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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34 : 고려의 역사 102 (제11대 문종실록 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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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34 : 고려의 역사 102 (제11대 문종실록 7)

두바퀴인생 2011. 8. 19. 02:22

 

 

한국의 역사 334 : 고려의 역사 102 (제11대 문종실록 7)

 

 

제11대 문종실록

(1019~1083, 재위 1046년 5월~1083년 7월, 37년 2개월)

 

3. 선종, 교종, 천태사상

 

선종

(禪)이란 중국에서 5세기부터 발전한 대승불교의 한 흐름이다. 선의 흐름은 중국에서 한 종파로 성립되어 한국일본 등지로 전파되었는데, 이 계통의 여러 분파들을 통칭하여 선종(禪宗)이라고 하고 이 계통의 불교를 선불교(禪佛敎)라고 한다. 선종 또는 선불교는 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禪)이라는 낱말은 산스크리트어디야나(ध्यान)를 중국에서 선나(禪那)로 음역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선나(禪那)의 줄임말이다. 디야나는 대체로 정려(靜慮: 고요히 생각함) · 내관(內觀: 내적으로 살핌) · 내성(內省: 내적 성찰) · 침잠(沈潛: 내면으로 깊숙히 들어감)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뜻을 따라 번역하여 선(禪)을 (定) · 정려(靜慮) · 기악(棄惡) 또는 사유수(思惟修)라고도 한다. 또한 음을 따라 번역한 낱말인 선(禪)과 뜻을 따라 번역한 낱말인 정(定)을 합하여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선(禪)은 근본불교의 수행 체계인 팔정도(八正道) 중 정정(正定)에 해당한다. 대승불교에서 선(禪)은 보살행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선정 바라밀(禪定波羅蜜)에 해당하며, 선정 바라밀반야 바라밀(般若波羅蜜)이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다.

 

이 문서는 중국에서 5세기부터 발전한 대승불교의 한 흐름으로서, 불교의 한 종파로 성립된 선종(禪宗)에 대하여 주로 다루고 있다.

 

 

 

선정(禪定)에 든 고타마 붓다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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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의 · 용어
사성제 팔정도 깨달음
삼법인 사법인
윤회 무상 무아 열반
중도 연기 선정 반야
유식 여래장
인물
석가 십대제자 용수
역사 · 종파
원시 부파 상좌부 대승
경전
경장 율장 논장
팔리어 한역 티베트
성지
팔대성지
지역별 불교
몽골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일본 중국
타이 티베트 한국

 

 

선종의 교의 및 특징

선종의 가장 큰 목적이자 가장 핵심적인 교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즉, 선종은 모든 인간이 내면에 본래부터 부처("본성 · 本性 · 불성 · 佛性")를 지니고 있다고 믿으며, 수행을 통해 자기 내면에 있는 본래의 부처를 발견하여("견성 · 見性") 열반에 이르는 것("성불 · 成佛")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한다.

 

수행면에 있어서는, 좌선 또는 참선을 중요한 수행 방법, 즉 정진(精進: 힘써 나아감)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선종의 특징이다.

선종의 교의적 · 실천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구는 "이심전심(以心轉心) · 견성성불(見性成佛) · 불립문자(不立文字) ·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할 수 있다. 이 문구들은 선종이 선종 이외의 불교로서의 교종(敎宗)과 현저하게 다른 독자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이심전심(以心轉心): 부처의 마음을 마음으로 전한다.
  • 견성성불(見性成佛): 본성을 봄으로써 또는 구명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돈오점수돈오돈수). 또는 본성을 보는 것이 곧 깨달음, 즉 구경각이다(돈오돈수).
  • 불립문자(不立文字): 경전의 문자에 구애됨이 없다. 보통, 불립문자경전을 읽고 암송하는 것보다 부처의 뜻에 따른 수행을 중요시한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 교외별전(敎外別傳): 3승 12부경(三乘十二部經) 이외에 별도로 부처의 마음을 전한다. 보통, 교외별전은 조사에서 조사로 이어지는 법통의 전수, 즉 사자상승(師資相承: 스승(師)에게서 제자(資)에게로 법이 이어져 전해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선종은 정려(靜慮) · 좌선(坐禪)으로 내관(內觀) · 내성(內省)하여 불성(佛性)을 찾고, 설교 · 문자를 떠나 즉시 부처의 마음(佛心)을 중생에게 전하는 종파, 즉 불심종(佛心宗)이다.

