그래서 그런 관계는 공정한 게임이 아닌 불공정한 게입에 주로 이용되는 데, 불법적인 방법에 많이 활용되고 코가 꿴 그들은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 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각종 소송이나 분쟁, 불법, 고발.고소 사건.사고 등 법 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들에게 부탁하면 부탁을 받은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불법적인 사건을 유리하게 해결해준다. '유전무죄요 무전유죄'의 사회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비리구조이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사건 해결을 부탁받아 중간브로커 역활도 하고 중간에서 배달사고내거나 의뢰인의 사례금을 편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능력있고 잘나가는 선배로 소문나면 고향, 학교 친구, 선.후배들이 잘나가는 그에게 찿아와서 부탁하거나 자주 알현하여 알랑방귀를 끼면서 충성을 맹세하고 수족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문이 확산되면 그를 아는 사람들은 ㅁ누제가 생기면 전화를 하거나 찿아와서도 만나기를 원한다. 그들을 만나면 대부분 청탁이며 정치권, 검사, 경찰, 변호사와 관련된 사안이 대부분이다. '그런 문제 해결은 쉽다. 돈만 준비해라. 내가 해결하겠다.'  오늘도 교대역 주변에는 그런 법조계 중간 브로커들이 눈을 이글거리며 검찰청이나 변호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분주히 지나다니고 있다. 불법적인 돈이 많이 흐르는 곳에는 고급 술집과 요정이 즐비하고 장사가 잘된다. 돈이 아깝지 않으니 마구 쓴다. 그런 돈을 흡입하는 사람들이 바로 매춘을 전문으로 하는 고급 요정이나 룸살롱이다. 

 

그러나 남을 등치고 사기를 치고 빼앗은 재물로 호의호식하며 살더라도 누구나 인생의 가을을 피할 수는 없다. 반듯하게 자라고 병들지 않은 낙엽은 색깔이 골고루 붉고 선명하게 아름답지만, 벌레 먹고 병들은 낙엽은 검붉고 색깔도 고르지 못하고 아름답지도 못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도덕하고 이기심에 가득찬 인생을 살아온 인간일 수록 그 사람의 인생 색깔은 보기에 흉하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분수에 넘치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평온한 얼굴이 아니고 탐욕에 찌들은 얼굴로 기름기가 번드러하게 흐르고 눈이 충혈되어 있으며 말씨가 거칠고 메너가 없으며 안하무인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만이 넘쳐나는 배를 내밀고 오늘도 한적한 어느 호텔에서 젊은 매춘녀와 어울려 탐욕에 찌든 쾌락의 밤을 질펀하게 보내고 있을 지 모른다.   

 

단풍의 가녀린 흔들림 속으로 걸어보라. 물소리, 바람 소리에 감겨 오는 오솔길이 거기에 있다.

흔적 

해도 뜨기 전인 새벽에 길거리에 나서면 환경미화원들은 어제의 흔적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다. 호텔에서 일하는 메이드 역시 낯선 이방인의 흔적을 치우고 새로운 이방인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하루를 보낸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에게 지나온 삶의 흔적들은 그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가혹한 검증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어쩌면 어제의 흔적을 말끔히 치우는 환경미화원과 호텔 메이드가 부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삶의 흔적은 남기기는 쉬울지 몰라도 지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감추고 싶은 흔적은 더욱 그렇다. 참으로 두려운 흔적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결국 산다는 것은 저마다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돈으로, 권력으로, 미모로, 지식으로, 재주로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며 모래처럼 흩어지기 일쑤다. 그러나 누군가를 울린 감동의 흔적은 문신처럼 짙게 새겨진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가슴에 남고 영혼에 담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바람에 실려, 빗줄기를 타고, 햇살을 따라 떠오르다 사라진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나 어릴 적 모래성을 쌓고 허물었던 기억이 있으리라. 아무리 정성 들여 쌓은 모래성이어도 해가 저물면 그대로 놔둔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 어쩌면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으리. 남는 것은 흔적뿐. 오늘 내가 남기는 흔적이 곧 나의 역사다. 동시에 나의 미래다. 훗날 가서 그 흔적이 마땅치 않아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우기 어렵다. 아니 지워지지 않는다. 멋대로 개칠할 수도 없다. 삶의 흔적은 그만큼 냉정하다.

미래의 누군가가 오늘 나의 흔적을 수사관이 범인의 지문 찾듯 찾아낼지 모른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아무리 덮고 가리고 지우려 해도 남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흔적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삶에 '흔적이란 분필'로 움직임의 선을 그린다. 그것이 내 인생의 지도다. 인생은 흔적이다. 삶이 힘들고 치열할수록 흔적도 깊다. 오늘도 나는 흔적을 남긴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과연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흔적', 정진홍 논설위원 글에서)

 

 

                                계곡물이 여윈 가을 해와 설악까지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