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우면산의 여름 31 : 여름 휴가에 대한 잔상...... 본문
우면산의 여름 31 : 여름 휴가에 대한 잔상......
새벽 강남역 근방 빌딩 군
우면산의 비극은 강남.서초구 일대 저지대는 거의 대부분 피해를 받았다. 무상 물폭탄이 내린 것이다. 우면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방배역, 내방역, 사당역, 이수역 쪽으로 흘러내려 저지대 지하층/지하주차장, 반지하층 세대는 모두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차량, 냉장고, 각종 가구, 텔레비젼, 쇼파, 옷가지, 책, 부엌살림 등 거의 모든 살림이 물과 토사에 잠겨 골목길은 곳곳에 쓰레기장을 방불케하고 있으며 가족들이 물로 씻고 닦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서러움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번 참사는 인재냐 천재냐를 놓고 집단 소송도 예상되며 사망자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정부의 피해보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서초.강남구청과 서울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암담하기만 하다.
정치모리배들이 현장을 찿아 얼굴에 진흙을 묻히고 인터뷰를 하는 게 모두 쇼이지만, 민생을 책임지지못한 마음에 스스로 자책감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표를 의식하여 쇼만 벌이는 것인지 의심이 간다.
산림청에서는 이번 우면산 피해지역이 이미 산사태 1급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사전 경보를 통보하였지만 구청에서는 받지를 못했다고 한다. 태만한 공직자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분통만 터뜨리고 있다.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의 우면산은 그동안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산이었다. 신년 해돋이 장소로, 주말 등산로로, 매일 산행하는 노인들 건강 명소로, 약수를 떠로 다니는 사람들에게 우면산은 사랑받던 산이었다. 등산로에는 새벽 등산을 위해 외등까지 설치되어 있어 부자 동네의 시설에 많은 감동을 하기도 하였다.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생강나무, 철쭉, 벗꽃 등 만가지 꽃들이 곱게 피고, 여름이면 시원한 수풀은 주민들에게 심신을 쉬는 장소였다. 가을이면 밤, 도토리 들이 지천에 떨어져 있고 산짐승들이 한가로이 노밀던 곳이다. 겨울이면 눈이 내려도 불켜진 새벽 등산길은 건강의 보약이었다.
그러나 산사태의 징후는 이미 수년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산을 주변에서 야금야금 산밑을 파고들면서 여러 마을을 개발하여 왔고 대부분이 사유지인 관계로 관리가 어려웠다지만 수목 관리라던가 보강 공사 등이 모두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폭우와 폭풍으로 쓰러진 나무 방치는 물론 정상의 군부대부터 배수로 관리가 허술하였고 나무, 낙엽 등 부유물이 철조망에 걸려 쌓이고 배수로가 막혀도 그것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햇다. 키가 큰 아카씨아 나무가 산재하여 있고 바람만 불면 쓰러졌다, 눈에 보이는 곳만 정리하였고, 하단부 남부순환도로 쪽은 숲 속에 쓰레기가 무수히 방치되어 있다. 관리원들이 상주한다지만 제대로 순찰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또 난개발.난공사로 우면산은 남북과 동서로 터널이 뚫렸고 사방이 파헤쳐저 있었다. 방배동 쪽 계곡 복구 공사도 우선 순위가 낮아 갈수기는 다 보내고 우수기인 지난 4월부터 공사를 진행하였다. 보강 공사는 예산만 바르는 형식에 불과하였고 근본적인 보강이 이루지지 않고 있었다.
한편 이러한 불행은 잊은채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계속되고 삼복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녀들이 방학을 맞아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을 것이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자녀들이 보채면 대부분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휴가를 떠나게 된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처음 차를 산 때가 88년도 였다. 당시 대학원 위탁교육을 받고 있던 때라 여름 방학을 맞아 교육받던 동료들이 그룹을 지어 가족 단위로 차를 타고 동해안으로 휴가를 간 적이 있었다. 차를 산 지가 얼마되지 않아 장거리 운행이 불안하였으나 무리를 하여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출발했다.