 

선종의 역사

마하가섭

 

 

 

연꽃염화미소의 고사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는 꽃이다

 

 

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

 

선종의 기원

선종의 전통에 따르면, 선종의 기원은 고타마 붓다영산회(靈山會)에서 말없이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제자들 중 오직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 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고사(故事)에 있다. 영가현각(永嘉玄覺: 647~713, 제6조 혜능의 제자)의 《증도가(證道歌)》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선종의 전통에서는 마하가섭을 선법(禪法)을 받아 이어준 제1조로 높이 받들고 있다.

 

후한 시대(後漢時代: 25~220)에 인도좌선(坐禪) 방법 등을 설법한 선경(禪經)이 한역(漢譯)되었으나 선종으로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선종의 기초

그 뒤 470년 또는 520년경달마(達磨: ?~528)가 남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선(禪)을 전파한 것이 선불교의 직접적인 시초이다. 달마달마선(達摩禪), 즉 달마 계통의 선법(禪法)의 전통의 1대 조사로 불린다. 흔히 선종이라고 하면 달마선을 의미하므로 달마는 선종의 제1조라고 할 수 있다. 《증도가(證道歌)》 등에 나타난 바와 같이, 선종(달마선)의 전통에 따르면 달마는 마하가섭으로부터 이어져 온 선종의 제28조이며 중국 선종의 제1조이다.

 

달마의 선법(禪法)은 제2조 혜가(慧可: 487~593)를 거쳐 제3조 승찬(僧璨: ?~606)으로 전하여졌는데, 혜가승찬북주파불(北周破佛: 574~577의 북주 무제에 의한 불교 탄압)을 피해 서주(舒州)의 완공산(完公山)에 숨어 지냈다. 이후 선법(禪法)은 제3조 승찬으로부터 제4조 도신(道信: 580~651)으로 전해졌는데, 기주(蘄州) 황매산(黃梅山)에서 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선법을 설법한 제4조 도신과 제5조 홍인(弘忍: 601~674)의 동산법문(東山法門)에서 다수의 탁월한 선자(禪者)들이 배출되었으며, 이리하여 선종으로서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선종의 한국 전래

선종의 한국 전래는, 당나라서당 지장(西堂 知藏)에게서 법을 받아 784년(선덕왕 5년)에 신라로 귀국한 도의(道義)를 시조(始祖)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9산문이 성립되어 한창 번성했으나, 고려 때에는 점차 쇠퇴하였다.

 

고려 시대(918~1392)의 명종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조계산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했으나, 그 뒤부터 승행(僧行)이 타락되면서 차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는 중국 호주 하무산(霞霧山)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법을 받아왔고,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은 강서의 평산 처림(平山處林)의 법을 받아옴으로써 2파로 갈리었다. 그러나 나옹의 법계(法系)는 얼마 안 되어 없어지고, 태고의 법계만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교종

교종(敎宗)이란 부처의 교설 및 그것을 문자로 나타낸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종지(宗旨)를 뜻하며, 불어종(佛語宗)이라고도 하고, 부처의 일심(一心)을 전하는 불심종(佛心宗)으로서의 선종(禪宗)의 입장에서 불교를 판별(判別)하여 교선2종(敎禪二宗)으로 나눈 데에서 비롯된다. 교종은 구체적으로 《법화경》에 의거한 천태종(天台宗)이나 《화엄경》을 소의(所依)로 하는 화엄종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중국에 있어서의 대표적 교종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선종(禪宗) 이외의 전 불교는 이 교종 속에 포함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천태사상[天台思想]

법화경의 이론과 실천의 부분을 나누어 체계적으로 정리한 불교사상이다. 모든 현상은 불변하는 실체가 없으므로 空, 또 서로 의존하여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假, 그리고 이 두러의 어느 한족에도 치우치지 않은 中이며, 이 세 가지가 막힘 없이 어울린 원만한 모습이 삼제 원융이다. 즉 모든 현상이 막힘 없이 서로 받아들이면서 역동적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우주를 한 마음으로 동시에 체득하는 것이 천태종이다.

