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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25 : 고려의 역사 93 (제9대 덕종실록 2) 본문
한국의 역사 325 : 고려의 역사 93 (제9대 덕종실록 2)
제9대 덕종실록
(1016~1034, 재위 1031년 5월~1034년 9월, 3년 4개월)
1. 덕종의 가족들
닥종은 경성왕후 김씨를 비롯하여 5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제2비 경복현비에게서 1녀, 충주 유씨에게서 1녀 등 2명의 공주를 얻었다.
제1비 경성왕후 김씨는 1034년 2월에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덕종 사망 후 52년을 더 살다가 1086년 7월에 죽었다. 능은 질릉이며 위치는 기록되지 않았다.
제2비 경목현비 왕씨는 중서령 왕가도의 딸이다. 1031년 왕비에 책봉되어 경목왕비보다 먼저 왕비에 올랐으나 왕족이아닌 까닭으로 제2비로 기록된 듯하다. 소생으로 상회공주가 있으며,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제3비 효사왕후 김씨도 경성왕후와 마찬가지로 현종의 딸로서 원혜왕후 김씨 소생이다. 따라서 그녀도 덕종과 이복남매지간이 되고 제11대 왕 문종과는 동복남매간이다. 그녀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제4비 이씨와 제5비 유씨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씨는 부여군 공방시랑 이품언의 딸이라는 것과 유씨는 충주 사람 검교소감 유총거의 딸이라는 내용만 전한다. 이들의 칭호가 기록되어있지 않아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비로 책봉되지는 못햇던 것 같다.
덕종 실록 편찬 관련 사항
고려 최초의 실록인 '칠대실록'은 현종 대에 편찬작업이 시작되어 덕종 3년인 1034년에 완료되었다.
덕종실록에 관한 내용은 <고려사>에서 이제현이 덕종에 대해 평한 글 중에서 직접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시기에 누구에 의해 편찬되었는지는 알 수 가 없다. 다만 '현종실록'을 최충이 노년에 편찬하였다는 것에 비추어 '덕종실록' 역시 이때 함께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제현
이제현(李齊賢, 1287년 ~ 1367년)은 고려의 시인·성리학자이다.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검교정승(檢校政丞) 이진(李瑱)의 아들이다.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로 우왕의 후궁 영비 이씨의 친정아버지였다. 고려말 신흥사대부와 조선의 사림파의 학문적 선조로서, 목은 이색은 그의 문하생이었는데, 후일 이색의 문하에서는 정도전, 조준, 남은, 정몽주, 길재로 학파가 나뉘게 된다. 백이정의 문인이다.
생애
1301년(충렬왕 27) 나이 15세로 성균시에 장원급제하고, 이어서 과거에 합격하여 환로에 들었다. 이해에 당시 대학자며 권세가였던 권보(權溥)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1308년 예문 춘추관에 들어갔다.
1314년 충숙왕 때 백이정의 문하에서 정주학(程朱學)을 공부하였다. 그 해 원나라에 가 있던 충선왕이 만권당을 세우고 성균악정(成均樂正)에 이른 이제현을 부르자, 연경에 가서 원나라의 명사 요수(姚邃)·염복(閻復)·조맹부 등과 교우하여 학문이 더욱 심오해졌으며, 그때 진감여(陳鑑如)가 이제현의 초상화를 그리고 원나라의 석학 탕병룡(湯炳龍)이 찬(贊)을 썼는데, 그 필적과 그림이 대한민국의 국보 제110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충선왕이 모함을 받아 원나라 조정으로부터 벌을 받아 유배되자 잘못됨을 밝혀 풀려나오게 하였으며, 그 후에도 충숙왕이 모함을 받아 두 차례나 원나라에 잡혀갔을 때에도 원나라 조정에 글을 올렸다. 충선왕이 서번(西蕃)에 귀양 가자 그곳에 따라갔으며, 밀직사사(密直司使) 첨의평리(僉義評理)·정당문학(政堂文學)·삼사사(三司事)를 역임하였다.
1323년(충숙왕 10) 유청신(柳淸臣)·오잠(吳潛) 등이 원나라에 글을 올려 고려에 성(省)을 설립하여 원나라의 제성(諸省)과 동등하게 하려고 청하자(입성론) 이제현은 도평의사사에 글을 올려 고려 400년의 토대가 이로 말미암아 무너진다고 간곡히 호소하여 이 문제를 철회케 하였다.
1339년(충숙왕 복위 8) 정승 조적(曺頔) 등이 심왕(瀋王) 고(暠)와 꾀하여 모역(謀逆)하다가 사형된 뒤 그의 무리가 연경에 많이 남아 있어 인심이 매우 동요하자 이제현은 충혜왕을 따라 원나라에 건너가 잘 절충하였고, 충목왕이 즉위하자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피봉되었다.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으면서 즉위할 때 우정승에 임명되고 정동성사(征東省使)를 맡자, 원종공신(元從功臣) 조일신(趙日新)이 자기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시기함을 알고 그 벼슬을 내놓았으므로 후에 조일신의 난 때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 후 우정승을 두 번 지내고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있다가 1357년(공민왕 6) 벼슬을 떠났다.
만년에는 집에서 지내면서 공민왕의 명을 받고 실록을 편찬하고, 종묘(宗廟) 위패(位牌)의 서차(序次)를 정하였다.
죽은 뒤에 공민왕 사당에 함께 모셔졌다.
저서
- 《익재난고》 : 17수의 고려가요를 한시로 번역하여 실렸는데, 이는 오늘날 고려가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익재집》
- 《역옹패설》
- 《효행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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