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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68 : 고려의 역사 36 (태조실록 6) 본문
한국의 역사 268 : 고려의 역사 36 (태조실록 6)
태조 실록(877-943년, 재위 : 918년 6월-943년 5월, 25년)
2. 왕건의 조상들과 그들에 얽힌 설화: 계속
이렇게 하여 보육은 처를 거느린 거시중이 되어 마가갑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그때 신라 술사 한 사람이 찿아와 그에게 말하길 그곳에서 살면 반드시 당나라 천자를 사위로 맞을 것이라 했다.
보육은 두 딸을 낳았다. 둘째 딸의 이름은 진의였는데, 그녀는 얼굴이 곱고 재주와 지혜가 많은 여자였다.
진의가 성년이 되었을 무렵, 어느 날 그녀의 언니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언니는 꿈에서 오관산 마루턱에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흘러 천하에 가득 차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진의는 언니에게 비단치마를 주고 꿈을 사기로 했다.
당 현종 12년(753년)에 아직 왕자로 있던 당의 숙종이 산천을 두루 유람하며 한반도 패강(예성강)에 도착하였다. 그는 동방의 산천을 구경하다가 송악에 도착하여 한 때 보육이 꿈속에서 올랐던 곡령재 위에 섰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방이 고요하고 위풍이 서려 있어 나라의 도읍으로 부족함이 없는 듯했다.
그날 당 숙종은 마가갑 양자동으로 와서 보육의 집에 묵게 되었다. 그는 두 처녀를 보고 좋아하며 자기의 터진 옷을 꿰매달라고 했다. 보육은 숙종을 보고 술사가 말한 중국의 귀인이라고 판단하고, 곧 자신의 큰 딸을 그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큰 딸은 문지방을 넘자마자 코피가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둘째 딸 진의가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숙종은 보육의 집에 머무른 지 한 달 만에 진의에게 태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숙종은 당나라로 떠나야 했다. 그는 이별할 때 진의에게 자신이 당나라 귀족임을 밝히면서,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의 활과 화살을 전해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후 진의는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작제건이라고 하였다. 작제건은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총명하였다. 작제건은 다섯 살을 넘기자 어머니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진의는 남편의 이름을 몰랐으므로 단지 그의 아버지가 당나라 사람이라고만 대답했다.
작제건이 자라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진의는 아들에게 남편이 두고 간 활과 화살을 주었다. 그것을 받은 작제건은 기뻐하며 매일같이 활과 화살을 가까이 하여 산궁이 되었다.
어느날 작제건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상선을 타고 당나라로 떠났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짙은 안개를 만나 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자, 이때 뱃사람들이 점을 친 후에 함께 탄 고려인을 내려놓고 가기로 결정했다.
뱃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작제건은 활과 화살을 몸에 지닌채 바다에 뛰어 내려야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안개가 갇히고 배는 나는 듯이 가볍게 가버렸다.
배가 가고 나자 작제건의 앞에 용왕이 나타났다. 용왕은 작제건에게 매일 저녁 늙은 여우 한 마리가 부처의 형상을 하고는, 소라나팔을 불고 경을 읽어 자신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 그 여우를 잡아 줄 것을 간청했다.
작제건은 용왕의 청에 따라 관음보살로 변장한 늙은 여우를 죽이게 되었고, 용왕은 그 답례로 작제건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하였다. 용왕이 작제건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니 작제건은 동방의 왕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용왕은 동방의 왕이 되려면 세울 '건(建)'자가 붙은 이름으로 3대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작제건은 아직 자신이 왕이 될 때가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동방의 왕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용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였다. 그러자 용왕은 장녀 처민의를 그에게 주었다.
용왕의 사위가 된 작제건은 이내 용녀와 함께 다시 개성으로 돌아왔다. 작제건은 송악 기슭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곳은 옛날 강충이 살던 곳이었다.
작제건은 용녀에게서 네 아들을 얻었는데, 장남 용건은 나중에 이름을 융으로 고치고 자는 문명이라고 하였으니, 이가 곧 왕건의 아버지 왕융이다.
용건은 어느 날 꿈에 한 미인을 만나 부부가 될 것을 약속했다. 꿈에서 깨어난 뒤 송악산 영안성으로 가는 길에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바로 꿈에서 본 여자였다. 그래서 용건은 그녀와 혼인하였다.
사람들이 용건이 꿈에서 보았다 하여 그녀를 몽부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혹자는 말하길 그녀가 삼한의 어머니가 되었기에 성을 한씨라 했다고 한다. 그녀가 왕건의 어머니 한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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