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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20 : 고려의 역사 88 (제8대 현종실록 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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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20 : 고려의 역사 88 (제8대 현종실록 8)

두바퀴인생 2011. 8. 5. 00:47

 

 

 

 

한국의 역사 320 : 고려의 역사 88 (제8대 현종실록 8)

 

 

제8대 현종실록

(992~1031, 재위 1009년 2월~1031년 5월, 22년 3개월)

 

3. 고려 -거란 전쟁(계속)

 

거란의 2차 침입과 불굴의 용장 양규(2)

 

통주에서 강조가 이끌던 고려 정예군을 대파한 거란은 다시 흥화진으로 향했다. 그들은 강조의 서신을 위조하여 포로로 잡은 고려군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엿으나 양규는 "우리는 왕의 명령을받고 이곳에 왔으므로 강조의 항복 지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 사이에 거란군은 다시 곽주로 향했다. 그러자 곽주 방어사 조성우는 야밤을 틈타 도망쳤고 대회덕, 이용직 등은 싸우다가 전사했으며 곽주성은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고 양규는 별동대 7백 명을 이끌고 흥화진을 출발, 통주 일대에 흩어져 있던 고려군 패잔병 1천여 명을 수습하여 곽주성에 머무르고 있던 적병 6천 명을 모두 전멸시키고, 양민 7천여 명을 구해 통주로 후퇴하였다.

 

이 때 거란왕이 이끄는 20만 병력은 서경을 무너뜨리고 개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의 중신들은 현종에게 항복할 것을 건의했지만 강감찬의 결사적인 반대로 현종은 백관들을 이끌고 경기도 광주로 내려갔다. 이 과정에서 왕을 시해하려는 불순한 자들과 도적들로부터 약탈의 대상이 되어 현종은 몇 번에 결쳐 죽을 고비를 맞았으나 중량장 지채문의 호위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란군이 계속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종과 백관들은 공주를 거쳐 노령산맥을 넘어 나주까지 내려갔다.

 

한편 양규의 활약으로 후방의 안전에 불안을 느낀 거란군의 기세가 조금 꺽이자, 이 틈을 노려 고려 장수들이 패잔병을 모아 전열을 가다듬고 맹렬한 기세로 사방에서 거란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구주의 별장 김숙흥이 중량장 보량과 함께 적군을 기습하여 무려 1만여 명을 죽였으며, 양규는 적의 주둔지인 무대로를 급습하여 적군 2천여 명을 죽이는 등 승리를 거두며 포로 3천여 명을 구출했다. 그 후에는 이수에서 적군 2천 5백을 무찔렀으며, 여리첨에서도 1천여 명을 섬멸시켰다.

 

이후 양규와 김숙흥은 병력을 합쳐 거란군 선봉대를 애전에서 기습하여 대승을 거둔다. 하지만 이 때 개경에서 회군한 거란왕이 대군을 이끌고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바람에 고려군은 몰살당하고 말았다. 양규와 김숙흥은 이 전투에서 수십 대의 적의 화살을 맞고도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러나 이지 지칠 대로 지친 거란군은 1011년 정월 별수 없이 퇴각하게 된다. 이에 정성이 이끄는 고려 군대가 퇴각하는 거란군을 맹렬히 추격하여 압록강에서 많은 병력을 수장시키고 강동 6성을 회복하였다.

 

이로써 거란의 2차 침입은 일단락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현종은 양규의 전공을 포상하고 공부상서직을 추증하였고 그의 처 홍씨에게는 매년 벼 1백 석을 내리고 은율군군이라는 봉작을 주었다. 또한 아들 양대춘에게는 교서랑이라는 관작을 내렸다. 한편 별장 김숙흥에게는 장군직에 추증되었고 그의 어머니에게는 매년 곡식 50석을 내렸다.

 

현종 10년에 양규와 김숙흥 두 사람에게 공히 공신록권이 발급되었고, 현종 15년에는 삼한후벽상공신 칭호가 내려졌다. 현종은 교서를 내려 양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병사들을 지휘하매 그 위엄은 사기를 앙등시켰고, 원수들을 추격하니 그 위력은 강토를 평안히 하였다. 정의의 칼이 빛나는 곳마다 만인(오랑캐)이 다투어 도망쳤고, 6균의 활을 당길 때마다 적병들이 모조리 투항했다. 이로써 성과 진이 보전되었고 사기 또한 드높았다."

 

이 글은 양규의 용맹과 기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이같은 기개를 본받아 그의 아들 양대춘도 후대 최충이 "지조가 탁월하고 지략이 많으매 군사 방면에도 통달한 인재"라고 평가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