 

의천과 천태종 천태종은 수(隋)의 천태 지의(天台智의, 538∼597)가 법화경을 중심으로 천태교학을 체계화함으로써 성립된 종파이다. 이 천태종은 신라의 법융(法融)·이응(理應)·순영(純英) 등에 의해 한반도에 전해졌으나 수용되지는 못하였다.

 

고려 광종 때, 오월(吳越)의 왕은 회창(會昌)의 폐불(廢佛)과 오대(五代)의 전란(戰亂)으로 불교 서적이 거의 소실되었으므로,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불교 서적을 청하였다. 이에 제관은 960년(광종 11)에 천태 계통의 서적을 천태종 제15조 의적(義寂)에게 전하여 천태종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하였다. 제관은 중국에 10년간 머물면서 천태사교의(天台四敎義)를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중국에서 천태교학의 입문서로서 널리 유포되었다.

 

제관과 같은 시대의 의통(義通 927∼988)은 화엄경과 기신론을 수학하고 중국으로 가서 천태종 제 16조가 되었다. 그의 법맥(法脈)은 지례⇒범진⇒종간으로 이어졌는데,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은 종간으로부터 천태교학을 전수하고 귀국하여 천태종을 세웠다.

 

의천은 본래 화엄승이었다. 그는 송(宋)으로 갈 때, 많은 화엄 서적을 가지고 가서 침체되어 있던 화엄교학을 부흥시켰다. 송에서 천태교학을 배운 후 의천은 천태종의 완성자인 지의(智의)의 탑에 참배하면서 고려에 가면 반드시 천태교학을 전파할 것을 서원하였다고 한다.

 

그는 1086년(선종3)에 귀국하면서 불교 서적 3,000여 권을 가지고 왔다. 곧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요·송·일본 등에 사신을 보내어 자료를 수집, 1090(선종 7)에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간행하였다. 이 책은 의천이 19세부터 17년에 걸쳐 수집한, 1010부 4740권의 수석서 목록이다. 여기에 의거하여 판각한 것이 속장경이다. 1097년(숙종 2)에 그를 위해 창건한 국청사의 주지로 취임하여 천태교학을 강의하니, 전국에서 모여든 승려들이 부려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1999년에는 천태종 자체에서 승선(僧選)을 실시하였다. 이로써 천태종은 하나의 종파로 공인되었다. 그 당시 천태종은 개성의 국청사를 중심으로 전국에 6대 본산(本山)을 두어 천태교학을 널리 전파하였다.

 

의천의 뒤를 이어 교웅(敎雄 1076∼1142)과 그의 제자 덕소(德素 1119∼1174)가 천태종을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요세(了世 1163∼1245)는 만덕산 백련사에서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창설하여 결사운동을 전개하면서 천태교학에 본격적으로 정토사상을 수용하였는데, 요세에 의해 터전이 닦인 천태염불의 사상과 신앙은 구 후 하나의 전통으로 계승되었다. 그는 50년 동안 매일 법화경을 한 번 독송하고, 준제신주(准提神呪)를 천 번, 아미타불을 일만 번 부르면서 정토왕생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또 천태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삼대부(三大部), 즉 법화문구(法華文句)·법화현의(法華玄義)·마하지관(摩訶止觀)의 요점을 정리하여 삼대부절요(三大部節要)를 저술하였다. 요세의 뒤를 이은 천인과 천책등의 제자들은 백련사를 중심으로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였다. 개성의 국청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천태종이 요세 이후에는 백련사를 중심으로 새롭게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