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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23 : 고려의 역사 91 (제8대 현종실록 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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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23 : 고려의 역사 91 (제8대 현종실록 11)

두바퀴인생 2011. 8. 8. 04:55

 

 

 

한국의 역사 323 : 고려의 역사 91 (제8대 현종실록 11) 

제8대 현종실록

(992~1031, 재위 1009년 2월~1031년 5월, 22년 3개월)

 

4. 현종의 가족들

현종은 원정왕후 김씨를 비롯하여 13명의 부인에게서 5남 8녀를 얻었다. 13명의 부인 중 원정왕후 김씨는 소생이 없었고, 원화왕후 최씨가 2녀, 원성왕후 김씨가 덕종, 정종을 비롯한 2남 2녀를, 원혜왕후 김씨가 문종을 비롯 2남 1녀를 낳았으며, 원용왕후 유씨와 원목왕후 서씨는 소생이 없었다. 그리고 원평왕후 김씨 1녀, 원숙숙비 김씨 1녀, 궁인 한씨 1남, 궁인 박씨가 1남을 얻었다. 그 외에 원질귀비 왕씨, 궁인 이씨 등은 소생이 없었다.

 

이들 가족 중 제1비 원정왕후를 비롯한 각 왕후들의 삶을 간략하게 언급한다. 이외에 덕종, 정종, 문종 등의 아들들은 각 왕들의 실록에서 다루기로 하고, 딸들 중 경성왕후(덕종 비), 효사왕후(덕종 비), 인평왕후(문종 비) 등도 해당 실록에서 다루기로 한다.

 

원정왕후 김씨(?~1018년)

원정왕후 김씨는 성종의 제2비 문화왕후 김씨 소생이다. 언제 태어났는지 분명치 않으며 현종이 왕위에 오른 1009년 5월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책봉된 직후부터 거란의 침입으로 인해 현종을 따라 몽진길에 올라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1018년 4월 무진일에 현덕구에서 20대의 젊은 나이로 소생 없이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죽을 당시 개성에는 전염병이 돌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 사망한 것 같다.

 

능호는 화릉이며, 능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원화왕후 최씨(생몰년 미상)

원화왕후 최씨도 성종의 딸이며 제3비 연창궁부인 최씨 소생이다. 원정왕후 김씨와는 이복남매지간이며 원화왕후가 왕비에 책봉된 후 곧 제2비로 책봉됐다. 그녀도 현종이 나주로 몽진갈 때 함께 간 것으로 판단된다.

 

입궐 초에는 향춘전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향춘전왕비라고도 불리었다. 후에 상춘전이라고 고쳤다. 그녀 소생으로 효정공주와 천수전주 두 딸이 있다.

 

사망 연대와 능에 관한 기록은 없다.  

 

 

원성왕후 김씨(?~1029년)

원성왕후 김씨는 김은부의 딸이다. 1011년 현종이 나주로 몽진하다 돌아오는 길에 공주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당시 공주 절도사로 가 있던 김은부는 자신의 맏딸을 시켜 왕의 의복을 짓게 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1011년 2월 현종은 그녀를 왕비로 맞아들이고, 그녀의 동생 둘도 함께 왕비로 맞아들였다. 원혜왕후와 원평왕후가 그녀의 두 동생이다.

 

원성왕후 김씨 소생으로 덕종(제9대), 정종(제10대), 인평왕후, 경숙공주 등이 있다. 1028년에 생을 마감하였고, 능호는 명릉이다.

 

 

원혜왕후 김씨(?~1022년)

원혜왕후 김씨도 김은부의 딸이며, 원성왕후의 친동생이다. 원성왕후가 왕비에 책봉된 직후에 입궐한 듯하며 문종(제11대), 평양공 왕기, 효사왕후(덕종 비) 등을 낳았다. 1022년에 생을 마감하였으며, 능호는 회릉이다.

 

 

원용왕후 유씨(생몰년 미상)

원용왕후 유씨는 성종의 아우 경장태자의 딸이다. 출생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1013년(현종 4년) 5월 계묘일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소생은 없었으며, 죽음과 능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원목왕후 서씨(?~1057년)

이천 사람이며 내사랑 서눌의 딸이다. 서눌은 서희의 아들이므로 그녀는 서희의 손녀가 된다. 1022년 8월에 숙비에 책봉되었으며, 흥성공주로 불리었다. 소생은 없었으며, 1057년(문종 11년) 생을 마감하자 문종은 화장을 명하고 유골만 묻었다. 자식을 낳지 못했으므로 중신들의 의견에 따라 능호가 내려지지 않았다.

 

 

원평왕후 김씨(?~1028년)

원성왕후와 원혜왕후의 친동생이며 김은부의 딸이다. 언제 입궐하였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서열상으로 봐서 원목왕후가 입궐한 1022년 이후일 것이다. 1022년에 그녀의 둘째 언니 원혜왕후가 죽었는데, 그녀는 죽은 언니를 대신하여 입궐한 듯하다.

