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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봄 14 (신경숙과 바벨탑)
밤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다. 오늘은 자전거 타기는 곤란할 것 같아 블로그에 빌해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글을 작성하고 일부 글은 올리기로 했다. 천둥소리는 가히 지구를 토막내듯이 위력적이다. 벼락에 맞아죽는 확률이 매우 낮다지만 벼락에 맞아죽은 사람도 있다. 적년 강풍과 폭풍으로 차량이 손상이 가서 수리를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앞쪽 고급빌라 옥상에 설치되었던 목재와 함석으로 된 가건물이 바람에 날아 떨어져 문제가 되었지만 1년이 다 되가지만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 물론 내차는 보험처리로 수리를 했지만 자차비용을 합해 결국은 5만원을 손해 보았다. 일부 피해를 본 주변 다른 집에서는도 아무런 말이 없다. 내가 손해본 5만원 때문에 이갸기하기도 그렇고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폭우와 벼락,천둥이 치면 문덕 그때 생각이 나서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장면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토록 훌륭한 선수를 만들어준 그녀의 부모가 대단하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기족의 전폭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영, 골프, 축구, 역도 등에서 한국의 낭자들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이면에는 한국인들의 잠재역량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나라처럼 사회의 모든 경쟁에서 학벌,혈연,인맥에 치중하고 정의롭고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능력을 개발하여 최고가 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방송에서 각종분야에서 최고를 가리는 프로그램에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바로 그런 탓일 것이다.
영국 왕실의 세기의 결혼식으로 지구촌이 뜨겁다. 수많은 여자들은 주인공을 부러워하며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좋은 옷을 입었는지가 궁금한 모양이다. 평민 여자가 영국 왕실의 왕자에게 선택받았다는 사실에 그녀의 남다른 행복이 탐나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할 것이다. 백마탄 왕자가 저처럼 자신을 찿아오지 않을 것인가? 지혜도 매너도 심성도 못 되먹었으면서 얼굴은 성형에 머리속은 텅빈 여자를 누가 선택할 것인가는 스스로 판단해 볼 일이다. 서태지를 치부를 폭로한 이지아의 쾌거에 주부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눈먼 남자들이여~~ 여자를 조심하거라. 아무리 고르고 골라 보아야 오십보 백보이니라........
신경숙씨가 쓴 '엄마를 부탁해'란 책이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관습과 사고가 많이 다른 그 나라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니 새삼스럽다. 그녀의 책을 혹평한 것이 되려 노이즈 마케팅이 된 것일까?
그에 관한 한 칼럼을 소개한다.
신경숙과 바벨탑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비서구권 작가의 데뷔작으로는 최고인 초판 10만 부를 찍고도 5쇄에 들어갔으며, 5월 1일자에 발표되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양장본 소설부문 14위에 올랐다니 경이롭다. 이런 성공 뒤에는 당연히 ‘원작-번역-출판(편집 및 홍보)’ 측면에서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었다. 당연해야 했던 것이 당연하지 못했던 그간의 사정으로 작가의 말마따나 미국에 한국 문학의 ‘첫눈’이 이제야 제대로 내리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이런 희소식에 섞여 미국 대학교수가 공영 라디오 방송(NPR)에서 “김치냄새 나는 클리넥스 소설”이라고 혹평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한국적 모성 이야기로 값싼 위안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미국 전체 출판시장에서 외국 문학 번역서의 비율이 1%에 불과하다니, 이런 거부 반응이나 견제의식 또한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비서구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가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벵골어로 쓴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영역한 후이다. 물론 이럴 때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영역될 때 이탈리아적 색채가 많이 약화되었듯이 미국식 번역이 강요하는 자민족 중심주의를 참아야만 한다. 외국어로 번역될 때 까탈 부리기로 소문난 밀란 쿤데라조차 ‘농담’을 영어로 번역할 때는 자발적으로 체코 역사에 대한 부분들을 삭제하면서 영미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원본의 변형은 번역의 숙명이지만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있듯이 완벽하게 원본과 일치하는 번역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원본이 번역 과정을 통해 훼손되거나 변형되는 것은 번역의 숙명일 수 있다. 또한 한 가지 공통 언어로 소통하면서 바벨탑을 세워 신의 권능에 도전했다가 바벨탑의 붕괴 이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벨탑은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인간들의 ‘관계 맺기’에 대한 상징일 수 있다.
신경숙 소설의 혹평에 대해 미국인들조차 타 문화에 대한 무지나 모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미국인들이 치즈냄새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미국식 가치를 재확인하기 바란다면 소위 ‘김치냄새’ 나는 신경숙 소설을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 물론 여기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가 아니라 ‘한국적이고도 세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재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엄마’로 대변되는 상실된 가족의 가치나 불평등한 관계 문제는 한국적 특수성을 넘어 국경을 초월하는 울림을 선사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 아닌 논쟁이 앞으로 한국 문학이 외국에 소개될 때 계속 부딪히게 될 딜레마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에 대해 문화번역 차원에서 성숙하고 신중하게 대응해야 진정한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자국적인 익숙함만을 추구한다면 이국적인 낯섦은 제거해야 할 불편함일 뿐이다. 이럴 때 바벨탑 이후 중요해진 관계의 윤리는 사라진다. 낯섦을 낯섦으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들의 틈새도 더 잘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외국 문학을 받아들일 때도 마찬가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앞의 혹평이나 아마존닷컴에 달린 독자 서평, 오프라 윈프리의 북클럽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확인되는바, 이 소설에 대해 (반)여성이나 (반)근대성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문학적 형상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독자들도 소설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엄마의 실종을 풀어 나가는 추리 소설적 구성이나 딸-아들-남편-엄마로 교차되는 시점, ‘너’라는 2인칭 시점, 엄마의 신발이나 피에타 상이 지닌 상징성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거나 해석을 내리면서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문학적 장치에 있어서도 이 소설이 흥미롭다는 점을 예증한다. 이데올로기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문학성밖에는 없다. 보편적 이야기를 신경숙이 어떻게 ‘다르게’ 이야기하는가에 미국인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문학을 문학으로 수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 한국서 시작해야
그러니 다시 우리가 우리 소설들을 미국 사람들보다 열심히 읽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그것이 우리 작가들을 더욱 문학적으로 긴장시키면서 열심히 쓰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가 국내에서 170만 부가 팔렸다는 사실은 분명 미국 입성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포스트 신경숙’을 위해서, 그리고 숙명적인 번역의 ‘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한국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문학에 대한 책임(responsibility)은 우리 작가에 대한 애정 어린 반응(response)과 다르지 않다. 가족부터 엄마를 사랑해야 남들도 우리 엄마를 존중해 준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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