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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21 : 발해의 역사 24 (발해의 멸망 2) 본문
한국의 역사 221 : 발해의 역사 24 (발해의 멸망 2)
거란 태조의 군사 참모로서 나중에 동란국의 우차상에 오른 야울우지는 발해 내부의 이심(離心) 때문에 거란은 그 틈을 이용하여 싸우지 않고 이겼다고 하였다. 한편 후술하듯이 거란이 총공세를 펼치기 전인 925년 9월과 12월 사이 발해의 지배층은 세 차례에 걸쳐 고려로 망명하였다는 사실이다. 발해 지배층의 고려 망명은 야율우지가 말한 발해 내분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 내분이 발해 멸망의 원인으로 중시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발해의 마지막 왕인 대인선과 그의 동생간의 알력, 또는 거란의 침입에 대한 지원의 대상을 놓고 고려파와 신라파 간에 대립한 결과 고려파가 패배한 결과라고 추측한 견해들이 있었다.
그런데 거란이 부여부를 함락한 직후에 발해 중앙에서 파견된 노상의 3만 대군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는 점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지 않고 쉽게 항복한 것으로 판단되며, 더구나 노상은 나중에 동란국의 우대상으로 발탁된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수긍이 가는 점이다. 한편 거란은 처음 부여부를 함락한 뒤에 지역민을 강제 이주시켜려다가 발해 수도로 직공하였다. 이러한 전술의 전환은 발해의 대응이 생각보다 매우 약하다는 판단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발해의 노상이라는 장수는 거란과의 대결보다 화의를 위해 파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노상에 대비되는 존재는 멸망 이전 고려로 망명한 세력이다. 고려측 기록에는 925년 9월 장군 신덕과 예부경 대화균 등이 멸망의 결과 고려로 망명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망명 시점은 925년이 아닌 926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끝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거란이 요동 진출을 모색한 이래로 발해가 거란에 단 한 차례(918년 2월)밖에 사신을 파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립적인 외교 상대와 아무런 교섭이 없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리고 첩자들을 이용하여 거란의 동향과 움직임도 세밀하게 파악하고 대비한 것도 아니었다. 이와 관련하여 질랄부 이리근이었던 야율할저가 발해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거란으로 귀환한 사건이 주목된다. 그가 발해로 망명한 시기는 일찍이 915년이라고 파악한 견해가 있지만, 901-906년이 옳다. 이 시기는 거란이 동북방면으로 진출하던 때였다. 거란의 실력자가 발해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귀환한 것은 발해가 거란의 동향에 무관심하였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거란은 야율할저를 통해 발해에 대한 고급정보를 얻고 요동으로 진출을 모색했을 지도 모른다.
이와 달리 발해는 후량 및 후당에 아홉번이나 사신을 파견하였다. 결국 발해는 중원과의 친선관계를 최우선으로 하였고 거란이 요동으로 진출하자 더 이상 중원에만 의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라 등과 결원을 시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두 차례, 고려는 세 차례 거란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요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는 거란이 926년 발해를 공격할 때 참가하였듯이, 발해의 외교적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발해는 건국부터 무왕대까지 당의 책봉을 받았음에도 때로는 대당강경책을 구사하였다. 문왕의 즉위 이후 적극적인 친당정책으로 전환하여 지배체제 정비에 힘쓰는 한편 동북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그렇지만 발해 후기에 당으로부터 수여받은 책봉호가 신라와 달리 승진과 강등을 반복하였다는 것은 당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렇게 볼 때, 발해와 당은 잠재적 대립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요동 지역이라는 완충지대를 설정함으로써 더 이상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였다. 그 결과 발해는 동북방면으로 확장에 치중하였고 당의 문물을 수용하여 체제정비에 나설 수 있었다. 한편 당은 신라에게 발해를 견제하는 역활을 기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해가 신라와의 관계 개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대당관계를 중시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과론 적으로 발해는 당 중심의 세계질서에 매몰되어, 즉 당 일변도의 외교정책에 치중하다가 10세기 초 거란의 등장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던 것이며 결국 그로인해 발해는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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