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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10 : 고려의 역사 78 (제7대 목종실록 1) 본문
한국의 역사 310 : 고려의 역사 78 (제7대 목종실록 1)
제7대 목종
목종(穆宗, 980년~1009년)은 고려 제7대 국왕(재위: 997년~1009년)이다. 휘는 송(訟), 자는 효신(孝伸), 시호는 목종위혜극영정공선양대왕(穆宗威惠克英定恭宣讓大王). 경종과 헌애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의 아들이다.
생애
997년에 성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모후(母后) 헌애왕후를 응천계성정덕태후로 존칭했다. 관리의 봉급제도인 전시과(田柴科)를 개정하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아들이 없었다.
천추태후는 외척인 김치양(金致陽)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으로 삼고자 김치양과 함께 음모를 꾀하여, 왕의 당숙이자 사촌인 대량원군(大良院君) 왕순(王詢)을 승려로 만든 뒤 죽이려고 하였다.
이를 간파한 목종은 서경(西京) 도순검사(都巡檢使) 강조(康兆)에게 대량원군의 호위를 명하였으나, 오히려 강조에 의해 폐위되어 경기도 파주 접선 해안가에서 강조가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
강조는 김치양 부자를 숙청하고 대량원군을 왕위에 올렸는데, 그가 즉 제8대 왕 현종(顯宗)이다. 목종의 능은 공릉(恭陵)이며 현재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개성 동쪽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계
목종의 비는 성종의 원비였던 문덕왕후의 소생인 선정왕후와 경주 출신인 요석택궁인 김씨이다.
선정왕후는 모후인 문덕왕후가 재가하기 전에 태어났으나 문덕왕후가 성종에게 재가한 것으로 보아 성종의 딸로 자랐을 가능성이 크므로 목종은 성종의 사위자격으로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요석택궁인 김씨는 역사서에서 궁인 김씨로 기록되어 있다.
- 선정왕후 유씨(宣正王后 劉氏)
- 요석택궁인 김씨(邀石宅宮人 金氏)
고려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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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목종실록
(980~1009, 재위 997년 10월~1009년 2월, 11년 4개월)
1. 동성연애자 목종의 나약한 정치와 강조의 반란
18세의 어린 목종이 집권하자 왕권은 그의 모후 헌애왕후 차지가 되었다. 유난히 정권욕이 강했던 헌애왕후는 김치양과 부부연을 맺고 그들의 소생으로 왕위를 이으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었고, 왕권을 상실한 목종은 절망에 빠진 나머지 남색을 즐기며 정치를 외면한다. 이에 따라 조정이 일부 척족과 권신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면서 고려는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목종은 경종의 맏아들로 제3비 헌애왕후 황보씨 소생이며 이름은 송, 자는 효신이다. 980년에 태어난 그는 경종이 사망할 당시 불과 두 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위는 성종에게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들이 없던 성종은 송을 궁중에서 양육하면서 990년 개령군에 봉했다. 그리고 송은 997년 병으로 누워 임종을 앞둔 성종의 내선으로 왕위에 오른다. 그가 곧 고려 제7대 왕 목종이다.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삼아 친모 헌애왕후가 섭정을 실시한다. 정권을 거머쥔 헌애왕후는 곧 자신의 정부 김치양을 불러들인다. 김치양은 성종 대에 천추궁을 출입하면서 헌애왕후와 정을 통하다가 이 일이 발각되어 장형을 당하고 귀양 중에 있던 상태였다.
김치양을 불러들인 헌애왕후는 스스로를 천추태후라 부르도록 하고, 정사를 마음대로 주무른다. 또한 김치양과 버젓이 부부행세를 하며 간통을 하고 결국은 김치양의 아이까지 출산하게 된다.
김치양은 등용된 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우복야 겸 삼사사에 오르고, 인사권을 장악하여 백관의 임면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렇게 되자 전국에서 벼슬을 원하는 자들이 뇌물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그는 거둬들인 뇌물로 3백여 칸이나 되는 집을 짓고 정원에 정자와 연못을 꾸며 밤낮으로 헌애왕후와 놀아났다.
또한 김치양은 자신의 사당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기도 하였고,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늘어갔다.
김치양의 권력독점으로 조정이 기능을 상실하자 목종은 그를 내쫓기 위해 여러 가지 방책을 강구하지만 헌애왕후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한다. 이렇듯 왕권을 완전히 빼앗긴 목종은 절망한 나머지 정사를 소홀히 하고 엉뚱하게도 남색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와 동성연애 대상은 유행간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유행간은 용모가 남달리 아름다웠는데, 목종은 그의 용모에 반하여 남색을 즐기게 된다.
목종은 사랑을 목차지하게 된 유행간은 곧 합문사인의 벼슬에 오르게 되고, 항상 목종 곁에서 정사를 농단하기 시작한다. 목종은 정사에 관한 한 유행간에게 묻지 않는 것이 없었고, 이에 따라 유행간은 마음먹은 일이면 언제던지 왕을 조정하여 이룰 수 있었다.
왕을 마음대로 조정하게 된 유행간 역시 김치양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방자한 행동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백관들을 경멸하여 그들에게 턱과 눈빛으로 지시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자 측근 신하들은 마치 유행간을 왕처럼 떠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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