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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49 : 고려의 역사 117 (제16대 예종실록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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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49 : 고려의 역사 117 (제16대 예종실록 2)

두바퀴인생 2011. 9. 3. 03:42

 

 

 

한국의 역사 349 : 고려의 역사 117 (제16대 예종실록 2)

 

 

제16대 예종실록

(1079~1122년, 재위 1105년 10월~1122년 4월, 16년 6개월)

 

1. 예종의 영토확장 노력과 여진의 성장(계속)

 

왕위에 오른 예종은 즉위 한 달 만에 조정을 대폭 개편하였는데, 위계정을 문하시중에, 최홍사와 이오를 문하시랑 평장사, 윤관을 중서시랑 평장사, 임의를 상서좌복야, 오연총을 어사대부, 왕가를 이부상서, 정문을 예부상서, 이위를 형부상서, 최유정을 병부상서, 황휴현을 호부상서 등에 각각 임명한다.

 

예종이 전례 없이 이렇게 빨리 조정을 개편하게 된 것은 여진족의 급성장으로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족장 아골타의 영도 아래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여진이 중앙집권화를 목적으로 통일전쟁을 지속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고려와 거란의 변방은 항상 전운에 휩싸여 있었다.

 

여진의 군사적 위협이 커지자 예종은 조정 개편 이후 곧 이부상서 왕가를 서북면 병마사로, 어사대부 오연총을 동북면 병마사로 파견하여 여진의 국경침입에 대비토록 하였다.

 

예종이 여진의 성장이 가속화되고 반대로 거란의 힘이 약화되자 그 틈을 이용하여 서쪽으로는 거란에게 내주었던 압록강변의 두 성을 찿고 동쪽으로는 두만강으로 진출하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영토 확장 계획은 2년 뒤의 출병을 통하여 구체화된다.

 

1107년 윤 10월 고려 조정은 여진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국경 경비군관의 보고에 따라 선제 공격을 결정하고 17만 대군으로 여진정벌을 단행한다. 이를 위해 윤관을 상원수, 오영총을 부원수에 임명하고 예종은 천문관의 건의에 따라 서경으로 떠난다. 왕이 몸소 서경에 가서 변방의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17만을 이끌고 간 윤관은 그해 12월 여진과 싸워 웅주, 영주, 복주, 길주 등을 장악하고 그곳에 성을 쌓았으며, 이듬해 초에 함주와 공헌진에 성을 쌓고, 또다시 3월에 의주, 통태진, 평융진 등에도 성을 쌓아 백성들을 이주시킴으로써 고려는 동북지역에 9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9성을 유지하는 일이 고려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여진이 이 9성을 회복하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공방전이 계속되자 고려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를 눈치 챈 여진은 대대적인 공세로 고려군을 수세에 빠뜨린 다음 화친을 요구하였다.

 

여진이 북계 9성을 돌려주면 고려에 공물을 바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시는 변방을 넘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고려 조정은 9성을 돌려주는 문제로 일대 논란이 벌어졌다. 대신들은 평장사 최홍사를 비롯하여 29명의 9성 반환파와 예부낭중 박승중과 호부낭중 한상 등의 반환반대파로 갈려 언쟁이 계속됐다. 하지만  대세는 반환파에 기울어져 있었다. 2년여 동안 전쟁으로 백성들의 불안감이 확대되고 민간 경제도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싸움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예종은 처음부터 영토확장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반환반대파를 지원하고 있었지만 그도 대세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조정의 대세에 따라 9성의 반환이 확정되자 고려는 여진에게 대대손손 공물을 바치고 국경을 침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1109년 7월 철수작전에 돌입하엿다.

 

철수작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여진과의 전쟁에서 몇 번의 패배로 많은 군사를 잃은 윤관과 오영총에 대한 탄핵상소가 이어졌다. 최홍사, 김경용 등의 대간들이 주축이 된 탄핵상소는 강경했지만 예종은 전쟁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모든 대간과 간관들이 수십일 동안 출근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윤관과 오연총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 때문에 예종은  간관들을 한 명씩 불러 설득 작업을 벌여야 했고, 결국 오연총은 파면하고 윤관에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렇게 하여 영토확장과 전쟁의 후유증을 가라앉힌 예종은 1110년 12월 다시 한 번 조정을 개편한다. 전시 정국에서 평시 정국으로 전환하기 위한 조처였다 문하시중에 윤관, 판리예부사에 최홍사, 문하시랑 평장사에 김경용, 중서시랑 평장사에 오연총, 추밀원사에 이자겸 등을 각각 임명하여 윤관, 오영총 등 북벌 세력을 중용하고 안정희구 세력인 최홍사, 김경용 등도 함께  요직에 등용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장인인 이자겸을 추밀원사에 앉힘으로써 외척을 배려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