 

소생으로 효경공주가 있으며, 1028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능호는 의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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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를 마감하여...

 

고려 현종 시대는 고려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외.대내적으로 고난속에서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던 중요한 시기였다.

 

대외적으로는 강대국으로 성장한 요나라, 즉 거란의 3차에 걸친 침공으로 나주까지 몽진해야했던 현종은 개경을 버리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런 가운데 고려군은 청야전술로 거란군을 무력화시키면서 산성에 의지하여 굳게 지켰다. 개경이 전소되고 초토화되었지만 전후에 돌아온 현종은 대내적으로는 지혜롭게 덕치를 펼치면서 백성을 도닥거리며 전화로 상실된 궁궐과 민가를 복구하였으며 문화재도 다시 복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과거제를 실시하여 많은 현자들을 배출했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력을 배가 시켜 나갔다.

 

외적의 침공으로 나라의 어려움이 닥치자 강감찬, 강민첨, 양규, 김숙흥, 서희, 최승로, 황주량, 최충 같은 수많은 불세출의 무장과 뛰어난 현신들이 등장하여 현종을 도와 국란을 극복해 나갔고 거란군을 물리쳤으며 강동 6주를 확보하는 등 영토 확장에도 큰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또 당시 동아시아 최대 강국이었던 요나라의 거란군을 맞아 개경이 함락되는 등 위기도 있었으나 1차전에서는 서희의 담판으로 물리쳤고, 제2차전에서는 개경이 함락되고 궁궐과 민가들이 전소하는 등 막대한 피해와 현종이 나주로 피신하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제3차전에서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퇴각하는 거란군을 거의 전멸시키는 빛나는 전과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래서 송과 요나라, 고려의 3국이 세력을 서로 대등하게 겨루는 국제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칠대실록을 비롯하여 소실된 문화재를 복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거란에 항복하자는 일부 신하들의 주청에 굴하지 않고 강경노선을 선택한 현종의 선택이 조정과 백성, 군대가 일치단결하여 고려의 역사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고려인들의 불굴의 상무정신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당시 고랴가 처한 환경을 상기하면서 오늘날의 우리 현실을 비교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의 대외관계, 국기안보 등을 수행함에 대부분 소극적인 정치논리가 지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적들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굴복하거나 나중에는 더 큰 고초를 당할 수도 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떨치기가 힘들다. 현재 현존하는 북의 핵위협, 각종 비정규전 세력, 각종 화생무기, 남한내 동조 좌익 친북.종북 세력 등의 위협은 물론, 미.러.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 그리고 중국이 아시아 맹주로 부상하면서 군사적, 경제적인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인 개입 세력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일본의 재무장과 자위대 군사력 수준 등이 위협적인 상황이다. 북이 미국을 능멸하면서 시간벌기 작전으로 직접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은 남한을 배제시키기 위한 전술이며, 6자회담은 끝이 보이지 않는 탁상 공론회담이 될 공산이 크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수출로 먹고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은 원유가에 따라 경제 파장은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천연자원의 부재, 고임금 등으로 경쟁력이 취약하다. 그래서 수출항로의 안전 확보와 국제적인 시장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입장이다. 동북아의 물류기지로 중계무역을 활성화하고 기술집약적인 상품 개발 투자 등이 절실하며 한편 강대국의 경제정책에 휘둘리며 국제 금융위기 등에도 취약하기 그지없는 위치이다, 그래서 이러한 제반 여건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국민정신의 부재와 유능한 지도자 부재, 저급한 정치권, 부도덕한 지도층과 기업인, 포플리즘 정치, 전방위적으로 만연한 비리와 부패, 기업마다 노사분규가 극을 달리며 제3자개입으로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포플리즘 정치로 개인채무를 포함 국가채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며 국가부도를 당하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을까 걱정도 해본다.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처럼 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뛰어난 현자에 비유되는 청와대 보좌관들은 지혜롭지도 못하고 이 땅의 많은 지식인들은 친북. 종북 세력이 되어 붉게 물들었고 군대의 장수들은 돈에 눈이멀고 권력에 해바라기가 되어 위만 바라보며 진급과 출세에만 혼힘을 쏟고 있으니, 부대는 각종 폭력과 비리, 대형 총기사고 등이 사라지지 못하고 있으며 군의 사기와 전투력은 바닥을 헤메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이 언제까지 우리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뒤를 봐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의 나라꼴이 천 년전 고려만도 못한 나라 꼴이 되어 있으니 친북.종북 세력들은 항복을 주장하는 세력들이요, 적화통일을 꿈꾸는 공산사회주의 자들이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탐욕에 눈이 먼 자들 뿐이니, 적이 쳐들어 온다면 과연 그들을 물리칠 강감찬같은 장수가 어디 있으며, 서희같은 신하가 어디 있을까? 가슴 속만 타고 눈앞이 안개처럼 허뿌여니 미래가 암담하고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