서울을 출발하여 양수리-홍천-인제-원통-한계령- 속초로 향했다. 애들은 마냥 좋아했지만 난 운전 중 내내 긴장하여 등에서는 땀이 비오듯이 흘러 내렸다. 가족도 불안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였고 동료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속도를 맞추어야 했다. 안테나에 표시를 하여 서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이동하였다. 초행길에 어쩌면 사고가 난다면 온 가족이 엄청난 재앙이 닥칠것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겁이 없었고 남들이 가니 나도 가는 것이고 같은 동료들이 모두 비슷한 생활여건이었기 때문에 나만 빠지기가 싫었다. 휴가철이라 국도는 차량들로 가득하였고 당시에는 2차선이었던 지루한 홍천-소양호-인제-원통 간 국도를 땀을 흘리면서 달렸다. 차에는 에어컨도 없었고 휴대폰은 사용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차량으로 단체 이동은 앞 차를 따라잡기 위해서 추월과 과속을 반복하기에 매우 위험한 운행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행을 떠난다고 차창을 내다보면서 연신 즐거워 했다. 홍천 휴게소에서 음료수와 간식도 먹고 한계령 휴게소에서는 칡즙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장엄한 태백산맥의 준령도 눈요기하였다. 그리고 꾸불꾸불한 위험하기 짝이없는 한계령 길을 내려갔다. 브레이크에서는 연신 라이닝이 타는 냄새가 났다. 우리는 일단 동해안 속초까지 이동하고 그 이후에는 각자 가족단위로 자신들의 일정에 맞춰서 행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간신히 속초에 도착한 우리는 서로 각자 일정에 따라 헤어졌다. 한여름 7월의 태양은 이글거리며 내리쬐고 있었다.
새벽 도로 공사
난 미리 약속한 대학원 팀과 대명 콘도에서 만나 이틀을 보냈다. 우리팀은 같이 교육을 받던 사람들로 10여 명으로 편성된 같은 연구팀이었다. 정부 각 기관에서 나온 고위직의 나이든 분들이라 경험도 많고 당시에는 끗발도 있는 분들이었다. 콘도 예약도 당시 교통부에 근무하던 국장의 끗발로 예약하였고 골프장도 마찬가지였다. 첯날 저녁에는 모두 가족들을 데리고 속초항에 나가 밤구경도 하고 같이 바닷가 횟집에서 회에다 소주도 취할때까지 마셨다. 모두 술이 취한채 콘도로 돌아와 밤늣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고 잠깐 잠이 들었다.
아침 6시쯤에 누군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서 비몽사몽간에 부랴부랴 골프장비를 챙겨 골프장으로 향했다. 아침 6시 반에 티업 시간이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만 깨워서 각자 골프채를 챙겨 밖으로 나오니 새벽 안개가 가득하였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허둥지둥 골프장에 도착하여 3팀으로 편성하여 티업이 시작되었다. 안개 자욱한 필드를 향해 골프공을 쳤으나 소리만 "딱~ 휙~" 날뿐 공은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치고 나가면서 대략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가서 골프공을 찿는 수밖에 없었다. 앞 팀이 어느 정도 나가면 "친다! 친다! " 소리를 지르고 대답을 듣고서야 공을 쳤다. 9홀을 거의 다 돌 때 쯤에야 겨우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모두가 술이 덜 깬 상태라 실력 발휘는 커녕 공 찿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몰간!", " 오-케이!"를 반복하면서 18홀을 다 돌고나니 오전이 다 지나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경포호 옆 간이 골프장으로 가서 몇 바퀴를 돈 다음 콘도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별도로 주변 관광지를 두루 구경하고 속초항으로 나가 건어물로 사고 기념품도 샀다.
이틀간 팀원들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서 양양-강릉-포항-영천-신령-상주-문경-서울로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7번 구도를 따라 내려가는 동해안 길은 바다가 보이는 도로라 경치도 좋았고 볼거리도 많았다. 가다가 대포항에 들러 회도 한접시 하고 항구의 비린 냄새도 맡았다.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많은 해수욕장이 있었고 한 곳에 들러 해수욕도 즐기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차를 댈 장소도 없었고 물가도 바가지 요금에 엄두도 못내고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양양 근방의 0군단 군인 하계수련장에 들러 잠깐 해수욕을 즐기다가 다시 이동하여 소금강 계곡으로 들어가 계곡도 구경했다. 가족과 애들이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다시 내려가다 백암온천에 들렀으나 사람이 많아 온천은 하지 못하고 풍경만 구경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포항에 도착하니 해가 기울었다. 가까운 모텔에 여장을 풀고 애들을 씻기고 휴식을 취했다. 팔뚝과 얼굴은 타고 땀을 많이 흘렸고 하루 종일 운전으로 나도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서울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전경, 비가 개인 후 모습
다음날 다시 안강을 거쳐 영천을 향했다. 영천은 나의 고향이라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 잠시 식사를 하고 고향 소식도 들었다. 읍내에 사는 작은 누님 집도 방문하여 동해안에서 사온 건어물도 선물로 드렸다. 조카들에게는 용돈도 조금 주었고 인.친척 소식도 들었다. 모두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 휴가를 떠나온 자신이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매형과 가까운 저수지에 나가 낚시도 즐기고 잡아온 붕어로 어탕을 끓여 맛있게 먹었다. 긴긴밤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만남과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출발하여 영천 시내를 지나 금호강 다리를 들어서니 강건너 고향 마을이 눈에 어련거렸다. 지금 고향에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어린시절 친구들만 몇 있을 뿐 마을도 많이 변해 있었다.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뛰어 놀던 마을 골목길도 둘러 보았다. 알사탕을 팔던 구멍가게도, 풀빵을 팔던 아줌마 집도 사라졌다. 그 대신 마을에는 자동차 정비 공장이 들어섰고 양돈.영계장이 즐비하였다. 고물.폐품 수집장도 있었고 뛰놀던 뒷산은 개발로 병원과 간이 공장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개구리도 잡고 참와 수박서리도 하며 멱도 감던 주변의 산과 들판이 친숙하게 다가왔고 흐르는 금호강 강물도 많이 오염되었지만 유난히 반짝거렸다. 공기도 훈훈하고 풍겨오는 냄새들이 정겨운 냄새들 뿐이었다. 그래서 고향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항상 그리운 곳으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추억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신령쪽으로 국도를 타고 올라갔다. 뒷좌석의 애들은 지쳐 구경은 커녕 둘 다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동하다가 조용한 낚시터가 나타나면 낚시도 즐기고 텐트를 치고 야영도 했다. 그러나 물을 구하기도 힘들고 씻기도 어렵고 화장실도 사용하기에 불편한 것이 야영이다. 요즘처럼 야영장이 만들어져 있다면 몰라도 아무곳에서 야영은 그리 쉽지가 않다. 모기도 극성이고 가족은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집을 떠나온지 5일째, 마음놓고 씻고 마시고 먹고 쉴 수 있는 집이 점점 그리워진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아 우리는 텐트를 걷고 서울로 출발했다. 주변의 경치는 이제 구경도 힘들고 모두 지친 상태였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뿐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해가 저무는 국도를 달렸다. 밤이 되자 문경 근방을 지나면서 큰 대형 레미콘 트럭 여러대가 총알처럼 옆을 스치며 달린다. 점점 겁도 나고 국도 야간 운행이 무섭게 느껴졌다. 만약 저 트럭과 부딪히는 날에는 모두가 끝나는게 아닌가! 눈은 점점 피곤이 겹쳐 눈꺼풀이 내려오고 있었다.
국도를 타고 올라오다가 영동고속도로를 만나 휴게소에서 간식을 먹고 서울로 향했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심정 뿐이다. 일주일의 휴가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밤늦게 겨우 집에 도착하니 피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무사히 집까지 오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여름 휴가! 각자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있겠지만 잠깐의 휴가는 몰라도 장기간의 휴가는 젊은날에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지만 무리한 휴가는 잘못하면 불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리하거나 욕심내지 말고 가족들과 가까운 산이나 계곡을 찿아 하루 정도 즐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강변 고수부지나 가까운 민박촌, 수영장, 어린이 대공원, 서울 대공원 등을 찿아가면 좋을 것이다. 요즘은 살기도 힘든데, 그냥 남들이 간다고 우리도 가야하고 남들이 하니 우리도 한다는 것은 허식과 과욕이다. 경제적인 부담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요즘처럼 유류가가 비싼 시기에 일주일 정도 온 가족이 차량으로 여행한다면 숙식비 등 경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동해안에 직장이나 거주히는 사람들은 여름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연줄을 통해 수소문하여 수도 없이 찿아온다고 한다. 그들이 오면 밥주고 잠재워 주고 회도 사주어야 기분좋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 손님을 치루다보면 한여름 경비가 엄청 든다고 한다. 물론 놀다가 갈 때는 고마움의 표시로 봉투라도 주고 간다면 몰라도, 염치도 없이 그냥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대부분 직장 상사나 관련 공무원, 정치권, 경,검찰 등 기관원 등이 많다고 한다. 잘 모셔야 할 분들이 오면 기본적인 숙식은 물론 갈 때는 건어물이나 선물을 반드시 챙겨주어야 한다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자영업자는 아예 여름이면 해변가 호텔이나 빌라, 민박집 등 숙소를 장기간 예약하여 원청사나 관련 공무원, 관리업체 사장/직원 등을 날짜별, 시간대별로 모시고 풀코스로 대접하는 장소를 운영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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